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에 솔거 뺨치는 화가들이 있었다..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 둘은 아주 친밀한 사이였지만 팽팽한 경쟁자이기도 했다.
이 두 사람이 드디어 어느 날 그림 솜씨를 겨루는데 먼저 제욱시스가 그림을 덮고 있던 막을 들추었다. 포도 넝쿨이었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새들이 넝쿨에 달린 포도송이를 따먹으려고 날아들었다. 물론 그림에 부딪혀 그 자리에서 떨어졌다. 새의 눈을 속인 것
의기양양해진 제욱시스가 파라시오스에게 다가가, 그에게 그림의 막을 들추라고 했다. 그러자 파라시오스가 “잘 보게. 자네가 나보고 들추라는 그 막이 바로 내가 그린 그림일세.”
제욱시스는 자신의 패배를 깨끗이 인정했다고 한다. “난 새의 눈을 속였지만, 자네는 새를 속인 화가의 눈을 속였으니까.”
<배움은 어리석을수록 좋다>에서 우치다 타츠루는 이 일화를 소개하고 파라시오스는 그림은 장막 밑에 있다라는 사람들의 생각의 틀을 공격한 전략을 썼다고 말합니다.하지만 한편으로는 사람은 그런 액자 없이는 현실을 파악할수 없는 존재라고도 말한다.
그러니까 액자속의 그림도 보지만 , 동시에 내가 액자를 통해 현실을 보고 있다는 것, 이 두가지를 놓쳐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첫 번째 명제는 앞에서 다뤘는데, 잊었을지도 모르니 다시 한 번 적어 보지요.
액자를 간과한 자는 세상의 모든 것을 간과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 인간은 액자가 없으면 세계를 인식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액자를 고집하면 세계를 적절하게 인식할 수 없습니다.
이 두 가지 명제를 나란히 보면 명상에 대한, 보다 포괄적인 세 번째 명제를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즉, ‘우리가 적절히 살아가기를 바란다면 그때마다 세계 인식에 가장 적절한 액자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치다 타츠루 <배움은 어리석을 수록 좋다> (pp. 122~123)
그때마다 적절한 액자의 선택 하는 것= 진영논리에 갇히지 않으려는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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