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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문학/페란테

나폴리 4부작- 생각나는 이야기들

by 책이랑 2019. 12. 11.

1. 1권 신데렐라

2. 인어공주?

3. 아이네이스

Dede and Elisa, both recall Dido/Elissa too.

엘레나는 여성에너지가 부족한 나중의 아이네이스와 닮음

아이네이스가 지하세계로 돌아오는 이유는 다시 상승하기 위해서였슴

아이네이스 6은 애도의 들판- 티라를 잃은 후 동네가 그렇게 됨

릴라는 사라짐으로서 타인의 통제를 받는 것을 거부함

디도는 4권에서 지하에서 침묵해서 베르길리우스를 당황하게 만듦

엘레나는 리나가 없을 때 생명력이 없는 인형과 같다.

푸른요정은 -인형에게 생명을 주고,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 존재


사랑이 없을 때 소녀들은 강간당함

베르길리우스는 동성애자였슴


4권  데메테르  포세이돈 페르세포네 하데스

     피노키오

미들마치

▶ 황진이, 버지니아 울프-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기에 오히려 더 창조적인 사고
 ‘경전’이나 ‘권위’에서 우러나오는 지식에 기댄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탐구열과 끈질긴 독학의 힘

▶ 신데렐라+인어공주

소로는 우리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태어나고 ‘주민등록증’과 같은 신분의 구속에 제한받는 순간, 일종의 원초적 불평등의 상황에 처한다는 것을 간파한다. 우리가 ‘사회인’이 되어갈수록, ‘자연스럽게 나 자신의 욕망에 따라 살 수 있는 권리’는 박탈당할 수밖에 없는 것

  남성의 타락, 남성의 판단 착오에 대한 모든 책임을 여성에게 돌리는 행위의 기원에는 살로메의 신화가 자리 잡고 있다. 살로메의 딸 이름을 ‘매독(syphilis)’이라 명명한 것에서 볼 수 있듯 ‘감당할 수 없는 여성성’에 원죄를 뒤집어씌우는 행위는 도처에서 발견된다. 그것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일상을 파괴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에서 비롯된다. 저항할 수 없는 아름다움은 ‘경계’의 대상이지만, 금기에 갇힐수록 더욱 아름다워지는 그녀들의 매혹은 예술가들의 영원한 뮤즈다.

▶ 비‘바라보는 자’의 욕망이 탄생시킨 팜파탈

적장(敵將) 홀로페르네스의 잘린 목을 들고 희미하게 미소 짓는 유디트, 삼손의 머리카락을 잘라 그의 괴력을 빼앗은 데릴라, 아름다운 춤 하나만으로 세례자 요한의 목을 베는 데 성공한 살로메,

롤리타도, 살로메도 정작 그녀들의 시선은 남성의 삶 자체를 향해 있지 않다. 남성들은 그들 자신의 삶의 모든 결핍을, 모든 불만을, 모든 금기를 그녀들을 통해 충족시키려 한다. 그들이 목마르게 원하는 그 모든 것을 그녀들은 반드시 가지고 있으리라 믿으며.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환상이 탄생시킨 허구적 매혹일 뿐 ‘그녀들의 현실’은 아니다. 그들이 그토록 갈구하는 여성의 매력을, 남성의 갈증을 그녀들은 정작 모르거나 무관심하다. 그들을 매혹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것은 남성 스스로의 갈증과 욕망의 시선이지 그녀들의 의도가 아니다. 그런데 정작 신기한 것은 그 모든 사실을 인정하고 나서도 그녀들은 여전히 매혹적이라는 것, 그녀들을 향한 인류의 환상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상상력이 이브를 창조했듯이, 이 남성들의 ‘환상’이야말로 그녀 롤리타-님펫(nymphet·성적 매력을 지닌 여자아이)의 형상을 창조하는 피그말리온의 손길이다. 그러나 그녀를 향한 욕망이 전적으로 그 남자 자신만의 일방적인 것임이 밝혀졌을 때, 조각상에조차 생명을 불어넣는 피그말리온의 손길은 살아 있는 모든 피조물을 죽은 황금으로 만드는 미다스의 손길이 돼버린다. 이 불가능한 사랑의 끝은 어김없이 파국으로 치닫는다.

  나는 살로메의 춤이 내게 불러일으킨 두려움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 나는 그것을 소홀히 다루기가 두렵다. -플로베르의 개인 서신 중에서

  자아를 찾는 여성, 마녀가 되다

좋은 여자란 남자가 여자에게서 자기 힘과 자기 욕망을 실감할 수 있도록 꽤 오랫동안 저항하는 여자. 그러나 남자가 자기 자신이 보기에도 위대해지고 더욱 든든해져서 자기 자신에게로의 회귀를 향유할 수 있도록, 너무 지나친 장애 없이, 너무 오래 저항하지 않는 여자라고.

-엘렌 식수, 박혜영 옮김, ‘메두사의 웃음/ 출구’, 동문선, 2004, 146쪽.

▶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이긴 하지만 욕망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서는 안 되는 존재. 남성에게 너무 쉽게 주도권을 빼앗기지는 않되 남성을 너무 피곤하게 만들어서는 안 되는 존재. 그러니까 남성의 우위를 더욱 ‘흥미롭게’ ‘적당히’ 충족시키는 존재가 될 것. 그것이 ‘여성다운 여성’이 되는 지름길이었다. 엘렌 식수는 말한다. 국가의 업무 안에 그대, 여성의 욕망을 위한 자리는 없었다고. 남자는 성공을 위해, 사회적 사다리를 오르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남자에게 여자는 영원한 위협, 반(反)-문명을 표상한다고. 프로이트와 그 후계자들이 지적했듯이, 남성의 운명이란 여성이기를 너무나도 두려워하는 운명이라고.

▶ 하이너 뮐러의 ‘메데이아’는 여성의 강요된 포지션에서도, 여성을 지배하는 남성의 위치에서도 살고 싶지 않은 메데이아의 ‘비정체성(정체성 없는 정체성,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정체성)’을 향한 욕망을 이렇게 표현했다. “야만인인 나의 이 두 손으로, 나는 인류를 두 조각으로 쪼개고 싶다. 그리고 텅 빈 중앙에 살고 싶다. 나! 여자도 아니고 남자도 아닌! ”

신동아 2011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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