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조건 |
- 꽃게잡이 배에서 돼지 농장까지, 대한민국 워킹 푸어 잔혹사
이 책은 20대 후반의 저자가 2007년부터 전국 각지를 떠돌며 일한 경험을 기록한 르포다. 조지 오웰의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모티브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함께 일한 사람들의 숙소는 어느 정도 크기인지. 여름엔 얼마나 덥고, 겨울엔 얼마나 추운지. 사람들은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꿈은 무엇인지. 식사로는 어떤 음식이 나오고 급여는 어느 정도인지. 작업은 어떤 과정을 거치며 도구는 어떤 것을 사용하는지. 여가 시간은 어떻게 보내는지 등등… 알고 싶어도 접할 수 없었던, 깨알 같은 이야기들이 놀랍도록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저자의 유머감각이고 또하나는 화자의 심리 변화다. 사람다운 취급을 받지 못하면서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탁월하게 그려냄으로써, 저자는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에 기본적인 생활 조건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역설한다.
저자에 따르면 톨킨의 <반지의 제왕>에서 식사장면은 프로도가 샤이어를 떠나 리벤델에 도착할 때까지 24번많이 나온다(p.6 )고 한다. 톨킨의 다른 작품 작품 <호빗>에서도 식사와 음식은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하는데 호빗의 첫번째 장의 제목은 '뜻하지 않은 파티' 이고 두번째 장의 제목은 '구운 양고기'라고 한다. 먹는 일은 서로, 낯선 사람, 지구와 연결하는 행동으로 설정되어 있다고 한다. 호빗 문화, 특히 호빗이 먹는 공동식사를 건강한 사회의 모델, 평화를위한 수단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호빗의 정의에는 이런게 있었다.
"호빗: 아주 작은 사람. 음식, 친구, 마시고, 담배피고, 평화롭고, 조용한 삶을 좋아하는 사람 하지만 필요할 땐 세상을 구할 수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원래 책의 제목을 체스의 queening으로 하려고 했다고 말한다. queening이란 체스에서 pawn(졸)이 여왕, 퀸이 되는 상황이라고 한다. 저자는 대한민국이 퀴닝 할 수 있는 사회인지, 앞으로 그렇게 될 것인지 묻는다. 저자는 체스에서 pawn, 톨킨의 세계에서 호빗과 같은 위치인 대한민국의 워킹푸어가 현실에서는 작다고 우습게 취급되는 존재이지만 이 사람들이 바로 대한민국을 만들어나가고, 대한민국을 구하는 존재라고 말하고 싶은 것 같다.
* 호빗은 하루에 7끼를 먹는다고 한다.
Happy Hobbit Day: A Meal Plan for Middle-Earth
https://papago.naver.net/website?locale=ko&source=en&target=ko&url=https%3A%2F%2Fwww.webstaurantstore.com%2Fblog%2F1786%2Fhobbit-meals-to-celebrate-hobbit-day.html
호빗들은 평화를 매우 많이 사랑하는 것 같다.
오늘은 진도 꽃게잡이 배에서 일한 경험을 다룬 1장과, 서울 고시원에서 지내면서 주유소에서 일했던 경험과 편의점에서 일한 경험을 다룬 2장을 읽었다.
이 책의 부제는 '꽃게잡이 배에서 돼지 농장까지, 대한민국 워킹 푸어 잔혹사' 이다. 워킹 푸어 는 '일을 하는 데도 여전히 가난 한 사람'을 말하는데, 일을 하지만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충분한 돈을 벌지 못하기 때문이고, 또 두개의 장을 읽어보면 거기에다가 일을 시키는 사람들이 일을 시키고도 이러 저러한 이유로 약속한 돈도 안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알라딘의 책 소개에서 '밑바닥'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그린 것과 함께 화자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그려낸 것을 탁월한 점으로 꼽았다. 저자는 자신이 불가항력의 존재와 마주하는 느낌이었다고 말한다. 사실 그럴 때 '종업원의 실수를 아무렇지 않게 웃어넘길 수 있는 손님이 한반도에도 존재함을 증명하리라 다짐'했었지만 고시촌 식당에서 식당주인의 딸인 종업원이 자신의 옷에 국물을 떨어뜨렸을 때 ' 쌍시옷을 사용해서 여자의 가슴을 후벼 팠다. 손님이라는 합법적인 악마들 앞에서 순교자였던 자신이 실제로는 '순교자인 동시에 박해자'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고강도 노동을 하면서 몸이 망가져 갔고 그와 동시에 정신과 영혼이 고장나는 순간이 왔다.
