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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히스토리쿠스

by 책이랑 2017. 6. 11.
- 46 - 2015 중학교 세계사교육과정
 여전히 유럽중심주의적 관점을 유지
서구중심주의- 세계사의 출발을 그리스로부터 시작하 는 데, 이는 메소포타미아문명, 이집트문명, 페르시아 문명의 영향을 배제
보수적 관점-히틀러로 대 표되는 독일 나치 정권의 등장과정을 미화하고 잘못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 를 최소화
파시즘의 등장과정을“사람들은 안정과 질서를 가져다 줄 강력한 정권의 출현을 희망하였다”로 합리
유대인 600만 명을 학 살한 독일 나치의 반인륜적 범행을“유대인을 박해하였다”로 축소
남아시아, 서남아시아, 아프리카, 북 남미아메리카 등 세계주요 지역에 대해 균형있게 서술해야
넷째, 다원 화되는 세계상황에 맞게 세계사 서술관점과 관련해서
서구중심주의나 보수 주의같은 특정 지역이나 특정 정치적 입장에서 세계사서술이 이루어지지 않 도록

‘국가멸, 사불가망(國可滅, 史不可亡)’
- 역사는 문명을 전하는 행위이다.
지금 사는 사람에게는 권리, 행위의 증거이고, 후손들에게는 기억이자 경험의 노하우

경험과 기억을 얼려놓은 역사기록이다. - 세계사의 유래가 없는 기록문화의 전통
○ 5백 년 문명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문화유산을 보유
 ※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 세계기록유산 등재
 ○ 의궤 등 국정 전반에 대한 체계적 기록관리 체계
 ※ 수원화성 건축 시 못, 송판, 일용직 임금까지 기재

■ 역사학에서
변화를 설명하는 방법,
인과를 설명하는 방법,
사료를 비판하는 방법은 각각의 개별 학문에서 여전히 유용하게 쓰인다.


 ‘사통’
기록을 남기고(Recording),
기록을 보존하고(Archiving),
그것을 통해 역사를 서술하고 이야기하는(Histori-ography) 세 영역
무엇보다 보관하고 있는 행위 자체가 역사이다.
유지기는 ‘사통’을 통해 인간 존재로서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 조선시대 사관은 20대 젊은 사람으로만 운영

■ 우연은 중요할 수 있고 때로 가슴 뛰게 하지만
객관적 조건,
자유의지와 함께 생각하면서
그 우연의 맥락을 검토하지 않으면 한낱 가십에 그치고 만다

■ 꼭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닌 듯하다.
‘무엇이, 어떻게?’라는 질문만으로도 이야기는 구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과 관련해, 이런 식의 이야기(story-telling)가 역사학뿐 아니라
일상생활이나 인접 분야의 학문에서도 공통된 용법이라는 피셔의 견해에 동의하는 편이다. 즉 핵심은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라는 점이다

 ‘예기(禮記)’ 단궁(檀弓) 편에 나오는 간단한 문구에 대한 해석의 오류가


■ 봉건, 장원  

기실 봉건, 중세는 서유럽 역사 발전의 패러다임이었다. 봉건제에서 권력은 영주의 국왕에 대한 충성, 영주에 대한 기사의 충성에 따라 배분되며, 이를 매개로 불수불입권(不輪不入權·Immunity)을 행사할 권력을 위임받은 영주는 장원 안의 농노를 지배하는 분권사회를 구축한다. 서유럽 봉건제도는 전사(戰士)로서의 복무를 조건으로 봉토를 받고 충성을 서약하며, 봉토를 받은 영주는 자신의 봉토(封土·장원) 내의 농노 노동을 통해 경제를 유지하고, 농노를 지배한다. 8세기 프랑크(카롤링거 왕조) 왕국의 은대지제도(恩貸地制度·베네피키움)에 기원을 둔 봉건제도는 동시에 로마 관료제도의 잔재인 카롤링거 왕조의 흔적을 청산하면서 등장했다.  

