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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같은 이야기를 거짓말로 만들자.

by 책이랑 2011. 5. 9.

 

거짓말 같은 이야기 -
강경수

네버랜드 우리 걸작 그림책 시리즈 32권. 2011 볼로냐 국제 어린이 도서전 라가치 상 수상작. 기본적 인권을 누리지 못하고 지구촌 곳곳에서 힘겨운 삶을 이어 나가고 있는 어린이들의 현실을 담백하게 전하면서 어린이 인권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그림책이다. 어린이들의 참혹한 현실을 짧은 글과 간결한 그림으로 전해 아이들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반갑게 인사하는 세계 각국 어린이들의 모습을 뒤로하고 책장을 넘기면, 아이들이 처한 현실의 참담함을 전하는 간결하고 담담한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이러한 극적 대비는 반복과 점층적 전개를 통해 감동과 여운을 배가시킨다. 책을 통해 우리가 다른 모습을 지니고 다른 공간에 살고 있더라도, 결국 우리 모두 지구촌이라는 작은 마을에 함께 살고 있는 ‘지구촌 가족’이라는 사실을 전한다.

 

첫 직장에서 만난 여자 영어강사분이 있었다. 미국인이라 나와 별 관련없는 먼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어떤 친구보다 더 가깝게 느껴졌던 샌.국적은 미국인이지만 인도사람이었던 샌은 나와 10살 차이가 났지만 대화를 할 때면 그때까지의 어떤 친구보다도 더 마음이 잘 통했다. 같이 영어회화를 했던 회사선배가 놀랄만큼 감성이 비슷해서 영어가 능숙하지 않아도 통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었다. 그리고 많이 시간이 지난 후, 샌은 진지하게 "미스리, 나랑 같이 세계일주를 할래요?" 하고 제안을 하기도 했다. 아직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라 머뭇거리다가 이루어지지는 못했지만 서로 다른 성장배경을 넘어 교감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 50이 넘었을 샌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내가 늦게 가진 둘째를 순산하기 위해 요가수련을 할 때 샌은 무얼하고 있을까. 또 지구에는 샌말고 또 아직 나랑 만나지 못했을 뿐, 샌과 나처럼 금방 친구가 될 수 있을 어딘가에 살고 있는 누군가도 살고 있을 텐데...그럼 그 사람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그런데 '거짓말 같은 이야기'  이 책에서는 내가 요가수련을 하고 있을때, 또 지금 대한민국에 살고, 2학년이고, 병원에 입원한 경험 후에 의사가 되고 싶다는 내아이가 학교에서 공부하고 운동장을 뛰고 있을 때 세계의 다른 아이들은 뭘 하고 있을지를 말해준다. 키르기스스탄에 사는 하산은 배고픈 동생을 위해 갱도에서 14시간을 지낼 것이고, 루마니아의 엘레나는 개한마리와 지하맨홀에서 3년째 지내고 있고 , 콩고의 칼라미는 전쟁의 충격으로 정신병을 앓고 있다고 알려준다.

 

 

사실 이런 상황은 남의 일이 아니다. 전쟁을 겪었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배고픔을 겪었던 우리나라에서 5,60년 전에 생생히 겪었던 일이다. 하지만 지금 부자가 된 대한민국에 사는 나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사실은 이 책의 내용이 생소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책의 내용을 충격적으로 느끼는 것은 실제의 현실을 돌아봄 없이 어린이라면 누구라도 내 아이처럼 "맑고 밝게"자라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잡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어린이책에서 어린이들이 겪는 문제로 등장하는 것들은 학교가기 싫다거나, 엄마, 친구와의 트러블이 있다거나 하는 정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진짜 현실의 많은 어린이들이  감당하고 있는 굶주림, 돌봐줄 누군가가 아무도 없이 오히려 누구를 책임지는 가장, "작은 어른"으로서 노동과 전쟁에 동원되는 처지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기에 이 문제를 직설적으로 다룬 이 책이 충격인것 같다.

 

 

사실 마음이 잘 통했던 영어선생님 샌도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렸었다고 했다.인도를 탈출하다시피하며 빠져나왔었는데, 그때 몰래 신발바닥에 금을 깔고 나올만큼 부자였지만 아버지는 엄마와 샌의 언니들을 자주 때렸다고 한다.인도는 아버지가 아이를 때리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보는 가부장적인 전통이 강하기 때문에 당연한 일로 여겨졌다고 한다. 하지만 샌은 어느날 정말로 죽기를 각오하고 아버지를 똑바로 쳐다보며 "앞으로 당신이 나를 때리면 가만있지 않겠어요, 그런일이 있다면 나는 당신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겠어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후, 다른 형제는 매를 계속 맞았어도 아버지는 자신을 때리지 않았다고 한다.그렇게 잘사는 나라의 아이이던 못사는 아이의 나라이던 어린시절은 마냥 밝고 행복하지만은 않다.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학대 받는 아이들을 아직도 많고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도 그런 어린이들은 많이 있다.

 

 

그러면 왜 아이는 이런 책을 읽어야 할까. 맑고 밝은 것만 보게하면 안될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 책이 우리의 '관념 속의 어린이'에 대한 틀을 깨고 현실속의 어린이의 처지를 보자고 말하는 것처럼 어린이가 '맑고 밝은 것'만을 봐야 한다는 것 역시 올바른 어린이관은 아닌 것 같다. 그런 생각은 예를들어 14세까지는 좋은 것만 알려주고 혹독한 현실은 수용할 능력이 생긴 후에 알게 해도 된다는 그런 생각 또한 어린이에 대한 올바른 견해는 아닌 것 같다. 어린이도 현실을 알 능력이 있고 또 알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쓰여 있기에 이 책이 어린이책의 노벨상이라고 불린다는 볼로냐 라가치상을 받았을 것이다.

 

 

그렇다. 아이가 자신의 권리,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권리를 지켜나갈 수 있으려면 어릴 때부터 ‘인권’을 자연스럽게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책은 기본적 인권을 누리지 못하는 어린이들의 현실을 전하면서 더 넓은 세상을 보게 하고, 이 거짓말을 정말로 거짓말로 만들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할지 생각하게 한다. 자신을 소셜 디자이너로 불러달라고 하는 박원순 변호사는 책에서 가난했지만 굶어죽는 이웃이 한명도 없었던 고향마을을 자랑스럽게 이야기 한다. 최소한 우리 이웃이 굶어서 죽어서는 안된다는 원칙으로 십시일반으로 나누는 공동체의식이 있었기에 고향은 가난한 마을이었지만 굶어죽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좋은 마을이었다고 한다. 미국과 미안마에 사는 사람의 일상을 내곁에 있는 사람의 일상처럼 동시에 느끼고 사는 정말 지구촌 시대이다. 이책은 이렇게 전세계인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같이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좋은 지구촌 마을을 만드는데 앞장설 수 있는 어린이와 어른을 만드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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