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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동아리/보늬샘독서동아리

미네소타주립대학 불교철학 강의 - 붓다의 생각을 꿰뚫는 스물네 번의 철학 수업

by 책이랑 2019. 12. 15.

미네소타주립대학 불교철학 강의 
- 붓다의 생각을 꿰뚫는 스물네 번의 철학 수업

미네소타주립대학 불교철학 강의 - 10점
홍창성 지음/불광출판사

저자는 지금 시대의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개념과 방법으로 불교철학의 핵심들의 기본 교리부터 불교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경지에 대해 논한다. 더욱이 자신의 전공 분야인 서양철학의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봄으로써 불교철학의 정교하고, 지적이며, 논리적인 측면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동안 불교를 공부해 오며 철학적 난제를 맞닥뜨린 이들에게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책이다. 또한 불교에 대한 기본 지식을 갖추었거나 동양철학에 관심이 많은 독자는 물론 불교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도 우리의 삶과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선물한다.

* 저자 홍창성 교수는 지난 2015년부터 국내 불교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깨달음 논쟁’ 당시 누구보다 많은 분량의 글(8편)을 매체에 기고하며 논쟁의 중심에 섰고,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 분석형이상학과 심리철학, 그리고 현대인식론

*‘나’라고 부를 수 있는 불변의 존재(영혼)가 있는가?
* 모든 현상에는 꼭 알려진 시작점이 있어야 하는가?
* 우리의 삶은 정해진 운명대로 흐르는가? 
( 불교는 부정하는 내용들)

불교 
- “부처”란  ‘깨달은 자’를 말함
- 깨달음의 내용은 무아, 연기
-   空(공), 만물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오직 서로 연관되어서만 생멸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이 세상에서 알고 지내온 모든 사물의 存在 樣相(존재 양상 mode of existence)일 뿐
- 불교에서 고를 먼저 말하는 것은 삶의 불만족스러운 면을 개선할 더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그런 부정적인 측면이 존재함을 일단 용기 있게 인정하자는 것임
- 우리의 모든 고통을 만들어 내는 원인이 바로 지나친 욕구와 그 대상에 대한 집착으로  이런 욕구와 집착을 제거할 효과적인 길이 있다는 것- 八正道(팔정도 Noble Eightfold Path)
- 올바른 지혜를 닦아 올바른 덕을 갖추고 올바르게 명상하며 수행하면 불필요하고 지나친 욕구와 집착이 자연스럽게 소멸되어 고뇌로부터 벗어난 열반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것
- 윤회(이 속세에서의 삶)가 바로 열반인 것을 (깨달아서 고뇌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 머물게 함)

제1강. 불교란 무엇인가

▶ Buddism은 부처님의 가르침의 체계, 부처님의 길이라는 뜻. 
불교가 유일하다고 주장하는 옳은 믿음이나 가치관의 체계가 아님
▶열린체계로서 제설혼합주의(싱크리티즘, syncretism)의 관점에서 힌두교, 자이나교, 도교 유교와 같은 다른 가르침의 체계를 존중하고 인정하면서 상호교류해 옴
* 제설혼합주의: 철학이나 종교에서, 각기 다른 내용이나 전통을 지닌 여러 학파나 종파가 혼합 된 것

제2강. 붓다, 깨달음, 무아
붓다= '진리'를 깨달은 자라는 뜻
 깨달음의 내용은 무아(anatman, non- self)

제3강. 깨달음의 패러독스
▶깨달음enlightment는 열반nirvana 와 같이 붙어다니면서 동의어로 쓰곤 하는데 동의어는 아님 열반(nirvana)는 어원으로 볼 때 욕구, 집착의 제거를 말함
▶ 열반이 행복과 같이 얘기가 되곤 하는데 행복 = 충족/욕구라고도 표현됨
▶ 여기서 욕구의 문제가 발생함 ← 깨달음에 대한 욕구가 있어야 깨달음에 이른다는 역설이 생긴다고 하지만
수행을 하는 과정에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 가졌던 욕구 때문에 가졌던 집착이 자연스럽게 사라져간다고 설명할 수 있다.

