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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동아리/보늬샘독서동아리

이브의 세 딸(2023.11.18)

by 책이랑 2023. 11. 19.

11월 18일 일요일, 보늬샘 11월 모임을 했습니다. 비온 뒤라 공기가 맑았는데, 그만큼 춥기도 한 날씨였습니다. 여느때처럼 반장님이 예약해서 우리가 앉던 자리에 있었어요. 그러다가 그공간에 있는 테라스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난 계단을 내려가면 나오는 '별방'에서 토론을 하게 되었습니다.

건물앞쪽보다 건물 뒤쪽이 더 낮아서 계단을 하나 내려갔지만  지하가 아닌 1층이었고요, 창도 있고 난방도 잘되어서 토론하기에는 더 좋은 공간이었어요. 그 덕분에 더 깊숙한 이야기들이 오고 간 것 같습니다. 

토론을 마치고 성곡미술관쪽으로 와서 <시카노 이에>라는 일본 가정식집에서 점심을 먹었어요. 점심시간에는 줄을 서서 먹을 것 같은데 우리는 점심을 조금 비켜난 시간이라 바로 앉을수 있었고, 귀엽고 깔끔하게 세팅된 밥상을 받아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인터뷰에 따르면 엘리프 샤팍은 젊은 이혼녀이자 미혼모였던 어머니 아래서 태어났고 터키의 앙카라로 이주했는데, 어머니가 다시 대학에 가고 일을 하는 동안 10살때까지는 외할머니가 키워주었다고 하네요. 이런 성장배경으로 인해 자신은 터키의 문화와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내부자이지만 일정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관찰할 수 있는 외부자의 시선을 가지는 입장이었다고 해요.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전쟁을 겪고, 군사독재를 겪었으며,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며 경제발전을 했기에 읽으면서 전혀 낯설지 않은 상황이 많았습니다. 한 가족 구성원안에서 신념이나 종교가 극단적으로 다른 것, 독재정권의  고문 등으로 인해 한 가족의 삶이 처참하게 파괴되는 것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저자가 크게 우려하는 것 중의 하나인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이 줄어드는 현상은 전쟁을 겪지 않은 인구가 많아진 전세계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일 것 같습니다.

책에 대해 이야기 나눌 때 김O 경 선생님께서 나누어 보고 싶은 질문이 있다고 하시면서 '이 책에 나오는 것처럼 서로 매우 다른 입장,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잘 지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런데 어제 같이 보았던 전시소개글에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될수 있는 구절이 보입니다.

"휴대폰만 있으면 세계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고, 쉽게 어디에라도 정착할 수 있는 새로운 디지털 노마드 세상에서 디지털 세상에 걸맞는 유목민 정체성을 가진 세대에게 너와 나, 빨강과 파랑이라는 구분은 이미 무의미한 지 모른다. 다만 무지에서 오는 편견을 여전히 답습하고 있다면 이번 전시가 나와 다른 타인, 우리와 다른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고 사고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다양한 색이 어우러져 의미를 가질 수 있듯이, 다른 듯 닮은 우리가 조화를 이루며 서로의 역할과 기능을 발휘할 수 있기를, 나의 빨강이 너의 파랑이 되고 너의 파랑이 나의 빨강도 기꺼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점점더 분리되어 살수 없어진 세계에서는 다른 점 보다는, 공통점에 주목을 해야하고 나와 다른 이가 어떤 고유의 역할과 기능을 하고 있는지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는 말 같습니다. 종교의 부정적인 기능이 많지만 고난을 겪는 사람들은 거기에서 자기에게 필요한 위안과 위로를 얻는다라는 말도 있네요. 

토론전에는 "묘사가 유려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인정, 그런데 그거 말고, 어떤 점이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요 토론 후에는 지금의 이슬람 문화권,  튀르키에의 사회, 혼란한 현대사회를 잘 형성화했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주게 되었습니다.

