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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양자역학=불교= 상호연결

by 책이랑 2021. 4. 13.

P. 73 독자적인 자기동일성이나 자성이 없는 연속성이 중관사상과 양자역학의 핵심 원리이다.

P. 122~123 일단 그것이 우리 자신 속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이해하면, 우리는 그것이 다른 사람들 속에서 작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너무나도 당연하게 독립적인 존재를 투사하는 과정에서 괴로움을 겪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강한 자비의 감정이 생긴다. 이렇게 하여 우리의 개인적인 경험은 보편화되고, 공성(空性)은 자비를 일으킨다. 바꾸어 말하면, 실재에 대한 깊은 지식은 보편적 자비를 일으킨다. 

P. 125~126 나는 언제나 내 자아를 확인하려고 애쓰고 있으며, 나 자신과 타인들에게 내가 얼마나 중요하고, 재능있고, 훌륭한 존재인가를 증명하려 한다. 물론 이것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가, 즉 실제적인 의미와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이 ‘누군가 콤플렉스’는 인간 조건에 해를 끼치는 부분일 뿐만 아니라, 우리를 자아의 감옥 속에 가두는 ‘창살’이다. 

P. 178 공(空)의 원리는 그것이 전통적인 중관사상의 논증에서 나온 것이든, 아니면 양자역학의 이해에서 나온 것이든 “당신이 있기 때문에 내가 있다”라는 고대 남아프리카의 우분투(Ubuntu) 정신과 깊이 동조한다. 나의 진정한 존재는 당신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입자건 사람이건 고립적이거나 독립적인 존재는 없다. 우리는 스스로 존재하는 개인들이라기보다는, 다른 사람, 공동체, 그리고 커다란 환경과 우리와의 상호 연결의 표현이다. 그래서 결국은 여러분이 아프면 내가 아프고, 여러분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해진다

P. 272공(空), 즉 독립적 존재가 없다는 것은 그 본성상 지속적인 변화를 보장한다. 직접적으로 공을 표현하고 있는 무상은 우주의 법칙이다.

도대체 지식이란 무엇인가. 이토록 정밀한 과학 세계를 이루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그 과학을 활용하여 탐욕만 채울 생각을 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이 세상이 상호 연결되었다는 사실에 눈뜨고, 모든 생명에 연민을 가져야만 한다. 모든 생명 있는 것과 환경을 위해 과학 지식을 활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는 암울하다.
우리 내면에 도사리는 욕망과 탐욕, 모든 부정적인 감정에는 실체가 없다. 그런 어두운 마음이 공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무엇으로도 실체 없는 탐욕을 만족하게 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면 비로소 모든 세상이 연결되어 있고, 서로 의존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지금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것들에 의지하고 있는 우리를 보자. 어느 하나가 사라지면, 연이어서 우리도 사라지게 된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지면, 마음속에서 자연히 자비의 마음이 피어오르게 된다. 이러한 마음은 과학을 올바른 방향으로 활용하도록 유도한다. 이처럼 양자역학의 세계관과 불교의 공이 말하는 ‘무자성(無自性)’의 이해는 어둠에서 빛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정신적, 심리적 변화의 토대가 된다. 따라서 과학 지식은 곧 자비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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