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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살의 철학자 메를로 퐁티

by 책이랑 2019. 4. 18.
'사물 또는 사실 자체'란 무엇인가? 현상학자들에게 대상은 실증적 사유의 대상이 아니라 의미대상이다. 따라서 대상은 사물이지만, 사실 성의 영역에 속한다. 따라서 우리는 사물, 사실, 사태를 크게 구분하지않으려 한다. 간단한 예를 보자. 여기 물이 있다. 현상론자들은 물로 인 식되기 이전에 감각되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무 언가가 무엇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것을 알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아 마도 '신' 외에는 없다. 근대학문은 인간의 이성적 능력 안에서 문제가 해결되어야 했다. 따라서 형이상학적 전제는 인정되지 않았다. 근대철학의 정점에 칸트가 있는 것도 인간 이성의 인식비판이라는 점에서다.
여하튼 물이라고 불리는 것의 실재가 무엇인지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없다. 그럼에도 그 물은 객관적 실재성을 가져야 했다. 특히 실증주의적 학문에서는 객관적 실재가 무엇인지 제시한다. 실증주의자들에게 물은 H2O라는 객관적 기호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것을 명확하게 설명할수 있다. 누구에게나 물은 똑같은 물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물은 인간과의 관계가 배제된 '객관 대상' 이다. 그 물은 있으나 마나 한 물이다.지금 내게 필요한 물은 갈증을 해소해 줄 시원한 물이다. 때로 그 물은허브를 심은 화분에 뿌리게 될 물이며, 조금 있다가 샤워하게 될 물이다. 물은 매번 내게 다른 물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물의 실재성이 보장되지 않는가? 

현상학자들은 '물'의 실재 의미를 밝혀내려 한다. 그 시도는 주관적경험에 멈추는 것도 아니고, 구체성을 잃은 객관에 머무는 것도 아니다.
현상학자들에게 '물'은 하나의 의미대상이다. 나의 의식에 주어진 것,
 의미를 가진 지향적 대상이다. 그러므로 HO가 물의 본질이라고 생각 하는 것은 자연과학이 심어놓은 편견이다. 이러한 편견을 '편견이라 생각하지 않고 의심 없이 믿는 태도'를 괄호 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사물자체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근대철학은 의미대상으로서의 물을 단지개인의 주관적인 것에 불과한 것으로 여기면서 학문적 관심을 두지 않는다. 후설은 근대인의 학문적 태도와 삶을 비판하면서 그들이 의심 없이 믿는 실증주의적 세계를 자연과학이 덧씌운 세계로 보고 있다.
자연과학은 우리가 정량화되고 수치화되며 기호화된 과학세계만을 참되고 객관적인 세계라고 믿게 한다. 그리하여 자연과학을 가능하게 한 우리의 일상세계, 즉 실제 우리가 살아가는 생생한 체험세계망각된다. 후설이 회복하고자 하는 것은 만들어진 사실이 아니라, 생생하게 살아지고 있는 삶, 즉 사실 그 자체' 이다. 그리고 후설이 되돌아가고자 하는 생활세계는 우리가 이론화하고 이념화되기 이전에 체험된세계이다. 그 세계는 우리가 잃어버린 세계이다. 후설의 철학은 잃어버린 세계를 복원하는 일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는다. 그것은 본래적인 세계를 회복하는 일이다. 따라서 철학은 정밀성을 요구하는 자연과학이며 본질을 파악하는 엄밀한 학문이어야 한다. 엄밀학으로서 "가장 높은 이론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윤리적, 종교적 관점에서 볼 때 순수한 이성적 규범을 따르는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학"  이다. 후설은 이러한 학문을 현상학이라 이름 짓는다.

현상학은 구체적인 생활세계를 말하면서도 학의 영역에서 진리 탐구라는 학문적 주제이자 목표를 벗어나지 않는다. 현상학은 진리에 다가가고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한다. 그래서 후설의 현 상학은 완결된 학적 체계라기보다는 학문적 방법론이라고 보는 것이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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