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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미네소타주립대학 불교철학 강의(2019.12.16)

by 책이랑 2019. 12. 16.

미네소타주립대학 불교철학 강의 
- 붓다의 생각을 꿰뚫는 스물네 번의 철학 수업

미네소타주립대학 불교철학 강의 - 10점
홍창성 지음/불광출판사

저자는 지금 시대의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개념과 방법으로 불교철학의 핵심들의 기본 교리부터 불교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경지에 대해 논한다. 더욱이 자신의 전공 분야인 서양철학의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봄으로써 불교철학의 정교하고, 지적이며, 논리적인 측면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동안 불교를 공부해 오며 철학적 난제를 맞닥뜨린 이들에게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책이다. 또한 불교에 대한 기본 지식을 갖추었거나 동양철학에 관심이 많은 독자는 물론 불교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도 우리의 삶과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선물한다.


[1] 4강 윤회하는 것은 없지만 윤회는 있다는 말을 각자 어떻게 이해했는지 

▶ 
나가세나 존자의  "촛불 이어켜기 비유"는 세계를 '존재(자)"가 아닌 과정process으로 보는 불교의 세계관을 이해시키는데 알맞은 비유이다. -  불은 (실체도 있지만) '현상' 이라는 것을 표현하는데 적합한 비유이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거울속에 비친 내 모습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고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질문을 던지면서 어머니의 행동이 내행동에 영향을 끼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존재가 눈에서 사라진 후에도 존재의 "영향"이 남는다는 것을 이해 할 수 있었다.  이어서 켜지는 촛불과 똑같다.

▶ 부처는 nirvana 열반을  탐,진,치라는 불이 꺼지는 것으로 설명하셨다.

그 이유는 
1) 브라만교 <리그베다> 에서 불을 숭상하는 풍습에서 출발한다. 가장은 매일같이 세가지의 불들을 켜고 그 불들을 살펴야 했다. 

2) 부처는 브라만교에서 긍정적인 가치였던 세가지 제의적 불을 욕정, 증오, 미혹이라고 명명하고 재해석한다. 

3) 불은 연료가 있어야 타는 것인데, 인간에게 고통을 유발하는 요소인 탐, 진, 치라는 연료가 없어지면 고통의 불 또한 꺼진다고 설명한다.

또 <리그베타>에서 불은 '의식'과 관계가 있었다고 한다.

곰브리치의 불교강의 제 8장 모든 것은 불타고 있다: 붓다 사상에 있어서 불의 중요성

 곰브리치의 불교 강의 - 10점
 리처드 곰브리치 지음, 송남주 옮김/불광출판사


[2] 자신의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서 하는 선행은 타인에 대한 사심없는 배려가 되기 어럽다는 저자의 주장에 대한 생각에 대해(110쪽)

불교에서의 자비는  정신과 의사의 박애심과 비숫하다. 객관성이 유지되어야 한다. 



[3] 에드워드의 의식 내용을 복제해서 만든 로봇들은 에드워드인가 아닌가(244쪽)

이런 질문은 생명복제, 인공지능이 발달하는  요즈음에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판단시 기준이 되는 경제적, 사회적, 윤리적 기준이 마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 정체성은 현재의 '의식'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닐 수 있다. 몸과의 어떤 인과적・역사적 연결고리가  정체성을 담보해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의식이 인격체의 정체성을 전적으로 결정해 줄 수 없다.

▶<철학가게>라는 책은 철학적 질문을 많이 담고 있는 책인데 그중에 4장이 정체성에 관해 논의한다.

