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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생각이 죽어 묻히는 자리는 어디인가? 생각의 무덤을 우리는 텍스트(text)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텍스트가 죽어 묻히는 자리는 어디인가? 텍스트의 무덤을 우리는 콘텍스트(context)라고 부른다. 콘텍스트란 어떤 텍스트를 그 일부로 포함하되, 그 일부를 넘어서 있는 상대적으로 넓고 깊은 의미의 공간이다. 죽은 생각이 텍스트에서 부활하는 모습을 보려면 콘텍스트를 찾아야 한다. 즉 과거에 이미 죽은 생각은 <논어>라는 텍스트에 묻혀 있고, 그 텍스트의 위상을 알려면 <논어>의 언명이 존재했던 과거의 역사적 조건과 담론의 장이라는 보다 넓은 콘텍스트로 나아가야 한다. 공들여 역사적 콘텍스트를 구성하는 데 성공했을 때에야 비로소 고전 속에 죽어 있는 생각들은, “죽은 연인의 흰 목을/ 마지막으로 만질 때처럼/ 서먹하게”(진은영, ‘불안의 형태’) 온다. 고전이 담고 있는 생각은 현대의 맥락과는 사뭇 다른 토양에서 자라난 것이기에 서먹하고, 그 서먹함이야말로 우리를 타성의 늪으로부터 일으켜 세우고 새로운 상상의 지평을 열어준다.
텍스트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생각의 시체가 주는 이 서먹함을 즐기기 위해서는 서둘러 고전의 메시지라는 목적지에 도달하려고 하지 말고, 그 목적지에 이르는 콘텍스트의 경관을 꼼꼼히 감상해야 한다. “목적지에 빨리 도달하려고 달리는 동안 주변에 있는 아름다운 경치는 모두 놓쳐버리는 거예요. 그리고 경주가 끝날 때쯤엔 자기가 너무 늙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진 웹스터, <키다리 아저씨>) 고전의 메시지에 빨리 도달하려고 서두르는 동안 콘텍스트가 주는 다채로운 경치는 모두 놓치게 되고, 경주 끝에 얻은 만병통치약은 사이비 건강보조식품으로 판명된다. 대신 콘텍스트가 주는 경관을 주시하며 생각의 무덤 사이를 헤매다 보면 인간의 근본문제와 고투했던 과거의 흔적이 역사적 맥락이라는 매개를 거쳐 서먹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그 순간이야말로 오래전 죽었던 생각이 부활하는 사상사적 모멘트이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811267.html#csidx987e7e6ea48d9a4840d935a77379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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