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후 8시로 시간을 옮겨 토론했습니다. 저자는 "정밀 독해, 역사적 맥락, 정치이론을 결합하는 관점에서 <논어>를 새롭게 해석하려는 시도"로 연재기사를 썼다고 했는데요, 우리도 두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면서 논어를 읽는 밥법, 논어읽기에 기대할 수 있는 바, '침묵'의 문제, 인과 예와 위선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토론 앞부분에 윤○선생님께서 논어의 구성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논어는 공자와 그의 제자들의 문답인데, 격언이나 금언 등의 내용으로 길지 않은 글들의 모음이라고 합니다. 긴 글도 한페이지 남짓이며, 논어의 각 편은 그 편 내용의 첫 두 글자를 따서 부른다고 합니다. (논어는 전20편, 482장,600여 문장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앞의 열 편을 상론(上論), 뒤의 열 편을 하론(下論)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270여 페이지의 '논어 에세이'를 읽으면서도, 논어가 어떤 책인지를 알아 볼 생각을 안했다니... 추석날 조카에게 말을 걸었다가 "당숙이란 무엇인가?"라는 대답을 들을 때 느낄 법한 당혹감이 밀려온 순간이었습니다. "~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자주자주 해보아야 하겠습니다.
두시간을 꽉 채워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다 기록하지는 못했고요, 같이 생각해보자고 해주신 질문들, 인상깊었던 구절 이어서 이야기 나눴던 부분만 적게 되었습니다.
다음 토론은 5월 17일(월) 저녁 8시 <다시, 올리브>입니다.
목차
[1] 책 읽은 소감
▶ context에 대한 언급이 좋았고
- 우상시하는 것들을 넘어서서 과연 그것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에 대해 말하는 것이 좋았다.
▶ 고전은 나무에 빗댄다면 '몸통'과 같은 느낌이 든다. 읽기가 힘들 때가 많지만 그렇게 씨름하다 보면 어느새 나중에돋아난 가지들을 이해하는 능력이 생겼다는 것 발견하게 된다.
* 삶과 세계를 읽을 수 있기 위하여 고전을 읽는다.매니페스토: 생각의 시체를 묻으러 왔다
고전은 변치 않는 근본문제에 대해 결정적인 답을 제공하기에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근본문제에 관련하여 상대적으로 나은 통찰과 자극을 주기에 유의미하다
그렇다면 <논어>를 왜 읽는가? 고전을 왜 읽는가? 실로 고전 텍스트를 읽는다고 해서 노화를 막거나, 우울증을 해결하거나, 요로결석을 치유하거나, 서구문명의 병폐를 극복하거나, 21세기 한국 정치의 대답을 찾거나, 환경 문제를 해결하거나, 현대인의 소외를 극복하거나, 자본주의의 병폐를 치유할 길은 없다. 고전 텍스트를 읽음을 통해서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은, 텍스트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삶과 세계는 텍스트이다. (p.17)
[2] 고기나누기- 정치적 커뮤니케이션
<맹자> ‘고자장’(告子章)에 따르면, 공자는 노(魯)나라 사구(司寇: 형벌이나 도난 등의 사안을 맡은 벼슬) 직책을 맡고 있다가 느닷없이 직장을 관두고 떠나버린 일이 있다. 제사가 끝났는데도 자신에게 제사 고기가 이르지 않자 쓰고 있던 면류관도 벗지 않은 채 노나라를 떠나 버린 것이다. 공자가 자신이 떠나는 진짜 이유에 대해서 침묵했으므로, 사람들은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댔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공자가 고기 때문에 떠났다고 생각했다.(不知者以爲爲肉也) 이를테면, 공자가 내심 너무너무 고기가 먹고 싶었는데 자신에게 고기를 주지 않자 그만 분노를 참을 수 없었던 탓이라고 보는 것이다. 물론 공자가 고기에 대해 중독에 가까운 무조건적인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런 추론도 합리적이리라. 그러나 공자는 고기에 관하여 매우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 제사에서 고기를 나누는 것은 배려/인정을 뜻한다.