장원은 가족, 봉신(封臣) 집단, 도시공동체 등과 같은 사회구조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들 중 하나였다. 그리고 이러한 구성물로 이루어진 시대를 봉건사회, 또는 봉건제라고 부르는 것이다. 물론 장원은 본질적으로 경제적 차원의 제도였지만, 그 성격을 이해하려면 이런 연관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장원의 경영은 토지생산물의 한 부분이 단 한 사람에게만 귀속되도록 조직되어 있고 그 주민은 동일한 인물의 지배를 받는 하나의 집단을 이룬다. 그 땅의 지배자이자 소유주인 이 사람이 바로 영주이고, 그 땅이 곧 장원이다. 장원은 이런 두 가지 측면의 결합, 즉 경제적 이익의 도모와 일종의 지배권이라고 부르는 것간의 결합이었다.(마르크 블로흐, 이기영 옮김, ‘서양의 봉건제’, 까치, 2002)

문명의 중요한 단위인 국가의 형태를 통해 봉건제를 정의한다면 당연히 봉건제는 분권사회다. 이에 반해 조선은 중앙집권화된 국가다. 학계에서는 고려시대의 사회 성격을 놓고 귀족제-관료제 논쟁이 있지만, 귀족제설이 꼭 분권사회를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나아가 조선의 정치제도가 양반관료제였다는 부분에 대해 학계에 이견은 없다. 국가는 재화와 권력을 배분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가장 고도의 문명 양식이다. 그러므로 국가가 중앙집권적인가, 지방분권적인가 하는 것은 봉건제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문제다.

■  근대주의
근대를 전제로 해서만 의미를 갖는 조선사 연구가 주가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역사학의 근대주의다. 사회구성, 구조, 민중, 농민 등의 키워드로 상징되는 발전된 성과를 담은 역사학은 넓은 평원을 놓아두고 돌아오기도 힘든 골목길을 찾아든 셈이라고나 할까. 


근대주의는 두 가지 모두 실패했다.
첫째, 근대주의는 조선 문명에서 경험을 똑바로 바라볼 가능성을 봉쇄했다.
근대주의자들은 오로지 근대로 귀결될 수 있는 경험만 쳐다봤다. 이런 식의 논리를 결과론이라고 한다.


-  인식론적 반성 

근대주의자들은 빨리 중세를 해체하고 근대로 와야 했다. 그것을 지체시킨 요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강화, 즉 조선을 유지시킨 힘은 오히려 저해요인으로 매도됐다. 대체로 광해군이 폐위되고 인조가 즉위한 계해반정(인조반정·1623년) 이후 시대에 대해선 오직 ‘근대적 요소’를 발견하는 연구 이외에는 아무런 가치를 갖지 못하는 기형적 현상이 생겨나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계해반정 이후 백성의 삶을 더 편안히 해주기 위해 취해진 세금, 부역, 신분제의 개혁은 개량적 조치로 폄하됐고, 실체도 흐릿한 ‘탈주자학’과 ‘반주자학’의 논리가 풍미했다. 결국 근대주의자들의 사이비 보편사관과 조급증 탓에 300년 동안 조선 사람들은 상황의 타개 능력도, 시스템의 혁신 능력도 없는 존재들이 되고 말았다

근대 문명의 부정적 측면에 비판적인 사람들조차 역사인식에 들어가면 근대주의에 포섭된 행태를 보인다는 사실이다. 유럽 계몽주의자들에게 봉건사회는 암흑시대였듯이, 이 땅의 깨어 있는 시민과 지식인들에게도 조선은 빨리 지나갔으면 좋았을 해체기로 인식되는 것이다. 인생에 그냥 지나갈 시기가 없듯 역사에도 그런 시기는 없다. 그러나 그렇게 인식하는 특수한 인식체계, 에피스테메가 작동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 현대인처럼 진보의 환상에 빠져 있는 경우가 그러하다. 이 문제는 적당한 시기에 따로 다루도록 하겠다.