오늘 모임이 참 즐거웠어서 12월도 오프라인으로 한번 해보자라는 말씀을 나누면서, 아쉬운 마음을 안고 헤어져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목차

     

    [1]  책소개

    이브의 세 딸 - 10점
    엘리프 샤팍 지음, 오은경 옮김/(주)태일소담출판사
    신앙, 정체성, 섹슈얼리티, 세계의 상태, 개인의 역할, 튀르키예의 사회적 혼란, 정치, 종교 문제, 여성 인권 등 다양한 이슈들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장편 소설이다.  동양과 서양 사이에 위치하여 정치적, 문화적으로 혼란스러운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인 페리는 종교에 회의적인 아빠와 독실한 이슬람교 신자인 엄마의 아래에서 혼란스러운 유년 시절을 보낸다. 이로 인해 페리는 항상 중간에 끼인 채 수동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작품에는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주인공 페리뿐만 아니라, 종교를 극단적으로 비판하는 무신론자이며 당당하고 주체적인 페미니스트 이란인인 쉬린,  독실한 이슬람교 신자로 히잡(Hijab)을 쓰는 독실한 이집트계 미국인이자,  사려 깊은 성격의 모나가 등장한다. 이들은 작품에서 각각 ‘한 명의 죄인, 한 명의 신자, 한 명의 방황하는 영혼’으로 묘사된다. 

     

    [2] 엘리프 샤팍 인터뷰

     

    Q: 소설 속 페리의 초기 공격부터 부유한 사업가와의 저녁 식사를 통해 가부장제가 크게 드러납니다. 현상 유지에 도전하는 데 소설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나는 깊은 가부장제, 성차별주의, 동성애 혐오 사회에 사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고 있습니다. 저는 미혼모이자 젊은 이혼녀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아주 어릴 때부터 이것을 배워야 했습니다. 내가 10살이 될 때까지 할머니는 나를 돌봐주셨고, 어머니는 대학에 진학한 뒤 직장에 나가셨다.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이웃 사람들의 눈에는 우리가 “이상”했습니다. 아마도 제가 프랑스에서 태어났고 어머니가 저를 터키 앙카라로 데리고 가셨는데, 그 동네는 매우 보수적이었습니다. 나는 항상 "아웃사이더-인사이더"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문화와 사람을 이해하는 내부인도 있지만, 인지적인 거리에서 사물을 관찰하는 외부인도 충분합니다. 대학 시절에 저는 젠더 및 여성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이 분야에서 수년간 가르쳤습니다. 나에게는 페미니즘의 이론과 실천 모두 매우 중요하다.

     

    Q: 주인공 페리에 대해 당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열정적인 신자이고 다른 사람들은 열정적인 불신자였지만, 그녀는 항상 그 사이에 갇혀 있었습니다." 신앙의 회색지대를 그토록 깊이 탐구하는 것이 왜 중요하다고 느꼈나요?

    나를 흥분시키는 곳은 회색지대인데, 그곳이 “당황하는 사람들”에게 딱 맞는 곳이기 때문이다. 명백히 종교적인 사람들의 문제는 종종 “의심”을 없애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명백한 무신론자들의 문제는 그들이 '믿음'을 없애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를 흥분시키는 것은 그것도 아니고 이것이 아니다. 나는 믿음과 의심의 춤, 왈츠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 대화할 수 있나요? 그들은 서로 도전할 수 있나요? 그게 훨씬 더 흥미롭습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사물에 의문을 제기하고 인생을 매일 계속 배우는 지속적인 여정으로 보는 불가지론자와 이단 신비주의자에 더 가깝습니다

     

    Q: 어느 시점에서 디너파티 대화는 민주주의의 '럭셔리'로 바뀌는데, 이는 날이 갈수록 더욱 예민하게 느껴지는 구절입니다. 이제 끝이 다가오고 있나요?

    설 전반에 걸친 만찬회 대화는 책에서 가장 "현실적인" 부분입니다. 그것은 제가 이스탄불에서 목격한 대화, 제 마음을 아프게 한 대화에 의해 직접적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심지어 교육을 받고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조차도 민주주의의 '럭셔리'에 대해, 어떻게 민주주의가 서구의 발명품인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의 상실은 엄청난 문제이며 이는 터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최근 미국에서 실시한 조사에서 밀레니얼 세대의 3분의 1만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답했습니다. 60세 이상에서는 이 비율이 70%까지 올라갔습니다. 즉, 전쟁, 분쟁, 징고주의, 군국주의 시대에 살았던 느낌을 기억하거나 경험한 사람들이 민주주의에 대해 더 잘 이해한다는 의미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https://www.vanityfair.com/london/2019/02/ten-questions-with-elif-shafak-three-daughters-of-eve