노나라는 그것이 이미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인 것이고, 그래서 공자가 떠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다.
▶ 논어가 흥미로은 점은 공자를 완벽한 인간으로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논어에는 지금 이 장면처럼 공자에게 유리하지 않은 텍스트가 자주 보인다.
⑤ 삼가 말하기(understatement) - 떠나는 이유에 대해 침묵해야 할 때가 있다.
공자가 희망하였던 것은 소리 없는 작은 행위가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그런 공동체였다고 할 수 있다. 정치공동체란 일종의 해석공동체다. 커뮤니케이션이 거칠어진 나머지 구호와 폭력만이 만연하게 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커뮤니케이션이라 부를 수 없으며 곧 정치적 타락의 지표가 된다.그것은 공자가 개탄했던 당대 사회의 모습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논어> 속의 공자는 불필요한 과장(overstatement)을 비판하고, 침묵 및 삼가 말하기(understatement)를 옹호한다.(p.61)
[3] 텍스트에 나타나는 침묵/침묵에 가까운 생략 -섬세한 소통의 필요
▶서양사람들은 상황에서 그들은 '풍자/은유/비틀기'를 한다. 나 역시 이에 익숙하지 않아서 처음에는 이사람들은 왜 이렇게 꼬였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서양과 동양의 다른 점이 바로 이 부분인 것 같다.
▶ 동양에서는 그런 말을 '교언'이라고 하며 싫어한다.
▶ 현대에도 이런 상황에서 침묵을 하는 것이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편 동양적인 전통에서는 무언가를 언어로 표현하면 동시에, 그것만의 특수한 맥락을 잃어버리고 일반화 시키고, 그것을 지배하는 방법으로 삼으니까 경계했던 것 같다.
콘텍스트에 기반한 이러한 독해는, 침묵뿐 아니라 침묵에 가까운 “생략”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이 점을 설명하기 위해, 퀜틴 스키너는 에드워드 모건(E. M.) 포스터의 소설 <인도로 가는 길>을 예로 든다. <인도로 가는 길>은 “Weybridge, 1923”라는 간명한 두 단어로 끝난다. 이 두 단어를 이해하기 위해서 복잡한 문법이 필요하지는 않다. 포스터는 그저 <인도로 가는 길>을 1923년에 (런던 교외에 있는) 웨이브리지라는 곳에서 탈고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Weybridge, 1923”의 보다 깊은 의미는 당대의 관행을 함께 고려했을 때 비로소 드러난다.
이를테면, <인도로 가는 길>보다 불과 2년 전에 발표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의 마지막 페이지를 보라. 그곳에 나와 있는 “Trieste-Zürich-Paris 1914-1921”이라는 언명은 제임스 조이스가 트리에스테, 취리히, 파리를 떠도는 유목적인 삶을 살았으며, 그에 걸맞게 국제주의자 혹은 무정부주의자였음을 상징한다. 실로, 제임스 조이스는 20대 초에 자신이 속한 가족, 교회, 국가를 버리고, 이질적 문화들이 뒤섞여 있던 (현재 이탈리아 북동부) 소도시 트리에스테로 망명한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취리히로 옮겼고, 다시 파리로 이사하며, 그렇게 평생 해외를 떠돈다. 그리고 1914~1921년이라는 긴 기간은 그가 작품을 쓰는 데 바친 막대한 시간, 에너지, 고뇌를 상징하는 것 같다. 다시 말해서, “Trieste-Zürich-Paris 1914-1921”이라는 언명은, 제임스 조이스가 오랫동안 고뇌를 짊어진 채 다채로운 이방을 헤매어 다니지 않았으면 <율리시스>와 같은 걸작을 쓸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러한 이미지가 사람들의 뇌리에 박혀 있을 무렵, 포스터는 잘 알려지지 않은 웨이브리지라는 지명, 그리고 간단히 1923이라는 숫자만 적는다. 이러한 고의적인 “생략”은, 이른바 유목적 수선스러움에 대한 경멸, 그리고 고향을 떠나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조소를 담았다고 해석될 수 있다.
