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한길사 |
▶(22) <나폴리는 전세계와 연결되어 있다>
나는 밀라노나 러시아 연방이면 몰라도 나폴리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릴라의 통제할 수 없는 머리가 지어낸 말도 안 되는 상상에 자신에게 순정을 바치고 있는 가여운 엔초까지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차라리 떠나라고 말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서 멀리, 영원히 도망가라고. 모든 것을 이룰수 있고 모든 것이 잘 돌아가는 그런 곳에 자리를 잡으라고 말하고싶었다. 나는 실제로 그렇게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나는 그때 내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현실은 길이가 길어질수록 고리가 커지는 사슬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향 동네는 나폴리와, 나폴리는 이탈리아와, 이탈리아는 유럽과, 유럽은 전 세계와 연결되어 있었다.
이제야 나는 생각한다. 병든 것은 우리 고향 동네가 아니라, 나폴리가 아니라 지구 전체다. 유일한 우주 또는 무수히 많은 우주가 모두 병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조차 사물의 본질을 숨길 줄 아는 능력이다. p.22
“Leave, instead. Get away for good, far from the life we’ve lived since birth. Settle in well-organized lands where everything really is possible. I had fled, in fact. Only to discover, in the decades to come, that I had been wrong, that it was a chain with larger and larger links: the neighborhood was connected to the city, the city to Italy, Italy to Europe, Europe to the whole planet. And this is how I see it today: it’s not the neighborhood that’s sick, it’s not Naples, it’s the entire earth, it’s the universe, or universes. And shrewdness means hiding and hiding from oneself the true state of things.”
▶<릴라에 대해 비난하는 니노>
"아들을 낳았어 아니면 딸을 낳았어?"
"아들"
그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리나는 용감해. 지나칠 정도로 말이야. 하지만 도무지 현실과 타협할 줄을 몰라. 그 누구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이야. 자기 자신마저도 말이야. 그런 리나를 좋아하는 게 힘들었어."
"무슨 뜻이야?"
리나는 헌신이 뭔지 몰라."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아니야. 리나는 정말 문제가 있어. 생각도 그렇고 모든 면에서. 심지어는 성관계도 그랬어."
성관계도 그랬다는 니노의 마지막 말에 나는 심한 충격을 받았다.
니노는 릴라와의 관계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건가. 그래서 나를 불편하게 하면서까지 릴라와의 성관계까지도 그 부정적인 감정에 포함되었다는 이야기를 지금 내게 한 것인가. 나는 앞서 걸어가고 있는 아델레 부인과 타라타노 교수의 어두운 윤곽을 잠시 바라보았다.
불편한 감정은 불안함으로 변했다.
나는 '성관계도' 라는 니노의 말이 다음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한 서두이고 니노는 이 부분에 대해서 더 깊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몇 년 전에 스테파노도 나에게 릴라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스테파노는 성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우리 동네 사람 중 그 누구도 사랑하는 여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성관계를 입에 담지는 않을 것이다.
예를 들면 파스콸레가 아다와의 성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거나 그보다 심하게 안토니오가 카르멘이나 질리을라에게 나와의 성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남자들끼리는 추잡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그들은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거나 사랑이 식어버린 여인들에 대해서는 그런 이야기를했다. 그마저도 사내들끼리 하는 대화였다. 이성에게 대놓고 그런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예전과는 달라진 니노는 내게 내 친구와 했던 성관계에 대 해 이야기하는 것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민망한 마음에 움츠러들었다. 이 이야기도 릴라에게 절대 하지 말아야겠 다고 생각했다. ..
▶59 '세상은 본질적으로 불공평하기 짝이 없는 곳이며 그렇기 때문에 변화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미 제국주의와 스탈린식 관료주의가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다는 주장이나 이탈리아를 위시한 유럽노동당들의 개혁 정책은 결국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종속적인 유보 상태로 머무르게 할 뿐이다. 이러한 유보적 태도는 혁명의 불길에 찬물을 쏟아붓는 격이다. 그러므로 만약 세계가 교착 상태에 빠지고 사회민주주의가 승리를 거두면 결과적으로 수세기 후에는 자본주의가 승리하게 될 것이고 노동계급은 강제적 소비주의의 먹이가 될 것이다.'
▶(60)
하지만 나도 모르게 내 감정에 형태를 부여하고자 하는 노력에 집중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노력의 결과물이었고 그 안에는 내가 있었다. 책장에 꽂혀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노출되어 있는 나 자신을 보니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비단 내 책뿐만 아니라 소설에는 나를 흥분시키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소설에는 날 것 그대로 요동치는 심장이 있었다. 아주 먼 옛날 릴라가 내게 함께 이야기를 지어보자고 했을 때도 그런 터질 것 같은 감정을 느꼈었다. 그런데 내가 정말로 그런 일을 하게 된 것이다.
▶< 인간의 경험은 솔직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나는 민망했다. 얼굴이 빨개졌던 것 같기도 하다. 사회학적인 이유를 두서없이 늘어놓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인간의 경험은 어떤 것이라도 솔직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는 말을 했다. 특히 차마 이야기할 수 없고 우리 자신에게조차 말할 수 없는 일일수록 그렇다고 강조했다. 학생들은 이 마지막 대답에 만족해했고 덕분에 나는 다시존경받게 되었다. 나를 초청한 여교수도 내 의견을 칭찬하면서 자기도 이 부분에 대해 깊이 생각을 해보고 내게 편지를 쓰겠다고 했다.