제4강. 윤회하는 것은 없지만 윤회는 있다
▶ 윤회의 개념은 나가세나 존자의 촛불 이어켜기- 계속 동일한 물질적인 주체는 없지만  촛불이라는 현상이 이어짐- 로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업'이라는 개념은 의식을 가진 생명체들의 행위와 그 행위의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편리한 언어적인 '도구'일 뿐.


제5강. 윤회의 시작과 끝
▶ 세상에 자성을 가진 것은 없는데 윤회의 유무에 대해 질문하는 것은 자성을 가진 존재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있는 것이기에  논리적인 모순이 있슴( 따라서 이는 의미를 가질 수 없는 질문임.(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문제 해체방식과 동일))

제6강. 열반
열반이란 '번뇌의 불이 꺼진 상태'열반(涅槃)은 삶의 고해(苦海)에서 벗어난 상태를 말할 뿐 '열반'이라는 것을 얻은 것이 아님
▶ 또한 열반은 즐거움, '열락(悅樂}'  큰 기쁨 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다 타 버렸거나 아니면 큰 바람이 훅 불어와 꺼져 없어졌다는 것”이 열반의 전부
서양의 신이나 인도의 브라만처럼 “절대적인 존재로서의 실체”도 아님
▶ 어떤 영롱한 실체로서의 참나, 참마음, 불성(佛性) 같은 것들을 깨치면서 이르게 된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최소한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이 아님
▶ 열반은 그 안에 존재한다는 어떤 긍정적인 속성으로도 표현되어서는 안 된다 – 열반에는 그런 것이 없기 때문
▶인생의 목표는 타는 욕망과 고뇌의 불길을 꺼트림으로써 불행해지지 않는 것(not to become unhappy). 어떤 긍정적인 것을 소유함으로써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탐(craving) 진(hatred) 치(ignorance)와 같은 부정적인 특성들을 제거함으로서 이루어짐
 좋은 삶이란 불행하지 않은 삶이다. 고뇌를 겪고 있지 않다면 불행하지 않다; 그러면, 행복하거나 또는 최소한 그냥 괜찮다. 이것이 좋은 삶을 위한 더 적합한 목표이고, 따라서 더 많은 사람들이 곧 행복해지리라 생각한다 



제7강. 열반은 있지만 열반하는 것은 없다
▶ 열반하는 주체는 없다.
▶ 그러나 아뜨만(atman, 영혼)으로서의 나는 없으나 개인적 인격체(person)으로서의 '나'가 없는 것은 아님
▶ 물론 '나'라는 인격체도 개념적 허구로서, 색,수,상,행,식 이라는 오온의 복합체 일 뿐 
▶ 아비달마와 중관학파 이후 방편으로서의 속제
(俗諦, 산스크리트어 Samvriti satya)를 인정함 진제(眞諦, Paramārtha-satya)
▶'인격체;로서의 '나'는 현상(現象 phenomenon, 幻(환)으로서 존재함
궁극적인 관점에서는 열반하는 것이 없지만 일상적인 관점에서는 묘하게 있다.
(그러나 수행자는 열반을 이루는 '주체'로서 존재한 적이 없기 때문에 '열반하는 것은 없다.'

제8강. 불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
▶ 존재가 아니라 펜과 같이 기능, funtion으로서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
▶깨달음과 열반을 위해 적절한 (optimal) 심신의 상태를 지시하기 위해 
'어떤 한 유정물이 어느 시간, 어느 장소에서 깨달음과 열반을 이루기에 가장 적합한 몸과 마음의 특정한 상태'라는 의미로 해석한다면 '불성'을 
부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p.102)