■ 실록은 문서모음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기획해 편찬한 역사서가 아니라, 역대 조정에서 사관이 기록하거나 모아놓은 문서, 즉 사초(史草)를 국왕이 바뀔 때마다 정해진 절차에 따라 편찬한 ‘문서 모음’의 성격을 띤다. 

■ 영화에 대동법 얘기가 많이 나왔다. 대동법은 공물로 바치던 특산물을 전세(田稅)로 바꾸어 내게 한 것이다.



둘째, 우리가 살고 있는 근대를 비판할 수 있는 경험으로서의 조선 문명의 가치가 무시됐다. 
 이렇게 어떤 인간이나 민족에 대해 역사성이 아니라 본성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역사에 대한 태도 때문에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을 ‘역사기록의 왜곡’이라는 우리의 주제 속에서 다루는 것이다.  

본질이나 이데아, 이런 게 어디 있느냐, 지금, 여기 존재하는 것이 곧 바로 ‘나’다, 이런 사유도 있을 수 있다. 역사학은 오히려 이런 사유에 익숙하다. 왜냐하면 대상을 시대성, 상황성을 중심으로 포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종 학살은 달랐다. 해석하지 못하고 당황했다. 많은 학자는 과거로 숨었다. ‘전근대적(pre-modern) 참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치의 인종주의는 해부학 등 근대 의학의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한 이데올로기였다(데틀레프 포이케르트, 김학이 옮김, ‘나치시대의 일상사-순응, 저항, 인종주의’, 개마고원, 2003). 


넷째, 유전집단을 사회·문화집단과 혼동해선 안 된다. 미국 앵글로색슨의 상류사회와 하층민의 차이는 유전적 차이가 아니라 사회·문화적 차이가 결정적이다


시대착오- 역사를 공부할 때 역사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아나크로니즘(시대착오)에 빠지는 오류
지금의 국가를 역사적 산물
중국에서 민民은 국國을 전제로 하지 않았으며 민民은 국國과 따로 떨어져 존재할 수 있었다.
민民이 국國을 전제로 한다는 설정은 19세기부터 존재한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국가는 멸망할 수 있지만, 역사는 사라지지 않는다.
(국國이라는 자체도 역사성니 있다.)
‘국사國史’라는 개념도 역사적인 산물이다.

이번 호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시대착오(anachronism)의 오류다. 이 오류는 어떤 사건이 실제 일어난 시기(시대)가 아닌 다른 시기에 일어난 것처럼 묘사, 분석,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단순한 연대(날짜) 착오가 이런 오류를 낳을 수도 있다. 하나의 대상, 사건, 용어가 잘못 쓰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 오류 중 먼저 들 수 있는 것이 현재주의(Presentism)의 오류다. 영미권에서는 현재주의를 ‘휘그 역사학(Whig history)’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현재주의의 용법은 정작 휘그들(Whiggery)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고 한다. 현재주의는 현재의 관점으로 과거의 어떤 사실을 해석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트랙터를 사용하는 현재 농촌의 관점에서 호미와 쟁기를 사용하던 고려, 조선의 농업을 해석하는 것이다. 이런 오류의 대표적인 사례가 널리 알려진 ‘실학(實學)’이라는 개념이다.

현재주의는 현재의 합리화와 연결돼 있고, 또 결과주의와 연결돼 있다. 자본주의를 역사의 종말로 보든, 사회주의를 역사의 종말로 보든, 다시 말해 어느 쪽을 근대로 보든 근대화를 절대 선(善)으로 생각하는 역사주의가 풍미하던 시절에 실학은 유령처럼 조선 역사를 휘감아 돌았다. 그래서 조선사 연구는 정작 조선사 연구가 아니었다. 근대화를 설명하기 위한, 즉 현대사를 쓰기 위한 자료를 간헐적으로 제공하는 부수적 역사에 불과했다

아프리카의 노예화, 아메리카 인디언의 절멸을 거치는 동안, 유럽은 부와 권력의 측면에서 다른 지역과의 격차를 벌였다. 이러한 정치, 경제적 변화와 함께 유럽 사회를 다른 사회와 구별하는 지적 경향이 출현했다. 그런 경향으로는 서구에서 과학이 발달한 것이 일반적으로 서구 문화의 합리성을 입증해준다는 생각, 역사가 진보한다는 원리, 인간적 동정심과 개인주의가 순수 문명의 중요한 지표이며 잔혹성은 그 반대라는 견해, 법의 지배에 기초한 정부의 우월성, 프랑스 혁명에 대한 반동으로서 기독교의 부활, 귀족정치에 대한 낭만주의의 출현,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닌 인종우월주의가 거기에 포함될 것이다.

