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젊은이가 교황에게 질문을 건냈습니다.
“교황님 저는 어떻게 사랑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답은 이래요. “그 누구도 사랑하는 법을 모르죠. 우리 각자가 매일 배워나가는 겁니다.”
사랑은 느닷없이 빠져들 때도 있어요. 그 사람과 소통하고 싶은 욕망이 일죠. 그리고 관계를 이어가겠다고 결심합니다.하지만 관계가 갖는 물리적·심리적·사회적 갈등이 생겨납니다. ...갈등 없는 사랑이 가능하다는 건 미련하다는 생각이 일어날 만도 한데, 우리는 어떤가요? 사랑에 빠지면 자신들의 사랑에는 끊임없는 축복이 내릴 거라고 기대하죠. 나는 내 공간을 가지면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대상을 만난 거라고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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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건 사랑은 발견되는 대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사랑은 지속적인 작업이죠. 끊임없는 노동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당신 앞에는 사랑하기 위해 다시 창조하고 다시 규정하고 다시 조정해야 하는 24시간이 놓여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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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는 반드시 새로 부과되는 요소가 있습니다. 무엇이 벌어질지 결코 몰라요. 그래도 사랑이라는 관계는 당신에게 고독, 외로움, 버려져 있다는 감정을 뛰어넘도록 허락하잖아요. 사랑은 두 주체의 만남이고, ‘객체가 되는 시간’까지 받아들이는 조건이 따릅니다. 다들 스스로 통치하고 싶어하는데, 그럼 사랑은 불가능해집니다.
질문: 나의 의지를 비워낸다면 갈등이 없어질까요? 많은 잠언들은 무조건적 사랑, 상대를 품으라고 하잖아요.?
답: 글쎄요. 어떤 수위, 그러니까 다른 사람에게 굴복하는 일이 생기지 않는 수위까지는 되겠죠. 그런데 내가 주체성을 잃는다면, 그건 상대도 잃게 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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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이 많아도 상대방이 없는 그런 재난보다는 낫다는 결론에 도달할 때, 좋든 싫든 그와 함께할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 수많은 항복, 수없는 타협, 그리고 꽤 많은 요구를 내려 놓아야만 하죠. 인생은 편하지 않습니다. 현대의 이데올로기, 현대의 슬로건은 ‘세상은 매우 불편하고 사람 살기에 적합하지 않으니, 우리는 이를 편안하고 편리하게 뭐든 만들어 낼 것이다’라고 합니다. 이는 신화예요. 설화, 거짓 술책, 관념주의자들의 재잘거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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