내 이야기에 여교수가 공감을 하자 떠올린 지 얼마 되지 않은 그개념은 내 머릿속에 완전히 자리 잡았다. 그 후로 나는 마치 노래의후렴구처럼 그 말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 나는 공적인 장소에서 이야기할 때마다 그 개념을 자주 언급했다. 때에 따라서 재미있게, 극적으로, 간결하게 또는 공들여 구상한 화려한 표현으로 구체화시켰다.77
▶ 나는 어떤 면에서는 지나치게 교육을 많이 받았고 어떤 면에서는 너무 무지했다. 나 자신을 통제하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다른 이들의 사상과 사건을 머릿속에 꾸역꾸역 집어넣느라 열정 없는 인생을 사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게다가 결혼과 안정적인 삶이 너무 빨리 시작될 예정이었다. 한마디로 나는 그곳에서 이미 몰락해버린 기존의 질서 체계 속에 너무 깊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p.85
▶ 마리아 로사 앞에서 새롭게 변한 나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원했다.
아기가 조용해지고 실비아도 아기와 함께 사라진 다음 그들에게더 이상 내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이 확실해지자 나는 프랑코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때를 기다렸다. 그러다 나는 내 전 남자친구의 의견에 반박할 기회를 찾았다. 나는 불쑥 프랑코의 의견에 반대의견을 제시했다. 뚜렷한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내 목표는 단지 프랑코의 의견에 반대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나는 그의 의견에 반박했다. 미리 생각해둔 표현을 거짓된자신감으로 포장했다. 나는 되는대로 프랑스에서 진행되고 있는 계급투쟁의 성숙도에 의구심을 표했다. 현재로서는 학생 노동자 연합이 추상적으로 느껴진다고 했다. 자신 있는 척했지만 실은 두 사내중 한 명이라도 내 말을 끊고 다시 자기들끼리 토론을 시작할까봐 두려웠다. 하지만 모두 내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 아기를 눕혀 놓고까치발로 돌아온 실비아까지도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프랑코도 후앙도 내가 말하는 동안 조급하게 내 말을 끊으려 하지 않았다. 심지어 후앙은 내가 민중이라는 단어를 두세 번 쓸 때마다 동의를 표했다. 프랑코는 이 모습이 거슬렸는지 내게 비꼬는 투로 물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현 상황이 '객관적으로는 혁명적이지 않다는거야?"
나는 프랑코의 그런 말투를 잘 알고 있었다. 나를 놀리는 척하면서 스스로를 방어하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격렬하게 논쟁을 벌였다. 내가 한마디를 던지면 프랑코가 즉시 응수했고 프랑코가 한마디던지면 나도 즉각 그의 말을 되받아쳤다.
"객관적' 이라는 것이 무슨 뜻인데?"
"행동에 나서는 것이 필연적이라는 의미야." 95
"필연적이지 않다면 두 손 놓고 있어도 된다는 의미야?"
"아니, 혁명가의 의무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거야."
"프랑스에서 학생들은 불가능한 일을 했어. 교육 시스템은 기능을 상실했고 절대 바로잡을 수 없을 거야."
"하지만 프랑스 학생들은 상황을 바꾸어놓았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
"맞아. 아무도 너나 다른 누구에게 공식적으로 현재 상황이 객관적으로 혁명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라고 한 적은 없어. 학생들은 행동에 나섰어. 그게 다라고."
"그렇지 않아."
"아냐. 그래."
우리는 그런 식으로 한참 언쟁을 벌이다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비정상적인 대화였다. 내용 때문이 아니라 열띤 어조와 격의 없는태도 때문이었다.
마리아로사가 재미있다는 듯 우리를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나와 프랑코의 대화를 듣고 우리 사이가 평범한 대학 동창 이상이었다는 것을 눈치챘다.
"이리 와서 나 좀 도와줘."
마리아로사가 실비아와 후앙을 향해 말했다. 나와 프랑코를 위한 침대 시트를 찾기 위해 사다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둘은 마리아로사를 따라 나갔다. 후앙은 그녀의 귀에 무엇인가를 속삭였다.
프랑코는 잠시 바닥을 바라보았다. 미소를 참으려는 것처럼 입술을 꾹 다물더니 다정하게 말했다.
"너는 여전하구나. 프티부르주아 아가씨의 모습 그대로야."
프랑코는 지난날 내가 그의 방에서 그와 함께 있는 것을 들킬까봐 96
▶ 프랑코는 어떤 말을 해야 내게 상처가 덜 될지 생각하는 것 같았다.
"사실 별 특별한 내용이 없잖아, 엘레나, 유치한 사랑 이야기와 사다. 그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물었다.
"네 친구는 네 책을 읽었어?"
"모르겠어. 너는?"
"당연히 읽었지."
"어땠어?"
"좋았어."
"좋았다니 어떤 점에서?"
"좋은 부분이 있었어."
"어떤 부분이었는데?"
"네가 여주인공에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전혀 다른 사건들을 조합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는 부분."
"그 외에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아?"
"충분하지 않아. 책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네."