이 시기, 기억할 필요가 있다.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 때 식민지관(植民地館)이 최초로 등장했다. 그리고 1889년 다시 열린 파리 만국박람회에서는 식민지관의 인종 전시로 제도화됐다. 역설적이게도 이 박람회는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열렸다. 이 박람회는 에펠탑과 함께 기억하시길. 에펠탑이 세워지던 바로 그 박람회다. 위압적인 에펠탑과 박제가 된 식민지 인종 간의 수직적 위계는 중국 형법제도를 둘러싸고 벌어진 야만과 문명의 이분법, 제국주의 권력장치의 다른 표현이었다. 

위압적인 에펠탑과 박제화된 식민지관의 수직적 위계는 문명과 야만의 ‘질서’를 공간화함으로써, 박람회가 제국주의의 권력 장치이자 국민국가의 문화 장치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아키타이프(archetype)의 오류는 뭔가 원형을 만들어놓고 그것을 통해 과거를 재단하는 것. 

이런 역사를 목적지와 이정표가 있는 길(路)로 표상할 수 있다면, 정작 역사는 마당의 표상에 가깝지 않을까. 마당이 있다. 그것은 삶의 조건이다. 거기서 먹고 마시고 논다. 무대도 설치하고 한창 흥겹게 논다. 그러다가 서서히 식는다. 그리고 마당은 쓸쓸해진다. 어느 틈엔가 새로운 마당이 열린다. 이 마당은 이전 마당과 다르다. 쿤의 말대로, 패러다임이 바뀐 마당인 것이다.



■ (프로메테우스의 침대)
'이미 지나간 것'에 대한 것이라든가 또는
'(한)국사'로서 이른바 '국민'이란 (이데올로기적)인자의  재생산을 목적하고
또는 현실적으로 시험(취업, 입학)의 합격을 목표하는 것이기 때문
- 역사(학)은 구체적 개인 또는 '나'의 생활이나 삶과는 멀어지게 된다.

"역사(학)를 공부하는 것은 '내 일기'를 확보하는 것!" 

- 민족의 현실을 직시하는 역사 공부를 해야 한다.


■ 조건, 의지, 우연
사실을 바로 본다는 것은 조건, 의지, 우연 세 가지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
먼저 객관적 조건. 이 말은 ‘사람의 노력으로 넘어서기 힘든 엄중한 조건이 더 규정적인 힘을’ 발휘한다는 뜻
의지를 강조- 사도세자가 소론과 관계를 맺으려다 노론한테 죽임을 당했다는 것.
구조 =이 비극의 원인을 세습왕정이라는 조건에서 바라보면 전혀 다른 결론
혼군이 될 게 빤한 세자를 폐위하고 정조에게 왕권을 물려주는 방법으로 무엇이 있겠는가. 세습왕조라는 구조에서 영조가 택할 방법은 결국 뒤주에 사도를 가두는 것이었다는 분석

