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혐오란 여성을 숭배하거나 멸시하는 행위 양쪽 다를 포함한다- 타자화
▶ 남성혐오가 가능한 조건(p.7)
① 여성에 대한 성차별이 없어야 한다,
② 여성동성사회가 있어야 한다.
③ 남성을 성적대상으로 타자화 하는 문화가 지배적이어야 한다.
→ 이런 상황이 아니므로 '한남'이라는 말은 대항발화임
▶ 페미니스트란 무엇이 옳은지를 질문하는 사람
▶1990년대 여성에 대한 폭력문제가 이슈
1995년 베이징 4차 여성대회
2000년 여성면이 다루는 넓어짐
2010년 부터 여성면이 사라지면서- 데이트강간, 검사들의 성접대, 낙태죄 등장
2013년 페미니즘 부각되기 시작
2015년 페미니스트 선언
1장 나는 내가 누구인지 말하지 않기로 했다
■ 눈을 마주치고 난 후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88776
성별이분법에 갇힌 건 S가 아니라 나였다. 내가 생각하고 행한 모든 것들은 전형적인 트랜스혐오였다. S와 처음으로 눈이 마주친 순간을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모든 운동과 이념이 특권을 성찰하지 않는 순간 억압의 일부가 된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배웠다.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 나는 내가 누구인지 말하지 않기로 했다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87796
커밍아웃 정치학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당사자가 만들지 않는 범주로 자신을 설명하고, 때로는 모욕하기까지 하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 과연 개인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의미 있는 일일까. 그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과연 누구를 안심시키는가. 때로는 대답하지 않는 것이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선택이 될 때가 있다
세상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산다. 하지만 저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그런 경우의 수가 단 하나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인셕체계를 불안하게 만든 모든 사람은 '불온'한 존재가 됨
....
‘혐오’는 이제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키워드 중 하나다. 더 이상 성소수자, 이주민 등 소수자만의 문제도 아니게 됐다. 자기 존재를, 다른 생각을 드러내려는 ‘평범한’ 당신도 이제는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혐오란 무엇인가, 혐오가 일상이 된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묵직하고도 고통스러운 질문을 던지는 영화가 나왔다. 바로 다큐멘터리 <불온한 당신>이다.
한국에서 혐오 현상이 많이 얘기되고 있지만 ‘혐오’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영화에서 다뤄진 적은 없다. 단순히 싫어하는 것이 ‘혐오’가 아니다. 공공장소에서 증오를 선동하는 것, 물리적으로 공격하는 것, 공포심을 만들어내는 것, 맹목적인 적대감을 만들어내는 것. 혐오가 어떻게 구체적인 사건으로 드러나는지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사회에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의견을 가진 사람들에게 점점 더 불온하다는 딱지, 낙인이 붙고 있다. 내가 ‘불온한 당신’으로 호명한 것은 나 자신이기도 하고, 그렇게 점점 늘어가고 있는 ‘불온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영화를 본 관객들이 그렇게 반문한다. 당신들(혐오세력)이 불온하다고 외치는 건 도대체 누구냐고, 불온한 건 바로 당신들이 아니냐고.
요즘은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면 불온하다고 몰아간다. 뉴스를 보니까, 학생인권조례 개정안 토론회 때 “학생들이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다”면서 고함치고 난동 부렸던 사람들, 세월호 유가족들을 향해서 ‘국가 분열 세력’이라고 비난하던 바로 그 사람들이 “국정화 교과서에 반대하면 국민이 아니다”라고 외치고 있더라.”
-<불온한 당신>의 예비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우리 모두 ‘혐오’라는 사회적 공기를 마시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고, 혐오가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되어 버렸다. 이 시대에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타인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영화를 통해서 생각해보면 좋겠다.” ▣
출처: https://blogs.ildaro.com/2445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블로그]
│달리기 시합
│부모 성을 함께 쓰는 이유
│아빠가 나서야 해
│그것은 선의가 아니다
│여자답게 헤어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모두의 생명에 대한 예의
│모르는 게 없는 남자들
│브리트니 스피어스, 그 여자에게 내려진 이중명령
│누가 박경원을 추락시켰나
│여자들의 우정을 그리는 방식
2장 우리는 쓰고 또 쓰는 수밖에 없다
이 정도로 까다롭고 예민하다고 하다니│알고자 하는 용기│토론이란 무엇인가│우리는 쓰고 또 쓰는 수밖에 없다│가족의 사랑만으로 할 수 없는 일│존엄한 취향
■ 캡틴, 나의 캡틴 2019년 3월 27일 <씨네 21>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92657
2019 년 슈퍼히어로 캡틴 마블은 인정투쟁을 하지 않는다.
여성 슈퍼히어로가 관개들에게 주는 가장 크게 쾌락을 주는 순간은 가장 강한 순간이 아니라, 가장 자유로운 순간.
빚도 짐도 아닌│혁명과 부역│
■ 왜 여성 인권인가 (2004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론> 7.8월 호
- 흑인 여성 인권 운동가 소저너 트루스 "나는 여자가 아닙니까?" 라는 질문은 결핍의 말인 "남자 못지 않다"라는 논리가 아닌 자신이 '여성'인 것이 부정되지 않고 '인간'일 수 있는지를 질문 한 것
- '인권'은 추상화, 탈정치화 될 때가 많다- (p.98)
ex) 여성인권이 아니라 전체적인 인권에 대해 말하고 싶다 라고 할때 성별, 인종, 계급, 나이 혹은 성적 선택이 매개되지 않은 관계란 없다라는 것을 알아야 함.
