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인간의 조건 3장

by 책이랑 2020. 5. 4.

3장은 돼지농장에서 일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이전에 채식에 관한 책을 읽으면 닭, 돼지나 소의 사육환경을 알게 되면 거의 자동적으로,  최소한 한동안은 채식을 하게 된다는 말이 있었다.  그 말 처럼 이 부분에는 '지옥' 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온다.  3장에도 앞에서 처럼 유머가 자주 나왔지만 크게 웃지 못했다. 글로 써 있는 걸 읽는 것일 뿐인데 알고 싶지 않는 거북한 내용이 많다. 그래도 유머가 없었다면 이 부분에서 책을 덮었을 것 같기는 하다. 

돈사는 냄새에 관한 새로운 어휘군을 만들어야 할 정도의 냄새가 나고, 고압호스로 똥을 잘라내야 할 정도로 똥이 쌓여 있다. 새끼를 얻으려면 거세하고 인공수정을 하고 , 어미 돼지는 갓 태어난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때라도 움직일 수 조차 없는 좁은 공간에서 사육되고, 성장이 시원찮으면  미리미리 새끼를 제거하는데, 바닥에 패대기 친 후,  똥을 흘려 버리는 배수로에 던져진다. 무척이나 '비인간적'이지만 용을 줄이는 것이 기준으로 삼을 때 이렇게 하는 게  더 유리하기에 선택된 방식이다. 

돈사에 일하러 온 사람들은 투자에 실패해서, 카드 빚이 너무 많아서, 택배와 같은 고강도의 노동을 피해서, 가족의 병으로 인해 가정이 몰락해서 등등을 겪었다. 어쩌면 이 사람들은 배수로에 버려지는 새끼돼지들과 비슷한 대접을 받아 왔다. 인생에서 위기를 맞아 약한 상태가 되었을 때 다시 살아나는데 필요한 도움을 받지 못한 채 버려졌었다. 


놀라운 건  돈사에서 일하는 게 그렇게나 냄새나고, 더럽고, 끔찍하다고 얘기하면서도, 저자가 돈사를 그만둘 생각을 쉽게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같이 서울로 가서 다른 일자리를 찾아보자고 말했다. 지금 생각 해보면 다르게 고민할 문제도 아닌데 그 순간에는 결심이 서지 않았다. 서울에서 일자리를 구한다면 서빙 정도일 텐데 비육사도 끔찍했지만 그렇다 해도 손님보단 똥이 더 안전한 선택 같았다. 성필이 형이 떠난 뒤에는 하얀 천장만 바라보다 잠이 들었다. 결국엔 돼지들이 내 이야기 상대가 됐다.(p.281)

저자는 한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해 본 일 중, 어떤 일이 가장 힘들었냐는 질문에 주유소와 편의점에서 일했을 때라고 했다. 손님들의 '진상'이  머리속에 '잔상'으로 남아  일이 끝난 뒤에도 계속 괴로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게 돈사의 끔찍함 보다 견디기 더 힘들었다고 했다.

이 대목에 이르니 비로소 책의 제목이 '인간의 조건'이 된 이유를 알 것 같다. 인간은 조건에 따라 인간다운 인간이 될 수 있고, 조건이 갖춰지지 않을 때는 인간이 되지 못하는데, 우리 사회가 꽃게잡이, 주유소와 편의점, 돈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인간대접하지 않아서,  인간을 비인간적으로 대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지옥' 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 같다.  돈사를 지옥으로 만드는 그 원리대로 다른 곳에서도 사회가 운영되기에, 세상살이는 점점 더 지옥살이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분뇨장에 똥을 버릴 때는 종교적인 사람으로 변하게 된다. 돈사마다 외부에 분뇨장이 있었다. ㄷ자 형태로 벽을 두르고 슬레이트 지붕을 얹었다. 하루 사이에 부쩍 늘어난 똥 바다 위에 똥을 쏟아부었다. 똥물을 헤치고 분뇨장 안쪽까지 리어카를 끌고 갈 자신이 없어서 분뇨장 입구에만 똥이 잔뜩 쌓였다. 나는 종교도 없고 신이란 존재를 늘 의심했지만, `철철철` 소리를 내며 검붉은 똥이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걸 보고 있으면 저절로 입으로는 신을 부르짖게 된다. 이틀 동안 분뇨장에서 신을 찾은 횟수가 그 이전까지 기도한 횟수를 압도할 것 같았다. 신심이 시든 종교인에게 분뇨장에서 일해볼 것을 권한다.


'내가 인정할 수 있는 좋은 충고란 자신과 이웃에게 긍정적이고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뿐이다. 누군가에게 충고를 건네고 싶다면 상대방이 자신의 삶을 얼마나 의미 있게 생각하는지부터 알아볼 일이다.(상대의 동의를 얻지 않고 충고하는 사람들을 법적으로 처벌하자! 모든 자기 계발서 저자는 사기죄로 구속되어야 마땅하다.) 만약 당신이 그런 삶을 살고 있지 못하다면 충고할 자격이 없는 것이고 그런 삶을 살고 있는데도 상대가 당신을 좋은 충고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두 사람은 충고를 주고받을 만큼 가까운 사이가 아닌 것이다.'(p.205)


이 글 바로 앞에서 글쓴이에게 충고를 한 사람은 돼지농장에서 만난 조경과장인데, 그가 한 말은 이렇다.

