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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 신비주의와 불교>김은규 성공회대학교 구약학 교수

by 책이랑 2021. 6. 10.

 

목차

     

    [1] 하시디즘[ Hasidism ]

    이 말은 헤브라이어의 hasid(경건한 자)에서 유래하며, 널리 유대종교사상에 나타난 <율법>의 내면성을 존중하는 경건주의 운동을 가리키고 있는데, 특히 좁은 의미로는 18세기 초 폴란드나 우크라이나의 유대인 대중 사이에 널리 퍼진 성속일여의 신앙을 주장하는 종교적 혁신운동을 말한다. 그 창시자는 <좋은 이름의 주인(Baal Shem Tov)>이라는 이스라엘 벤 엘리에제르 (Istael ben Eliezer, 1698~1760)이다. 이 운동은 정통파로부터는 이단시되고, 또한 지식계급에서는 미신적인 것으로서 경시되었는데, 부버에 의해서 다시 그 깊은 종교적 의미가 발견되어서 재평가되고 있다(원래 그의 하시디즘 이해는 너무나 주관적이라고 비판되는 면도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하시디즘과 선()과의 사이에 공통의 유사점이 있다는 점인데, 본질적으로는 전혀 다른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하시디즘 [Hasidism] (종교학대사전, 1998. 8. 20.)

    [2]<유대교 신비주의와 불교>

    김은규 성공회대학교 구약학 교수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966964 

     

    유대교 신비주의와 불교

    고대로부터 유대인들은 지정학적으로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제국들에 둘러싸여 침략과 전쟁을 겪었다. 기원전 6세기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이들은 흩어진 유대인 (Diaspora Jews)로

    www.kci.go.kr

    김용표는 유대교 신비주의의 최고 정점에 있는 ‘아인 소프’에 대해 “모든 존재에 편만한 신의 偏在性과 現存性을 믿는데서 시작하여, 정신 집중 과 자아의식의 無化와 消滅을 통하여 궁극적으로는 무한자(Ein-sof)와의 만남을 지향하는 종교”36)로 규정한다.

    그는 이어 선불교와 유대교 신비 주의의 철학적 배경에 대하여, “궁극적 실재와 궁극적 체험의 不二性이라 는 특성이 있는데, 선불교의 절대무와 유대교 신비주의의 무한자(Ein-sof) 는 궁극적인 것의 불이성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모두 우주적 활동과 정”37)으로 보았다.

    사변적 카발리즘은 신이 만물에 내재해 있다는 스 피노자의 범신론에 영향을 미쳤다.

    36) 김용표, “제2장 선불교와 하시딕 신비주의에 있어서 궁극적 만남의 의미” 󰡔불교와 종교 철학󰡕 (동국대학교 출판부, 2002), p.48.

     

    Ⅴ. 근세 시대의 하시디즘(Hasidism)

    1. 하시디즘의 기원과 배경

    히브리어로 ‘하시드’(hasid)는 경건한 사람이란 뜻이다. 기원전 6세기 이스라엘이 바벨론 제국에 의해 멸망당한 후, 많은 수가 포로로 잡혀갔는데, 그 이후, 유대교에서는 ‘경건한 사람들’(Hasidim)이란 이름을 가진 공동체가 거듭 형성되었다. 기원전 2세기경 로마제국에 저항하여 마카비혁명을 일으킬 때는 언제나 충실하고, 가르침을 위해서 싸우는 민중을 가
    리켰고, 18세기까지 메시아 왕국을 위해서 1500명이 고행 속에 성지 순례를 하는 사람까지도 ‘하시딤’이라 불렀다.58)
    그 후 하시디즘은 중세의 카발라가 꽃을 피운 것에 근거를 갖고, 18세기와 19세기에 동유럽에 거주한 유대인에 의하여 확산되었는데, 신적 체험이 기존의 특권층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기쁨과 기도로 못 배운 대중들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일종의 봉기였다.59) 이 하시디즘 신비주의자들은 학자들의 궤변적 논쟁으로는 신의 존재 앞에 우리를 데리고 갈
    수 없으며, 지식을 쌓으면 쌓을수록 경건해지기가 어렵고, 깊이가 없고, 마술적인 사람들에게는 보잘 것 없는 마술로 그들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다고 비판했다.60) 즉 하시딤은 과거 카발리즘의 한계를 비판하며, 일상의 경건한 삶 속에서 신의 모습을 찾으려 했다. 이것이 하시디즘(Hasidism) 신비주의의 시초가 되었다. 즉 ‘신은 특권계층의 독점물이 아니라, 일반 사람들의 것이다’라는 민주주의적 사상을 표상했다. 하시디즘은 전통적 유대 율법주의자에 의한 가혹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동유럽의유대인에게 급진적으로 파급되었다.
    이러한 점은 신라시대 불교가 귀족화하고, 승려계급이 특권의식으로 왕과 상류층을 위한 종교로 변했을 때, 원효가 민중 속으로 파고들며, 대승불교의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다 준 것을 상기시킨다. 김용표는 “선불교도 세속과 열반을 둘로 보지 않는 대승불교의 정신을 체현하려 한다. 하시디즘도 성과 속의 영역을 근본적으로 분리하여 보지 않는다. 이것은 현세적 삶의 중요성과 세계와 인간이 본래 성스러움과 밝음으로 가득하다는 긍정의 인생관이다.”라고 비교한다.61

     

    58) Martin Buber, Hasidism and Modern Man (New York: Harper Torchbooks, 1958), 남정길 역, 󰡔하시디즘과 현대인 : 유대교의 경건주의󰡕 (현대사상사, 1994), p.43.

     

    유대교 신비주의에서 신적인 '아인 소프'의 세계는 ‘끝이 없는’ 또 다른 신을 말한다. 이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절대 무’(absolute nothingness)의 세계를 말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하겠다. 그리고 땅의 세계는 ‘무’(無, there is nothing else)로 여겼다. 유대교 신비주의는 황홀경의 체험을 요구 하는데, 이 역시도 단순한 체험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적 신과의 합일을 경험하면서, 자기의 명상과 수행을 통해 지혜와 겸손으로 내 면을 성찰하며, 세상에서 긍정적인 가치관과 구원을 경험한다.

    [3] 마르크 샤갈 - 하시디즘 : 네이버 블로그

    그는 남녀 간의 사랑뿐만 아니라 20세기 가장 위대한 원초적 유대 미술가로 불릴 정도로 유대 민족에 대한 사랑이 강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샤갈은 1887년 벨라루스공화국의 비테프스크에서 유대인 부부의 아홉 자녀 중 맏이로 태어났다. 본명은 모이셰 세갈(Moyshe Shagal)이었는데 후에 프랑스에서 마르크 샤갈로 개명을 하였다.
     
    비테프스크는 러시아 서부의 유대인 거주 지역으로 전체주의 정서가 강했던 러시아에서 유대인들을 별도로 격리해 놓은 마을이었다.

    신의 신성한 불꽃이 세상 만물에 스며들었고 인간만이 사물 안의 불꽃을 해방시켜 원래 신에게 되돌릴 수 있다고 하는데 율법의 내면성을 존중하는 경건주의 운동이 선()과의 사이에 유사점이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다른 내용이다.

     

    [4]  Ⅱ. 유대 신비전통과 바알 쉠 토브

    https://s-space.snu.ac.kr/bitstream/10371/142413/1/000000150915.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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