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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왜-김동춘 교수

by 책이랑 2017. 6. 2.

□김동춘 교수님


-< 대한민국은 왜 1945~2015) >는 책 2015 박근혜 정권, 우울한 때 쓴 것

- 지금 문재인 정부 지지율 87%인 현상황에서 필요있을까 싶지만 이책에서 제기한 문제 중 해결된 것은 아직 없기 때문에 이 강의를 하고 있슴.

- 저자인 나는 이책에서 역사학자가 아닌 사회학자로서 현실정치와 결합된 '지금'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  박원순시장과는 역사문제연구소, 참여연대를 같이 한 인연이 있다.)


이처럼 우리사회는 겹겹의 층위로 이루어져 였다. 우리사회는 겹겹의 지층이 깔려 있다.

 대한민국

 1961-개발독재+반공주의

 1954-개헌

 1948 -국가보안법


■ 현재의 대한민국을 만든 것은 3개의 사건
1948년, 1954, 1961년


□ 1948년 12.2 국가보안법제정 

- 1948년에 제주 4.3 사삼사건, 10.19 여수순천사건이 났고

12.2 국가보안법이 제정됨

- 미군정이 일본이 남기고 간 검찰,경찰 조직을 그대로 인정한 것이 원인 

- 역사의 가정은 필요없다하는데, 그렇지 않었다면 지금과 다른 모습일 것


□ 1954 (사사오입) 개헌

-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두번째로 중요한 계기로서  휴전된 일년후 헌법을 개정한 것

- 대한민국의 제1공화국 시절의 집권 세력이었던 자유당이 정족수를 136명이 되어야 가결되는데 135명으로 정족수가 미달인데도 반올림, 즉 사사오입 할수 있다고 말하며 헌법제정이 성립된다고 하며 헌법을 정정하여 선포하였다. 

- 이는 미국식 자유경제체제적인 조항으로 수정하기 위한 개헌안이다.

- 48년 제헌헌법은 상해독립운동을 한사람들의 철학으로서

삼균주의 철학= 균권, 균부, 균학 (+사회민주주의적인 내용)이 제헌헌법에 남아 있다.
(사유재산권은 인정하되
- 공공의 복리에 맞게 써야 한다.
- 중요 기간산업 국유화,
- 기업의 이익은 균분한다. 는 것)

제헌헌법의 유진오 박사는 독일의  바이마르 헌법을 참고하였는데 바이마르헌법은 사회민주주의를 가장 잘 다룬 헌법ㅁ
(*바이마르 헌법은 19세기적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하면서 20세기적 사회국가의 이념을 취하여 근대 헌법상 처음으로 소유권의 의무성(사회성)과 재산권 행상의 공공복지 적합성을 규정하고, 인간다운 생존(생존권)을 보장하면서 사회주의에 입각한 기본적인 인권을 규정한다는 점에서 20세기 헌법의 전형이 되었다.-)

- 이때 일제가 남기고 간 공적 재산을 (월남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불하함

□ 61년 박정희 국가 쿠테타- 반공

- 반공을 국시로 삼음

- 이승만식의 큰소리만 치는 반공주의가 아닌 공산주의를 이길수 있는 물질적 기반을 만들자

백성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

- 그때까지 했던 반공이 이념적이라면 이때부터 반공을 실제화함(물질적인 토대&경쟁)

- 따라서 개발독제 시스템 과+반공주의는 쌍생아임.


■ 1987년 시민항쟁가 한계가 있는 이유는 남북이 분단되어 있기 때문아ㄷ.

▶ 정경유착/ 성장주의를 내용으로 하는 61년 체재, 즉 개발독제 체제를 바꾸는 것이 문재인정부의 과제 

▶ 87민주화는 민주화는 의미있는 성취이긴 하나 표피적인 민주화로서 근본적으로 사회를 바꾸지 못함.

▶  그러나 54, 48, 시스템은 건재하다.

- 남북한이 분단되어 있기 때문(이 시스템이 계속 힘을 발휘함)

( 박정희 정권의  초기에 어느정도의 언론자유가 있었고
 지역주의 삼분분립이 어느정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1997 외환위기로 신자유주의주의적인 시스템이 들어온다.

- 효율성만능, 구조조정, 비정규직 양산


■ 동학농민군의 패배


- 동학농민군이 우금치 싸움등 1893,1892이 그 이후의 120년을 결정지었다.