[4] 논어 읽기란 과연 무엇일까? 논어 주석읽기에 그치게 되는 것은 아닐까?
- 논어읽기를 하다 보면 논어에 대한 여러 주석을 읽게 되고, 점차 자신의 마음에 드는 주석을 선택하며 읽는 데 이르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내'가 논어 읽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일단 고전 되면 사람들 앞다퉈 이야기 자기 생각을 주석 형식 빌려 발표,
그렇게 발전한 주석사는 단순히 고전을 해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다양한 생각들을 담는 매개체가 된다.
법률적, 경제적,정치적 욕망이 반영되어 있는 흥미로운 자료, 다만 복합적, 역사적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5] 이 책을 읽고 나서 공자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공자의 불멸성-서투른 열정의 인간
비록 현실정치에서 실패했지만 납작하고 안이한 삶 경멸, 소소한 일상을 살더라도 끝내 위대한 것의 일부 되려 해
삶 속에서 분투했던 사람 결핍 느꼈기에 과잉을 꿈꾼 사람, 제자들은 그런 그를 사랑했고 ‘논어’를 남겨 그를 불멸케 했다
그러나 공자는 동시에 실패한 사람이었다. 정치라는 현실의 철로를 달리고 싶었으나 달리는 데 실패한 사람이었다. 파블로 네루다는 ‘질문의 책’이라는 시에서 “빗속에 우두커니 서 있는 기차보다/더 슬픈 게 세상에 있을까?”라고 노래한 적이 있다. 그러나 공자의 제자들이나 <논어>의 편집자는 유려한 예식의 집전자로서의 공자만큼이나 현실에서의 실패한 선생의 모습을 사랑했던 것 같다. 결국, 기적과는 인연이 멀었던 사람, 신이 아니라 인간에 불과했던 사람, 결핍을 느꼈기에 과잉을 꿈꾸었던 사람,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知其不可而爲之者)을 사랑했던 것 같다.
사실, 사람들은 때로 완벽하게 계산하고 행동하는 합리적 인간보다는 서투른 열정의 인간에게 불가항력적으로 끌리곤 하지 않던가. 누가 그랬던가, 완벽한 복근을 가진 사람보다는 쥘 수 있는 한 줌의 뱃살이 남아 있는 사람에게 더 끌리게 된다고.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매미 소리가 시끄럽다고 여기는 사람보다는 매미가 오래 살기를 바라며 흐느끼는 사람에게 매료된다고. 매료된 이들은 텍스트를 남기고, 남겨진 텍스트는 상대를 불멸케 한다.
[6] 논어에서의 '정치' 개념
논어에서의 '정치'는 가족간의 관계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논어에서 '정치'는 우리의 생활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인간은 모두 동의 없이 태어나지만 태어나고 나면 누군가 삶을 책임져야
공자의 관심은 효 자체보다 삶의 책임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논어’의 효의 대상은 소규모 가족 과도한 국가 활동은 제한하는 쪽
교육·복지·육아·노인돌봄 해결방안 바뀌는 시대 맞춰 새로운 답 요구
[7]仁 <논어>와 사랑(仁) - 신을 부정하지도 않고, 신과의 거리유지를 하는 이유
신이 침묵할 때 인간이 할 일은 무엇인가?
