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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멜로 실험, 뇌과학에 대한 비판, 참고자료

by 책이랑 2018. 9. 26.

■ 마시멜로 실험 참고자료

1) 마시멜로 실험에 대한 다른 의견
※ NYT의 「We Didn’t Eat the Marshmallow. The Marshmallow Ate Us.」를 번역한 글
https://ppss.kr/archives/16793

"상관관계가 인과관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므로, 오랫동안 참은 대가로 두 번째 마시멜로를 먹은 어린이들이 인생에서 성공했다고 해서 그들이 선천적으로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자질을 갖고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로체스터 대학교의 연구진이 말한 바와 같이 어떤 어린이는 단지 ‘연구자의 말을 믿지 못해서’ 오래 기다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또는 그날따라 배가 고팠을 수도 있다."

"참을성이라는 것은 인생을 결정하는 수많은 요인 중의 하나일 뿐!"


2) 뉴욕대학교의 타일러 와츠, UC 어바인의 그레그 던컨, 호아난 쿠엔
http://newspeppermint.com/2018/06/02/marshmallowtest/

"아이의 배경과 가정환경 등을 고려해 실험 결과를 다시 해석하면 어렸을 때 당장의 유혹을 참아내고 기다릴 줄 아는 능력이 훗날 인생의 성공을 담보하지 않는다"( 어린 나이에 유혹을 이겨내는 것이 10년, 20년 뒤 인생의 성공을 예견하는 결정적인 징표라도 되는 것처럼 해석해서는 안 된다  <심리과학>

"특히 아이의 사회경제적 지표를 포함한 가정환경, 부모의 교육 수준 등을 고려하고 나면 미미하게 나타나던 상관관계마저 사라져."


3)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단기적인 보상이 집착한다는 연구 결과
"하버드대학교 경제학과의 센딜 뮬리네이선 교수가 2013년 펴낸 책 <희소성: 지나친 부족이 의미하는 것>
이를 마시멜로 실험에 적용해보면, 두 번째 마시멜로가 약속한 대로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눈앞에 있는 마시멜로를 고민할 것 없이 먹어치우는 것이 더 나은 결정"


■ 뇌과학에 대한 비판

1) 사람의 마음=뇌 가 아니다.


나는 뇌가 아니다 - 10점
마르쿠스 가브리엘 지음, 전대호 옮김/열린책들

<나는 대체 누구인가, 또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오랫동안 정신 철학의 전통 속에서 다뤄져 온 문제였다. 하지만 오늘날 이 자기인식의 물음은 자연과학의 분과 학문인 신경과학에게 점차 자리를 넘겨주고 있고, 그 결과 <우리는 우리 뇌다>라는 언술이 직접적으로든(디크 스왑의 동명의 저서) 암시로든 우리 시대를 물들이고 있다. 가브리엘이 새롭게 쓰는 <21세기를 위한 정신 철학>은 우리 시대에 만연한 신경중심주의(한마디로, 우리를 뇌 또는 중추신경계와 동일시하는 주장)에 맞서 인간의 본질과 자유를 규명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가브리엘은 데카르트, 칸트, 피히테, 프로이트 등 정신 철학의 거장들이 다뤄 온 의식, 자기의식, 《나》, 사유 등의 핵심 개념들을 정리하면서, 각각의 개념들이 어떤 사상가들에 의해 어떤 배경에서 만들어지고 어떻게 우리 어휘 안으로 진입했는지 따져 묻는다. 궁극적으로 가브리엘이 목표하는 바는 인간의 자유(자유 의지)를 옹호하는 데 있다. 인간은 무언가에 조종되는 꼭두각시가 아니다. 가브리엘은, 비단 뇌뿐 아니라 <신, 우주, 자연, 사회가 우리의 등 뒤에서 우리를 자유롭지 않게 만든다는 통념에 맞서> 인간이 철두철미하게 자유로운 존재임을 논증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자유>로부터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 곧 <인간 존엄>이 비롯한다고 확신한다. 


.. 인간 개개인이 느끼는 그 맛에 대한 고유한 주관적 체험은 결여되어 있다. 바로 이 고유한 체험이 현상적 의식, 곧 퀄리아다. 이런 체험은 생물학적 토대를 갖는다. 인간은 내면에 고유한 감각을 품으며, 대상에 대해 비합리인 감정 역시 가질 수 있다. 무언가를 착각하고, 욕망하고, 환상을 추구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로봇처럼 <알고리즘에 따라 번역될 수 있는 규칙들만 따르지 않는다>. 지향적 의식만을 지닌 로봇이 인간이 될 수 없는 이유이다. 만약 <순수하게 지향적이며 이해관심이 없고 단지 지켜보기만 하는 의식이 있다면, 그 의식은 우리의 의식과 전혀 다를 것이다.>




2) 10명을 fMRI로 찍었을 때 같은 영상이 나와도 그 10명이 각각 다르게 해석하게 될 것임.
뇌에 찍인 영상이 아닌 각 개인의 인지/ 해석의 문제
기독교신자, 유대교 신자, 무신론자...

"저자들은 구체적인 연구 결과를 근거로 들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은 뇌의 독립적인 작용이 아니라고 말한다. 뇌는 몸과 세계가 연결되어 지적인 활동을 할 때 함께 움직이는 인지 체계의 일부일 뿐이다. 한마디로 마음은 뇌에 없다. 마음은 뇌를 비롯한 여러 가지를 동원해서 정보를 처리한다. 마음은 몸의 도움을 받고, 사회에 깃든 지식에 의지하며, 주변 사람들이 가진 정보에 기대어 우리를 행동으로 이끈다. "


지식의 착각 - 10점
스티븐 슬로먼 & 필립 페른백 지음, 문희경 옮김/세종서적


3)  뇌과학이 바탕을 두고 있는 전제/ 철학에 대한 비판

전 성균관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이정모 교수님 인지심리 마당


인지과학 - 10점
이정모 지음/성균관대학교출판부

- 서양철학은 데카르트의 이원론이 바탕이었다가  
- 인지과학의 영향을 받아 
심-신 일원론인 뇌=마음 관점으로 이행

- 이후 마음을 담고 있는 몸과 환경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인간의 마음이 몸이나 환경과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므로 이런 구성요소들의 상호작용에서 마음을 파악하려는  '체화된 정신' 개념이 등장함.

