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불광출판사의 여러 책중 이책은 쉬워보이고 목차에 "윤회"가 있어서 읽게 되었다.
2.이 책에 따르면 윤회라는 것은 "자기책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그 당시 사상의수준에 비하면 매우 높은 자율적인 윤리..라고 합니다.(p.23)
3. 이 윤회는 힌두교의 철학자중 야즈나발키야가 완성한 개념으로 각자의 선악의 업이야 말로 윤회전생의 원동력이며, 그 지향을 품고 있는 자기(아트만atman, 자기 동일성의 원리, 자아, 영혼, 생명원리, 보통 아로 한역)야 말로 그것을 짊어지는 주체라는 것을 밝혔다. 또한 업이란 근본적으로 ' 행위'를 의미하지만,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잠재적이고 실체적인 힘으로도 변해 축적된다는 생각도 대부분 그에 의해 완성되었다.(pp. 43-44)
4. 그러나 석존은 이런 윤화하는 자아가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비아
그리고 그러한 윤회적 생존욕구를 끊으라고 말합니다. 욕구에서 번뇌 집착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5. 또한 석존은 근본적으로는 허무주의자로서 인생에 어떤 가치가 있다고 보는 입장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경험론자로서 허무주의와 경험론을 결합한 실용주의적인 입장을 취합니다.
6. 석존은 답을 낼 수 없는 형이상학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으면서 인생을 잘 살아가기 위한 방법으로 8정도를 내세우는데, 이것은 후대 불교가 "선정" 또는 "삼매"를 강조하는 것에 비해 매우 실천적인 방법입니다.
■ 선정의 길로
석존은 선정에 적합한 마음 상태를 이렇다 할 수련없이도 매우 뛰어난 수준으로 갖추고 있었던 인물인 듯 하다. 그래서 두 선인이 최고라고 설하는경지에 아주 손쉽게 도달했을 것이다. 당연하지만 선정의 최대문제는, 거기에서 돌아오면 또 복잡하게 마음을 어지럽히는 원래의 일생생활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석존은 아주 쉽게 선정의 최고 경지에 도달했지만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올 뿐인 선정이 늚음과 병듦, 그리고 죽음과 같은 괴로움에서 궁극적으로 벗어나는 길이라고 도저히 생각 할수 없었을 것이다.(pp.112-113)
■ '붓다'의 의미
그런데 '붓다'의 역어 '각자'는 '아는 사람' '깨달은 사람' 이라는 의미로 해석되곤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불교 개론서에서는 '그렇다면 석존은 무엇을 깨달은 것일까'라는 질문아래 여러가지 고찰이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 취지를 모르느 ㄴ바는 아니다, 이 질문 자체에는 큰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붓다'라는 말은 'budi'라는 자동사의 과거 분사형으로 목적어를 갖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붓다'란 무언가를 깨달은 사람, 무언가에 눈 뜬 사람이 아나라 정확히 말하면 무엇가에서 깨어난 사람인 것이다.
상식적으로 이것은 '잠에서 깨더난 사람' 혹은 '꿈에서 깨어난 사람'으로 해석해야 한다.(pp.110-111)
■ 석존의 '타협적 태도'에 관하여
석존은 본래의 출가 생활이 갖추어야 할 모습에서 보면 회의적일 수 있는 일을 의외로 쉽게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누더기를 기워 만든 옷을 입어야 한다고 말하며서도 재가자에게서 받으면 새 옷을 입고, 불살생의 원칙에서 보면 금기시되어야 할 고기로 만든 요리도 조건부라고는 하지만 걸식으로 재가자에게서 받으면 먹었다.(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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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단순히 석존이 현실주의자였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하는 것은 석존의 태도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이 점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 반복하지만 석존은 경험론과 허무주의가 뒷받침된 실용주의자였기 때문에 쉽게 그러한 타협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야 한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석존에게 어떤 중요한 사항을 벗어나는 일이 없으면, 뒷일은 그 중요한 사항에 도움이 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기만 하면 어떻게든 상관없는 일이었다. 불필요한 오해는 최대한 피했다고는 해도 오해를 피하는데 필사적일 만큼 석존이 세상일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p.137)
■ 기원정사를 기증받다.
이처럼 불교의 교육 연구 시스템은 인도에서 매우 선진화 된 것이었는데, 이는 바로 도시의 재력을 배경으로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윽고 기원후 4세기에 성립하여 인도 고전 문예의 황금기를 이룬 굽다왕조(바라문들의 종교를 지지)가 백 년 중도 지나 급속히 쇠퇴하는 가운데, 그 이전에 발생한 한나라의 쇠망과 서유럽 제국의 쇠망도 크게 작용하여 동서의 대규모 교역이 이루어지지 않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인도의 상공업 경제는 단번에 축소되고 중세가 끝날 때 까지 침체를 이어갔다. 불교 교단이 쇠퇴하여 13세기초에 인도라는 땅에서 소멸해 버린 최대의 원인 중의 하나는 여기에 있다. 불교가 번영한 것도, 쇠퇴한 것도 바로 불교가 전형적인 도시형 종교였기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 십무기설
석존은 어떤 종류의 질문(난)에는 대답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을 후세의 용어로 무기, 혹은 사치답이라고 한다. <독전경> 이라는 오래된 경전에 따르면 석존을 다음의 열 가지 질문에 대답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1a] 세상은 시간적으로 유한한가?