- 전봉준이 서울까지 진격했더라면 (역사의 가정은 필요없다 하지만)

  관군을 이기지는 못했겠지만, 고종은 개혁을 했을 것인데 그렇지 않아서

조전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지나친 단순화라고 여러번 얘기하심)

-  분단은 조선이 강제적으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기 때문이기 때문에 조선이 

왜 식민지가 되었나로 거슬러 올라가 질문

- 중국은 일본의 반식민지가 되었다가 모택동에 의해 정리가 되었것과 비교가 된다.

- 동학농민군의 처형은 고종이 한 것이나 실제 주체는  일본군임


□ 조선에서 일어난 
청일전쟁

-우리가 역사시간에 잘 안 가르치고 있는디 청일전쟁은
중국에서, 일본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조선에서 이루어진 것

- 일본이 청일전쟁의 첫 포승을 연 것은 조선인을 경복궁에서 무장해제 시킨 것

- 이유는 현재의 사드배치와 비슷한 문제로서 조선이 독립적인 국가가 아닌 청나라에 예속되어 있는 군대로 보았기 때문

- 현재 서대문에 있는 독립문의 독립은 '청나라로부터의 독립'을 우미함 

- 독립문을 세운 서재필 등 독립협회의 80%가 친일파로서 청나라로부터의 독립을 독립으로 인식함

- 한쪽으로부터 벗어나면 다른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상황이었고 지금도 이에서 자유롭지 못함


 □ 지난백년은 안중근 라인(독립운동)에 대한  
윤치호 라인(친일, 친미)의 일방적 승리


- 윤치호는 서자로서의 차별을 받아서 조선에 대해 불만이 많음

- 에모리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놀라운 영어실력을 가졌슴. 죽을 때 영어까지 일기를 씀

- 미국유학중 황인종에 대한 차별이 심한 것을 깨닫고 일본에 기대야겠다고 생각함

- 일본 야쓰꾸니 신사에는  1905 러일전쟁의 기록들이 있슴

-  이는 영광의 기억으로서  황인종이 처음으로 백인종을 물리친 전세계를 깜짝 놀래킨 자랑스러운 사건으로 인식하기 때문

- 아시아, 비서구 모든이에게 엄청난 자신감을 준 사건

- 친한파로 알려진 타고르는 사실 친일파이고 세상을 잘 모르던 20대의 안중근도 러일전쟁 승리에 대해 환호함

- 일본을 중심으로 황인종이 뭉쳐야 한다고 말함

- 그러나 안중근은 을사늑약이후의 일본의 모습에서  일본이 서구제국주의를 모방해서 조선을 집어먹으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읽게 되었다.

:고종 장례식과 을사늑약을 거치면서 이전까지는 제국주의에 대해 알게 되면서 안중근의 생각이 바뀜

프랑스의 메텔주교 및에서 불어를 배우면서 제국주의 실체를 알게 되고 자각을 하게 됨.


 □ 일본인은 자신을 '명예백인'으로 인지한다.

-일본인은 황인종중에 가장 앞섰다고 하여 '명예백인'으로서 인정받음.

- 일본인은 지리적으로는 자신을 아시아지만, 문명은 유럽수준으로 인식하면서
140년동안 자신에 대한 이런 정체성을 가지고 있슴.

- 탈아론

- 일본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 일본사람들은 관심이 없슴.

- 그 이후 우리나라의 100년을 단순화해보면 - 독립운동 안중근 라인 vs 친일파 윤치호 라인의 싸움임
안중근은 처형뢰었으며 안중근녜 노선은 지금까지 참담한 패패만을 기록함.


 □ 친일파는  자신의 친일 과거를 감추기 위해 친미를 한다.

- 친일파인 자신들의 과거를 감추기 위해서 가장 큰 우군이 될 수 있는 것은 친미임.

- 반공이라는 가치를 가장 큰 가치로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포장한 것

- 이들은 북한에 있었다면 김일성주의가 되었을 것(기회주의자)

-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던 이승만은 미국이 세계 제패한 것을 깨닫고 미국과의 로비를 통해서 자신을 알림


 □ 미국과 일본은 4년을 제외하고는 늘 밀월관계

- 한국은 미국에 대해 짝사랑을 하고 있는데 사실 미국과 일본은 태평양전쟁 4년기간을 빼고는 늘 밀월관계.