"좋았다고 했잖아."
나는 프랑코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나를 비참하게 하지 않으려애쓰고 있었다. 그런 그의 태도가 오히려 나를 화나게 만들었다.
"논쟁의 대상이 된 책이야. 잘 팔리고 있고."
"잘 됐네. 그럼 됐잖아?""
"맞아, 하지만 네 마음에 들지는 않았잖아. 뭐가 문제인 거야?"
프랑코는 다시 한 번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사실 별 특별한 내용이 없잖아. 엘레나. 유치한 사랑이야기와 사회적 신분 상승에 대한 주인공의 집착 뒤에 정말로 해야 할 이야기를 놓치고 있어."
<니노를 꿰뚫어 본 마리아로사>
마리아로사는 학생운동에 니노 같은 사람이 꼭 필요하며 그런 사람을 잘 돌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잘 성장시키고 올바른 길로 이끌어야 한다고 했다. 마리아로사는 그렇게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에게는 기본적으로 소시민적 민주주의자나 전문 기업인, 맹목적인 현대화 신봉자의 본능이 숨어 있기 때문에 그들을 잘 이끌어야 한다고했다. 우리는 함께 보낸 시간이 부족했음을 아쉬워하며 다음 기회를 기약했다. 나는 호텔에서 가방을 찾아 나폴리로 향했다.
<리노- 경솔하고 깊이간 없는 인간 >
대상으로 자신의 매력을 기계적으로 발산한 것이었다. 그 사실은게 모욕감을 주었다. 릴라가 내 머릿속 한구석에 자리 잡은 것처리그녀의 감정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릴라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여떤 기분일지 상상하니 씁쓸했다. 마치 내가 직접 니노에게 배신당하것처럼 화가 났다.
니노는 결국 릴라와 나를 모두 배신했다. 둘 다 그에게 굴욕당해고 그를 향한 사랑을 되돌려 받지 못했다. 니노는 재능은 뛰어났지만 결국은 경솔하고 깊이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땀과 체액을 홀리고 다니는 동물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여성의 뱃속에 잉태되어영양을 섭취하고 형태를 갖춰가는 살아 있는 생명체를 부주의한 쾌)락의 잔여물처럼 남겨두고 다녔다.
나는 몇 년 전 니노가 나를 찾아 동네까지 왔던 때를 생각했다. 우리가 뜰에서 대화를 나눌 때 창문에서 니노를 본 멜리나는 그를 그의 아버지와 혼동했었다. 도나토 사라토레의 옛 정부는 그때까지만해도 내 눈에는 보이지 않던 부자간의 유사성을 감지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멜리나가 옳고 내가 틀렸다.
니노는 자기 아버지처럼 되기 싫어서 도망친 것이 아니었다. 니노는원래 자기 아버지와 똑같은 사람이었다. 이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뿐이다.
그런데도 나는 니노를 미워할 수 없었다. 찜통 같은 기차에 앉아나는 서점에서 니노와 재회했을 때를 돌이켜 보았다. 또한 니노의모습을 최근 일어난 모든 일과 내가 듣고 말한 문장과 단어에 비춰보았다. 그동안 추잡하지만 매력적인 성에 대한 욕망에 사로잡혀 어떤 행동을 하고 대화를 하고 책을 읽을 때도 나는 그 욕망을 떨쳐빌수 없었다. 장벽은 무너지고 관습의 족쇄가 풀리고 있었다.
▶ 마리아로사는 학생운동에 니노 같은 사람이 꼭 필요하며 그런 사람을 잘 돌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잘 성장시키고 올바른 길로 이끌어야 한다고 했다. 마리아로사는 그렇게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에게는 기본적으로 소시민적 민주주의자나 전문 기업인, 맹목적인 현대화 신봉자의 본능이 숨어 있기 때문에 그들을 잘 이끌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함께 보낸 시간이 부족했음을 아쉬워하며 다음 기회를 기약했다. 나는 호텔에서 가방을 찾아 나폴리로 향했다.p.109
▶<니노를 위한 변명>
시대의 분위기 여자들이 성적 해방?
니노는 그런 시대를 마음껏 즐기며 시대적 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특유의 강한 체취를 풍기며 밀라노 대학의 소란스러운 집회에 참여하고 있었다. 마리아로사가 사는 아파트의 무질서와도 어울렸다. 나는 마리아로사와 니노가 분명 연인 사이였을 것이라- 고 생각했다.
니노는 자신의 지성과 욕망과 매력을 이용해 혼란스러운 세상에 서도 언제나 호기심을 감추지 않고 자신 있게 행동했다. 어쩌면 내 노를 그의 아버지와 같은 추잡한 욕망의 화신처럼 취급하는 것은 옳 지 않은 일인지도 모른다. 그는 도나도 사라토레와는 다른 문화권에속할 수도 있다. 실비아와 마리아로사도 이러한 사실을 강조하지 않았는가,
그녀들은 여자들이 모두 니노를 원한다고 했다. 그가 여자들을 취 하는 것은 여자들이 원하기 때문이지 그가 강요해서가 아니었다. 그러니 니노는 죄를 짓는 것이 아니었다. 욕망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 뿐이었다. 니노가 내게 릴라는 성적으로도 문제가 있다고 말했을 때그는 아마도 가식의 시대는 끝났으며 쾌락에 책임감을 결부시키는것은 잘못되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니노의 본성이 자기 아버지와 닮았더라도 여자에 대한 그의 열정은 자기 아버지의 것과는 달랐다.