     

    Ten Questions with Elif Shafak

    The author of Three Daughters of Eve about writing between two languages, and the power of the novel to spark change.

    www.vanityfair.com

     

    [3] 엘리프 샤팍  TED강연

    "포퓰리즘을 좇는 선동가들로부터, 우리는 민주주의의 절실한 필요성을 배울 겁니다. 고립주의자들로부터 전 세계적인 연대의 필요성을 배우고, 민족주의를 추구하는 이들로부터, 우리는 세계시민주의의 아름다움을 배울 겁니다." 터키 출신의 소설가 엘리프 샤팍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녀는 다양성의 손실이 가져온 비극을 눈앞에서 마주했고, 권위주의에 맞설 때 다수의 힘이 얼마나 혁명적인가를 알고 있습니다. 그녀 자신의 경험이 담긴, 열정으로 가득찬 이 강연에서 그녀는 정치에서든, 감정에서든, 정체성에서든 간단한 이분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녀는 이렇게 강조합니다. "그 누구도 상황이 복잡해질 거란 두려움으로 침묵해선 안됩니다."

     

     
    브렉시트 이후의 영국 또는 트럼프 선거 이후의 미국에서 온 동료 작가들을 위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죠. (웃음) 그렇지만 잠시 농담은 접어두겠습니다. 지금 세계는 전례없는 어려움에 맞닥뜨렸고 이는 감정을 동반한 반작용을 가져왔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좀 더 느리게 가고 싶어 하고 낯선 것들에 둘러싸였을 때 보다 익숙한 것을 찾습니다. 그리고 일이 너무 복잡해질 때면사람들은 보다 단순한 걸 찾죠. 

    지금 우린 매우 위험한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바로 이 시점에서 선동가들이 등장하기 때문이죠. 선동가들은 집단 감성의 원리를 이해하고 그로부터 자신이 어떻게 이익을 챙길 수 있는가를 압니다. 선동가는 우리 모두가 특정한 집단에 속하고 동일함에 둘러싸일 때 더 안전할 거라고 말하죠. 선동가들은 매우 다양하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유럽 어딘가에서 소규모 정당을 이끄는 별난 정치인의 모습이거나 또는 독단적인 교리와 증오를 전파하는 이슬람 극단주의 종교 지도자이거나 어딘가에서 나치즘을 숭배하는 백인 우월주의 연설가일 수도 있죠.


    이들은 언뜻 보기에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제 생각에 이들은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서로를 필요로 한다고 봅니다. 전 세계적으로 선동가들이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실천을 이끌어내는가를 살펴보면 전 그들에게 한 가지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다양성을 극도로 싫어한다는 것이죠. 그들은 다양성에는 대처하지 못합니다. 아도르노는 이렇게 말하곤 했죠. "애매모호함에 대해 너그럽지 못하다면 그것이야말로 권위주의적 특성의 상징이다." 하지만 저는 이런 의문이 듭니다. 만약 그 똑같은 상징이 즉, 애매함에 대해 너그럽지 못한 특성이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요? 어디에 눈을 돌리든, 미묘한 뉘앙스는 사라져가고 TV에서는 무언가에 반대하는 발언자가 찬성하는 발언자와 논쟁을 벌이곤 합니다. 그런 건 시청률도 높죠. 서로에게 소리를 지를수록 더 재밌어하죠.


    수준높은 지식인들로 가득해야 할 학계에서도 학자들 간에 무신론과 유신론의 대결이 펼쳐지는 것을 볼 수 있죠. 하지만 그건 진정한 지적 교류가 아닙니다. 그저 서로 옳다고 믿는 이들의 충돌일 뿐이죠. 흑백으로 나뉘는 대립 구도는 곳곳에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린 지금 서서히, 그리고 체계적으로 우리의 복잡해질 권리를 부정당하고 있습니다. 이스탄불, 베를린, 니스, 파리, 브뤼셀부터 다카, 바그다드, 바르셀로나까지 우리는 끔찍한 테러 공격들을 연이어 보아왔습니다. 이에 대한 슬픔이나 테러범에 대한 반감을 드러낼 때면 온갖 종류의 반응과 SNS 메시지를 접하게 됩니다. 그 중 한 가지는 너무 널리 퍼져있기 때문에