▶ 대승불교의 불성(佛性 Buddha-Nature) 사상은 크게 두 가지로 이해될 수 있다.
(1) 불성을 모든 유정물이 가지고 있는 어떤 고정불변한 본성 또는 자성(自性)으로 보는 것( 붓다의 제법무아(諸法無我)와 연기 및 공(空)의 가르침과 어긋나서 쉽게 비판의 대상)
(2) 불성을 ‘깨달을 수 있는 가능성 또는 성향’으로 달리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해석이 원래의 ‘여래장(如來藏 tathagata-garbha Buddha-embryo 또는 the womb of the thus-come-one)이라는 개념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불성(佛性)이란 깨달을 수 있는 성향(性向 disposition)이나 가능성(potential)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제9강. 무아와 자비
▶붓다의 자비는 hot한 사랑이라기보다는 vs cool한 배려,  보살핌 (concern)에 가깝다.
감정으로 하기보다는 쿨한 판단으로 한 이타행이 더 좋은 결과를 낸다
▶붓다의 자비는=이기심 없는 배려심, 또는 보살피는 마음(unselfish, selfless concern)임.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자기가 사라지고 나면 타인에게 그 마음이 흘러들어가는 것이 이치 

제10강. 연기란 무엇인가
▶ 12지연기
- 무명(無名, ignorance) 
– 행(行, mental formation) 
– 식(識, consciousness)
– 명색(名色, mind and body)
– 6입(六入, senses) 
– 촉(觸, contact)
– 수(受, sensation)
– 애(愛, craving) 
– 취(取, attachment)
– 유(有, becoming) 
– 생(生, birth) 
– 노사(老死, old age and death)

 연기는 인과관계만을 포함하다가  대승에 와서  연기는 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개념, 비인과적 관계에 '의존'까지 포함하게 됨 
▶ 이는 현대물리학의 통찰과도 잘 어울림
- 미시세계의 소립자들은 서로간의 관계를 언급하지 안고서는 그 속성을 기술하고 설명할 수 없기 때문,


제11강. 연기: 인과와 관계
▶ 물질세계- 인과관계가 만고 , 인과관계가 아닌 비인과적인 '의존'관계가 있는 경우도 많음
▶ 정신계(의식계)에서의 연기- 논리의 필연적 관계가 있는데 이는 인과관계는 아님
▶ 언어 세계에서의 연기-언어는 논리적 개념적으로 의존하면서 존재하지만 인과관계는 아님

제12강. 연기의 패러독스
▶ 연기에 연기를 적용하는 것을 피해야 함
우리가 사용하는 자연언어에는 논리적으로 모순을 포함하는 개념이 꽤 포함되어 있다. 
 이때 기호논리학을 쓰면 스스로 이발하지 않는 이발사라는 명제가 모순이라는 것이 증명됨
▶언어를 사용할 때 패러독스에 빠지지 않는 방식으로 사용해야 하므로
연기법칙에 연기를 적용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함
▶ 붓다의 14무기는
= 칸트의 <순수 이성비판>의 선험론적 변증론의 취지
=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연구>에서 '삽으로 파고 파다가 암반(beddock)에 도달하면 삽이 튕겨나온다.
라는 부분과 맥이 닿는 것.

제13강. 대승과 공
▶ 공= 산스크리트어 원어로 ‘sunya’라는 형용사로서 ‘속이 텅 빈’, ‘부풀어 오른’, ‘공허한’ 등의 뜻을 가졌고, 명사는 ‘sunyata’
▶  본질 essence, 내적 본성 intrinsic nature , 자성(self-nature)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
emptiness보다는 무특성(characterlessness), 무본질(essencelessness), 무자성(no self-nature)이라는 번역이 더 나을 듯


제14강. 연기하기에 공하다
▶ 연기하는 것은 스스로 존재하지 않기에 자성을 가지지 못하여 공하다.

제15강. 공, 중도, 그리고 비유비무묘유

공은 무가 아니다
공하다는 말은 자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말(devoid of intrinsic nature) 뜻으로 
 존재하는 양상(mode)에 대한 표현임

- 만일 술어적인 용법의 공을 명사형태로 만들어 이해하려하면  양상을 실체로 잘못 본 실체화(實體化)의 오류(fallacy of reification/hypostatization)를 범하게 되는 것
- 한 문장에서 “有”라는 같은 글자가 두 개의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사용되고 있는데, 의미의 섬세한 차이를 구분하지 않는  모호한 표현의 오류(the fallacy of equivocation) 임