-(인권에 여성에 대한 성차별이 배제될 때가 많으므로)
페미니즘과 여성인권운동은 '인간'의 조건과 개념 자체를 질문 하는 것(p.92)
│“18세를 깔보지 마라”│더 많은 여성 정치인이 필요하다
3장 피해와 가해의 디스토피아
《82년생 김지영》이 우리 사회에 던진 질문│여성도 권력이 필요하다지만│역차별은 없다│모두 얼마 받고 있습니까│남한 영화의 북한 여성│가족 같은 분위기│피해와 가해의 디스토피아│무지의 특권에서 혁명적 정직성으로│짙은 안마│여자의 뇌, 남자의 뇌│개똥녀 괴롭히면서 즐거우셨나요│경찰이 우리를 지켜줄 거라는 믿음이 사라진 날│정확히 호명하고 제대로 질문하기
4장 너무 쉬운 공감을 의심한다
무엇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가│타인의 죽음이 내 삶에 들어올 때│타인의 고통에 내가 더 상처받을 때│타인의 고통을 듣는 자가 가져야 할 태도│너무 쉬운 공감을 의심한다│
■ 몰랐을 리 없다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93458
그리고 1970년대 중반부터 포르노 잡지들은 구강성교를 새로운 성적 판타지로 재창조하는 과정에서 립스틱을 바른 입술을 클로즈업한 이미지를 성기 노출을 대체할 수 있는 이미지로 사용해왔다.
소아성애자들은 아동이 성인처럼 꾸밀 때가 아니라 아동처럼 보일 때 성적으로 반응한다
우리 사회는 오히려 14살 미만을 접대 장소에 ‘특별주문’하고 ‘영계를 선호한다’라는 소리를 공공연하게 하며 성인 여성이 아이처럼 굴 때 성적으로 매력적이라고 반응하는 사회가 아닌가. 나는 우리 사회가 과연 소아성애를 금기한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피해라는 날개와 발톱│“내 삶은 너의 포르노가 아니다”│양진호의 폭행 피해자는 알고 있었다│안희정과 재판부가 유죄다│성인지감수성과 두 개의 점│그녀는 당신의 남편에게 반하지 않았다│양현석과 YG 패밀리의 유산│장자연 사건 이후 잃어버린 10년
5장 여자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페미니즘 없이 민주주의 없다│동성애자는 국민을 대표할 수 있는가│‘말하기’의 의미투쟁│메갈리아와 미러링 그리고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 페미니즘 실천은 웃어주지 않는 것에서부터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4282
2011년 사진작가 그레이스 브라운은 ‘언브레이커블 프로젝트’에서 성폭력, 가정폭력, 아동학대 피해자들에게 가해자들이 한 말을 그대로 종이에 적어서 어떤 코멘트도 붙이지 않고 두 손으로 들고 사진을 찍도록 했다. 이 작업에 참여한 피해자들이 가해자에게 직접 들은 말은 욕설이나 위협보다는 다음과 같은 말들이 휠씬 많았다. “닥치고 좋아하는 척 해”, “너도 이걸 원하는 걸 알아”, “걱정마, 너도 좋아하게 될 거야”, “난 네가 저항할 때가 좋더라.”…. 그 중 가장 많이 나온 말은 “사랑해”였다.
여성의 웃음과 애교를 의무로 요구하는 사회는 여자를 무기력한 대상으로 만들거나 사물이 되길 원하기보다는 옷차림, 화장, 얼굴 표정 등을 점점 자세하게 지시하는 방식으로 여자들을 괴롭힌다. 사물화이자 비인간화 과정으로서의 성적 대상화라는 개념으로는 이러한 성적 대상의 적극적 ‘반응’에 대한 집착을 설명하기 어렵다.
오직 지배자가 원하는 방식으로만 행동하기를 요구하고, 그가 정해준 한도 내에서만 욕망하고 행동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할 때
이러한 해악에 가담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은 타인의 타자성을 타자화하지 않는 것으로 가능하다. 나는 너가 아니다. 너는 내가 아니다. 타자의 욕망이 나와 같지 않고, 심지어는 같은 내용도, 형식도 아닐 수 있다는 것, 타자는 다르며 심지어 나의 상상의 범위를 넘어서는 차이를 가질 수도 있다는 생각과 태도를 가지는 것이다. 이는 호기심, 놀라움 그리고 겸손을 필요로 한다. 이리가레는 동일성으로 환원되지 않고 차이를 환대하는 사랑의 관계를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표현한다. “너는 나에게 환원되지 않는다. 단지, 나는 너에게 존재한다. (I am to you) 우리는 서로에게 대체물이 아니다”(이리가레이, 1998)
│백래시 시대를 사는 법│어떤 과잉과 강박들―인터넷, 포르노, 남성섹슈얼리티│화학적 거세? 아무것도 거세하지 못한다│여자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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