공자에 따르면, 신의 존재를 부정하려 들지도 말고 신과 거래하려 들지도 말고 스스로 신이 되려고 들지도 말고
(……) 신을 무시하지도 말고 신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도 말고 신과 거리를 유지하면서, 인간에게 허여된 일을 하다가 죽는 것이다
묵자가 상상하는 인간은 능동적 존재 신이 없는 중국 사회는 수평적 구조
공맹자도 바로 이런 식으로 말한 거다. 사람들은 신에게 뭔가 얻기 위해 기도하고 전례를 행하지만, 거기에 응답할 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렇지만 예를 배우는 것은 중요하다고. 예를 통해서 신에게 뭔가 얻어낼 수는 없지만, 예를 통해 인간은 비로소 인간끼리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게 되는 거라고
우리는 사랑을 발명해온 인류의 긴 역사의 한 부분에 <논어>를 위치시킬 수도 있다.(p.83)
사람들이 “더러운” 사회계약을 파기하고 마침내 오멜라스를 떠나고 난 뒤, 그 지하실의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정작 동정심과 정의감을 불러일으킨 그 아이는 여전히 고통 속에 있지는 않을까? 오멜라스를 떠나버린 사람들은 그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은 결국 정주하지 못하고 여전히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까? 정주했다면 그들은 지하실 없는 복지사회를 만들 수 있었을까? 도대체 어떤 사회계약을 만들었기에 그것이 가능했을까?(p.84)
이러한 질문이 쏟아지는 복잡한 정치 현실 속에서, 동정과 사랑은 더는 동일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사람들은 인간의 마음에 일어나는 정서적인 격동을 좀더 섬세하게 구별하기 시작한다. “소고기 사주는 사람을 주의하세요. 순수한 마음은 돼지고기까지입니다.” 돼지고기를 사주기 위해서는 동정심 정도로 충분하지만, 소고기를 사주기 위해서는 사랑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혹은, 돼지고기를 사주는 이는 “순수한” 동정심에서 그러는 것이지만, 소고기를 사줄 때는 뭔가 정치적 속셈에서 그러는 것이 아닐까? 혹은, 동정심은 처지가 좀더 나은 사람이 처지가 열악한 사람에게 베푸는 시혜이기에 결국 불평등을 조장하는 감정은 아닐까? 인간의 “사랑”은 이러한 질문들로 가득한 복잡한 정치 현실 속을 헤쳐 나가야 한다.(pp.85-86)
‘논어’의 주요 주제, 정교한 미움
- 미워하라, 정확하게 ─ 正
오롯한 이해와 공감 속에서 자기의 편견을 투사하지 않으면서 잘 안다고 스스로 기만하지 않으며 상대를 정확하게 미워할 수 있나? 인자는 모든 이 좋아하는 사람 아닌 미워할 사람을 미워할 줄 아는 사람 공정성 인식과 높은 공감능력 필요 / 무골호인과 아첨가는 지옥으로
안정복은 <천학문답>(天學問答)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덕으로 원수를 갚고 원한으로 원수를 갚지 말라고 하느님이 사람들에게 가르쳤다는데… 군주나 아버지의 원수를 두고 이런 식으로 가르친다면 정의를 해치는 바가 클 것이다.”(天主敎士, 以德報讐, 不以讐報讐… 若以君父之讐, 而以此爲敎, 則其害義大矣.)
그렇다면 지하철의 쩍벌남에 대해서 공자는 어떻게 했을까? 논어에서 딱 한번 공자가 직접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원양(原攘)이라는 이가 길가에 무식하게 틀어놓은 유행가처럼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 있자(夷俟), 공자는 그에게 “사람들에게 해만 끼치는 놈이다”(是爲賊)라고 일갈하며, 지팡이로 그의 정강이를 후려쳤다.(以杖叩其脛) 마치 정확한 미움을 실험하는 것처럼.(p93)
[8] 실패를 예감하며 실패로 전진하기- 정치인이 가져야 할 태도
1980년대 어느 고등학교의 윤리 교실. 그날 수업의 주제는 ‘유교 사상의 연원과 전개’와 ‘동양과 한국 사상의 현대적 의의’. 공자의 사상과 그것이 한국 사상에 미친 영향을 설명하려는 찰나, 엎드려 자고 있던 학생이 선생의 시야에 들어온다. 책상에 얼굴을 묻고 자고 있던 학생에게 살금살금 접근하는 데 성공한 우리의 윤리 선생. 그는 책상을 탁 치는 대신, 엎드린 학생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후려갈기고, 학생은 억 하고 깨어난다. 선잠에서 깨어나 어리둥절한 학생에게 선생은 속사포처럼 가르침을 퍼붓는다. “똑바로 앉아라! 졸린다고 해서 어째서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고 있나! 너희 학생들은 항상 게으르다! 여긴 한국이야! 너희들처럼 게을러서는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다는 것을 모르겠나?” 자신의 게으름 때문에 고시라도 떨어진 적이 있는 것일까. 그의 고함에는 울분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러나 뒤통수를 맞고 갑자기 깨어난 학생은,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 자신이 지금 교실에 있는지 대공분실에 있는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이다.