니노가 얼마나 많은 여자의 사랑을 받고 얼마나 많은 여자를 사랑했는지 생각하다 보니 나폴리에 도착할 무렵에는 놀랍고도 실망스럽게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인생을 즐기는 게 뭐가 나쁘겠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모든 여자가 니노를 원하고 니노는 니노대로 모든 여자와 관계를 가지는 마당에 어린 시절부터 그를 원했던 나야말로 누구보다도 더 그를 원하그 111
▶ 릴라는 엔초에게서 무엇을 분 것일까. 나는 릴라가 엔초에게 본 것이 그녀가 지난날 스테파노나 니노에게서 본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릴라는 엔초를 통해 모든 것을 바로잡기를 원했다. 스테파노의 경우에는 일단 돈이라는 보호막이 사라지자 실체 없고 위험한 인물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니노의 경우에는 지성이라는 보호막이 사라지자 릴라에게 이름만 남기고 시커먼 연기처럼 증발해버렸다. 지금 이 순간 엔초만큼은 릴라에게 예기치 못한 아픔을 줄 것 같지는 않았다.p.137
▶ < 엔초 vs 스테파노>
릴라는 엔초에게서 무엇을 본 걸까. 나는 릴라가 엔초에게 본 것이 그녀가 지난날 스테파노나 니노에게서 본 것과 별반 다를 것이없다고 생각한다. 릴라는 엔초를 통해 모든 것을 바로잡기를 원했다. 스테파노의 경우에는 일단 돈이라는 보호막이 사라지자 실체 없고 위험한 인물이라는 것이 드러났었다. 니노의 경우에는 지성이라는 보호막이 사라지자 릴라에게 아픔만 남기고 시꺼먼 연기처럼 증발해버렸다. 지금 이 순간 엔초만큼은 릴라에게 예기치 못한 아픔을줄 것 같지는 않았다. 139
<악취나는 부르조아지로 변한 브르노>
했다.
"이 햄을 좀 봐, 한번 만져보라고."
브루노가 말했다.
"속이 꽉 찬 데다 단단하지. 냄새는 또 어떻고, 남녀가 서로 껴안고 몸을 탐할 때 나는 냄새 같아. 마음에 들어? 내가 소년 시절부터on 많은 여자를 이곳으로 데리고 왔는지 알면 놀라서 입이 딱벌어질걸?"
브루노는 갑자기 릴라의 허리를 잡고 입술로 릴라의 긴 목을 훑었다. 동시에 재빨리 엉덩이를 꽉 움켜쥐었다. 손이 백 개는 되는 것 같 았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놀라운 속도로 앞치마를 헤집고 치마 밑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쾌락을 위해서가 아니라 여인의 몸을 침범해 야겠다는 집착에 사로잡힌 것 같았다.
릴라는 햄에서 나는 악취에서부터 브루노의 몸짓 하나하나에서 스테파노의 폭력을 떠올렸다. 순간 몸이 산산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 살해당할까봐 두려웠다. 그것도 잠시일 뿐 격렬한 분노가 릴라를 덮쳤다. 그녀는 브루노의 얼굴을 때리고 다리 사이를 발로 차면서 소리 질렀다.
"쓰레기 같은 자식! 아랫도리에 아무것도 없는 주제에. 이리 와!
네 물건을 꺼내 보라고, 내가 당장 잡아 뜯어줄 테니 말이야. 이 나쁜자식아!"
브루노는 릴라를 놔주고 뒤로 물러섰다. 피가 흐르는 입술을 손으로 만졌다. 민망함을 감추기 위해 키득거리다 중얼거렸다.
"미안해, 나는 그래도 네가 내게 조금은 고마워할 줄 알았어."
그러자 릴라가 소리쳤다.
"여기서 잘리지 않으려면 네게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뜻이야? 그 145
<악취나는 부르조아지로 변한 브르노>
했다.
"이 햄을 좀 봐, 한번 만져보라고."
브루노가 말했다.
"속이 꽉 찬 데다 단단하지. 냄새는 또 어떻고, 남녀가 서로 껴안고 몸을 탐할 때 나는 냄새 같아. 마음에 들어? 내가 소년 시절부터on 많은 여자를 이곳으로 데리고 왔는지 알면 놀라서 입이 딱벌어질걸?"
브루노는 갑자기 릴라의 허리를 잡고 입술로 릴라의 긴 목을 훑었다. 동시에 재빨리 엉덩이를 꽉 움켜쥐었다. 손이 백 개는 되는 것 같 았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놀라운 속도로 앞치마를 헤집고 치마 밑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쾌락을 위해서가 아니라 여인의 몸을 침범해 야겠다는 집착에 사로잡힌 것 같았다.
릴라는 햄에서 나는 악취에서부터 브루노의 몸짓 하나하나에서 스테파노의 폭력을 떠올렸다. 순간 몸이 산산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 살해당할까봐 두려웠다. 그것도 잠시일 뿐 격렬한 분노가 릴라를 덮쳤다. 그녀는 브루노의 얼굴을 때리고 다리 사이를 발로 차면서 소리 질렀다.
