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이들의 계급투쟁 - ![]() 브래디 미카코 지음, 노수경 옮김/사계절 |
보육의 최전선에서 글로벌 규모로 진행되는 격차와 분리의 실태를 돋을새김한 논픽션이다. 무거운 현실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유머 섞인 필치도 상쾌하다.
P. 26~38 계급 분리, 접점이 없는 평행우주에서 살아가는 아이들
유아 교육 현장에서는 계급 분리가 진행되고 있다. ‘아파르트헤이트’는 사라지지 않았다. ‘유나이티드’여야 할 ‘킹덤’에서 인종이 아니라 계급을 기준으로 이와 같은 분리가 일어나고 있다.
…… 중산층 부모를 둔 아이는 하층 계급 아이보다 놀라울 정도로 풍부한 어휘를 구사했으며, 숫자도 셀 줄 알았다. 무엇보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런 겉으로 보이는 학습 능력이 아니라 아이들의 손끝이 야무지다는 점이었다. 유아기의 뇌 발달은 손가락의 움직임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나는 아이들과 자주 종이접기를 한다. 어린이집의 3세 아동은 저변 탁아소의 3세 아동이 절대로 접을 수 없는 형태로 솜씨 좋게 종이를 접을 수 있다.
…… 빈민가 아이들은 보육 시설에서부터 초등학교, 중학교를 전부 자기들과 같은 계급의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공부하게 되며 자기보다 높은 계급에 속한 아이와는 친구가 될 기회는커녕 옷깃을 스칠 인연조차 맺지 못한다. 이는 위쪽 계급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인데, 그들에게 하층 계급이란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밖에 본 적이 없는, 현실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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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지출이 줄어들면 사람의 마음도 작아진다
긴축에 침을 뱉으라
이 책은 다소 변칙적인 구성을 보인다.
- 저자가 처음 무료 탁아소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시기(2008.9~2010.10)를 뒤로 배치하고,
- 보육사 자격증 취득 후 중산층 전용 민간 어린이집에서 근무하다 다시 이 탁아소로 돌아와 일한 시기(2015.3~2016.10)를 앞에 놓았다.
그 사이 영국에서는 2010년 5월 총선의 결과로 집권 정당이 노동당에서 보수당으로 바뀌고, 사회 전반의 복지제도가 축소되는 ‘긴축’의 바람이 불었다. 언론에서는 노동하지 않고 생활보호수당으로 먹고살면서 무절제한 생활을 하는 ‘구제불능의 언더 클래스under class’에 대해 연일 보도하고, 이에 분노한 여론을 등에 업은 보수당은 생활보호수당이나 실업보험, 양육 보조금 등을 대폭 삭감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이러한 긴축의 영향이 하층 계급의 삶을 어떻게 무너뜨렸는지를 한층 극명하게 보이기 위해 ‘긴축 시대’를 앞에, 거기에 없는 무엇인가가 아직 남아 있던 ‘저변 시대’의 이야기를 뒤에 놓았다.
긴축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민자를 위한 영어 교실을 제외하고는 지원센터와 탁아소에 지급되던 모든 지원금이 중단되었다. 탁아소는 이민자의 아이들이 채우기 시작했고, 탁아소에 올 차비조차 없는 영국 하층 계급 아이들은 소수자가 되었다. 앞 시대의 ‘인종차별’이 이제 근면 성실하며 상승 욕구가 강한 이민자들이 인생을 엉망진창으로 허비하는 백인 하층을 혐오하고 배제하는 ‘계급차별’의 양상으로 바뀌었다. 4세 이전에 이미 심각하게 나타나는 발육의 격차를 시정하기 위해 노동당 정부가 실시하던 영유아 교육 과정, 보육사를 베이비시터에서 교육자로 키워내기 위한 지원 정책들이 약화되면서 건강한 교육 현장이었던 탁아소는 남아 있는 사람들이 알아서 운영해야 하는 버려진 공간이 되었다.
과연 생활보호수당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은 긴축 이후 술과 약물을 끊고 직장을 구해 열심히 일하게 되었을까? 안타깝게도 몇 년 사이 영국은 밥을 굶는 사람이 속출하는 나라가 되었고, 백인 하층과 이민자들이 서로 몸을 부대끼며 갈등도 하고 이해도 하며 살아가던 밑바닥 사회는 혐오의 전장이 되고 말았다. ‘제힘으로주의’가 길바닥에 내버린 사람들은 제 힘으로 일어서지 못하고 그대로 굶어 죽었다. 이런 변화 속에서 탁아소는 굶주린 이들을 위한 푸드 뱅크에 자리를 내주고 문을 닫았다. 탁아소가 정치에 완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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