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저는 좀 있으면 근무지인 대구로 출발할 남편을 집에 두고 7살 지원이의 손을 잡고 동문연주회 보러 돈화문 국악당에 갔어요. "뭐, 남편은 다음 주에도 오니까." 라고 생각하면서요. ㅎㅎ 높다란 창덕궁 돈화문 건너편에 돈화문국악당이 여전히 다소곳하게 앉아 있었어요. 공연장에 가면 건물에 주눅들게 마련인데, 돈화문 국앙당은 그런 위화감이 하나도 안들고 만만해서 좋습니다. 친한 친구집에 가는 것 같아요.
공연장에 들어가 맨 뒷자리에 앉은지 얼마 안되어 불이 꺼지고 연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처음 곡은 수제천이었습니다. 한국음악의 대표적인 곡이라고, 프랑스에서 열린 제1회 국제민속음악제에서 1등상을 받았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부끄럽게도 수제천은 처음 들었어요. 아쟁의 선율이 낮게 깔리면서, 대나무로 만든 악기에서 나는 것 같지 않은, 힘차게 쭉 뻗는 피리소리가 나오고, 대금소리 그리고 대금과 피리소리 위에서 춤을 추는 것 같은 소금소리, 그리고 가야금, 해금, 거문고. 장구와 좌고. 이 곡이 한국음악의 진수라고 하더니 정말 그런가보다 라는 생각이 났어요. 언제 시작되었는지 언제 끝났는지. 모르는 사이에 수제천은 끝이 났어요.
그리고 수룡음이 연주되었어요. 생황과 단소의 이중주인 수룡음. 사회자인 박선옥 후배가 설명해 준대로 국악기중 유일하게 화음을 만든다는 생황소리 멋있었구요, 생황의 화음에 다시 단소소리가 쌓여서 나는 소리는 이 전에 들었던 수제천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주었습니다. 14기 동기인 안미정 선배님과 최연식 선배님이었어요.뒷풀이 때, 서지혜 후배가 말한 대로 연주와 함께 연주를 하기까지의 과정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고, 동기끼리의 합주라 더 좋아 보였어요.
그 다음으로 영산화상중 하현도드리, 염불도드리, 타령을 들으니 , 수제천과 수룡음을 듣고 깨끗해졌던 마음에 활기가 생겼고, 이어서 아리랑이 연주되었습니다. 아리랑,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 상주아리랑, 강원도 아리랑. 7살 지원이는 진도아리랑만 아는 모양인지, 옆에서 다른 노래는 아리랑이 아닌것 같다고 자꾸 그러더라구요. 아리랑 연주를 같이 하다가, 돌아가면서 한악기가 한곡씩 연주를 한 것도 멋있었어요.
그리고 취타가 이어졌습니다. 가슴을 울리는 좌고 소리에 몸에서 용감한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앵콜곡 아리랑에 맞추어 관객들도 아리랑 노래를 같이 부르면서 공연은 끝이 났습니다. 저도 뒷풀이하는 식당 앞에 갔었지만 시험공부하고 있는 중2현수의 저녁밥을 해결해 주러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밴드에 올라온 뒷풀이 사진과 동영상을 보니, 연주회가 있기까지 서로 고마웠던 점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시기도 하고, 기타, 오카리나 공연도 있었네요.
일요일에 집에 돌아와서 오늘 연주중에 가장 인상깊었던게 뭔지 생각해 보았어요. 제일 먼저는 수제천이었습니다. 취타의 좌가 너무 멋지다고 생각했지만 첫곡이어서 그런건지 수제천이 생각났어요. 저는 국알못 즉, 국악을 잘 모르니까 수제천 자체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말할수 있는게 별로 없어요. 하지만 외국사람들이 수제천을 들으면 '영혼을 울리는 음악'이라고 한다는 말이 생각났어요. 그 사람들은 왜 수제천을 듣고 영혼을 울리는 음악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보통의 음악보다 느려서 그런 걸까. 끉기지 않고 계속되는 관악기의 가락 때문일까, 규모가 단촐해서 그런 것일까, 사람의 호흡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인건가.
등잔불을 조용히 타게 하려면 등불을 흔드는 바람을 없애야 하듯이 한곳에 고요히 집중하려면 생각을 없애야 합니다. 그런데 생각을 없애는 열쇠가 되는 것이 호흡이라고 하네요. 그렇게 볼 때 비정형의 템포로 이루어졌다는 수제천을, 그려고 느렸다가 점점 빨라지는 빠르기의 곡을 지휘자 없이 연주할 수 있는 이유는 호흡인 것 같았어요. 그 곡들이 호흡의 원리에 따라 구성되어 있기 때문인 것 아닐까요? 이런 곡을 연주하려면 호흡을 가다듬게 되고, 연주자들이 호흡을 맞추다보면 각자의 심장이 비슷한 속도로 뛰면서 연주를 하는 몸의 움직임도 맞춰지기 때문이겠지요. 명상에 대해 설명하는 요가책을 찾아보니 런 얘기가 나오네요. By profound meditation, the knower, the knowledge and the known become one. The seer, the sight and the seen have no separate existence from each other. It is like great musician becoming one with his instrument and the music that comes from it. (p.22 Light on Yoga, B.K.S. Iyengar.) 명상이란 '지식을 알고자 하는 사람'이 '지식'과 '앎'과 하나가 되는 경지이며 "위대한 연주자가 그의 악기와, 악보와 연주와 하나가 되는 것과 같다."라고 설명합니다. 집중해서 하는 연주자체가 명상이고, 연주하는 음악을 우리 음악으로 하면 명상상태로 가는데 매우 유리해지겠네요.
공연이 끝나고 마당으로 올라와서 반가운 선후배들과 인사하면서, 다시 또 타임머신을 탔나..생각했어요. 저는 제 얼굴을 매일 거울로 보니까 제가 나이드는건 잘 모르지만 ㅋㅋ 오랫만에 본 후배의 얼굴에서 나이가 보이는 걸 보니 분명히 시간은 가고 있었어요. 인사를 나누고 미정언니와 말씀을 나누면서 "언니, 보니까 참여하니까 14기 동기분들이 많던데, 동기들 보시면 좋으세요, 지겨우세요?"라고 질문을 던졌더니 역시 제 예상대로" 지겹지!"라고 대답했어요. ㅎㅎ "야, 우리가 스무살에 만났는데 이제 50이니까 쟤네들 모르던 시간보다 알고 지낸 시간이 더 길어. "라고 했어요. "야, 옆에 앉아 있다가 서로 발로 쿡쿡 밀고 그래도, 이제는 지금 쟤가 어떻구나..이런게 이제 보이긴 하지."
그렇네요. 모르던 시간보다 알고 지낸 시간이 훨씬 길지요. 하지만 서로 알고 지내서 다행이라고 생각되는 우리 동아리 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관계가 과거형에 그치지 않고 연주를 구심점으로 해서 새로운 경험을 해나가는 현재형이라 더 의미가 깊습니다. 내 주변사람들은 잘 안하는데 나만 하는 그런 활동도 여기 국악연구회에 에서는 흔히들 하시죠. 연주뿐 아니라, 서예, 전각, 공부 길게 하기 그런거요. ㅎㅎ.
다음에는 또 어떤 행사가 연세국악동문회의 '현재'가 될지 모르겠지만 다음 활동이 기대가 됩니다. 연주에 같이 참여하면 가장 좋겠지만 연주회에 가서 감상하고, 박수치고, 인사 나누고 그리고 이렇게 후기를 써는 것 또한 "현재"를 만들어나가는데 보탬이 되는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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