"쓰레기 같은 자식! 아랫도리에 아무것도 없는 주제에. 이리 와!
네 물건을 꺼내 보라고, 내가 당장 잡아 뜯어줄 테니 말이야. 이 나쁜자식아!"
브루노는 릴라를 놔주고 뒤로 물러섰다. 피가 흐르는 입술을 손으로 만졌다. 민망함을 감추기 위해 키득거리다 중얼거렸다.
"미안해, 나는 그래도 네가 내게 조금은 고마워할 줄 알았어."
그러자 릴라가 소리쳤다.
"여기서 잘리지 않으려면 네게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뜻이야? 그 145
▶<사회주의 운동당과 이탈리아 공산당과의 갈등>
....
"다른 사람도 아닌 나한테 호들갑을 떤다며 진정하라고 하다니 당을 망가뜨리는 것은 바로 그들이야. 당을 기존 체계의 일부로 전락시킨 것도 그들이고 반파시스트 세력을 민주주의의 파수꾼으로전락시킨 것도 그들이야. 우리 동네 사회주의운동당의 지도자가 누군 줄 알아? 약국집 아들 지노야. 멍청하기 짝이 없는 미켈레 솔라 라의 똘마니 말이야. 파시스트 놈들이 뻔히 온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활개치고 다니는데 내가 보고만 있어야겠어?"
파스콸레는 사뭇 감정이 복받치는 듯한 어조로 자기 아버지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아버지는 당을 위해 몸을 바쳤어. 하지만 대체 무엇 때문에?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 흐지부지된 반파시스트 투쟁을 위해서? 고작 상황을 지금처럼 엿같이 만들려고? 불쌍한 우리 아버지가 죄 없이 감옥에 갔을 때 당은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어. 아버지야말로 당의 위대한 동지였는데도 말이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게서 나폴리를 해방시키기 위해 시민들이 앞장섰던 4일간의 투쟁과 사니타 다리 투쟁에도 참여하셨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동네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당원 활동을 하셨는데 말이야." -152
▶<여자 대학생들이 노동계급 공산주의자 남자들에게 품는 환상>
157모임 장소는 나폴리 트리부날리 가에 있는 오래된 건물이었다. 그드으 파스콸레의 차를 타고 집회에 갔다. 릴라는 일행과 함께 비록나았지만 장엄함이 느껴지는 계단을 올라갔다. 장소에 비해 참가 인읽은 많지 않았다. 릴라는 학생과 노동자들의 모습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도부와 평당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언변이 화려한 지도부와는 달리 평당원들은 떠듬떠듬 말을 늘어놓았다.
릴라는 왠지 모르게 불편했다. 학생들의 주장은 릴라에게 위선적으로 들렸다. 그들의 현학적인 표현과 주눅든 태도가 모순적으로 느껴졌다. 게다가 그들의 주장은 천편일률적이었다. 당신네 노동자들에게 배우기 위해 모임에 나왔다는 똑같은 말을 노래의 후렴구처럼되풀이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저 자본주의, 노동 착취, 사회민주,
주의 배신, 계급투쟁 방식 등에 대한 새로울 것 하나 없는 그들의 지식을 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릴라는 모임에 참석한 얼마 안 되는 여자들이한마디 발언도 하지 않으면서 엔초와 파스콸레에게 노골적으로 추파를 던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히 상대적으로 더 사교적인파스콸레에게 굉장히 호의적이었다. 파스콸레가 공산당원에다 지
▶ '나는 선량한 사람들의 유복한 삶이 어떤 건지 알고 있지만 너는 진짜 가난이 어떤 건지 상상조차 못할걸?'p.162
▶<리나가 일하는 환경에서 대해 새삼스레 놀라는 엔초와 파스콸레>
사내들에게는 뭐든 다 숨겨야 해. 차라리 몰랐으면 하는 거야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여인이 일하는 곳에서는 자기가 일하는 직장사장의 횡포가 기적처럼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싶은 거야.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무릅쓰고 여인을 지켜야 할 테니까. 그렇게 해야 한다고 어린 시절부터 배웠으니까."
파스콸레와 엔초의 침묵에 릴라는 폭발했다.
"노동계급이고 뭐고 둘 다 꺼져버려."
그들은 차에 올랐다. 산 조반니 아 테두초로 돌아가는 내내 셋은 다른 일상적인 대화만 했다. 그러나 파스콸레는 엔초와 릴라를 집앞에 내려주면서 진지하게 말했다.
"어쩔 수 없어. 너는 언제 어디서나 가장 뛰어난 사람이야."163
“You really work in those conditions?”
She, irritated by the contact, pulled her arm away, protesting: “And how do you work, the two of you, how do you work?”
They didn’t answer. They worked hard, that was obvious. And at least Enzo in front of him, in the factory, women worn out by the work, by humiliations, by domestic obligations no less than Lila was. Yet now they were both angry because of the conditions _she_ worked in; they couldn’t tolerate it.
You had to hide everything from men. They preferred not to know, they preferred to pretend that what happened at the hands of the boss miraculously didn’t happen to the women important to them and that—this was the idea they had grown up with—they had to protect her even at the risk of being killed. In the face of that silence Lila got even angrier. "Fuck off," she said, "you and the working class.”