공자는 자고 있는 학생을 패지 않는다. 공자는 심지어 자고 있는 새마저 쏘지 않는다.(?不射宿) 그런 짓은 예(禮)에 어긋나는 일이므로. 목적이 모든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생각했다면, 혹은 새를 그저 많이 잡는 것이 야심이었다면, 깨어 있는 새는 물론, 자고 있는 새,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격언을 믿고 오늘따라 일찍 일어난 새, 그리고 불치병에 걸려 죽어가는 새까지 활을 쏘아서 잡았을 것이다 (pp.113-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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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기원전 551~479)가 정치적인 권력을 쥐었다고 한들 성공했을 것 같지는 않다. 그가 살던 시대는 만성적인 전쟁의 시대. 전국 시대(기원전 403∼221)에 이르면 진나라 통일 전까지 적어도 590회의 전쟁이 일어났다는데, 공자가 그때까지 살았던들 그 추세를 되돌릴 수 있었을까. 그와 같은 전쟁의 시대에 금속촉을 기꺼이 빼고 활을 쏘는 것 같은 비전은 시대가 원하던 부국강병책에 맞지 않을 운명이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공자나 그의 제자들은 해도 안 되는 줄 이미 아는 사람들(知其不可而爲之者)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무력에 의존하여 천하통일을 추구하기보다는, 지속적으로 실패하기를 선택한다. 작가 사뮈엘 베케트가 말했듯이, 그들은 승리하기보다는 다시 더 낫게 실패하기를 선택한다. 새를 맞히지 못할지언정 자는 새를 쏘지 않는 이의 위엄, 자청해서 실패를 선택하는 이의 위엄, 기어이 성취를 포기하는 데서 오는 위엄이 그들에게는 있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천하의 통일은 예를 통한 통치보다는 전쟁 기계로서 국가의 강화를 추구한 이들에 의해 달성되었다. 진시황제의 독재정치가 가속화되면서 공자와 그 제자들이 좋아했을 법한 운동권 서적들은 금서로 지정된다. 그와 같은 이데올로기 통제에도 불구하고, 통일왕조 진(秦)나라는 놀라울 정도로 빨리 무너진다. 진나라가 단명하자, 지식인들은 왜 그토록 강했던 진나라가 그토록 빨리 망하고 말았는지 원인을 찾고자 골몰한다. 진나라의 실패 이후, 한당(漢唐) 시대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이 대안적 이데올로기를 찾는 과정에서 <논어>는 정부에 의해 지원해야 할 텍스트로 마침내 채택된다. 그 뒤에도 정부의 간헐적인 애정의 대상이 되다가, 진시황에 버금가게 독재권을 휘둘렀던 명나라 초기 황제들에 의해 <논어>는 과거시험이라는 공무원 고시의 필수과목으로 완전히 정착한다. 한때 운동권 서적이었던 책이 본격적인 고시 수험서가 된 것이다. 실패자의 텍스트가 기득권의 텍스트가 된 것이다.