1부. 이틀발이
- 진도, 꽃게잡이
서울에서 진도까지는 버스로 5시간이 걸린다. 한 쪽은 산 넘고 물 건내 다른 대륙의 도시고 다른 쪽은 중산층의 삶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이다. 내가 여전히 부모님 집에서 무위도식하며 산다고 가정했을 때 둘 중 어디가 더 멀리 있는 곳일까? p.28
▶ 선주-갑판장-일반선원 간의 질서는 사회의 위계의 모습의 축소판
← 카스트 (p.91)
14번째 어장 앞에 배가 멈추면 정신착란 상태에 빠져들었다. 변했다. 이때는 <반지의 제왕>설정에나 나올 법한 괴물들이 배를 공격하는 환각을 봤다. 내가 좋아했던 것은 빨간 용이었다. 이 용은 바닷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브리지 부분만 물어뜯었다. 그 모습이 꼭 쇼트케이크 위에 오른 딸기만 집어 먹는 것 같았다. 용은 선주와 브리지를 꼼꼼히 씹은 뒤에다. 내가 삿갓대로 선주의 롤렉스 시계를 건지려고 바둥대는 동안 요이 꼬리로 배를 쳐서 순식간에 항구로 돌아오는 해피엔딩으로 환각이 마무리됐다.
나는 매일밤 기우제라도 지내고 싶은 심정이었다.p.96
▶ 젓갈 배를 탈출하려다가 사망한 중국 선원
2부. 빈민의 호텔
- 서울, 편의점과 주유소
매주 한 번 씩 들르는 슈퍼바이저는 접객 관련 불만 신고가 줄지 않는다며 언제나 투덜거렸다. 그는 어떤 손님이 알바와 다툰 일을 회사 홈페이지에 올렸는데 회장님이 그걸 읽으시곤 해당 편의점이랑 계약을 해지하라며 노발대발했다는 이야기를 빼먹지 않고 들려줬다. 모든 서비스업 종사자에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적힌 어깨띠와 녹슨 못을 박은 각목을 하나씩 지급한다면 손님과 종업원 사이의 싸움이 획기적으로 감소하리라 생각하지만, 서비스업계가 이런 혁신적인 제안을 받아들일 만한 안목을 갖추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가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오직 직장 때문에 서울에 오겠지만 젊은이들은 메가박스를 이용하기 위해, 동대문에서 쇼핑하기 위해 서울에 오기도 하는 것이다. 결국 사람들이 서울로 몰려드는 이유는 내가 지방에 살 생각이 없는 것과 같은데, 그건 모든 것이 서울에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만 있는 것들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문화와 의료인데 나 역시 그 둘 중 어느 쪽도 제대로 향유할 만한 형편은 못되지만 가능성은 열어두고 싶은 마음을 버릴 수가 없다. 누군가 파리와 런던을 이렇게 비교한 적이 있다. '파리는 프랑스가 아니지만 런던은 영국이다.' 런던의 예는 서울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의 모든 것이 서울에만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것들은 서울에'만' 있다. 지방 젊은이들은 계속 서울로 몰려들고, 그들이 떠난 곳에서 공장은 이전하고 상점들은 문을 닫는다. 그 덕분에 지방 소도시들은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가 SG 워너비의 신곡을 연주하며 지나간 것 같은 꼴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보자면 한국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바로 서울이다.-139쪽
누구라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을 만한 행동들이, 종업원에게는 이를테면 감정적 알레르기 증상을 일으킨다. 반말이 가장 대표적인 경우다.159
(중략)
사람들이 이런 행동을 얼마나 가볍게 여기냐와는 상관없이 모두가 종업원에게는 스트레스를 준다.그리고 이것이 내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인데, 그 스트레스는 시간이 지나도, 같은 행동을 아무리 많이 겪어도 줄어들지 않는다. 매번 똑같이 괴롭다. 편의점 일이란 게 매일 이런 식이다. 앞에서 예를 든 행동 때문에 결투를 신청할 사람은 없겠지만 그것도 매일같이 겪다 보면 야구방망이라도 집어 들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159-160쪽
이런 일들에 기분이 상하는 이유는 단지 내가 좋은 환경, 좋은 부님 밑에서 자랐다는, 말하자면 감정의 무균실에서 자랐다는 뜻일 뿐라고 생각하려 한다. 하지만 이런 식의 자위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아니다. 누군가가 고급차의 식사 시중을 든다고 해서, 그가 불충분한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무시당해도 좋다고 동의한 건 아니지 않은가? 163
"정말 …… 어쩔 때는 짐승을 다루는 일이 더 낫지 않을까, 정말 진지하게 그런 생각이 들어."163
군대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불평해도 된느 것과 불평해선 안 되는 것을 눈치로 파악했다. 전자가 사람에 대한 것이라면 후자는 시설에 대한 것이다. 다시 말해 어느 방 사람이 너무 시끄럽다, 아니면 몇 호에 사는 누가 항상 문을 '쾅' 닫는다 하며 다른 투숙객을 욕하는 건 상관없지만 방이 너무 춥다, 화장실이 너무 더럽다 하며 시설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는 것은 '배은망덕'한 짓이다. 한 달 10여 만 원으로 지붕 아래서 잔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167쪽
나는 비슷한 실험을 편의점에서도 진행했다. 사람들이 '별생각 없이' 한다는 그 행동들을 정말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나는 몇몇 손님들이 하는 행동을 그대로 반복했다. 거스름돈을 카운터에 던져버린다든가, 쓰레기를 다시 손님 쪽으로 밀고서 쓰레기통을 가리킨다든가, 똑같이 반말로 대꾸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그 결과 대다수가 이런 '사소한' 행동을 굉장히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이 드러났다.-170쪽
문제는 그녀가 내 잔치국수를 내려놓을 때 생겼다. 맞은편책을 든 남자가 걸어오다 그녀와 부딪쳤다. 국수 국물이 내 도튀었다. 바지에 500원 동전만 한 얼룩이 남았다. 그녀는 연신 조아리며 미안해했다.