    다소 충격적이기도 하죠. 그것은 바로, 왜 그들에게만 연민을 느끼냐는 겁니다. "왜 그들에게만 연민을 느끼죠?" "예멘이나 시리아의 민간인들에게는 왜 그렇지 않나요?" 전 이런 메시지를 퍼뜨리는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연민을 느끼고 함께 연대할 수 있는 대상은 테러 공격이나 폭력의 모든 피해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중동이든, 유럽이든, 아시아든, 미국이든, 어디든 상관없이 모든 피해자들을 동등하게 바라봅니다. 우리가 단지 하나의 고통, 하나의 장소만을 골라야 하는 것이 아님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 또한 민족주의의 영향이라 봅니다. 우리의 사고방식을 좁히는 것은 물론 우리의 마음마저 좁혀버려 다른 사람의 고통에 무감각해지게 만들었죠. 더 슬픈 사실은, 우리가 항상 이렇진 않았단 겁니다. 전 터키에서 아이들을 위한 책을 낸 적이 있는데요. 출판 당시에 전 다양한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여러 초등학교를 방문하며 터키의 어린아이들을 살펴볼 기회를 얻었죠. 그들이 지닌 공감, 상상력 그리고 대담함은 항상 놀라웠습니다. 아이들은 이미 그 나이에 세계시민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그 어떤 민족주의자보다도 말이죠. 그리고 그들에게 질문을 던질 때 많은 아이들이 시인이나 작가가 되고 싶어하고 여자아이들도 남자아이들 이상으로 자신감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매우 인상깊었죠. 하지만 그 다음에 고등학교를 가보면 모든 게 바뀌어 있었습니다. 작가가 되겠다는 아이도 없고 소설가가 되겠다는 아이도 없었습니다. 여자애들은 쑥쓰러워하고, 조심스러워졌으며 좀 더 많이 망설였고,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를 꺼려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이죠. 가족이, 학교가, 사회가 그들의 고유한 정체성을 지우도록 가르쳤습니다. 전 동서양을 막론하고 우리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속에서, 그리고 우리 내면에서도요. 터키 출신인 저는 다양성을 잃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손실인지 압니다. 오늘 날, 제 모국은 많은 기자들을 투옥시킨 국가가 되어버렸습니다. 중국의 슬픈 기록마저도 제칠 정도로요. 저는 터키에서 일어난 일들이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도 일어날 수 있죠. 완전히 안정된 단단한 국가가 하나의 환상이었던 것처럼 단일한 정체성 또한 착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의 내면에는 다양한 목소리들이 존재하니까요. 이란 출신의 페르시아 시인인 하피즈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의 영혼 속에는 모든 재료가 들어있습니다. 당신의 존재 자체를 기쁨으로 만들 재료들입니다.


    당신은 그저 그 재료를 잘 버무리기만 하면 됩니다." 우린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전 이스탄불 사람이지만 발칸 반도, 에게해 지역, 지중해 지역에도 애착을 갖고 있습니다. 중동과 레반트 지역에도요. 전 출생에 의해, 그리고 선택에 의해 유럽인으로 살고 있고 이러한 가치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런던 사람이 되었죠. 전 제 자신을 글로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또 세계시민이자 유랑자이며 순회 강연을 다니는 이야기꾼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전 우리 모두가 그렇듯 여러 곳에 애착을 느낍니다. 그리고 다양한 애착은 다양한 이야기들을 의미하죠. 작가로서 우리는 모두 이야기를 좇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 모두 침묵에도 관심을 갖는다고 봅니다. 우리가 이야기할 수 없는 것들 즉, 정치적 금기라든가 문화적 금기말이죠. 우리는 우리 자신의 침묵에도 관심을 가지죠. 저는 지금까지 늘 강경하게 말하고 글로 표현하며 싸워왔습니다. 소수자들의 인권, 여성인권 그리고 성적 소수자의 인권을 위해서요. 하지만 이번 TED 강연을 준비하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었죠. 전 이제까지 공개적으로 저 자신이 양성애자임을 밝힐 만한 용기가 없었다는 겁니다. 뒤따르는 갖은 비방과 낙인, 그리고 조롱과 증오를 견뎌내기가 너무 두려웠기 때문이죠.