4장 정체성 

 기억   신체(물리적 변화 )   신체 복제
 뇌   복제(유일성 )   변화(시간에 따른 변화) 
 역추적(자신의 기원) 
 난 도대체 누구일까?(자아, 자기 인식)
 반짝이는 모든 것(기억, 책임감, 정체성)
 머리를 부딪힌 사람은 누구일까?(기억과 정체성)
 복사기(복제 및 정체성)
 예전 모습을 절반도 갖고 있지 않은 남자(숫자 및 물리적 정체성)

▶ 그런데 홍창성 교수의 글에 따르면 불교에서는  '실체'가 없다고 생각하므로 서양철학에서 난제로 꼽히는 테세우스의 배는 불교에서는 질문조차 성립하지 않다고 한다. 

 https://www.kbpf.org/145751/현대적으로-이해하는-붓다의-가르침-10-연기와-무상__/

"지난 수십 년 동안 서양 철학계에서 논의되어온 이 문제는 지금도 여전히 분명한 해결책이 없는 철학의 난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만물이 조건에 의해 생성·지속·소멸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스스로의 본성(自性)을 가지고 실체(實體)로서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변화한다(無常)고 가르치는 불교에서는 이런 문제가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테세우스의 배’라고 불리는 대상을 테세우스의 배로 만들어주는 자성(自性)은 원래 존재하지도 않고, 또 이렇게 공(空)한 테세우스의 배가 실체로서 실재(實在)한 적도 없는데, 알루미늄 널빤지로 된 배와 나무 널빤지로 된 배 가운데 어느 쪽이 테세우스의 배냐고 질문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불자들은 묻지 않는 질문이다.

위와 같은 서양 철학의 난제는 사물이 본질(自性)을 가지고 실체로서 실재한다고 믿으며 그것이 동일한 대상으로 지속적으로 존재한다고 보기 때문에 비롯된다. 이 문제는 우리가 시간의 경과에 따라 겪는 물리적 화학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같은 대상으로 남아 있다고 믿는 다른 모든 존재자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왜냐하면 이런 모든 대상에 대해 ‘테세우스의 배’와 같은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성과 실체의 존재를 부정하며 모든 것이 단지 끊임없이 변하는 현상(幻)으로만 존재한다고 가르치는 불교에서는 이런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테세우스의 배는 단지 ‘테세우스의 배’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는 허구(fiction)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  서양철학에서 "테세우스의 배"는 정체성에 관한 유명한 질문이다.

" 일반적으로 테세우스의 배는 다음과 같은 보다 일반적인 철학적 문제들이 얽혀 생겨난 역설이라고 해석된다.(나무위키) 

  • 질적으로 다른 대상들이 수적으로 동일할 수 있는가?:
    • 이는 동일성에 관한 설득력 있는 원리 중 하나인 '동일자의 구별불가능성 원리'[5]에 어긋나지 않는가?
    • 이는 가능세계 관련 논의에서도 '통세계적 동일성(transworld identity)' 문제라는 형태로 재현된다.
  • 물리적 사물의 정체성은 오직 그 물리적 부분에 의해 결정되는가?:
    • 즉 사물의 물리적 부분은 그 사물의 본질적 요소인가? 즉 부분이 바뀌면 그 사물은 필연적으로 다른 것이 되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 사물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은 무엇인가?
    • 형이상학에서의 물질적 구성(material constitution) 문제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 사물이 변화한다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 파르메니데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질문. '어떤 사물 a가 b로 변한다'는 것은 곧 'b는 더이상 a가 아니다'는 것을 함축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어떤 사물이 변화하지만, 여전히 그건 그 사물이다'라는 것은 어떻게 말이 되는가?
    • 형이상학에서의 Endurantism vs. Perdurantism 논쟁에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Perdurantism 혹은 4차원주의에 따르면 물리적 사물은 시간적 부분(temporal part)들, 혹은 3차원 시간 단면들[6]의 합이다. 즉 '사물 a가 b로 변했다'는 말의 의미는 곧 a와 b가 시간축에서 연장된 대상 a+b+...의 일부분일 뿐이라는 것이 된다. 내 눈과 내 손가락이 내 몸의 일부분일 뿐인 것처럼 말이다. 데이빗 루이스가 이런 4차원주의를 주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 마인드 복제를 다룬 김초엽의 << 관내분실>> 중 한 구절