"어머, 어떡해? 괜찮으세요? 아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의외였던 건 나 반응이었다.
" 뜨거, 데이 쌓!"
이런 말이 내 입에서 나왔다는 게 놀라웠다. 나는 스스로가 이런 수간을 위해 준비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주유소와 편의점에서 굽실거릴 때마다 나는 종업원의 실수를 아무렇지 않게 웃어넘길 수 있는 손님이 한반도에도 존재함을 증명하리라 다짐했다. 누가 내 머리에 부글부를 품는 청국장을 쏟아붓더라도 가게 옷을 털고는 산들바람처럼웃어 보일 자신이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기회가 바로 내 눈앞에 있었다. 정수리가 보일 만큼 고개를 숙여가면서, 하지만 내가 내뱉은 말은 식당 안에 있던 모두의 얼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진짜 찾...…. 에이 씨발, 아 뭐예요. 이게?"
아무리 해도 머릿속으로 연습했던 말이 나오지 않았다. '괜찮아요.
별거 아닌데요. 뭘 (실제로 받거 아니었다. 아주머니는 걱정스럽게 딸을 바라봤고 남자들은 나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내 앞에는 종업원이 사회를 하고 있었고, 이 순간을 낭비해선 안 될 것 같았다. 무료 시식권이 아까워서 좋아하지도 않는 식당에 가는 것처럼 말이다. 무엇보다도 나를 자극했던 것은 그녀가 무방비 상태라는 내가 뭐라고 지껄이건 잠자코 있을 거라는 화신이었다. 나는 쌍시옷을 사용해서 여자의 가슴을 후벼 팠고 그녀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눈물이라도 홀1 거 같았다. 한참을 투덜대고 나서야 기분이 조금씩 나아졌다. 묘한느낌이었다.
나 역시 내가 착각에 빠진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물론 종업원이 옷에 음식을 흘리는 것이 유쾌한 경험이라고는 할수 없다. 하지만 그녀가 한 행동에 대한 반응이라면 잠깐 노려보는 정도로 충분했다. 내가 보인 반응은 적당한 수준을 분명히 넘어선 것이었다. 5분 남짓한 그 시간 동안 그녀는 내 체내에 축적되어 있던 화를 배출시키는 통로나 다름없었다. 이 일은 우울한 경험이었다. 이전까지만해도 내 세계는 단순했다. 나는 이름 없는 순교자였고 손님은 합법적인 악마들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나란 존재는 순교자인 동시에 박해자이기도 했다. 나는 어떤 불가항력적인 존재와 마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p.173
여자는 결심을 단단히 하고서 찾아온 것 같았다. 눈도 마주치지 않고 굳은 표정으로 쓰레기만 버렸다. 우리가 뭐 하시는 거냐, 왜 여기다 쓰레기를 버리시냐, 물어도 대답도 않고서 초지일관 쓰레기만 실어 날란다. 하지만 여자는 그런 딱딱한 표정으로 일관하기엔 너무 많은 쓰레기를 가져왔다. 당분간은 이대로 쓰레기만 옮겨야 된다는 걸 깨달았는지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이 지나 쓰레기를 모두 쏟아놓고 여자는 운전석으로 향했다. 봉지에 여자가 풀어놓은 잡동사니를 담고 있는데 케이크 상자 속에서 바퀴벌레가 튀어 나왔다. 나는 벌레를움켜잡고, 운전석 옆으로 다가가 말했다.
"손님, 이거 빠뜨리셨는데요."
여자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나는 차 안을 향해 바퀴벌레를 던졌다. 마침 그녀는 깊게 파인 검은색 브이넥 스웨터를 입고있었다. 바퀴벌레는 날개를 퍼덕이며 여자의 가슴 사이로 들어갔다.
"으으으ㅇㅇㅇㅇ, 끼야아아아아악!"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두 팔을 휘둘렀다. 미안하다는 말이 아주 잘어울릴 것 같은 목소리였다. 그녀는 안전벨트도 풀지 못했다. 당장 기설이라도 할 것 같았다. 사람들이 웅성대며 모여들고 누군가는 나를 손질하고 또 누군가는 내 멱살을 잡고 흔들었지만, 나는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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