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야? 조선공산당이나 공산청년회나 간부 중에 여자가 한 명도 없잖아. 멀쩡히 같이 토론하다가도 밥 먹을 때 되면 여자들한테 밥해오라 그러고 말이야. 상투 틀고 곰방대 빠는 양반들이 그러면 그런가 보다 하지. 공산주의 하자는 젊은 남자들이 그러는 데는 정말 배신감이 느껴진다니까.” (p.134, 《세 여자》 1권 중)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대경합의 시대에 자본주의는 공산주의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마르크스 이론과 레닌의 혁명은 그들을 추종한 공산주의 세계를 행복하게 만드는 대신 반대편의 자본주의의 세계를 더 인간답게 만드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그것은 하나의 역설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식민지를 겪은 이들이 신탁통치라는 단어에 알레르기를 일으켰으니 반탁 구호는 과거 친일파의 죄도 사하여줄 만큼 주술적인 힘을 발휘했다. 반탁은 새로운 애국 인증이었다. 반탁정국에서 가장 데미지를 입은 쪽은 박헌영과 공산당이었다.
“혁명이 완료되면 달라질 거다, 라는 생각이 바로 이상주의라는 것 아니겠소. 나는 그런 이상주의는 스무 살도 되기 전에 버렸소. 정치란 양의 얼굴을 한 늑대요. 어떤 정치에도 최선은 없소. 진보는 상대적인 것이고 더 나은 쪽을 택한다는 것뿐이오. 마르크시즘이 봉건제보다 낫고 자본주의보다 우월하니까. 끼니도 해결 못하는 중국 인민들에게 아편을 강제로 떠먹인 것이 자본주의요, 그 자본의 나갈 길을 개척하는 게 제국주의 총칼 아니오? 부르주아 정치라는 게 뭐요? 자본가들과 지주들을 보호하는 시스템이요. 장개석이 지금 하는 짓이 그것 아니오? 지주 자본가들이 장개석군대를 먹여 살리고 있잖소? 장개석 일파는 중국이 일본 식민지가 되더라도 공산정부의 토지개혁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 자들이오. 장개석은 끊임없이 일본하고 뒷거래하고 있소. 아마 서안사변 없었으면 일본에 황하 이북을 내줬을 거요. 중국을 반토막 내서 그 반쪽이라도 챙기는 게 낫다는 심보요. 그런 장개석에 비해 모택동은 단연 우월하오. 정치에서 최선은 없소. 차선을 선택하는 거지."
(2권 297-298)그녀는 적이 당황스러웠다. 내 나이 오십, 귀찮은 것이 많아지는 나이로구나. 아니, 사람에 대한, 사람들 집단에 대한 기대가 사라져버린 것 아닌가. 누가 잡든 권력의 속성은 똑같다는 생각, 어느 개인이 더 현명하든 덜 현명하든 집단이 되면 어리석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 그렇다면 권력을 포식한 집단이 권력에 굶주린 집단보다 낫지 않을까. 굶주린 이리떼보다 배부른 사자 떼가 낫지 않을까. 이건 가장 저급하고 비겁한 보수주의자의 사고방식인데 자신의 어느 결에 이토록 회의주의자가 되었던가, 하고 정숙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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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정숙은 일제시대 인권변호사로 유명한 허헌선생의 딸, 허헌선생은 김병로, 이인선생과 함께 인권변호사 3인방 중의 한 분이었며 정치적 노선이 사회주의였으며 독립운동가 변론을 도맡아 했다.

- " 내가 제일 중요해" 라는 생각으로 주체적인 인생을 산다.
- 허정숙은 "조선의 콜론타이"로 불리는데 자유분방한 연애행적 때문만은 아니고 사회주의 사상에 입각하여 여성의 지위향상과 조선의 독립을 위해 맹렬한 활동을 펼친 이력때문
아버지의 지지를 받으며 지지하여 같이 북쪽으로 갔고 그곳에서 쭉 잘 살아갔다.
● 주세죽
- 자기주장이 있으나 조신한 스타일
- 미인에 다가간 남자들에 의해 삶의 우여곡절이 많다.
- 박헌영과 부부가 되고 같이 조선공산당을 창당
- 1938년 소련에서 5년간 카자흐스탄 유배형을 받아 그곳에서 생활했고
1940년 카르마크치의 협동조합에서 노동형을 받고 1946년까지 일하였다.
- 1945년 8월 15일 카자흐스탄 체류 중 광복 소식을 접하고 스탈린에게 '조선으로의 귀한을 허용해달라'는 청원을 하였으나 이 청원은 거절당했다. 소련은 박헌영에게 주세죽이 정치범으로 유배되어 있다는 사실을 비밀로 했고, 박헌영 역시 주세죽이 소련에서 잘 지내는 것 정도로 생각했다. 1946년 7월 초에 박헌영은 소련방문단의 일원으로 모스크바에 갔다. 그때 박헌영은 딸 비비안나와 상면했다.
