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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용님의 <내 안의 역사>를 읽고

by 책이랑 2020. 4. 15.

드라마를 보다가 다음 회까지 기다리는게 너무 힘들어서 안보고 꾹 참았다가 종영된 후에 '몰아보기'를 한 적이 있다. 기다리느라 힘들지 않아서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예상외로 재미가 덜 했는데 방송 후 내용에 대해서 화를 내거나 흠잡는 시간도 없어지고  다음 번에는 어떻게 될 것 같은지 생각해 보는 재미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노래할때의 원칙은 공기 반,소리반 치킨을 시킬 때는 양념반 후라이드반이고 드라마는 본방사수! 그런데 책도 드라마와 비슷한 것 같다. 어떤 책은 쭉 붙여서 읽기보다 사이를 띄어가면서 읽을 때 재미가 더 커진다.
코로나19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 있게 되면서
사회학자 전우용 님의 <내 안의 역사>를 토론하는 멤버들과 같이 읽었다. 읽기 일정에 맞춰서 꼬박꼬박 읽게 되었고 어떤 대목을 발췌하고 공유할 지를 곰곰히 생각며 읽으니, 엄청 충실하게 읽었고, 혼자서 단번에 읽을 보다 재미가 훨씬 더 컸다.

이 책은 저자가 2010년 7월부터 2011년 2월까지 중앙일보에 연재한 <근대의 사생활>이라는 칼럼과 2014년 7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한겨레 신문에 연재했던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의 칼럼 그리고 발표했던 논문 등을 합친 것이다. 개인, 가족, 직업과 경제생활, 공간과 정치, 가치관과 문화의 5개 부분로 나뉘어 수록되어 있다.
글들은 칼럼이었을 때보다 길이가 길어졌다. 좀 더 자세히 서술되어 있고 관련내용이 더 넓게 첨부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번에 쭉 읽히고 강렬한 인상이 남는 컬럼과는 달리 
나중에 첨부된 내용 때문에 읽기의 흐름이 끊기는 느낌이 종종 들었다. 또 어떤 글을 읽으면서는, 왜  이소재를 선택했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신문에 실렸던 칼럼과 비교해 보니 칼럼연재 당시의 사건을 언급한 부분이 책의 글에는 빠져 있었다. 또 특히 길이가 긴 글이 나왔는데 읽기가 어렵게 느껴지기에 조사해보니 그 글은 원래 ‘황제어극 40년 망육순 칭경 기념예식’ 이라는 40페이지가 넘는 논문이었다. 논문이었을 때는 장과 절로 분할 되어 있었던 것을 그냥 이어붙여 놓아서 그런지 긴글을 논점을 놓치지 않고 읽기가 힘들었다.

어쨌든 며칠에 나누어 읽고 난 후, 이런 책을 계속 읽으면 나도 '셜록'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BBC의 드라마 <셜록>에서 주인공 셜록은 아주 찰나의 순간을 관찰하고도 엄청난 야양의 정보를 잡아낸다. 원래 아는 것도 많은데다가  관찰력도 뛰어나까,  관찰한 것과 아는 것을 순식간에 연결시킨다.  저자 전우용님도 셜록과 갈은 데가 있다. 저자는  트위터에서 시국과 관련한 촌철살인으로 유명한데 현재의 이슈의 핵심을 잡아내고,  짧은 길이의 말로  정확히 표현해 낸다. 감탄과 공감이 쏟아진다.  