[9] 중용에 대해
중용은 단순한 산술적 중간 아냐 과해 보여도 상황에 적절하면 중용
역동적 상황 속 적절성 찾아내려 기존 규범에서 이탈할 수 있어야
원칙과 임기응변 조화시키는 경지 오랜 숙련 거친 소수에게만 가능
공자, 혼란기 ‘예’ 변화 필요 인정 융통성 발휘하는 리더십 중시해
그렇다고 해서 예를 무시하는 게 능사라는 말은 아니다. “더불어 배울 수 있다고 해서, 더불어 길을 갈 수는 없고, 더불어 길을 갈 수 있다고 해서, 더불어 확고히 예에 맞게 살 수 없고, 더불어 확고히 예에 맞게 살 수 있다고 해서, 더불어 상황에 융통성 있게 대응할 수는 없다.”(可與共學, 未可與適道, 可與適道, 未可與立, 可與立, 未可與權) 공자의 이 언명에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임기응변(權)이란, 규범에 맞추어 자신을 제대로 세울 수 있는(立) 경지를 완수한 사람에게나 가능한, 최후의 경지라는 사실이다. 원칙을 무시하는 이들이 중용이나 ‘권’을 핑계 삼아서 제멋대로 굴까 우려해서였을까, 공자는 중용을 구현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고 못박는다.(其至矣乎. 民鮮久矣.) 규범을 뛰어넘으려면 규범을 일단 숙지해야 하고, 장르를 비틀려면 일단 장르의 규칙을 알아야 하고, 장애물 경주에서 우승하려면 장애물을 우회하지 말고 뛰어넘어야 한다. 그것은 오랜 숙련을 거친 소수의 사람에게나 가능하다.
우유부단함은 중용이 아니다 ─ 權
규범의 기계적 이행이 아니라,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 규범을 적절히 적용하고, 때로 이탈하기도 하는 행위는, 마치 다양한 변주를 가능케 하는 음악과도 닮았다. 주례(周禮)는 중용이 음악의 덕임을 암시한 바 있고(以樂德?國子, 中和祗庸孝友), 논어는 음악이야말로 예에 맞추어 행동할 수 있는 경지 이후에 오는 최고의 경지라고 천명한 바 있다.(興於詩, 立於禮, 成於樂) 공자에게 음악은 그저 소리와 악기 이상의 것. 최고의 사람이 구현해낼 수 있는 경지의 대명사이다. “음악이라고 일컫고 음악이라고 일컫곤 하는데, 종과 북을 말하는 것이겠는가!”(樂云樂云, 鍾鼓云乎哉) 급진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에 가서는 음악처럼 조화를 이루는 각종 조처를 통해, 공동체는 위기로부터 구원되고 리더는 위대해질 기회를 얻는다.
[10] 예와 인의 관계
▶ 현대사회에서 '예'란 어떤 것일까?
인하지 않으면 예는 의미없나, 예를 반복하면 인 생겨날 수 있나,
인 없는 예는 위선이다? 위선의 빤스를 내려버리면 쓰레기 매립지를 봐야 할지도
그런데 위선이 나쁘기만 한 걸까요? 사람들이 무턱대고 ‘위선의 빤스’를 내려버리면 우리는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 안에 아름다운 내면 풍경이 아니라 쓰레기 매립지가 있다면 어떡하란 말입니까. 누가 위선의 장막 아래 덮어둔 쓰레기를 구태여 들여다보고 싶겠습니까? 들여다보고 싶다고요? 너 나 할 것 없이 다 같이 쓰레기라는 사실을 확인이라도 하고 싶은 건가요? 미국의 소설가 커트 보니것은 위선을 떠는 모습 말고 별도의 자아란 없으니, 위선 떠는 데 유의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죠.그렇다면 위선의 빤스를 입은 사회는 하의실종의 야만 상태보다는 나을 겁니다. 누가 아나요? 위선을 계속 떨다 보면, 예식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다 보면, 어떤 내면이 생겨날지도 모릅니다.