● 고명자- 강경의 대지주의 외동딸인 고명자는 이화학당을 다니다가 김단야와 사귀고, 모스크바로 유학을 떠났으며 경성에 돌아와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가 전향하여 친일행로를 걷다가 한국전쟁 중 사망한다.
■ 세 여자는 다른 인생을 살았는데 어떤 것이 가장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을까?
타고난 기질 vs. 삶에서 어려울 때 기댈 수 있는 배경
▶ 내생각에는 그녀들의 가정의 지원, 배경이 인생을 달라지게 만든 것 같다.
허정숙을 예를 들면 그녀의 어머니가 딸 둘을 맡아주었기 때문에 계속적인 활동을 할수 있었다. 이에 비하면 주세죽은 인생에 어려움이 생길때 '비빌언덕'이 없이 자기혼자 겪어내야 핬다.
▶ 고명숙은 집안이 좋았지만 본인이 좋은 집으로 시집가는 것을 뿌리쳤다. 혁명이후의 삶은 고달프게 살았다.
▶ 세명은 집안배경뿐 아니라 타고난 기질도 달랐다.
■ 허정숙
- 북에서 끝까지 잘 살았다. 김일성도 그녀를 어쩌지 못했다.
- 소련의 힘으로 세워졌고 러시아에서 무시할 수 없는 상징적 존재이기며 그런 외교관계를 잘 풀어갈 수 있는 사람이기에 살아남았다.
- 허정숙 살아남는 삶을 산 인물이다.
■ 주세죽도 언어능력 때문에 활동할 수 있었다.
박헌영과 함께 최고의 엘리트코스로서 8명만이 혜택을 입은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서 수학한 엘리트이다.
■ 작가가 여자이기에 발굴한 이야기라 생각한다.
- 당시에 활동하던 여자들이 지금 알려진만큼은 아니더라도 여러명 더 있었을 것인데 그만큼은 조명되지 않는다.
■ 1800년대 말 1900년대초인데도 세상에 빨리.눈뜨고 앞서나가려고 하는 소수지만 움직이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 감동이다. 배운 것을 실현하는 열정이 느껴져서 가슴이 뜨거워졌다.
■ 우리는 다른세계를 접하기 더 쉬운데도 갖힌 시각을 가지고 일상을 산다.
■ 공산주의에서는 결혼을 부정적으로 본다. 아이를 낳는 순간 힘을 잃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허정숙이 기회주의자이라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돈, 권력이 있는 사람으로서 어려움을 겪지 않고 살아왔기에 김일성쪽으로 붙는다는 결정을 했다.
■ 세여자는 새로운 세상을 몰랐기 때문에 용감했다. 젊음의 특징이기도 하다.
▷ 새로운 세상을 경험한 사람은 더욱 새로운 세상으로 가고 싶어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찬탁/ 반탁을 둘러싸고 우리의 경우 명분론에만 치우쳐 오판을 함당시 국제정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중도 좌파들이 힘을 잃은 것이 안타까웠다. (그런 논쟁에 휘말릴게 아니고 우리의 이익을 중심으로 두고 결정할 )지도력이 없었다. 미국의 경우 정치와 경제를 엮어서 정교한 전략을 가지고 임한다. - 신탁통치에 대한 동아일보일보의 오보가 과연 오보인가 싶다.
■ 저자는 우리나라가 희생자인양 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 한편으로 너무 거대하게 조여오는 압력이 막강했기에 힘겨운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 남북으로 분단된 후로는 이 문제를 언급하면 풀어갈 수 있는 경로가 없어졌다.
■ 책에 권력은 떨어진 권력을 줍는 사람이 권력을 차지한다고 되어 있다. 어떤 가치를 주장하고 실현하려고 하는 사람보다는 권력형인간이 권력을 잡는다는 것.
■ 두권으로 되어 있는 책이지만 술술 잘 읽혔는데 내가 그 시대에 들어가서 직접 경험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인 것 같다.
■ 그당시 인텔리가 북한으로 넘어간 것은 당연한 일인 것 같다.
당시 현실에서 자본주의는 돈때문에 중국에 아편을 퍼뜨리는 악한 존재이다.
사람을 먹게 해주는 것은 신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공산주의자는 기독교에 반다한다.
6. 세여자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인물은 누구 인가요 그리고 그 이유는?
주세죽에 마음이 간다.
김단야를 선택하지 않고 아이를 찾아서 혼자서 돌아왔으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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