[1b] 세상은 시간적으로 무한한가?
[2a] 세상은 공간적으로 유한한가?
[2b] 세상은 공간적으로 무한한가?0
[3a] 신체와 영혼은 같은 것인가?
[3b] 신체와 영혼은 다른 것인가?
[4a] 여래는 사후에도 존속하는가?
[4b] 여래는 사후에도 존속하지않는가?
[4c] 여래는 사후에도 존속하고 또 존속하지 않는가?
[4d] 여러는 사후에 존속하는 것도 아니고 존속하지 않는 것도 아닌가?
....중략
이 점에서 석존은 불가지론자라는 측면을 명확히 드러낸다. 위의 열 가지 질문은 무언가 경험적인 사실을 출발점으로 한 논의에 근거하여 대답을 할 수 없는 것들뿐이다. 경험론자인 석존이 이러한 문제에 대해 불가지론의 자세를 선명하게 내세운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단, 불가지론자라는 것은 석존의 일면에 불과하다. 석존은 전면적인 불가지론자가 아니었으며, 경험적인 사실에 바탕을 둔 것이라면 오히려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가르침을 설했다. 산자야는 아마 경험적인 사실에 바탕을 둔 것이든 아니든, 대부분의 문제를 할수 없는 것으로 치부한 것으로 생각된다. 사리뿟다와 250명의 수행자가 산자야 곁을 떠나 모두 함께 석존의 제자가 된 것도, 그들이 불가지론만으로 관철해 온 산자야에게 전부터 불만을 품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pp.186-187)
■ 무상이라는 것
불교에서는 '제행무상'이 기본적인 가르침으로서 자주 설해진다. 무상한 것을 상주(영원)하는 것처럼 잘못 생각하는 것이 이 세상 괴로움의 근원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석존이 설한 무상은 세상의 무상성, 일체의 순간적 존재성(찰나멸) 등 후세의 불교가 빠진 형이상학적이고 풀기 어려운 가르침이 아니라, 경험적인 사실과 밀접히 관련된 것이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은 언제까지고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생각지도 않은 짧은 시간 안에 죽음을 맞이하는 존재임을 말하는 것일 뿐이다. 인간은 기껏 살아도 100살이며, 그 나이를 넘겨도 그렇게 오래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내용의 가르침이 반복되어 설해져 있다. 이 가르침은 매우 구체적이고 명료하다.
언제까지고 살고 싶다는 바람이 어느덧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마치 불사의 존재인 것처럼 믿어 브리는 결과를 낳는다.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죽음이 닥쳐왔을 때 놀라고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것은 이 당연한 사실이 사실로서 제도로 인식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수행의 길을 걷는 사람은 살아 있느 지금을 소중히 여겨 수행에 전념해야 한다. 언제까지나 살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져서는 수행이 지지부진해진다. 인생이 무상하다는 사실이 머릿속에 들어와 있으면, 자연스럽게 열심히 수행에 몰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대체로 지극히 실천적인 문제로서, 그리고 아주 당연한 문제로서 석존은 무상을 강조했다. 인생무상은 만인이 인정하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다름 아닌 이 사실에 호소해기 때문에 석존의 가르침에는 설득력이 있었던 것이다.(pp.186-187)
■ 불가지론과 실용주의
석존은 이론 체계를 완성하려고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괴델의 불완전성의 정리를 기다릴 필요도 없이, 그는 완전한 이론 체계의 구축 등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었다. 실천 수행이 필요시 되는 경우 이론체계를 정비하는 일에 급급한 것은 무익한 일일 뿐이었다. 원래 가르침(이론적인)은 허무주의자인 석존 자신에게는 의미가 없는 것이었으며, 더군다나 결말이 나지 않는 논의는 허무의 극치일 뿐이었다.
경험론에 허무주의가 합쳐지면 여기에서 실용주의가 탄생한다. 결국에는 제자들을 궁극의 경지로 재빠르게 이끌기 위해 실효성이 있는 것이 바른 길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바르지 않은 길이라는 판단이 여기에서 명쾌히 도출된다.(p193)
■ 중도
팔정도 /팔성도
정견:바른견해(지혜)
정사: 바른 사고의 방식(선악의 분별, 논리)
정어:바른말(거짓말 하거나 거친말을 하지 않는 것)
정업:바른 행위(살생 등을 행하지 않는 것)
정명: 바른 생활 규율
정정진:바른 노력
정념:바른 기억
정정:바른 정신통일
우리들은 '수행'이라고 하면 뭔가 굉장히 힘든 것이라는 인상을 받지만, 이처럼 팔성도의 실천은 그런 느낌의 수행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수행이라고 말하기가 꺼려질 정도이다.
...중도적인 생활 형태를 취하는 가운데 석존의 의미도, 가치도 갖지 않는 세상을 마치 의미와 가치가 있는 것처럼 살았던 것이다.
요컨대 중도는 석존에게 삶에 대한 허무주의에 이르는 길이었고, 이미 의미를 잃어버린 세상에 방편으로서의 의미를 갖게 하면서 설법 생활을 하기 위한 가장 자연스러운 길이기도 했던 것이다.(pp.194-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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