▶ 자금을 투자한 사람은 머리와 손으로 일하는 사람과 똑같이 무엇이든 만들고 부서뜨릴 수 있는거야. 돈만 있으면 풍경도 바꾸고 특정한 상황도 만들고 사람들의 삶까지 좌지우지 할 수 있어.p.200
▶ '아, 리나 체룰로. 너는 정말 구제불능이구나. 대체 왜 그 목록을 적은 거지? 착취당하고 싶지 않아서? 너 자신과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근무 조건을 향상시키려고? 지금 투쟁을 시작하면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 승리의 행진에 합류라도 하게 될 것 같아? 이런 곳에서 일하고 있는 주제에? 저기 저 사람들을 데리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쓰디쓴 노동의 노고를 감내하게 하려고 만들어낸 흰소리일 뿐이다. 끔찍한 실태를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나. 이 끔찍한 실태를 나아지게 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완전히 해결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어린 시절부터 보아오지 않았나. 상황을 나아지게 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우리는 더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네 자신은 예전보다 나아졌나?
···맞아. 모든 악의 근원은 네 머리에 있어. 머리가 만족하지 못해 몸까지 병드는 거야. 이런 자신이 지긋지긋해. 모든 것이 넌덜머리가 나. ···지금 내가 뭘 자른 거지? 걸쭉한 누런 액체가 사방에 튀네. 역겨워라. 그래. 그래도 다행이야. 지구는 돌지만 돌다가 떨어지면 부서져버릴 테니 말이야.' p.220~221
▶ 해변을 따라 이어진 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바다는 고요했지만 강한 체취를 내뿜었다. 매일 아침 우리 동네가 아니라 저 멀리 해안 근처에 들어선 건물에서 눈을 뜰 수 있었다면 나폴리에 대한 내 감정이 지금과는 달라졌을까. 나는 무엇을 바라는가. 내 출생성분을 바꾸기라도 하려는 건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태생도 바꾸려는 건가. 빈곤과 탐욕 때문에 괴로워해본 적도 없고 원한과 분노를 알지도 못하는 시민들로 이 황량한 도시를 다시 채우고 싶은 건가. 태초에 이 땅에 거주하던 신처럼 이 황홀한 풍경을 있는 그대로 즐길 줄 아는 그런 사람들로 이 도시를 다시 채우고 싶은 건가. 내 안에 있는 악마를 만족시키고 악마에게 생명을 불어넣음으로써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건가.224
▶ '그래. 나를 겁주려는 사람한테는 겁을 주어야 해. 다른 방법은 없어. 폭력은 폭력으로 맞서는 수밖에. 내 것을 빼앗기면 어떻게 해서든 다시 빼앗아야지. 당한 만큼 고스란히 되갚아주어야 해.' p. 315~316
▶ 헤겔에게 침을 뱉는 것은 남성 중심 문화에 침을 뱉는 것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와 레닌에게 침을 뱉는 행위다. 유물론적 역사관과 프로이트와 정신분석학과 남근 선망 사상에 침을 뱉는 것이며 ··· 나치즘과 스탈리니즘과 테러리즘에 침을 뱉는 것이다. 전쟁과 계급 간 투쟁과 무산계급 독재,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침을 뱉는 것이다. 평등이라는 이름의 함정과 모든 가부장적 문화의 징후와 제도적 형태에 침을 뱉는 것이다. 여성의 지성이 허비되는 것을 막고 사회에서 남성 중심적인 문화의 특성을 제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인-노예 변증법 따위는 집어치우자. 머릿속에서 열등감을 깡그리 없애야 한다. 여성의 자아를 되찾아야 한다. 여성은 남성의 안티테제가 아니다. 여성의 '다름'을 인정하고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대학은 여성을 해방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여성 억압을 완성시키는 마지막 관문이다. 이는 현명하지 않은 일이다. 남성의 영역이 우주까지 확장되는 데 비해 지구상에서 여성의 삶은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다. 여성은 지구의 또 다른 얼굴이다. 여성은 예측할 수 없는 주체다. 동시대, 지금 이 순간, 이곳에서부터 남성의 지배에서 벗어나야 한다.p. 393 ~ 394
▶ 풋풋한 어린 생명체가 나이 든 생명체를 장난삼아 흉내내고 있었다. 우리는 결국 모두 똑같이 사랑과 증오와 욕망과 폭력이라는 짐을 지고 무대에 오르는 그림자 인형일 뿐이었다. p.411
"너 그거 알아? 너느 ㄴ언제나 '사실 '진실'이라는 말을 참 자주 하지. 말할 때도 그렇고 글을 쓸 때도 그래. 아니면 '갑자기'라는 말도 참 자주해. 그런데 요즘 세상에 '진심'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며 '갑자기' 일어나는 일은 또 얼마나 돼? 세상일은 다 사기야.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법이야. 이런 것은 네가 나보다 잘 알잖아. 나는 어떤 일도 '진심'으로 하지 않아. 그리고 모든 일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어. '갑작스러운' 일은 멍청이들에게나 일어나는 거라고."p. 450~451
▶ 무엇인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어린 시절부터 나를 사로잡았지만 나는 그제야 처음으로 그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무엇인가 되기를 원했다. 그 무엇인가가 뭔지는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물론 그동안 무엇인가가 되기는 했었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뚜렷한 대상도, 진정한 열정도, 확실한 야망도 없이 말이다. 릴라는 중요한 사람이 되는데 나만 혼자 뒤쳐질까봐 무엇인가가 되고 싶었을 뿐이었다. 중요한 것은 뭐라도 되는 것이었으니까. 나는 무엇인가 되기를 바랐지만 릴라의 영향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이제 나는 다시 무엇인가가 되어야 한다. 이번에는 오직 나를 위해서 그렇게 되어야 한다. 릴라에게서 벗어나 성숙한 인격체로서 말이다. p.495
▶ 나는 성숙이란 결국 삶의 굴곡을 호들갑 떨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일상적인 삶과 이론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길을 걸어가는 것이라고. 변화를 기다리며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정확하게 파악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p. 506
▶ 나는 돈이란 것이 고액 연봉과 거액의 수수료로 변하기 전에 얼마나 많은 뒷거래를 거치는지 생각했다. 밀수품을 나르거나 공원에 있는 나무의 가지를 자르거나 공사장에서 일하며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가는 고향의 젊은이들이 생각났다. 어린 시절부터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입에 풀칠을 하던 안토니오, 파스콸레, 안초가 생각났다.