[11] 知- 메타시선 ─
앎의 한계와 인간 능력의 한계에 민감한 정신력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려면 자신을 바라보는 메타시선이 필요
인생을 두배로 살게 하지만 많은 에너지 필요한 고단한 일 자신을 끊임없이 다그쳐야 하는 삶
그러나 공자는 질문한다. 몰라도 아는 척을 하거나, 알아도 침묵하거나, 아는 것을 가지고 ‘꼰대질’을 하는 대신, 질문하기를 선택한다.이러한 태도는 신으로부터 복을 갈구하기 위해 예식을 일삼던 이들의 자세와 사뭇 다르다. 공자의 시대 이전에는, 그리고 공자의 시대에도, 심지어 공자의 시대 이후에도, 오랫동안 ‘안다는 것’은 인간사를 좌우하는 귀신의 뜻을 알아채는 것을 의미하곤 하였다. 그러나 제자 번지가 안다는 것에 대해 물었을 때, 공자는 “사람 세계의 합당함에 힘쓰고, 귀신을 공경하되 거리를 두면 知라고 할 수 있다.”(務民之義, 敬鬼神而遠之, 可謂知矣)고 대답한다. 귀신을 덮어놓고 경배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귀신을 공경하는 동시에 멀리하는 이 절묘한 자세보다는 차라리 쉬울지 모른다. 이 절묘한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상에 대한 메타 시선, 앎의 한계와 인간 능력의 한계에 민감한 정신력이 필요하다. 그런 정신력은 제자 자로가 죽음에 대해 물었을 때, 삶도 아직 모르겠는데, 죽음을 어찌 알겠느냐(未知生, 焉知死)라고 대답한 데에서도 드러난다. 자아 수양에 필수적인 이러한 정신력은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기존의 예가 더 이상 당연시되지 않을 때, 기복신앙에 의존해서만은 더 이상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힘들 때, 특히 필요하다.
[12]자성, 통치 엘리트에게 필요한 것
논어’, 자기통제 중요성 수차례 강조
자성은 자신이 자신에게 가하는 통제 자신의 못남을 적극 탐색하는 행위
그러나 공자가 말한 자기반성이란, 국가가 사람들 일반에 대해 행하는 통제가 아니라, 통치 엘리트 자신이 자신에게 가하는 통제이다. “안으로 반성하며 거리끼지 않으면, 무엇을 근심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랴?”는 말도 사마우(司馬牛)가 군자(君子)에 대해서 물었을 때 공자가 한 대답이었다. 또 공자는 못난 사람을 보면 속으로 자성하라는 취지의 말도 했다.(見不賢而內自省也) 주희(朱熹)에 따르면, 여기 나오는 자성이란 자신에게도 이러한 못남이 있지 않나 두려워하는 일이다.(內自省者, 恐己亦有是惡.) 즉 자성이란, 세끼 밥을 통해 자신에게 영양을 주는 행위나, 막연히 몽상에 빠져 있는 일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신의 못남을 탐색하는 행위, 즉 자기 파괴적 속성이 있는 행위이다. 자신의 못남을 탐색하는 행위는 고통스럽지만, 스스로 부과하는 고통이라는 면에서 국가가 가하는 고통과는 다르다.
공자는 제국의 신민으로서 자성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으나, 후대에 성립된 중국 제국은 자성이라는 아이디어를 활용한다. 신민들이 양심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통제를 하기를 기대한 것이다. 명나라 때 사상가이자 반란진압군 수장이었던 왕양명(王陽明)이 그러한 양심의 자기 통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한 인물이었다. 그것도 다름 아닌 자신이 반란을 진압한 지역에서. 국가 행정력이 불충분하여 적절한 치안을 제공하기 어려운 곳에서 차선책으로 고려할 수 있었던 것이, 사람이라면 모두 가지고 있다는 ‘양심’이었던 것이다. 국가의 힘이 충분히 미치지 않는 곳에서마저 사람들이 양심을 발휘하여 스스로 질서를 이루고 살아준다면, 국가 입장에서야 얼마나 좋겠는가. 가성비 좋은 질서 유지는 국가의 오랜 꿈이다.
21세기 한국형 파놉티콘- 국가의 그러한 꿈은 21세기 대한민국 수도 서울 마포구에서도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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