" 한 명의 여성 MC를 둘러싼 네 명의 남성 패널들이 마인드와 영혼이라는 주제로 토론을 하던 중이었다. 패널 중누군가가 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전기적 신호와 화학적 신호의 연속으로 해석할 수 있고, 마인드를 구축하는데에 성공한 것은 뇌 속의 다양한 화학적 신호들, 펩타이드와 신경전달물질의 영향을 전기적 신호로 데이터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여자가 말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 결과들은 부정적입니다. 스캐닝된시냅스 패턴이 더 이상 가소적으로 변형되지 않는다는 관찰이 이어지면서, 마인드가 영혼이 아니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죠. 한 사람의 자아는 끊임없이 변해갑니다. 성장하고, 배우고, 반응하고, 노화하면서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변형되지 않는 마인드는 영혼 그 자체가 아니라 죽은 시점에서 고정되어버린 일종의 박제된 정신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요?"
 패널들은 현재 학자들이 연구 중인 주제들을 제시하며미래에는 마인드를 완벽하게 이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주목했다. 만약 우리가 사고 언어에 대해서 완벽하게 이해하게 된다면, 그래서 시냅스 패턴을 변형하는 방식으로 자극을 줄 수 있다면, 도서관 안에 저장된 마인드들은 나름의 영혼과 자아를 가지게 될까? 그들은 몸을 잃었지만 그 안에서 살아 숨 쉬게 될까? 보고 듣고 냄새 맡고 주어지는 자극들을 느낄 수 있다면 그들을 도서관 밖의 사람들과 다른 존재라고 말할 수 있을까?" 




[4] 24강 미국 대학생들이 보는 불교의 문제점 9가지중 가장 공감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https://www.kbpf.org/142541/불교와-생명과학-불교의-진화2__유선경·홍창성/

"불교도 언제나 진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태되어 소멸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그런데 현재 서구 사회에서 유행하는 불교의 형태에서 우려되는 점이 있는데, 이 점이 한국 사회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서구 사회에서 불교는 개인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명상 위주의 수행법 으로만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많다. 서구에서 불교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교육을 많이 받고 교양이 풍부하며 전문 지식을 갖추고 경제적으로 그래 도 좀 여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사람들이 자신들 사회의 오래된 종 교나 문화로부터벗어나고싶어하며 무언가 새로운것을 추구할 때 동양에서 온 불교와 명상 센터를 찾곤 한다. 그런데 이들은 여러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잘 지 내고 또 나아가 사회에 공헌하기 위해 불교에 다가가고 공부와 수행을 하기보다는 개인의 안심입명을 목표로 그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부유하고 소시 민적인 사람들의 불교는 지극히 개인주의적 성향을 띠고 있어서, 오웬 플러네이 건(Owen Flanagan) 같은 철학자는 서구 불교를 ‘부르조아 불교’라고 부른다.

필자들은 대승의 전통이 힘차게 살아 숨쉬는 한국불교가 한갓 부르조아불교로 전락할 위험은 그다지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불국토를 꿈꾸는 한국의 불자들은 지금도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으며 간혹 정치적인 사건에도 깊숙이 관 여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도 요즈음 유행하는 것처럼 명상과 개인의 마음공부만을 위주로 불교 공부와 수행을 진행시켜가다가는 나중에 결국 마치 안심입명(安心立命)이 불교의 궁극적 목표인 것처럼 잘못 받아들여지게 될지도 모 른다. 그렇게 된다면 한국 불교도 서구 불교 철학자들이 조롱하듯 부르는 부르조아 불교와 별 차이가 없게 될 것이다.





“자연과학과 불교가 가진 가장 보편적인 공통점은 연기적 세계관일 것”

이번 강좌는 그동안 지혜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자비’만을 강조해온 불교계에 대한 반성의 측면도 있다. 

