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말 / 김소연
컵처럼 사는 법에 골몰한다
컵에게는 반대말이 없다 설거지를 하고서
잠시 엎어놓을 뿐
모자의 반대말은 알 필요가 없다
모자를 쓰고 외출을 할 뿐이다
모자를 쓰고 집에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게 가끔 궁금해지긴 하겠지만
눈동자 손길 입술, 너를 표현하는 너의 것에도 반대말은 없다
마침내 끝끝내 비로소, 이다지 애처로운 부사들에도 반대말은 없다
나를 어른이라고 부를 때
나를 여자라고 부를 때
반대말이 시소처럼 한쪽에서 솟구치려는 걸
지그시 눌러주어야만 한다
나를 시인이라고 부를 때에
나의 반대말들은 무용해진다
도시에서
변두리의 반대쪽을 알아채기 시작했을 때
지구에서 변두리가 어딘지 궁금한 적이 있었다
뱅글뱅글 지구의를 돌리며
이제 컵처럼 사는 법이
거의 완성되어간다
우편함이 반대말을 떨어뜨린다
나는 컵을 떨어뜨린다
완성의 반대말이 깨어진다
시집 <수학자의 아침> 문지.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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