구성3요소 구조(조건;결정론,환원론ㅡ개혁가능), 
의지(목적론ㅡ책임의 문제),
우연(상대론,불가지론ㅡ아쉬움)에 대해서 좀 더 부연 설명

 조건, 의지, 우연 연습
역사는 삼발이라는 셈이다.
세 다리가 균형을 잡고 있을 적에 제대로 역사를 볼 수 있다는 뜻이다.
1.  최근 촛불 시위를 불러온 국정농단을 이 세 가지 관점에서 분석해 보자
2.  광주 전일빌딩 리모델링
5·18 당시 옛 전남도청 앞에 있던 유일한 고층 건물
-건물의 보존과 철거를 놓고 이견이 많았다.
- 결국 논란 끝에 지난해 3월 리모델링으로 최종 결정하고 올해 초부터 공사를 시작하기로 했다
- 리모델링 공사와 함께 역사적 현장도 보존하기 위해 혹시 남아 있을지 모를
5·18 당시 계엄군 총탄흔적을 한번 찾아보자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도 감식을 의뢰했다.
하지만 2개월여 만에 국과수 감식결과
총탄흔적이 건물 곳곳에서 확인된 데다 헬기 난사로 추정되는 탄흔이 건물 내부에서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헬기 공중사격은 민간인 증언만 있었지 당시 신군부 관계자와 국방부의 공식 부인,
이어진 김영삼 정부 당시 검찰 수사에서도 밝혀지지 않았다.

■ 역사와 도덕의 영역을 혼동하면
-             인간의 행위가 ‘의지’의 문제로 환원된다.

나는 모든 역사적 사건에는 구조, 의지, 우연이 다 담겨 있다고 본다.(이는 《호모 히스토리쿠스》 1부에 상세하다.) 
구조만 알고 의지를 놓치면 세상탓만 하고 인간의 책임을 간과하며, 
의지만 알고 구조를 놓치면 개혁을 못하며, 
우연을 놓치면 역사의 비극 또는 희극을 놓치게 된다. 
사림들의 ‘도덕적 올바름’이 이기론(理氣論)이나 
그들이 읽은 책인 《심경(心經)》에 도덕적 신념이 담겼다고 해도(470쪽), 
그들이 산 역사가 도덕으로 치환될 수 없다.

저장기록
1차 기억을 담당할 기록 (아카이브) 가 없다면 역사 자체가 있을 수 없다.
실제로 고려 이전의 나라들, 가령 발해나 가야에 대해서 현대의 우리들이 아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바로 저장기억이 없기 때문
2강은 바로 저장기억의 중요성에 대해서 공부
‘일기나 시로, 혹은 메모로 기록된 나와 누군가의 생이, 우리들이라는 서사를 제대로 읽어내고 재생산하게 하는, 
그 무엇보다 가치 있는 질료이자, 그 자체로도 의미 있는 실체

* 유지기의 『史通』과 세 가지 재능
 
역사학은 사건(사실)에 대해 탐구하는 학문
세계 최초의 역사비평서이자 이론서인 ‘사통’을 쓴 유지기는 역사가의 세 가지 재능으로
‘才’, ‘學’, ‘識’을 꼽았다. 사료 수집하기를 좋아하는 것이 재능(才)이고,
여기에 체계적인 훈련이 필요하며(學),
사건(사실)에 대해 계속 탐구하면서 조건·의지·우연의 요소를 통찰해내는 능력이 또한 재능(識)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학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사건(사실)을 통해 진실에 대해 접근하는 것이고,
노력하는 만큼 사건(사실)을 보는 안목을 기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성비 높은, 실용적인 학문이다.


■ 학문은 지식을 쌓는 일이 아니라 관점을 만들어가는 일

■ '문창극'씨의 조선에 대한 주장
- (조선은 부패하고(정치),
- 게을렀다(경제)
-여기에 보통  더럽다(위생;의학,과학)가 세트랍니다)
19세기 제국주의가 타문명을 비난하고 억압하기 위해 작동시키던 '이데올로기(
이광수의 '민족개조론',1921년

'2017년 vs 정유년'의 주제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역사의 진보에 대해 어렴풋이 불편한 점이 있었는데 이를 더 분명하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 같은 이른바 '수난사'에 질린 이유도 그걸 거예요. 거기에는 늘 어떤 열등감이 서려있거든요. 강의 시간에 나온 표현을 빌리면, 서양 선교사들의 그 시선을 내면화하여 과거를 보는 것이지요. 근대에 도달하지 못했던 까닭, 그 좌절의 이야기를 '역사'라고 생각하는 모습이 매우 익숙합니다.