은 한국에 대해  관심이 없고 일본에 관심이 있슴

-미국은 경제적 이익이 모든 것의 판단의 기준이 되는 자본주의의 나라로서  비즈니스논리가 판단의 기준임
( 1960년 부터 이미 국방장관을 비즈니스맨으로 임명한 나라임 군수산업, 돈되면 하고 돈 안되면 안하는 것 interesting=돈 되겠네.)

- 당연히 일본은  일억이천의 인구, 산업화된 나라로서 긴밀한 산업적 관계를 맺을 이유가 있느 가장 관심있는 나라임

미국은 japan first임.


 □ 두번의 원폭은 태평양전쟁 후
아시아를 장악하기 위한 미국의 포석이었다.

- 이차대전이 끝났을 때 유럽은 전쟁에 대한 처벌로 독일을 분단시킴

- 그러나 전쟁당사국인 일본이 아니라 식민지인 한국을 분단시켰나

- 사실 일본은 45년 4월부터 항복의사를 밝혀 왔슴 

- 그러나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라는 말처럼 태평양 전쟁중에도 미국의 관심은 일본을 이기는 다음 아시아를 누가 먹을 것인가였슴

-유럽에서 소련군은  독일과 국경이 인접한 나라로서 히틀러를 막기위해  천만명이라는 희생을 치렀으며 따라서 유럽에서의 발언권이 큼

- 그러나 아시아는 미국이 모두 전투를 함 기여가 큰데 소련이 내려오는 것을 더 방치하면, 한반도까지 내려올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1. 핵을 터뜨려  항복시기를 앞당기고
2.전쟁이 끝난후 미국의 입지를 크게 하기위한 포석이었슴.

- 일본을 100 %먹고 소련이 분할하자는 것을 사전차단, 미국의 입지를 확고하게 하기 위한 것

- 미국은 조선에 관심이 없었으므로 1941년부터 일본이 망한후, 조선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검토하기 시작함

- 그때부터 조선의 독립운동세력을 파악했는데  상해 임시정부는 도덕적으로 중요하나 전투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됨.

- 이승만은 미국의 정계에 로비 시작함.

- 그때 미국은 이미 신탁통치안을 구상했는데 미국이 필리핀을 신탁통치를 구상했을 때의 그런 내용임.


 □ 공짜점심은 없다.- 분단은 자주적으로 일본을 물리치지 못한 댓가이다.

- 만일 1945년 한반도 내의 무장투쟁을 했었다면 조선이 독립할 수 있었을지도, 그러나 국내에 무장세력이 없었다.

- 영화 암살의 김원봉같은 인물이 일본군과 총들고 싸웠던 거의 유일한 세력인데 그나마 우리는 역사에서 가르치지 않음, 영화보고 처음 아는 사람이 대부분

- 이처럼 중국에서활동한 분들은 역사의무대 북한, 남한에서 모두 배제가 됨

-여기서 나는 공짜점심이 없다는 말을 떠올딘다.

- 힘으로 일본을 물리치지 못한 것이 원인이 되어 우리가 분단이 된 것이다.

- 미국은 얄타회담이전, 삼부조정회의에서 육해공군이 모여서 이렇게 정함

- 해방 후 이승만이 국민들의 지지를 받게 된 것은 그가 국내에 없었기 때문임. 국내에 있던 사람의 95%는 친일이 됨.

- 이승만은 국내에 있지도 않으면서 미국의 방송 voice of america.을 통해 국내사람에게 라디오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함으로써 자신의 역할 이상으로 신화가 됨


 □ 좌익세력이 모두 제거당하고 서북청년회로 대표되는 국내 우익단체가 출현한다.

- 서북청년회는 우익반공체제의 시원

-우리의 분단은 독일, 베트남, 예맨의 분단과 다름

- 독일 동독이 무너짐으로서 서독중심의 통일이고,

북베트남, 남베트남은 내전을 통해  북베트남이 통합한 것이고 예멘도 통일되었다.

-그러나 한반도의 분단은 성격이 복잡하다

- 미소가 전쟁에 대한 처벌로 강제로 분할한 독일의 분할과도 다르다

한국은 식민지였음으로 분단의 이유가 없는데도 자주적인 세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 따라서 최초의 분할점령이 분단으로 가게 된 것은 한국인들끼리의 내적인 책임, 좌우익대립에 있다.