몸의 인지과학 - 10점
프란시스코 바렐라 외 지음, 석봉래 옮김, 이인식 해제/김영사

4)  이 '체화된 정신'이라는 개념은 프랑스의 철학자 메를로 퐁티가 주창한 것이며 메를로 퐁티는 에드워드 후설의 제자임 후설의 현상학은  

"20세기 말 21세기 초 서구에서는 자연과학의 객관성을 만능이라 보는 실증주의와 주관적 경험에 매달리는 심리학주의가 만연했는데, 애초 수학자로 출발해 심리학·논리학을 경유한 후설은 객관성과 주관성을 구분하는 이분법 자체에 의문을 품었다. 대신 후설은 인간의 의식은 항상 ‘무엇에 대한 의식’으로서,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취지의 ‘지향성’ 개념을 내놓았다.(<논리연구> 제2권) 주관과 객관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주관-객관-상관관계’의 틀을 제시한 것"


세계적인 인지과학자 프란시스코 바렐라와 그의 제자 에반 톰슨 그리고 인지과학자 엘리노어 로쉬가 현상학, 정신분석학, 불교 등의 다양한 관점에서 인간의 경험과 과학 간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한 인지과학의 걸작이다. 서양의 전통 철학과 초창기의 인지과학에서는 몸의 역할을 간과한 채 몸이란 뇌의 주변장치에 불과하다는 견해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1980년대 이와 같은 이론에 반발하며 서양 주류 철학에서 무시되었던 몸의 중심성을 회복하고 몸을 마음 안으로 되돌려놓아야 한다는 새로운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런 인지과학 논쟁의 계기를 마련한 작품이 <몸의 인지과학>이다.


※ 후설의 현상학은 불교사상과 비교가 된다

나무위키- 현상학
"재미있게도 의식과 대상, 혹은 행위자와 행위의 분리가 불가능하다는 견해는 2세기의 걸출한 불교철학자인 용수보살(Nagarjuna)의 저작 [중론](Fundamental Verses on the Middle Way)에서도 발견되는데, "눈(eye)은 (대상 없이) 스스로를 볼 수 있는가" 혹은 "가는 자는 가지 않는다" 등의 역설로 표현된다. 즉, 눈의 본다는 성질은 그 대상이 있기에 성립하며, 눈과 대상 사이의 관계가 없이는 성립하지 못한다. 또한 간다는 성질은 아직 간다는 성질을 가지지 않은 자를 표현하기위해 주어지지만, 이미 가는 자에게는 간다는 성질을 더할 수 없으며 가지 않는 자 또한 이미 가지 않기에 간다는 성질을 더할 수 없다는 귀류논증법이 사용되었다. 다시 말해 가는 행위는 가는 자와 분리될 수 없으며, 분리되어 '간다'라고 하는 것은 개념으로서의 가설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일련의 논리들은 결국 다른 것과의 관계에 의지하지 않고 홀로 발생하는 불변하고 고정된 자성(아트만)은 존재할 수 없다는 무아 및 공 사상으로 완성된다." 

(저번에 읽은 책 <불교탄생>에 따르면 무아론에 따르면 '윤회'는 없는 거라고 했는데...)


불교사상과 후설의 철학을 비교하는 기사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55737

"나는 석가의 독화살비유나 후설의 판단중지는 전통적으로 행해져왔던 문자적 논쟁에 휘말리지 않고 오히려 아무 선입견 없이 자신의 내면을 충실히 주시 관찰함으로써 그 안에서 인생과 우주 전반의 진리를 발견하고자 하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마음 내면을 직시함으로써 그들이 발견한 것은 무엇인가?우리의 일상 의식은 늘 자아와 세계를 주관과 객관으로 이원화하고 분리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자아는 세계 속 일부로서 각각 개별적 실체로 존재한다고 여기고, 세계는 자아와 무관하게 실재하는 객관적 실체라고 여기는 것이다. 이러한 이원적 사려분별을 불교는 아집과 법집의 변계소집성이라고 부르고, 후설은 이를 자연주의적 존재정립이라고 부른다. 자아와 세계가 별개의 실체가 아니라는 것, 우리가 객관 세계라고 여기는 것이 실은 우리 자신의 마음의 활동성에 의해 그렇게 변현되고 구성된 것이라는 것, 세계로 변현하고 세계를 구성하는 우리의 심층마음은 우리의 표층 의식보다 더 깊고 더 크다는 것, 그 더 크고 더 깊은 심층마음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표층의식이 감지하지 못할지라도 이미 서로 소통하고 서로 교감하고 있다는 것, 이것이 불교와 후설이 자신의 내면에서 발견한 진리가 아닐까?


이 두개 생각의 공통점은  "인간의 마음 또는 영혼의 본질에 관한 것"

두개의 차이점은 이성의 영역에 머무르는 것 vs. "마음 닦는 수행을 통해 영적 차원의 심안이 열려 사려분별과 생사번뇌를 영원히 넘어서기를 시도하는 것"의 차이





나를 넘다 - 10점
마티유 리카르 & 볼프 싱어 지음, 임영신 옮김/쌤앤파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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