어떤 문명이나 시대는 그 문명이나 시대가 처해져 있는 구조적인 차원과 측면이 있고 그것은 외부의 기준으로 함부로 재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닐 텐데, 그러한 '다름'을 침략과 수탈의 근거로 또 당위로 삼는 것은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을 정당화시키고 범죄를 은폐하는 하나의 선전과 선동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 싶습니다.

구석기 수렵채집시대에 1일 필요노동시간은 평균 2시간
19세기 자본주의에 의한 본격적인 산업시대에는 15시간으로 (Time is money(gold).는 이러한 시대의 슬로건!)
그리고 이러한 비인간적 노동착취에 대한 노동자 저항으로 20세기 중반 쯤에는 하루8시간 노동이 법에 들어옵니다.
또 에티켓 차원으로 인식되던(유럽11.12세기 궁정에서/ 조선시대 타구 사용) 침이 더럽다는 인식이 대중화 되는 것은
근대적 광학기술의 변화에 따른 현미경과 이에 의한 세균의 발견과 연관이 있습니다.
'나치' 역시 철저히 근대에 기반한 현상으로 인종청소(의학의 발달), 독가스(화학의 발달)와 같은 구성요소들이 이를 증명
('나치시대의 일상사-순응,저항,인종주의', 데틀레프 포이케르트,1981)
이러한 사례들은 역사사건에의 구조 혹은 조건이 미치는 영향을 보여준다

어떤 사람은 아무런 변화 없는 순환이라며 손가락질 하겠지만, 저는 그것이 동일한 사건의 반복이 아니라 '리듬'일 거라는 선생님의 글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게다가 이 '리듬'은 '진보'라는 거대 담론이 폐기되고 실제 삶에서도 의미를 잃고 반대로 몰락과 파국, 리셋을 이야기하는 시대에 더 필요한 주제가 아닌가 싶어요. 
. 한 시대에 우연으로 여겨지던 것이 누군가의 연구, 분석을 통해 '구조'로 발견될 수도 있겠지요. 프로이트 이전의 다양한 정신증이 그랬을 거예요.
 

[1] 역사의 쓸모
- 사건에 대한 이해는 당연히 인생을 깊게 해 줌
(구조, 의지, 우연이라는 세 요소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76p)
역사- 기말고사
조건-사도세자
의지- 프리모 레비
우연-워터루 전투의 비

객관적 조건과 자유 의지는 역사를 고려할 때 동시에고려해야 하는 요소
배타적 요소가 아님
-역사를 설명할 때 하나만을 강조하려는 유혹에 빠짐
우연(복잡성, 다면성) 의 맥락을 고려해야 함

1부 내 발길이 만드는 역사

01 시간과 사건 019
ex) 기말고사
제1명제: 역사는 경험이고 기억이다
제2명제: 역사는 경험에 대한 기록, 경험에 대한 전달, 경험에 대한 이야기
존재의 시간성: 변화=유한성=무상
죽음의 역사성-동아시아에서 역사는 기독교의 신의 자리임 
사건의 계열성- 과거-현재-미래

* 흔적은 곧 사건의 계열로 전해지고, 그것이 역사가 된다.

02 조건: 오늘도 또 내일도 033
모든 사건에는 객관적 조건, 사람의 의지, 그리고 우연이 함께 들어 있다.
/ 구조주의 입문 - 실제 사건이나 사태에 담겨 있는 구성요소
/ 역사학의 구조주의
마르크스 구조주의 시초
- 다양한 인간 사회 집단 분화의 매커니즘
-한종류의 사회가 다른 종류의 사회로 변하거나 변하지 못하는 메커니즘
체제를 안정시키는 요소 vs. 체제를 해체하는 요소를 동시에 지적
(변화하는 사회와 인간 , 언제나 다른 사건과 사태를 이해할 수 있는 관점을 제공)
/ 역사학은 원래 유물론이다- 자료에 의존하므로
/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  -마르크스의 토대와 상부구조라는 말을->경제적 토대와 상부 구조 사이의 지배와 의존이라고 단순화 함
 / 기계적 결정론은 사이비
/ ‘사도세자 사건’에 대한 오해들
/ 비극의 원인: 세습왕정이라는 ‘구조’