- 1920년 삼일운동 직후 독립운동가들이 미국 or 소련으로 나뉘면서 대립함

- 우익이면서 독립운동가 좌익이면서 친일파가 모두 가능. 그러나 우익이면서 독립운동가인 사람이 정치무대에서 사라진것이 오늘의 대한민국의 상황

 - 48 년에 상해임시정부,  김구 세력이 모두 95%가 이승만 정부에 의해 제거되었고 이외 여러부류의 독립운동가들도 제거되었다.

-구후 서북청년회등이 우익의 주류가 됨


 □ 대한민국을 만든 세력은 월남 기독교인?

- 단순화시켜 이야기하면 제1공화국은 월남자들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님. 세계 5대 대형교회중 4개가 한국에 있는데 대부분  48년 월남 크리스찬들임.
1945년 10부터 처음 내려온 초기 월남자들은 북한에서 지주이거나 크리스찬인 사람들. 서울, 대도시 거주

- 1950년에는 핵사용루머, 전쟁을 두려워하여 내려옴. 이때 피해 내려온 사람들은 속초아바이마을, 부산의 고서동 거주

- 1948년 한국은 읠남자들이 만들어서 반공체제의 중요한 기등이 됨

- 여운형등 크리스찬이면서 사회주의자 좌파는 45~48 빨갱이등으로 몰려 사라짐 여운형 생가, 양평, 신원역  47년 당시 저격당함 중도좌파들은 대제로 다 제거가 됨

- 48년 제헌헌법이 마련됨 사회주의적 사상은 헌법의 내용에는 반영되나 정치적으로는 모두 배제시킴

- 민족주의, 좌파세력이 모두 제거됨 한국 정치구도가 다 불구적이 됨 

- 좌파가 드사 정치무대에 들어선건 이천년더. 정의당 심상정은  중도좌파로 분류할 수 있슴.
그러나 여운형 당시의 표방과 비교한다면 그보다 훨씬 오른쪽의 입장임

기독교와 대한민국

 한국사화의 오늘을 설명할 때  빼 놓을 수 없슴

- 1950년 인천 9월 인천상륙작전후 맥아더와 이승만이 중앙청에서 함께 기도함
그러나  1948년에 기독교 인구 5%인 상태인데 공식석상에서 기도를 한 것은 엄격히 따지면 헌법위반이다.

-그러나 그때 우리는 기독교=미국=구세주와 같은 등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 일본이 남기고 간 재산 불하시 교회, 크리스찬에 우선적으로 불하함
예를 들면 영락교회는 일본의 종교시설인 천리교 교당이 있던 자리임.

- 미군정이 통치 영어 잘하는 사람을 모으면서 할리라는 사람은
"통역관 이묘묵이 대한민국의 반을 차지할 정도로 권력이 있다".라고 말함.

- 교회가 전쟁군수물자 배분처로서 배분을 담당
  국민의 5%가 기독교인 시절인데도 군목제도, 크리스마스 공휴일제도가 마련됨
 따라서 이것은 종교적인 측면의 힘과 관계없이 정치적으로 큰 힘을 쓰는 집단이었다는 것임.

- 현재도 국민의 24 %가 기독교인임.
-그러니 현직 국회의원 42%가 넓은 의미의 크리스찬이 이를 상징적으로 드러내줌. 


□ 반공은 분단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것

이승복, 반공의 아이콘(실제 내용은 생략)
-  준전쟁상태라서 생기는 문제로서 남북한의 분단으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태에에서 미국식반공주의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슴.
-그러나 미국은 70년에 중국과 수교하고 80년에 소련과도 냉전체재를 해체했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분단상태

-70년대 민주화운동은 어떤 형태이던지 빨갱이로 몰렸으나 월남기독교인은 빨갱이로 몰리지 않음
 ( 함석헌 선생님)
그렇지 않은 나머지 사람들은 빨갱이로 몰리기 때문에 나서기가 어려움

- 리영희선생님의 경우는 이북출신으로서 박정희와 각을 세우는 것이 가능 
남한 출신들은 주눅에 들어 못함
월남민으로서 통역장교, 조선일보 기자출신, 합동통신기자에서 조선일보 발탁하여 외신부장까지 됨.
조선일보는 이북사람들이 만든 신문으로 방씨 일가가 이북사람들이기 때문
선우휘, 조선일보의 반공주의는 여기이서 온 것

칩십년대 정권과 가장 각을 세운 사람은 모두 이북사람임.

