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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동아리/보늬샘독서동아리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2017.7.17

by 책이랑 2017. 7. 17.

🔹날짜: 2017. 7/17(월) 

🔸시간: am10:00~12:30

🔸장소: 서울독서교육지원본부 2층' 세미나2실' 

📚도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문학동네


[1] 읽은 소감


▶ 소련에서 100만명이라는 여성이 참여했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


 - 2차대전 때는 이전과 달리 여성의 참전이 두드려졌다.
 소련 뿐 아니라 독일, 중국 등에서 여성들이 참전이 참전했고
 그 결과 전후에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졌다.

▶기사를 보니 특히 2차대전에서
- 영국 9.4%(한때 16%까지)
- 러시아 8%정도로 
여성의 참전이 증가[각주:1]했다고 한다.

▶2차세계대전에서 동부전선의 역할에 대해 놀람
- 서유럽국가들이 참여한 서부전선의 치열함만을 알고 있었다.
  노르망디 작전등이 가능했던 것은 소련이 대규모의 손실을 겪으면서
동부전선에서 독일과 접전을 했기에 가능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일제강점가기와 6.25를 겪은 외할머니께 들었던 내용과 똑같았다.


 (그러나 한편으로 익숙한 내용이기도 하다.)
- 다른 시기, 다른 지역에서의 전쟁이지만 내용은 똑같았다.
- 할머니도 전후에 빨간색에 공포심을 느끼셨다고 했으며
- 쥐도 잡아먹었으나 그마저도 없었다고 했다.
- 영양부족, 기력쇠약으로 인해 헛것을 보는 정도로 심신이 허약했다고 했다.
- 전쟁이 일어나는 동안의 사랑: 연인을 만나기 위해 며칠을 걸어가서 만나는 것도 같았다.

전쟁을 겪은 세대는 전후세대인 우리와 의식이 전혀 달랐다.
전쟁세대는
굶주림, 전쟁에 대한 가지는 공포감을 떨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박사모 집회에 나오는 노인들의 심리도 충분히 이해한다.

여성들은 이중, 삼중적 고난을 겪었다.
 나는 여기에 큰 연민을 느꼈다.


- 그 여성들은 비참 그 차체인 전쟁을 경험한 데다가
- 참전후에는 영웅으로 환대받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가족에게까지 비난을 받았다.
- 또한 전후에 자신의 경험을 말하지 못한 채
  참전한 것을 감추고 일신상의 불안을 느끼며 살았다.

[2] 선전선동, 보도통제를 이용한 대중조작

여성들은 전쟁시기, 전후에도 
참전사실을 감추고, 그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다.
마치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다. 나는 그것이 놀라웠다.

▶전쟁이나 전쟁으로 벌어진 일을 애써 무시해야 

일상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매체의 의한 여론조작/보도 통제 때문이다.
1. 원하는 여론을 만들 목적을 가지고 뉴스를 보도하는 경우가 많다.
ex 1) 대한민국에 대한 국제적 이미지
외국인들은 우리나라사람에게 매우 위험한 곳인데 어떻게 사느냐고 한다.
  (그러나 위험국가로 알고 있는 시리아도
실제 방문하면 매체에서 전하는 것보다는 안전하다고 한다.

ex 2) 방사능 위험에 대한 일본 정부의 보도통제
- 도쿄에서도 방사능으로 인한 사망자가 있지만
공론화되지 않고 자국민에게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한다.
-일본정부가 방사능 유출 피해지역의 피해자에게 보상을 하지 않아
 지역주민은 어쩔 수 없이 위험이 있는데도 그곳에 살 수밖에 없다.
-일본국민에게 국가를 위해 불리한 내용에 대해서는 입을 닫아야 한다는 의식이 있는 듯 하다.


[3] 러시아 사람들이 대규모로 참전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지배계급을 물리치고 세운 소비에트에 대한
민중의 자부심
이 한 원인이었을 것이다.
- '어머니 조국' 등의 개념이 강하다.
- 스탈린체재하의 선전, 선동에 의한 국민여론조작의 영향이다.
  (나치의 괴벨스를 떠올려보면 1명의 천재적 선동가가
 다수의 여론을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참전한 여성들은 청년공산당인 '콤소몰'출신이 많았으며 이들은 
 이데올로기로 무장된 사람들이었다.(그러나 공산당 고위간부나
그의 딸이 전쟁에 참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 전쟁이라는 것의 실체, 당시 전세 등을 몰랐기에 참전했을 것이다.
 공포를 느끼지 못하는 막연한 상태였을 것, 알고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4] 전쟁과 폭력을 막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하지만 사실 나는 이책을 읽으면서 인간이 
내가 알고 있던 것 보다 더 악마적이라는 것에 깊은 회의를 느꼈다.
절망적이었다.