“먼저 듣고, 생각하고, 실천하는 ‘문사수(聞思修)’는 불교에서 말하는 중요한 3가지 지혜인데, 이 같은 지성성을 놓쳐왔다”며 “진정한 자비는 지혜가 수반돼야 하는 것으로 과학이라는 다른 텍스트로 불교의 본질, 지성성을 깊게 들여다보자는 뜻도 담겼다”고 말했다. 

강좌 주제

 △인공지능, 붓다의 시선으로 바라보다 (이상헌 세종대 교양학부 교수, 4월8일) 

인공지능이 인류에게 재앙이 아닌 축복이 되게 하는 방안은 없을지, 그 단서를 ‘붓다의 마음과학’을 통해 모색하는 강의다. 

" 전투 현장에서 인공지능 로봇을 사용하게 되면 인간하고 로봇이 싸움을 하게 되거든요.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불자들이나 불교계에서도 인공지능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시민이 감시하는 수준에서 관심을 많이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흉내 내는데 그치지 않고 우리들 마음 깊숙이 간직돼 있는 불성을 흉내 내게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인간과 비슷하게 만든 안드로이드 로봇이 있습니다. 겉모습이 비슷한 게 아니라 실제로 그것이 인간의 얼굴을 한 인간의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것이 도덕성인데 부처님이 말씀한 자비 등에 착안해서 인공지능을 활용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연과학으로 보는 법계연기 (양형진 고려대 과학기술대학 디스플레이반도체물리학과, 4월15일 ) 

△불교와 양자의학- 현대의학의 한계를 넘는 새 패러다임 (강길전 충남대 의대 명예교수, 4월22일)
△명상수행과 의학, 그 오묘한 상관관계 (강도형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4월29일)
△불교와 가상·증강 현실 (이정민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애니메이션과 교수, 5월6일)
△붓다의 우주관과 현대천문학의 세계 (박문호 한국전자통신연구소 책임연구원, 5월13일)
△티베트의학- 서구의료계가 매료된 융합의학의 전범 (김재일 상명대 대학원 감성공학과 겸임교수, 5월20일)

티베트 의학이 왜 서구 지성계를 매료하고 있는지 살핀다. 티베트의 전통의학은 티베트 불교인 ‘밀교’와 연관이 깊다. 티베트 의학에서는 욕망이나 화, 좁은 마음이라는 정신적인 삼독(三毒)을 질병의 근원으로 꼽는다. 자신의 마음을 순간순간 바라보고 잘 다독일 수 있을 때 심신의 조화로 건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재일 상명대 교수는 “병을 토닥이며 함께 살아간다”는 티베트 의학의 밑바탕에 있는 불교를 통해 의학판 ‘오래된 미래’를 탐구한다. 


△불교와 복잡계 과학- 유전자를 넘어 깨달음으로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 5월27일) 


△붓다가 본 우주- 아비달마와 유식을 중심으로 (김성철 금강대HK교수, 6월3일)
△불교와 정신신경면역학- 생명과학 시대의 새 패러다임과 통합생리학 (신경희 스트레스통합치유연구소 대표, 6월10일) 

△ 불교와 생명과학- DNA를 넘어서 그물망으로 보아야 하는 유전자 (유선경 미 미네소타주립대 철학과 교수, 6월17일)

생물학계에서 생물체의 유전의 주체로서 처음 설정된 DNA라는 개념도 과학의 발전에 따라서  점차 변화해 가고 있습니다. 서구식 개념인 주체와 객체의 개념은 불교식 무자성의 개념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DNA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생명현상이 결정론적으로 작용한다고 보는 것이 처음의 입장이었으나, DNA에서 RNA로 그리고 단백질로 이어져서 현실적인 생명현상을 일방통생적으로 이어가는 관계가 절대로 아니며, 따라서 첨단 분자생물학은 Central dogma로서의 유전자의 기능을 부정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설명하는 복잡계 과학도 실체가 없는 것을 실체화하는 비불교적 세계관일 수 있슴)

△불교의 시간관-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가는가? (최기표 금강대 불교복지학부 교수, 6월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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