엔지니어, 건축가, 변호사, 은행가 같은 사람들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돈도 비록 여러 단계를 거쳐 여과되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솔라라 집안사람들의 돈과 다를 바 없이 불법적인 거래나 파괴 행위를 통해 얻은 것이다.
···더러운 돈과 깨끗한 돈의 경계는 어디일까. 엘레오노라가 피렌체의 무더위 속에서 하루 종일 마음껏 뿌린 돈은 과연 얼마나 깨끗할까. 내가 선물로 받아 집으로 가져가는 이 물건들을 사기 위해 사용된 수표가 미켈레가 릴라의 입금을 지급하기 위햇 사용하는 수표와 다를 게 뭐가 있단 말인가.(507)
▶ 여성의 고독은 슬픈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름의 문화나 전통을 만들어낼 기회도 없이 그런 식으로 자기 인생에서 상대방을 쫓아내버리는 것은 아까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럴 때면 생각이 중간에서 멈추는 것 같았다. 그 생각은 매력적이지만 결함이 많아서 당장 확인이 필요하고 더 발전시켜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내 생각에 자신감도 믿음도 없었다. 그럴 때면 다시 릴라에게 전화해서 내 생각을 말하고 싶다는 욕에 사로잡혔다p. 535~536
신은 인간, 즉 'Ish'를 자신의 형상에 따라 창조하는데 이때 남성형과 여성형을 만들어냈다. 어떻게 만들어냈냐고? 신은 먼지 흙으로 'Ish'의 형태를 만든 다음 콧구멍으로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었다. 그런 다음 가공되지 않은 원자재 상태가 아니라 이미 형상을 갖추고 생명을 얻은 남성을 재료로 Isha'h, 즉 여성을 만든다. 신은 남성의 옆구리에서 여성을 취한 다음 즉시 살로 상처를 아물게 했다. 그렇기 때문에 Ish는 여성을 두고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는 다른 모든 창조물과는 달리 나와 다른 존재가 아니다. 그녀는 내 살의 살이며 내 뼈의 뼈다. 신께서 나로부터 만드신 것이다. 내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신 다음 그녀를 내 몸에서 뽑아내신 것이다. 나는 Ish이고 그녀는 Isha'h이다. 여자를 부르는 명칭에서부터 그녀가 신성한 영혼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담고 있는 나에게서 유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여자는 내 어근에 붙은 접미사일 뿐이며 오직 내 언어 속에서만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다." p.521~522
[1] 레누와 니노
< 정치적인 행동을 하는 교수에 대한 니노의 비판>
나는 니노 옆에 앉아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가끔씩 일부러 살짝 팔을 스쳤다. 천과 천이 스치는 것에 불과했지만 마음이 설겠다. 니노의 숫자 사랑은 여전했다. 니노는 이탈리아의 전체 대학생수를 언급하며 너무 많다고 했다. 그는 대학건물의 최대 수용인원과종신직 교수들의 실질 근무 시간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수많은 교수가 연구나 교육에 열중하지 않고 국회에 진출하거나 이 사회에 참석하거나 수익성 좋은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다른 직업을 병행한다고 했다.
-.................
"미안해. 기분이 좋지 않아서 그래. 당연히 당신과 결혼하고싶지."
나는 힘없이 말하고는 그의 손을 잡고 깍지를 꼈다. 피에트로는똑똑한 데다 놀랍도록 교양 있고 착한 사람이었다. 나 역시 그를 하꼈기에 그를 아프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피에트로의 손을삼고 그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만약 그날 밤 그가 식당에나타나지 않았다면 나는 니노를 유혹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히깨달았다.
스스로도 인정하기 힘든 사실이었다. 물론 피에트로에게 못할 짓이었다. 그는 그런 취급을 당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나는 아무런 후회 없이 기꺼이 니노와 관계를 가졌을 것이다. 어떻게해서는 그를 내게로 이끌었을 것이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에 이르는 그 오랜 세월과 이스키아 섬과 마르티리 광장의 구둣가게에 얽힌 수많은 추억과 함께.