서문에 저자는 "현재 자기의 삶이 어떤 역사적 계기들에 의해 구성되었는지를 알아야, 더 나은 미래의 삶을 위해 어떤 계기들을 만들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 고 했다. 과연 이 책은 역사 교과서에 서술되어 있던 국가차원, 정치적인 사건이 아닌 그 시대를 살아가던 보통사람의 일상- 정체성에 영향을 미친 사건들에 촛점이 맞춰져 있다. 한국현대소설을 읽다 보면 역사적 배경을 알아야 하고 그런 사건들은 보통 1960년대 정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런데 이 책은 거기에서 다시 2~3세대 정도를 거슬러 올라간 시기인 대략 1880년 부터 서술되어 있는 것 같다. 세운상가가 1968년에 세워진 것은 알고 있었는데 이곳이 1944년에 일제가 미군의 소이탄 공습을 피해, 폭 50m 의 도로가 되었었고 그 이전에는 한성에 몰려든 빈민들의 거주지였으며, 그 이전에는 종묘에서 남산에 이르는 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떤 장소의 150여년 정도의 역사를 안다면, 현재 모습을 보면서도 과개에 비해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알 것이고 현재 혁시 변해갈 것임을 짐작하고 앞으로는 어떤 방향으로 변할지를 생각해 볼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식의 눈을 가지게 되면 셜록과 같은 능력을 가지게 되는 것일 것 같다. 관심은 많이 있었지만 깊게는 알지 못했던 100여년 동안의 보통사람들의 일상과 서울의 옛모습에 대해 읽다 보니, 나도 내 안의 역사가 궁금해졌다. 내가 30년간 살았던 친정동네는 일제 강점기에 어떤 곳이었을지 찾아보았다. 일제 시대에 어떤 일본인 부호가 연못을 만들고 배를 띄우며 즐겼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가 있었다. 무려 고려말부터 언급이 되는데, 고려말에 한강가에 세금으로 거둬들인 쌀과 물품을 창고를 설치하는 수참제도가 실시 되었을 때 흑석동은 수참이 설치된 한강가의 6개의 고을 중 하나였다고 한다. 지금은 시장이 노량진에서 국립묘지로 가는 도로 안쪽에 있는데, 이 시장은 그 도로가 나기 전에는 땔나무와 채소가 거래되던 큰 시장이었다고 한다. 또 경치가 아름다워서 흑석동 옆의 동작나루 주변과 같이, 양반들의 별장이 있었다고 한다. 흑석동의 아름다움을 쓴 시가 있기도 하다. 또 한강가의 마을의 민속을 다룬 연구보고서에서는 이곳에서 지낸 마을제사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나중엔 일본인이 신사로 바꾼 것 같다. 강에 접한 지역에 얼음을 채취해서 보관하는 창고인 빙고가 있었는데 대한제국 시대에 일본인이 사설빙고를 운영했고, 그 일본인이 관여해서 지금의 흑석동과 붙어 있는 본동쪽에 1907년 자동차를 타고 건널 수 있는 최초의 다리인 한강다리가 세워졌다. 빙고와 한강다리의 건설에 참여했던 일본인의 후배일본인은 1920년대에 흑석동에 자신의 별장을 지었고, 지금의 시장이 있는 곳에 연못을 만들었으며, 주택단지를 만들어 분양해서 200여 가구의 일본인들이 살았다고 한다. 초등학교때, 잘사는 친구집에 놀러가 보면 집이 좁고 긴 복도가 있는 일본식이었었다. 그래서 그 일본인 부자의 별장도 한 때 장동건, 고소영 부부가 살아서 유명해진 한강대교가 보이는 아파트 뒤편,부자친구들 집이 있던 지역일거라고 짐작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찾아보니 일본인 부자의 집은 아버지 어머니가 30년간 살던 친정집이 아파트로 재건축 되기를 기다리며 사셨던 곳과 매우 가까웠다. 흑석동에서 상도동으로 넘어가는 산의 경사면, 지금은 대학생이 된 조카들이 다니던 구립유치원 자리이기도 하다.

2부의 가족과 의식주 부분의 쌀에 관한 부분에는 수리조합으로 인해 소지주들이 소작농이 되었다는(p.113) 내용이 나온다.  어머니는 학교를 거의 다니지 못한게 일생의 한이라고 여러번 이야기 하셨었다. 아끼던 딸이었기에 형편이 괜찮았으면 3년동안이나 찾아왔다는 담임선생님 말대로 조금은 더 학교에 다니셨을 텐데, 외할아버지가 투자한 (무안지역의 )수리조합이 부도가 나서 집안 형편이 급속히 나빠졌기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했다고 하셨다. 수리조합 일이 없었다면 어머니는 자신의 남자형제들처럼 학교에 가실 수 있었을까? 그래서 어머니와 1,2등을 다툰 남자 동급생처럼 선생이 될 수 있었을까? 개인의 일생은 이렇게 사회의 사건과 만나 굴절되고 달라진다.