'"승태 씨 봐요, 물론 지금이야 힘들고 뭣 같겠지만 조금만 참고 하면 돼요. 뭐든지 처음부터 너무 좋은 거 하려고 하지 말고 작은 거부터. 승태 씨, 지금 좋아요. 어디 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어디서든 열심히만 하면 돼요. 다 자기 마음먹기 달린 거지. 돼지들도 이쁘다, 이쁘다 하면 똥 냄새도 덜 난다니까."(중략)

"나는 똥 냄새를 어떻게 버텼냐고? 나야 뭐 버틸 게 없지. 난 이 일만 하면 돼요. 나 돈사 한  번도 들어가 본 적 없어요. 들어갈 생각도 없고. 어휴, 난 그런 거 절대 못해요. 나 여기 이사님한테 처음부터 확실하게 얘기했어요. 만약에 나보고 돈사 들어가서 일하라고 하면 나는 그 즉시 사표 쓸 거라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세상엔 이런 족속들이 있는 것이다. 자신은 손도 대고 싶어하지 않는 일을 다른 이들이 얼마나 쉽고 즐겁게 해낼 수 있는지 자신 있게 떠드는 사람들 말이다.'(pp.204~205)


'내가 보기엔 하기 싫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삐뚤어지게 만든다. 내가 경멸하는 사람은 황소 심줄 같은 끈기를 지닌 사람들이다. 참고 참아서 끝내는 어디선가 한자리 꿰차는 사람들. 그러니 너희들도 인생의 절반을 무의미한 일을 하며 살라고 권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 비하면 중도포기자들은 언제 어디서고 "이제 그만!"이라고 외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라 해야겠다. 참을성 좋은 사람들은 체면이니, 부모니, 정체를 알 수 없는 명분에 충성을 다하는데, 세상을 어둡게 만드는 건 여지없이 이런 부류다.'(234쪽)


양돈장을 제대로 묘사하려면 똥과 악취를 묘사하는 새로운 어휘군이 필요할 것 같다. 돈사의 불결함은 돼지의 성장과 비례했다. 베육사는 자돈사보다 상태가 심각했다. 이런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드게 월급 100만 원은 모욕이나 다름없었다. 왜 더럽고 힘든 일은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과소평가되는 걸까? 지금의 대통령이 게으름을 피운다면 시위대가 할 일을 잃을 뿐이겠지만 누군가 똥오줌을 치우지 않는다면 모두가 미치거나 병들어 죽게 될 것인데도 말이다



고기 반찬이 나왔다고 잔치 분위기로 변하다니, 그게 무슨 쌍팔년도이야기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내 생각은 이렇다. 지금이 21세기라고 해서 모두가 화상 통화를 하고 제트팩을 메고 출근하는 건 아니다. 어떤사람은 여전히 IMF 시절을 살고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서울 올림픽 시대의 삶을 산다. 삶의 스펙트럼 전체를 살펴본다면 얼마나 소수의 사람들만이 '동시대적인' 생활을 누리는지 확인하고 놀라게 될 것이다.(p.238)


이런 피로를 잊는 방법은 지독한 방법은 지독한 숙취를 해장술로 가라앉히는 것과 비슷하다. 괴로울 때 술을 더 마시면 위가 알코올에 마비되면서 숙취가 사라지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비육사 근무도 마찬가지다.  피로에 새로운 피로를 더해서 피로에 마취되는 것 말고는 퇴근 전에 작업을 끝마칠 방법이 없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니 아저씨들 대답은 이랬다.
"그렇게 피로가 더해지면서 니 체력이 쎄지는 거여."

당연한 얘기지만 음주는 숙취 해결책이 아니다. 난 이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숙취에 찌든 간에 알코올을 들이붓는 건 지방간을 지나 간경화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확신한다. 피로에 피로를 더하는 것 역시 피로에 대한 해결책은 아닐 것이다. 세상 어딘가에는 그런 식으로 강인해지는 사람들이 있는지 모르지만 나는 결코 그런 축복받은 부류가 아니었다. 내가 피로를 이겨내는 방법은 푹 쉬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한 달 2일 휴무는 그런 휴식을 허락하지 않았다.(p.263)


나는 팀장님이 건네준 마스크 세 개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그 남자의사자코를 떠올렸다. 나는 주위 사람들의 마스크를 바라봤다. 코와 입을단단히 막고 있어야 하는 물건이지만 하도 늘어나서 간신히 코끝에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건 마스크 제조사의 잘못이 결코 아니었다.

그날 저녁 TV에서 화성 탐사선 소식이 나왔다. 뉴스를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류가 화성에 식민지를 건설하는 것과 회사에서직원들에게 매일 새 마스크를 지급하는 것 중 어느 쪽이 먼저 실현될까? 농장은 문을 연 지 20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20 년 동안 세 개 늘어난 속도로 30개가 되려면 200년이 걸린다. 나는 나사NASA 쪽이 먼저일 거라고 생각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