릴라에 대한 니노의 말이 맘에 들지 않았고 그것 때문에 힘들었지만 니노와 사랑을 나을 것이다. 니노의 몸을 취하고 피에트로에게는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릴라에게는 이야기했을 것이다. 다 늙은 노인이 되고 난 후에, 릴라에게도 나에게도 모든 것이 부질없다고 느껴지는 때가 오면나는 그날 저녁의 일을 릴라에게 털어놓을 것이다. 타이밍은 모든일에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다. 만약 그날 밤 내가 니노와 사랑을 나누었더라도 그와의 관계는 하룻밤으로 끝났을 것이며, 니노는 다음날 아침 바로 나를 떠났을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니노를 알아왔지만 내게 그는 꿈같은 존재였다. 그를 내 곁에 영원히 붙잡아 놓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는 유년 시절에 내가 간절히 원했던 대상이었기에 나에게 그는 구체성이 결여된 추상적인 존재였다. 따라서 그와의 미래는 생각할 수도 없었다.
피에트로는 달랐다. 그는 현재의 인물이었다. 새로운 세계의 경계를 나타내는 커다란 바위였다. 그곳은 합리적인 이성의 세계이자 아이로타 집안에서 내려오는 규율의 지배를 받는 영토였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에 의미가 부여되었다. 위대한 이상과 명문가에 대한 중배와 원리원칙이 중요시되는 세계였다.
아이로타 집안의 영토에서 의례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예컨대 결혼도 반종교적인 투쟁의 일환이었다. 피에트로의 부모님은 종교 의식을 생략하고 혼인신고만 했다. 피에트로는 광범위한 종교 지식을 지녔지만 부모님의 선례를 따를 생각이었다. 오히려 종교를 잘알고 있기 때문에 성당에서 결혼할 생각이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피에트로는 성당에서 결혼을 하느니 나와 길혼하는 것을 포기하는 편을 택할 것이다. 세례에 대한 태도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피에트로는 세례를 받지 않았다. 마리아로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앞으로 우리 사이에 태어날 아이들도 세례를 받지 않게 할 작정이었다.
피에트로는 매사에 그런 식이었다. 종교 대신 집안에서 내려오는상위 규율에 따라 행동했기에 언제나 자신의 판단이 옳고 정의롭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성에 관해서는 신중한 편이었던 것 같았다. 나와 프랑코의 연애사를 알고 있었기에 적어도 내가 처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것이다. 하지만 피에트로는 한 번도 내 앞에서 그때 그 일을 언급하지 않았다. 나를 비난하거나 내게 가혹한 말을 하거나 비웃은 적이없었다. 나를 만나기 전에 다른 여자친구를 사귀었던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창녀를 찾을 사람은 아니었다. 피에트로가 다른 사내들과 여자에 대해 시시덕거리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평생단 1분도 그렇게 허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는 음란한 이야기를 싫어했다. 수다를 떠는 것도, 소리를 지르는 것도, 파티를 하는 것도 싫어했다. 시간 낭비 자체를 싫어했다.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했지만 식구들이 못마땅하게 생각하는데도 풍요함 가운데 금욕주의를 지향했다. 그는 책임감이 특별히 강한 사람이었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나에 대한 의무를 다할 사람이었다.
절대 나를 배신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를 잃고 싶지 않았다. 물론 나는 아무리 교육을 받아도 타고난 거친 성품을 고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내 본성이 피에트로의 엄격한 성격과는 너무 다르다는 사실도알고 있었다. 모든 것에 대한 기준이 명확한 피에트로의 세계를 내가 얼마나 감당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피에트로와 함께라면 기회주의자인 나의 아버지와 우악스러운어머니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는 니노에 대한 생각을 애써 떨쳐버렸다. 피에트로의 팔짱을 끼고 속삭였다.
"그래. 우리 빨리 결혼해. 집에서 떠나고 싶어. 운전면허도 따고 여행도 가고 싶어. 전화와 텔레비전도 가지고 싶어. 나는 평생 아무것도 가져본 적이 없어."
피에트로는 기분이 좋아져 웃으며 나의 두서없는 요구사항에 다좋다고 했다. 숙소에 거의 다 왔을 때 피에트로가 걸음을 멈추고 쉰목소리로 속삭였다.
"자고 가도 돼?"
피에트로의 말에 나는 그날 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깜짝 놀랐다. 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동안 나는 수차례에걸쳐 그와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마음을 내비쳐 왔다. 그럴 때마다뒤로 빼는 것은 피에트로였다. 하지만 그날 밤만은 피에트로와 관계를 가지고 싶지 않았다. 첫 독자 토론을 엉망으로 마치고 니노까지만난 마당에 밀라노 호텔에서 피에트로와 관계를 가지고 싶지는 않았다.
"오랫동안 기다려왔는데 조금만 더 기다리자."
내가 말했다. 나는 어두운 길모퉁이에서 그에게 키스했다. 그러고는 호텔 문턱에 서서 가리발디 가를 따라 멀어져 가는 그의 모습을바라보았다. 피에트로는 가끔씩 뒤를 돌아 수줍게 내게 손을 흔들어보였다. 부스스한 머리에 평발 때문에 어설픈 걸음으로 멀어져 가는그의 모습에 마음이 애틋해졌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