▶ 공사상은 서양철학을 풍미한 보편자(普遍者, universal) 실재론(實在論, realism)이 아니라 보다  현대적인 유명론(唯名論, nominalism)을 지지하게 됨

- 유명론은 이런 보편자들이 실재하지 않고 우리가 단지 그런 것들의 이름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라는 견해( 
불교의 보편자 유명론은 인도에서 기원후 5세기에서 8세기까지 디그나가와 다르마키르티가 주도한 인명론(因明論)에서 나름대로의 방식으로도 제시되었다. 그리고 20세기 이후 영어권(英語圈)의 현대 분석철학에서는 보편자 유명론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왔다.)

 “非有非無妙有”라는 표현의 논리적 결점이 있슴
* “非有”에서의 “有”는 상주론에서 말하는 자성을 가지고 영원히 있다는 존재자(恒有)를 의미한다.
* “妙有”란 이 세상 사물이 연기로 인해 자성을 결여(空)한 채 
현상으로서만 존재한다는 의미다.
= 첫째 “有”는
 상주하는 존재자라는 뜻
둘째 “有”는 “妙”라는 서술어를 가지고 연기로 인해 空한 
현상으로서의 존재자라는 뜻



*
제16강. 제법개환과 제법개공
현상은 실체로서의 진정한 존재자(noumenon)이 아니라 단지 밖으로 드러나는 겉모습임 
▶ 18C 독일 칸트 현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우리 세계의 존재 양식(mode of existence) 이라 주장( 서양 철학의 흐름이 존재론이 아닌 인식론으로 전환된 것???)
▶ 도날드 데이비슨 사건의 정체성은 다른 사건들과의 인과관계= 나가르주나의 <근본중송>과 일맥상통함
▶존재세계 자체가 거대한 홀로덱임 
 본체(本體, noumena) 없이 단지 현상(現象, phenomena)으로만 존재하는 환(幻)의 세계요 허구의 세계

*
제17강. 선의 합리적 이해
▶ 선은 언어적 접근을 금기시 해 옴
▶ 선의 신비한 체험을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이 당황스럽다.
*“홍 교수는 불이법을 단멸론으로 착각”-미디어붓다 기사
http://m.beomeo.kr/board/view.php?zipVal=1&boardID=SW_news2&nowpage=4&view_num=282&listUrl=

- 지식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은 심성을 바꾸려고 하지는 않는다
- 에고만 강화하는 부작용
- 바로 생각구름이 마음을 덮기 때문
- 지식적인 ‘앎’과 실제로 마음의 눈을 열고 보는 ‘안목’은 전혀 다르다.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진짜며, 외부 경계에서 오는 거친 번뇌보다 스스로 일으킨 ‘깨달음’ 같은 말에 속는 법상(法相)의 미세번뇌가 더욱 고질병임.
-  ‘색도 아니고 공도 아닌’ ‘중도의 불이법’임.  불이법은 이성적 이해로는 포착하기 어렵기 때문에, 반드시 실참해서 실증(實證)해보아야 한함
불이법은 아예 분별하지 말라가 아니라, 분별과 무분별의 대립을 넘어서 ‘지혜로운 분별’을 하라는 중도다. 이것은 너무나 상식적인 가르침
실제 수행을 하여 스스로 돈오(頓悟)하기 전에는 절대로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마음임
- ‘불이법의 다양한 방편이름들’ 중의 하나가 곧 ‘무아’요, ‘마음’이요, ‘공’이요, ‘진여’요, ‘불성’이요, ‘원각’이요, ‘해탈’이요, ‘반야’요, ‘삼 서 근’이요, ‘뜰 앞의 잣나무’요, ‘똥막대기’다. 그 수는 헤아릴 수없이 많은 것이다. 따라서 강아지는 이런 방편이름을 쫓아가서 물고 시비(是非)하며, 사자는 방편이름에 구애받지 않고 그 낙처인 불이법에 계합함