03 의지: 하면 된다 054
스스로를 결정할 수 있는 힘
/ 이봉주 선수와 나는 조건이 다르다
/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아우슈비츠 수용자들의 무기력함(프리모 레비),  자유의지를 지나치게 크게 생각하면 안됨
/ ‘생각 없음’의 죄- 
의지만을 얘기하면 구조를 놓치게 된다.

04 우연: 아쉬운 이유 065
목적이 다른 두개이상의 행위가 만나기도 하고 못 만나기도 하는 것
우연과 임의성 / 빅토르 위고의 워털루 전투 / 19세기의 돌쩌귀 / 나폴레옹의 자리는 없다


2부 역사의 영역
01 인간의 조건, 역사 079
일기 쓰기는 역사 쓰기다 / 시로 읽는 역사 / 한글도 못 읽는다 / 아카이빙의 세계 / 이야기의 경계
기록-전달-이야기

02 역사 사이의 괴리 101
국사: 편협해진 역사 / 스테레오 역사학과
과거의 역사를 국민국가사로 보는 것은 좁아지는 것
이야기부문만 논문형태로 생산되도록 가르치는 것이 현재 한국 역사교육의 문제
현대사를 사회학, 인류학에 넘겨줌 
국민국가의 정체성에 방해 되는 요소를 모두 버림
19세기 유럽 국민국가의 완성에 충실히 시녀노릇을 했던 역사
'역사-인간' 이 무지개라면 빨간색이나 파란색으로 물들이려

03 진보사관의 함정 107
‘대문자 역사’와 진보사관
진보사관은 역사의 다양한 현실을 하나로 환원시킴 ex) 진보의 잣대(생산력, 정치참여 확대에서 다른 요소가 밀려남)
아메리카 원주민은 역사가 없는 민족=계몽되지 않은 아이들.
국가와 역사가 같아짐
/ 초야권(初夜權) 소문-봉건제를 비판하려고 왜곡한 소문 
/ 진보사관이란
근대역사학=진보사관(근대주의)- 근대를 목적론적으로 도달해야 할 시대로 설정하는 것(사실과 가치면에서)
가치-자유, 평화, 인권 실현을 위해 근대는 바람직하다는 의견 
마르크스의 역사적 유물론은 개인, 국왕중심의 역사 기술을 사회구조나 형태로 눈을 돌림(경제사, 사회사 민중노동,역사 제3세계 역사 조명됨)
/ 식민지 트라우마
조선이라는 나라, 문명의 멸망은 자연사와 사고사가 겹친 것-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것
역사(식민지로)의 이행
식민사관 비판=진보사관= 서유럽 제국주의 프레임에 걸려 있슴.
상이한 삶의 양식과 구조가 작동하던 조선사회를 서유럽 근대 모델로 포맷
-그 사회가 어떻게 생겼는가, 어떻게 작동했는가
- 사이비 보편사-근대를 전제로만 해서만 의미를 갖는 조선사 연구

/ ‘우리’와 ‘저들’의 이분법
서양인들이 문명(19c발명) 을 자아의식으로 삼고 세계를 자신들의 시각으로 포맷함
서양유럽이 세계사적 진보운동의 선봉에 서 있다는 의식->오리엔탈리즘으로 이어짐.
근대주의는 조선 문명을 역사적 경험으로 바라볼 가능성을 봉쇄함
근대를 비판할 수 있는 경험으로서 조선문명의 가치가 무시됨
가치측면에서 근대는 가야할 유토피아가 아님
공유지라는 안전망조차 없어짐

진보사관과 근대주의는 역사학의 무덤

진보사관을 통해 역사학의 바탕인 과거의 경험을 부정해 옴
121p



3부 기억, 기록, 그리고 시간의 존재

기억과 기록은 검증되어야 한다.
사실과 하석, 주관과 객관은 배타적이지 않다.
시대성이 담긴 이야기가 역사이다.