- 장준하씨는 옥중출마를 하며 대한민국 누구나가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했지만
박정희만은 될 수 없다고 했다.
박정희는 1945 관동군에서 나올 기회가 있는데 나오지 않았고 독립군을 토벌했던 사람이기 



□ 한국의 교육열과 노동 
- 한국인들은 어떤 이념, 가치,사상, 입장, 도덕을 내세우는 것이 한국에서 얼마나 입장은 크게 불리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경험한 후 자녀교육에 몰빵을 함.

- 이것은 물질적인 가치에 최선의 방점을 두는 것임

- 한국인들은 성장, 물질적 가치에 최우선을 두게 됨

- 노인들이 집회에서 성조기를 들고 나오는데 성조기=미국성장, 물질적가치의 상징임.

- 그러나 미국에 일주일만 있어봐도 차별을 뼈속까지 느낄 수 있슴.

- - 그들은 50 60년대 청년기를 보낸 사람으로서 그들에게 성조기는 가장 부강했던 시절 미국을 생각함.
좋아하는 마음이 아닌 큰 권력에 가까워지고 싶은 것으로 대세, 강자를 따라가겠다는 의미.

- 그러나 80년대 청년기를 보낸 한국인들은 광주사건로 해서 미국에 대한 생각이 흔들리게 됨.

- 한국인들이 자녀교육에 몰빵하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교육을 제외하고는 다른 방식으로 자존감을 가지고 살기가 어렵기 때문

- 사회적으로 자기를 실현하는 길이 봉쇄되어 있슴,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 역시  개인적으로 출세하는 것외에 사회적으로 실현하는 것이 위험하며  차단되어 있다는 뜻임.

- 그래서 한국인들은 가족과 자녀에게 집착하게 되며 교육에 열중하는 이유는 간판으로서의 교육,  법대, 의대에서 보듯이 돈, 권력 을 지향하는 것.

-교육은  노동자가 되지 않기 위한 전쟁임.

- 그러나 대학졸업자의 80% 가 임금으로 사는 노동자가 되는데 노동자를 비하하게 되는 쪽으로 가르치면 이로인한 트라우마, 스트레스가 생기고 이는  자기 열등감으로 남게 됨
- 노동자가 될 수 밖에 없는데 노동자=빨갱이로 몰아 왔았기 때문

- 이것이 우리사회를 이끌어 왔던 사람들의 60 80년까지의 생각임.

- 그러나  우리의 산업구조는 제조업에서 서비스로 넘어감 75% 가 서비스산업으로 재편됨.

- 따라서 제조업중심이 아니기 때문에 90년대부터  부의 낙수효과가 없음

 □ 국방비 

- 80년대 정경유착으로 인한  승자독식, 양극화가 성공의 어두운 면
대한민국은 OECD에 비해 여러지표가 턱없이 낮음.
노동조직율  10%미만 
복지지출이 10  ( OECD 24%)
제세 부담율 24 ( OECD 40%)

- 이는 성장과 동시에 만들어진 그늘임.

- 대한 민국의 큰 비극은 남북한 분단

- 한반도가  통일이 되면  경제권 8000만의 내수시장이 생기므로 일본과 맞짱을 뜰수 있다.

- 현재 34조라는 국방비를 20조만으로도 줄이면 복지 예산이 확보됨


 □  박근혜 구속은 개발독재의 마침표 

- 이제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가야하지 하는지 모색하고 있는 단계

- 개발독재가 아닌 시스템이 무엇인지 방향을 못잡고 있슴.

- 우리사회의 분단의 그림자, 개발독재의 그림자가  약화되어야 하는 단계

- 따라서 분단, 개발독재로부터 자유로운 40대 이하의 사람들이 우리사회를 이끌어야 하며
나이든 나도 이제 강의를 안하려 한다. 40대의 기를 살리고 기는 넘치나 아직은 모자라는 그들의 공부를 보충해 주는 것이 나의 역할.



참석자 질문
1. 장준하 선생의 사망에 대한 의문이 풀렸나.

- 국정원에서 75년 당시의 자료를 모두 삭제하여 알길이 없다.

- 그러나 선생이 약사봉등산 가는 날 함석헌 선생에서 등산을 만류하였다.

- 이미 공안기관에서 표적을 삼았다는 정황이 있으나 자료가 없고  증인이 입다물고 있는 상황


2.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견해가 듣고 싶다.