▶그런데 스티븐 핑커는 인간이 점점 선한쪽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했다.
그가 인간을 선한존재로 본 것은 아니다.
그도 인간이 선함과 악함을 모두 지니고 있다고 봤다.
현대는 제노사이드 등의 잔인한 일들이 많이 일어난 때이기는 하지만
그는 일상에서 강간을 자랑하는 등의 폭력이 난무한 사회와 달리
지금은 교육이나 사회시스템에 의하여 그런 것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02&aid=0002016737&sid1=001

▶ 나는 여성, 장애인등의 '약자'가 평화를 보장 받을 때
평화가 실현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최근에 학교급식노동자의 파업이 있을 때 학부모들이 파업노동자들를
비난하는 것을 보았다. 파업노동자들의 입장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했다.

공교육에서 노동교육을 하지 않는 것이 문제인 것 같다.
독일은 초등학교 4학년에 단체협약에 관해 역할극을 하며 공부하는 것과 비교된다.
- 우리나라는 친일세력이 친미세력으로 넘어가면서
이에 반대입장을 표시하는 경우 처참한 보복을 당했다.
그런 보복에 대한 공포감 때문에 사회적 연대의식이 만들어지지 않고
생각의 단위가 자기의 가족에 머무르게 된 것이 그 원인일 것 같다.

시민의 권리를 피로써 얻지 않고 해방이 되면서 거저 얻었기 때문이다.
(사회의식이 생성되는 과정이 없었다.
영국의 경우 우리나라와 달리 지하철 파업을 하면
비난하는 목소리가 거의 없다고 한다.)

전쟁에 대해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평화에 대해 교육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교육에서 시민으로서 가지는 권리에 대한 것을 가르쳐야 한다.
- 알바를 하는 고등학생들이 많지만 학교에서
노동계약서를 어떻게 쓰는지 어떤 권리가 있는지를 배우지 못한다.


-대학을 안간다면 바로 자기 생활을 책임져야 한다.
 그런데 고등학교과정에서 기본 생활을 꾸리는 데 필요한 내용을 배우지 못한다.

-우리가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교육의 내용을
평화교육, 시민의 권리에 관한 교육으로 바꿀 수 있다.


※전쟁에 뛰어든 소비에트 민중들의 모습은
한편으로는 대학입시를 대하는 대한민국의 학부모의 모습인 것 같다.
그래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입시만을 목적으로 시험점수, 성적을 올리는데에만 집중하면 안될 것 같다.
오히려 노동체험, 여행 등의 생활경험을 하는 것이
아이의 인생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참전한 소비에트 민중들은 기대했던 영광을 얻지 못하고 희생자가 되었다.
우리도  학력,학벌 이데올로기에 대해 비판을 하지 못하고 경쟁에 뛰어들면
그런 생각의 희생자가 될 것이다.



※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여군은 어떤 존재였을까?
http://www.hankookilbo.com/v/5637dc6c1b324274a21c27fff9eff9be



  1. ※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여군은 어떤 존재였을까? [전쟁으로 읽는 세계사] 2차대전 새로 보기 한국일보 2015.3.9일자 여성 동원한 세계 전쟁, 영·미·독 보조인력으로 활용 붉은 군대 여군 100만명, 영웅 훈장 받은 여군 91명 성 역할 편견에 업적 잊혀져, 참전용사 평가도 남자와 다른 시각 http://www.hankookilbo.com/v/5637dc6c1b324274a21c27fff9eff9be ● 영국 - 1941년 12월부터 여성을 상대로 징병제를 실시 1943년 9월에 영국 여군은 45만명을 웃돌아 영국군의 9.4% 공군에서는 여군 비율이 한때 16% ● 미국 - 군 보조인력으로 활용되던 미국 여성도 전쟁터에 모습을 보이기 시작 -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싸우던 미군 부대에 타자수와 전화교환수로 여성이 투입 - 보조 인력이 1943년에는 ‘미육군 여성부대’로 승격돼 군인 신분을 정식으로 인정받음. ● 소련(러시아)군 - 1941년 6월 22일에 독일의 기습 공격 후 자녀 없는 여성을 징집 대상으로 삼는 법령을 공표 - 징집 통지서를 받기 전에 자원해 군문에 들어서는 소련 여성이 줄을 이었다. - 소련 여군은 1943년 말에 100만명에 이르렀고 정규군의 8%를 차지함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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