    하지만 물론, 누구도 복잡한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침묵해선 안됩니다. (박수) 전 이제까지 여러 번 불안함을 겪어 왔고 감정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알며 이곳에서 감정의 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된 건 감정에도 결국 한계가 없지는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감정에도 한계가 있었던 거죠. 마치 감정의 전환점 또는 한계점 같은 순간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계속 두려워하다 지치는 순간 계속 불안해하다 지치는 순간이 오는 거죠. 어쩌면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라 국가에도 각각의 한계점이 존재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제 자신의 감정보다도 더 강한 것은 바로 성별이나 정체성을 인식하는 것뿐만 아니라 삶 그 자체가 매우 유동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선동가들은 우리를 각각의 집단으로 나누려 들지만 우리는 모두 국경을 초월한 유대관계에 있습니다. 그들은 확고함을 주장하지만 우린 우리 삶이 마법과 애매모호함으로 가득 차 있음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분법적 사고 방식을 선동하지만 우리는 그보다 훨씬 더 섬세합니다.


    그럼 우리의 할 일은 무엇일까요? 기본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초부터 다시 배워야 해요. 레바논의 시인, 칼릴 지브란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수다스러운 이들에게서 침묵을 배웠고 편협한 이들에게서 관용을 배웠으며 선하지 않은 이들에게서 선행을 배웠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더 없이 좋은 좌우명입니다.


    포퓰리즘을 좇는 선동가들로부터 민주주의의 필요성을 배우고 고립주의자들로부터 전지구적인 연대의 필요성을 배우며 우리를 특정 집단으로 규정지으려 하는 이들로부터는 세계시민주의와 다양성의 아름다움을 배울 것입니다. 끝으로, 한 가지 단어를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그 단어의 맛을요. 'yurt'라는 말은 터키어로 '모국'을 뜻합니다. 고향을 말하죠.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와 동시에 유목 민족이 사용하던 이동식 텐트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전 그 조합이 좋습니다. 고향이 단지 한 곳에만 존재해야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해주기 때문이죠. 어디든 우리 마음에 품고 다닐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작가와 이야기꾼들에게 있어 진정한 고향은 결국 딱 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야기의 나라"입니다. 그리고 이 단어의 맛은 바로 '자유'의 맛과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4] 전통과 현대화의 갈등으로 점철된 튀르키예 현대사 

    -출처:월간조선

    https://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D&nNewsNumb=202311100045

     

    전통과 현대화의 갈등으로 점철된 튀르키예 현대사

    에르도안, 아타튀르크의 반대자가 아니라, 그 한계 극복한 인물로 받아들여져

    monthly.chosun.com

     


     
    우리가 토론해왔던 공간
     
    별방- 테라스 문을 열고 나가면 있는 단독방
    별방에서 즐겁고도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어요.

     

    토론후

    (1) 점심- 성곡미술관 앞쪽 <시카노 이에>

    https://deliciousseoul.tistory.com/120

     

    광화문 일본 가정식 시카노이에, 혼밥 추천 맛집

    광화문에 위치한 일본 가정식 전문점 시카노이에를 소개해 드립니다. 아기자기한 분위기에서 깔끔한 일본 가정식을 먹을 수 있는 곳으로 실내가 협소하여 웨이팅이 존재하긴 하지만 기다릴 만

    deliciousseoul.tistory.com

     

     

    (2)전시관람 - <성곡미술관 나의 빨강 너의 파랑 전>

    https://www.news1.kr/articles/?5232216

     

    요르단 현대미술 서울 상륙…'나의 빨강 너의 파랑-경계를 넘어'展

    (서울=뉴스1) 김일창 기자 | 요르단의 현대 미술이 서울에 왔다.성곡미술관은 오는 30일까지 1관에서 한국-요르단 공동 협업 전시인 '나의 빨강 너의 파랑-경계를 넘어'(My Red Your Blue ...

    www.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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