- 문재인정부는 입지가 매우 좁아 선택지가 별로 없다

- 북한은 미국을 겨냥하고 존재감 과시 위해 미사일 수교를 이끌어 내는것 이다.

- 북한 중국 관계는 한국과 미국관계와  다르다.

- 북한은 자기가 무너지면 중,소가 곤란해지는 것을 철저히 고려하여 벼랑끝 전술을 쓰고 있다.

- 중국이 북한에 석유를 대고 있는데 북한이 무너지면 최대 피해자가 자국이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야단을 치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상황이다. 수십만 수백만 난민이 국경을 넘는 상황을 감당키 어렵기 때문

- 문재인 정부는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며 돌다리 두들기는 정책을 펼것이다. 개성공단 슬쩍해보고 사드도 중국눈치 보며서 국회에도  상정하면서  슬쩍 슬쩍 갈 수밖에 없다

-통일은 우리가 열망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통일을 전면에 내세울 수록 통일이 멀어지게 되는 상황이다.

- "언제나 통일을 생각하되 통일을 말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하고 싶다. 경제교류를 통해  윈윈을 하면서 

"평화"를 중심을 삼는 것이 맞다고 본다.


3. 일제시대에 대한 평가를 듣고 싶다.

-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민죽주의적 사관이 많아서 그에 맞는 정서에 호응하는 방식이 아니면 틀렸다고 한다.

- 그런데 다른 시각에서 자세히 보면 흑백이 아닌 그레이영역이 많다. 독립운동이 어리석다, 친일이 잘했다는게 아니고 그레이영역에서 민족주의 수탈, 착취를 강조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민족주의를 강조하다보니 일본의 실체에 대해서는 무감하게 된다.

- 나는 지금의 한일관계는 이승만, 박정희 정권의 책임이 있다고 보는데 강제징용, 전후보상문제 등이 이승만 ,박정희 때 마무리하여 뚜껑을 닫아버렸다.

- 미국의 플랜은 일본과 한국을 친하게 만들고 하위파트너로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태평양 전쟁4년을 제외하고는 미일을 언제나 한편이고 한국은 들러리이다. 

- 한일갈등의 진원지는 미국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 또한  역사를 동아시아 전체의 역사와 미국의 역사라는 맥락에서 봐야하며 "한일관계"에서만 파악해서는 안된다.


4.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질문자: 내국인도 일자리가 없는데 외국인 노동자가 너무 많다.

       그들이 없다면 지금의 청년실업, 노인노동이 해결될 것이 아닌가.

         외국인 노동자들의 92%가 미숙련 단순노동자이며  그들 때문에 하층노동자의 임금인상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가장 문제이다. 강도, 강간, 살인 강력범죄율은 내국인에 비해 다섯배가 높은 등 매우 문제인데 정부는 이를 감춘다.


강사님 답변

- 한국정부와 기업의 이해관계에서 파악해야 한다.

- 그들은 한국 저임노동자의 스폰지 역할을 했으며 그 사람들의 노동의 혜택을  기업, 중산층이 누리고 있다.

- 독일 프랑스 모두 외국인 노동자 문제는  그나라 '기업'의 이해관계에서 온 것이다.

- 독일도 터키에서 백만명의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이고 우리도 광산도동자로 몇만명이나 독일에 갔다.

프랑스와 알제리의 관계 영국등 의 나라가 난민, 이민자를 받는 이유는 기업이 저임노동자의 스폰지가 필요한 것이다.

현재 일본은 일체 노동자를 안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강사님 말씀

-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의 최대공로기여는 새누리당을 수구보수와 온건보수, 자유주의 보수,냉전보수로 쪼갠 것으로 본다.

- 다시 합칠수도 있으나 어렵다고 본다.

- 진정한 보수가 생겨나는 시점이 아닌가 

- 예를들면  지난번 대선에서 압구정동과 대치동이 갈라졌다. 압구정동에서는 홍준표가  문재인의 두배인데 대치동은 문재인표가 더 많았다.

- 이렇게 쪼개지는 과정이 건전보수가 바야흐로 나타나는 과정으로 긍정적인 신호이며 지금에서야 처음 갈라지고 있는 것이다.

- 국민의 일부가 바른당,국민의  당 일부가 더 민주로 갈 수도 있겠다.

- 앞으로 선거제도를 바꾸어 비례대표 선거제도도서 다당제가 성립할 수 있어야 한다.

- 따라서 선거제도 개혁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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