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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역하는 말1) 루이사 발렌수엘라

by 책이랑 2021. 6. 10.

▌반역하는 말1) 루이사 발렌수엘라

1) 이 글은 2009년 10월 29일 인천 아트플랫폼에서 열린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 메리카 문학 심포지엄, ‘경계를 넘어서’(Beyond the border)의 강연문이다. 웹진 트랜스라틴http://translatin.snu.ac.kr 서울대학교 라틴아메리카연구소(SNUILAS)

위대한 브라질 여성작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Clarice Lispector) 가 깊이 탐구한 자연과의 교감 방식들이요 저마다의 내부에 있는 가장 야성적인 본성과의 교감 방식들입니다. 󰡔GH의 열정 La pasión según GH󰡕에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 는 여주인공이 등장합니다. (암소에 찍는 낙인처럼) GH라는 약 자, 즉 실질적인 익명 상태의 여주인공입니다. 그녀는 자기 발에 밟혀 형체는 사라지고 하얀 반죽만 남긴 바퀴벌레를 보면서 당혹 스럽고 긴장된 내면여행에 몸을 싣습니다.

 

이름도 모를 그것이, 내가 바퀴벌레를 쳐다보면서 호명하는, 하지만 이름은 없는 바로 그것이었다. 가치도 없고 특징도 없는 그것과의 접촉이 혐오스럽다. 이름도 맛도 냄새도 없는 생물은 혐 오스럽다. 무미건조하다. 맛에는 이제 내 자신의 씁쓸함이 배어있 다. 그러자 순간적으로 온몸에 일종의 행복한 전율, 혐오스럽고 행복한 불쾌감을 느꼈다. 그 와중에 다리가 땅으로 꺼지는 느낌이 반역하는 말이었고, 그래서 내 미지의 정체성의 뿌리와 늘 닿아있는 느낌을 받았다.

 

그 빛나는 타락의 과정에 있는 삶 자체에서 자신을 격리시키 는 듯한 그 혐오의 장벽을 극복하기 위하여, GH는 그 몹쓸 것 일부를 입으로 가져갈 필요가 있었고 또 육체와 감각을 활성화시 켜 이성을 훌쩍 넘어서는 지식에 접근해야 했다. “혐오감을 느 끼는 것과 동시에 세계가 내게서 도망치고, 내가 세계에서 도망 치리라는 것을 알았다.” 이는 본능적인 수용으로 마치 일종의 수선방법, 성스럽다할 교감, 지식에의 접근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 여성이 세기의 이야기를 하는 이야기꾼이라면 이런 질문이 발생합니다. “여성이 실제 공포에 대한 이 이야기들을 (문학적 가치가 있는 글쓰기를 통해) 말하고 있는데 어째서 받아 들여지지 않는 것일까? 하는 물음입니다.

저는 감히 두 가지 가능성 있는 답을 제시하겠습니다. 1) 여성이 입에 올리면 안 되는(안 되었던) ‘나쁜’ 언어가 주는 불편함 때문입니다. 이제 성에 대해서는 모든 여성이 다 말 할 수 있기 때문에, 권력과 정치가 남성 최후의 보루로 남은 것 입니다. 2) 영웅이 존재하지 않고, 흑백이 분명히 구분되지도 않고, 유 머가 뒤섞이고 분비물이 아무에게나 튈 수 있는 그 애매모호한 지대를 여성작가가 파헤칠 수 있는 능력 때문입니다. 물론 남성 작가도 여성작가처럼 애매모호한 지대를 탐구하기도 합니다. 그 러나 여성의 언어가 남성의 언어보다 위협적일 가능성이 훨씬 더 큽니다. 남성의 언어는 원래 우리 여성을 침묵시키는 사명을 띤 존재에게 발화된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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