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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정의

by 책이랑 2019. 11. 7.


시적 정의 - 10점
마사 누스바움 지음, 박용준 옮김/궁리


나의 중심 주제는 나 자신이 될 수도 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 중 한 사람이 될 수도 있는 (주어진 환경이 다르다는 것을 고려하여)
타인의 삶을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에 해당한다. •••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길, 문학과 예술은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다. 왜냐하면 역사는 단순히 ˝일어난 일들˝을 보여주는 반면, 문예 작품은 인간 삶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 

대부분의 역사적 글과는 달리, 문학 작품은 일반적으로 독자로 하여금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의 입장에 서게 하고, 또 그들의 경험과 마주하게 한다. 문학 작품은 가상의 독자들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고유한 방식 속에서 작품 속 인물들과 독자 자신이 최소한 매우 일반적인 수준에서 연결될 수 있다는 느낌을 전달한다. 그 결과 독자의 감정과 상상력은 매우 왕성해진다. 바로 이러한 활동의 특징과 그것이 공적 사유와 맺는 관련성이 나의 관심사다.  

소설 읽기는 인간적 가치에 대한 감각을 생생하게 일깨워주며, 우리를 온전한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가치 판단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경계가 없는 바다의 물방울과 같다. 그리고 ‘이 집단은 어떤 집단인가?’라는 질문은 그 집단의 경제적 해결책이 한 개인의 불행과 다른 이의 만족 사이에 놓인 메울 수 없는 분리성을 없애야 하는 문제와 일맥상통한다


세상을 숫자를 통해 보는 것과 소설을 통해 보는 것

문학적 상상력이 공적 삶을 바꾼다!

누스바움이 이 책에서 비판하는 것은 주류 개발 경제학이나 공공영역에서 규범적인 것으로 옹호되어온 ‘경제적 공리주의’이다. 그에 따르면, 경제적 효율성이 제1의 가치이자 모든 것을 숫자로 환원하는, 차가운 계산의 세계에서는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분노하는 시민이 생겨나기 어렵다. 이를테면 경제성장률 4%, 1인당 국민총생산(GNP) 2만 달러와 같은 숫자로 세상을 보면, 세상은 그런 대로 살 만해 보인다. 총합이나 평균 수치가 사회의 분배 문제나 불평등에 대해서 말해주는 바가 없어도 그렇다. 노인 빈곤율 45.1%, 세계기아인구 4천 명 증가, 독재정권 희생자 3백 명이라는 뉴스에 시큰둥해하는 것도 그것이 추상화된 숫자이기 때문이다. 반면 눈앞에 구체적인 이름과 이야기를 가진 인물이 있다면, 우리는 그가 처한 상황과 그의 고통에 쉽게 반응을 보인다. 누스바움이 문학의 사회적 가치를 믿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에 따르면, 문학은 나와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는 인간 존재를 우리 눈앞에 데려다 놓는다. 문학은 그의 상황과 내면세계를 생생하고 구체적인 언어로 묘사한다. 독자는 소설을 읽어나가며 그가 처한 상황을 마치 나의 일처럼 감정 이입하게 되고, 그가 느끼는 행복, 기쁨, 고통, 공포, 두려움, 희망에 공감한다. 소설을 통해 “비통하고 억울한 자들, 배제된 자들”의 얼굴을 마주하고, 세상의 불의와 참상을 목격한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불평등보다는 평등에, 귀족적 이상보다는 민주적 가치에” 관심을 갖게 된다. 문학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키는 전복적인 힘을 지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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