<수리조합은 아니지만 1920년대 전남 무안 금융 조합 건물 앞에서 총회를 열고 있는 장면이라고 한다. 일제는 농촌에서는 공동 생산을 목적으로 하던 농계, 농상계(農桑契), 화금계(火禁契) 등이 해산하고  농회, 수리 조합, 삼림 조합 등 각종 단체를 조직했다>

글쓰기를 하려면 자기 얘기부터 쓰면 쉽다고 하길래 성장과정에 대해 써본 적이 있다. 쓰고 보니 우리 가족이 서울로 이주한 계기, 아버지가 다니던 식당을 그만둬야 했던 이유, 가계가 나빠졌다가 아들 딸인 우리가 동시에 사립대학을 다닐 정도로 벌이가 좋아졌던 상황이 경제 개발로 인한 이촌향도 현상, 두 번에 걸친 오일쇼크, 90년대의 경제호황과 딱 물려 돌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개인의 생활과 사회가 그렇게나 밀접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무척 놀랐었다.

이 책은 그런 변화를 가져온 사건들에 대해서 알려주면서 그 변화의 방향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대체로 물질은 더 풍요로와 졌는데 동시에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더 커졌고, 사람과 사람사이의 거리는 대체로 멀어졌지고, 사람사이에는 영리를 추구하는 조직들이 끼어들었고, 개인에 영향을 미치는 조직과 국가의 크기와 세기가 커지는 방향으로 변했다고 한다. 사람과 직접 상호작용하기보다는 물건들, 기계와 더 많이 상호작용 하게 되면서 사람의 심성에도 이런 부분이 더 늘어난다고 말한다.

현대인의 심성에 물질, 기계의 영향이 깊숙히 들어와 있다는 문구를 보니 세종대 이상헌 교수의 '인공지능, 붓다의 시선으로 바라보다' 라는 강연내용이 생각난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앞섰다고들 하지만 이는 "계산적 지능"에 국한된 것이고 로봇은 직관,영감, 상식 추론, 창의성, 감정, 자율성 혹은 도덕성, 공감 능력 등의 다양한 범주의 지능에서는 인간을 따르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인공지능은 인간의 수단에 머무를 것이므로,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이 어떤 목적으로 그것을 이용할 것인가라고 했다. 인공지능을 사용할 때, '욕망의 기술 '로서가 아니라 ‘자비의 기술’로 ,인간의 문제의 원천이 되는 고통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금 전세계에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지난 두어달 동안 세계사람들은 그 이전으로 돌아간 듯한 삶을 살고 있다. 1990년대 부터 본격화 된 세계화는 힘을 잃었고, 해당국가, 해당지역이 중심이 되는 '로컬'의 삶을 살고 있다. 그동안에는 돈만 있다면 기술의 도움으로 타인 없이도 별탈 없이 살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면 이 사태를 겪으면서는 화폐와 기술은 본질적으로는 사람과 사람이 상호작용을 보조하는 '도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화폐는 실물의 그림자'라고 한다던가. 돈의 힘이 너무 커 보여서 잘 몰랐다가 살아가는데 어떤 것이 더 근본적인 ㅏ것인지, 그것들간의 위계를 알게 된 것 같다.

앞으로 코로나가 잠잠해져도 코로나 이전으로 다시 돌아가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과거에 기준이 되던 것이 앞으로의 기준이 될 수는 없을 것이라고 한다. 이번 코로나 유행은 해당 국가, 해당 사회의 가장 약한 지점이 어디인지를 드러내준다고 한다. 미국은 의료와 흑인층, 싱가폴은 이주노동자, 한국은 종교와 교육이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답답하게 집에 머물러야 하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생계를 걱정하는 요즈음이다. 많이 힘들다. 그렇지만 지금은 역사공부를 하면서 그동안 세상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살펴보기 좋은 시간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과거를 생각해 보는 능력, 물질과 제도가 인간에게 미친 영향을 가늠하는 것, 미래를 기획해보는 능력, 변화를 만들어 가는 능력이 사람에게는 있다. 그러니 갇혀 있는 것 같은 지금 이 순간이 코로나유행이 드러낸 그 사회의 약한 부분을 보완하고 앞으로의 세상이 '나 혼자' 보다는 '함께', '욕망'보다는 '자비'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바뀌어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열심히 궁리해 보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친정어머니를 모신 흑석동 달마사에서 내려다본 한강의 모습이다.
알고 보니 일본인 부자가 지었다는 별장터와 가깝다.  달마사 찍으러 온 사람들이 꼭 한번씩 찍는 구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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