제18강. 석가모니가 답하지 않은 14가지 질문
▶라이프니츠의 이성의 진리(truth of reason)과 사실의 진리(truth of fact)
데이비드 흄(논리 실증주의자)  관념들의 관계(relation of ideas) 와 사실의 문제(matters of fact)
칸트 분석판단(anaylitic jugement)와 종합판단(synthetic judgement) 
수학 및 자연과학만이 그 주장의 참과 거짓을 가릴 수 있는 우리가 연구해야 할 올바른 영역이라 주장함 
* 분석판단: 한 문장에서 술어의 개념이 주어의 개념에 포함되어 있어서 참과 거짓이 논리적으로 결정되는 판단들 

석가모니의 14무기 세계의 시간성(4)과 공간성(4), 여래의 문제(4) 그리고 영혼(2) 등, 총 4개의 주제에 관한 14개의 질문인데 석가모니가 답을 하지 않은 질문임.
 인간에게 가능한 올바른 지적 탐구와 연구의 영역이 있음을 꿰뚫어어 보고 지나치게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게 하기 위해 대답하지 않은 것
- 그러나 형이상학적 주제를 철학적으로 설명하면 오히려 실천과 참선수행에 더 집중 할 수 있을 것임.
 
제19강. 불자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
▶ 인간의 행위는 생물학적 본능, 자율신경계, 의지 개입행위에서 나오는데
열반에 이르게 할 행위를 인도해 줄 원리가 필요함
▶모든 것이 연결되이 있음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최대 다수 최대 중생의 최고 깨달음을 산출하는 방식으로 행동해야 함

제20강. 중도와 팔정도
▶아리스토텔레서의 덕(arete)는 기능상의 탁월함을 뜻하며 중도= 적절하다 라는 뜻을 가진 연결됨
8정도는 적절함을 취하게 하는 8가지의 길잡이로 인식하는 것이 합당함.

제21강. 화쟁과 일심
▶제설혼합주의= 진리는 하나이나 관점이 여래개일 뿐임
▶원효=화쟁사상,
의상=화엄사상
의천, 지눌= 선교 논쟁
1) 초기불교 2) 아비달마 3) 중관 4)유식 5)삼론 6) 기타:삼론, 천태, 화엄, 선 은
일심
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뛰는 여러명의 선수들


제22강. 무아와 인격체로서의 나
▶ 무아= 깨달음을 얻기 위한 진리
나=일상을 위해 필요한 개념
정체성이란 없지만 실용적으로 필요한 지식임= 속제

▶ 방편으로만 여겨져야 할 이차 지시어 또는 이차 개념으로서의 여래장과 불성을 마치 그것들이 형이상학적으로 실재(實在)하는 고정불변한 어떤 본성을 지칭한다면 개념의 실체화 또는 실재화(reification)의 오류를 범하는 것
데이비드 흄(David Hume)의 자아(自我 Self 참나 참마음)

제23강. 방편
▶방편(upaya)는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 깨달음을 위해 사용하는 적절한 내용과 방법임 

제24강. 미국 대학생들이 보는 불교의 문제점

인도의 유명론

- 타자(他者)의 배제(排除) - The Exclusion of the Other -
먼저 모든 보편자들이 그것들의 고유한 대상을 가리키는 일차 속성들(first-order properties)이 아니라 이러한 일차 속성들의 집합에 대한 이차 속성들(second-order properties)로 보아야 한다
유명론의 유래는 아포아론(Apoha theory) 아포란 ‘타자의 배제(the exclusion of the other)’를 뜻함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개별자들을 구별지어주는 술어들(이름들) 뿐이다. 그래서 그들의 견해가 유명론(唯名論)이라는 명칭을 갖게 된 것이다. 유명론자들이 그들의 존재론을 위해 필요로 하는 것은 오직 개별자들뿐이다. 술어들은 단지 이름들이기 때문에 존재세계에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들의 수를 늘리지 않는다. 또 그들의 존재론에 보편자가 없기 때문에 유명론에는 예화(instantiation)의 문제도 없다. 유명론자들에게는 이 세상에 예화되어야 할 추상적인 존재자란 없다.

- 일상생활의 필요를 충족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이차 단어들을 만들어 쓰는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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