01 기억과 망각의 이중주 125

사라지는 기억 -기억은 제때 제때 재구성 됨
/ 매번 달라지는 기억 -단기기억과 장기기억
/ 기억의 망각과 왜곡- 망각(소멸, 정신나감,막힘) / 왜곡(잘못된 귀속,암시 당하기, 뒤틀림, 지속)
/ 기억 변형 실험: 오류와 왜곡


02 사실과 해석 137
역사는 사실의 기록이자 해석의 기록
/ 벽초의 『임꺽정』: 반(反)봉건 투사?- 관리의 가렴주구가 원인(봉건이라는 프레임이 없슴)
/ 사관의 기록과 사평
/ 사실과 해석에 대한 무지
/ 역사의 대칭성이란?
역사의 경험을 '개념적 구성물'로 보는 견해(포스터모더니즘적 영향)
역사를 진보라는 관점에서 바로 보게 되면서 과거, 현재, 미래에 위계가 생김
/ 객관성이라는 소용돌이
객관은 주관이라는 질료로 빚어진다.
/ E.H. 카의 그늘
-역사적 사실은 있다.
/ 해석 이전에 관심이 있다
/ 저장기억, 기능기억

-기록행위=저장기억
역사서술=기능기억
저장기억은 기억기능이 빠질 수 있는 왜곡와 위험을 교정하거나 줄여줄 수 있다.
19세기 국민 국가의 기억은 만들어진 전통, 단군을 강조하는 것도 20세기 현상
조선시대에는 반만년역사의 정체성이라는 국민국가 코드가 작동하지 않음
광해군 일기는 저장기억임
(기록-보존-재현, 이것이 역사다. 우리는 종종 기록-보존은 빼놓고,
재현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는 역사에 대한 오해를 낳는다.
 )


03 역사성이란 무엇인가 165
‘역사적’이라는 말 -중대하다, 역사성이 있다. 역사성이 있다.(그러나 모든 것은 역사성이 있슴)
/과거시험과 고등고시
모든 사람이 의무가 있었는데, 과거시험은 양반의 의무,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군역이 면제되니까 포로 내게 함-> 균역법으로 귀결됨
/같은 농사도 시대에 따라 다르다 -자급자족 시대와 , 화폐가치시대
/시대착오의 오류
-현재주의
실학은 1930년대 조선학 운동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개념
조선 성리학을 허학으로 보았다.
실학 유학 vs.불교나 도교
조선 성리학이 곧 실학
실학개념이 근대주의적임
조선시대 봉건제의 부재,  실학개념의 비자립성 지적
부적절한 개념에 담긴 시대착오적 오류
/ 역사의 단위는 오로지 100년?
서기 1년 단위의 단위

04 재미있는 이야기, 역사 180
궁금해 하는 사람들
/〈300〉의 기원
/ 그들의 편견
/ 품위 있는 페르시아인
/ 줄거리 있는 이야기



4부 오해와 이해의 갈림길
역사=국사가 아님
내 하루 기록=역사는 자기-이해의 출발
현대 역사학에서는 국가권력이 역사개입에 서술하는 것이  숙명
작은역사는 큰역사의 방부제

01 정치와 역사의 긴장 199

서글픈 논쟁 / 우리를 갈라놓는 자들 / 패싸움 프레임

02 역사수정주의 207
에펠탑보다 중요한 것 / 역사수정주의의 위험 / 승패가 아니라 비극 / 냉소의 첫 걸음

03 생산적 역사의 현장 217
삶을 지키면서 망자를 기억하기 / 산 자의 책무, 역사학자의 책무 / 아버지의 슬픔 / 젊은 피들의 노트 / 역사라는 자생력 / 임상역사학: ‘자기 역사 쓰기’에서 시작되는 역사학

에필로그 역사의 힘 236
註 240
찾아보기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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