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그문트 바우만을 읽는 시간>
북바이북, 2017
현대사회의 이런 저런 현상에 대한 책을 읽다가 , 과연 그런가? 그런 현상의 그 밑에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생 겨 조금 더 조사해보면 지그문트 바우만의 저작을 만났다. 그래서 그의 사상을 총 정리 해 보기 위해 읽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 바로 이 책 <지그문트 바우만을 읽는 시간>이다. 이 책은 국내에 번역된 그의 책 중 19권의 서평에 후학들의 좌담, 가상인터뷰를 덧붙여 2017년 1월 93세의 나이로 타개한 그의 학문적 성과와 삶을 재조명한다.
19권중 그의 사상의 핵심이 되는 책은 <액체근대 Liquid Modernity> 라는 생각이 든다. 앤서니 기든스와 울리히 벡이 ‘제2의 현대’로 개념화한 시간을 바우만은 '액체근대liquid modernity로 명명했다. 우리가 어떻게 ‘무겁고’ ‘고체적이고’ ‘예측/통제가 가능한’ 근대에서 ‘가볍고’ ‘액체적이고’ ‘불안정성이 지배하는’ 근대로 이동해왔는지를 탐구한다. 그는 이 책에서 해방, 개인성, 시·공간, 일, 공동체라는 5가지의 개념을 사용하여 소비주의와 신자유주의라는 구조, 제도와 현대인의 정체성의 변화를 분석 했다. 변화된 사회 구조에 대한 설명과 더 깊이 들어가서 그 구조에서 송두리째 바뀐 개인의 심리까지 꿰뚫어 포착한다.
그리고 액체근대의 속성을 핵심개념으로 삼아 고독, 홀로코스트, 불평등, 교육, 감시사회, 현상을 더 세밀하게 분석해나간 것이 나머지 책들이라 할 수 있겠다. <액체근대> 외에 다음의 책들이 인상적이었다.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고독은 사람들로 하여금 창조할 수 있게 하는 숭고한 조건”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혁신하고 변화하라는 명령에 의해 우리는 누구에게 지속적으로 헌신하는 관계를 만들고 가꿀 수 없다. 그래서 늘 연결되어 있는데도 현대인은 계속 고독하다.
<현대성과 홀로코스트>
홀로코스트는 의외적인 사건이 아니다. (국가의) 폭력, (자발적) 복종, 합리성이라는 조건하에서는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불평등을 감수하게 만드는 새빨간 거짓믿음 4가지① 경제성장은 어떤 문제든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② 새로운 소비는 행복을 충족시키는 유일한 길이거나 혹은 적어도 중요하면서도 가장 효과적인 길이다. ③ 불평등은 자연적인 것이다. ④ 경쟁은 사회 질서의 재생산과 사회 정의의 필요충분조건이다.
<지그문트 바우만, 소비사회와 교육을 말하다.>
젊은이들을 또 하나의 시장으로만 취급하는 몰인간적 소비사회에서는 불평등이 가속화된다. 성공의 보증수표로 여겨졌던 명문대 졸업장으로도 더 이상 미래를 보장받지 못한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우리가 어떻게 다시 연대하며 인간적 삶을 되찾을 수 있을지를 성찰한다.
<친애하는 빅브라더>
현대에 감시는 ‘자발적 복종’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는 시민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로서 역할을 하면서 끊임없이 점검과 감시, 시험을 받고, 평가되며, 값이 매겨지고, 판정을 받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도덕적 불감증>
오늘날 악은 우리가 타인의 고통에 대해 일상적으로 무감각할 때, 타인을 이해하지 못할 때, 타인에 대한 이해를 거부할 때, 우리의 윤리적 시선을 무심코 거둘 때와 같이 일상적으로 나타난다. 한편 악은 국가와 이데올로기마저 민영화된 형태로 나타나고, 인간관계도 상품을 소비하는 소비자의 태도를 닮아가면서, 그 속도는 더 급박해지고 정체는 더 교묘해지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을 읽은 가장 큰 성과는 <사회주의, 생동하는 유토피아>라는 책을 알게 된 것이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 ‘유동하는 현대(Liquid Modern)’ 시리즈의 밑에 흐르는 생각이 이 책에 담겨있다. 1976년에 출판되었고 2010년에 개정한 이 책에서 바우만은 자본주의의 생활방식, 신념, 가치 등에 저항하고 대안을 창출하는 대항문화로서 사회주의를 이야기한다. 자본주의의 문화들은 언뜻 보기에는 무해해 보인다. 그러나 소비로 정의된 삶을 살다보면 현실의 부당함을 비판하는 감각을 잃어버리게 된다. 바우만은 지구상에 한 번도 구현되지 않았던 완전한 ‘정의로운 사회’ 로서의 사회주의를 지향함으로서 현대인은 압도적인 것처럼 보이는 ‘정상normal’의 지배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의 우리 사회가 ‘0.1 대 99.9’라고 할 만큼 불평등이 극심한데도 “사람들이 현실에 순응하고 있다면 그건 사회를 잘 모르기 때문” 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만일 사람들이 “자기 처지를 알게 되면 저항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는 사회학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바꿔내는 도구이며 그리고 사회학자는 자신들의 삶이 펼쳐지는 동시대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 말 그대로 그는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2015년 1월 19일, 재미 저널리스트 안희경씨의 페이스북을 통해서 쌍용차 해고자 이창근 김정욱씨의 굴뚝 농성을 지지한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평생을 '이방인'으로서, 약자와 소수자자로서의 살아온 경험이 이런 실천의 바탕이 되었다. 그는 자기의 책을 읽은 사람들이 각자의 현실에서 자신의 문제를 풀어내고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힘을 얻기를 바랬다. 우리는 그의 책에서 우리사회가 나아갈 바를 명확하게 찾을 수는 없다. 그는 자신이 경험한 현대사회의 현상을 파고들어 그것이 왜 그렇게 되어 왔었는지를 설명하는데 초점을 두기 때문이다. 또 대한민국의 역사적 경험은 서구사회의 그것과 다르기에 우리는 그가 보여준 약자에 대한 지지, 그리고 연대라는 목표를 위해 성찰하는 자세만이 우리가 배울수 있는 것일 것 같다.
2017년 1월 93세를 일기로 지그문트 바우만은 이 세상을 떠나셨다. 은퇴한 후인 70대에 '액체근대'라는 핵심이론을 발표하여 현대사회를 꿰뚫어보는 통찰을 제시함으로써 오래 살아도 욕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셔서 그에게 감사하다. 학자로서 훌륭한 삶을 살았을 뿐 아니라, 앎과 실천이 같은 삶의 전형을 보여준 점에도 감사하다. 딱딱하다고 생각하던 사회학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뜨거워지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 '촛불혁명'을 펼치며 권력에 저항하고 보다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한반도의 통일을 꿈꾸는 데 필요한 근거와 힘을 공급해주신 점에 감사드린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사랑은 발견되는 대상이 아니라
지속적인 작업, 끊임없는 노동,
서로 배우는 동시에 가르치는 것”
- 지그문트 바우만 인터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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