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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동아리/보늬샘독서동아리

고립의 시대(2022.02.21)

by 책이랑 2022. 2. 21.

2월 21일 8시  <고립의 시대> 로 토론했습니다. 책에는 저자가 포착한 세상 구석구석의 고립 현상이 잘 나와 있었습니다. 책 읽은 소감과 인상깊은 구절과 함께 생활에서의 경험, 감시자본주의에 대한 염려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 책의 부제는 How to Restore Human Connection in a World That's Pulling Apart  인데요.  세상이 어떤 방식으로 산산조각으로 찢어지고 있는지를 같이 살펴보고, 개인적인 행복도를 높이기 위해, 세상이 더 나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3월에는 다음의 책중 하나로 토론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 마음이  '포송포송'해지는 사랑이야기
- <썸>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고립의 시대
-The Lonely Century: How to Restore Human Connection in a World That's Pulling Apart 

노리나 허츠 지음, 홍정인 옮김/웅진지식하우스

우리 시대에 만연한 외로움과 그 사회 경제적 비용을 밀도 있게 분석하며 영국 출간 당시 주요 언론의 찬사를 받은 이 책『고립의 시대(The Lonely Century)』는 우리가 일하고 투표하고 소통하는 방식을 무너뜨리는 ‘고립 사회’의 근원을 파헤친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분열된 ‘우리’를 치유하고 코로나19로 무너진 사회를 재건할 것인가. 이 책이 바로 그 거대한 질문의 시작이 될 것이다.

 

목차

     

    [1] 책 읽은 소감

    ▶ 코로나를 겪은지 2년째 되고, 회복을 전망하고 있는 이 시기에 같이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코로나가 정신적/육체적인 건강에 미친 영향과  경제, 정치에 가지고 온 변화가 잘 서술되어 있다. 

    ▶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로 변화하면서 경쟁과 성장만에 촛점을 맞춰졌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서로에게 벽을 느끼게  되었고 이것은 정치부문에서의 변화를 만들었다.
    - 그러나 그런식으로 해서 경제를 발전시키는 거라고 했지만 형편이 크게 나아지지 않는 사람, 오히리 상황이 더 안좋아 지는 사람이 생겨났다.

    ▶ 고립이나 외로움의 문제를 경제/사회적 맥락에서 분석하는 부분이 좋았다.

    ▶ '외로워서 감옥을 택한 일본 여자 노인의 사례'가 놀라우면서도 놀랍지 않았다.  그 노인이 그런 선택을 왜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사이토 씨는 여성 재소자 시설인 도치기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 그녀는 적극적으로 교도소를 선택한 수많은 일본 노인 가운데 한명이다. 일본에서는 지난 20년 동안 65세 이상 노령층의 범죄건수가 4배로 급증했다.  p.16
    수감된 재소자들 가운데 다수가 감옥을 ˝집에서는 찾지 못하는 공동체˝를 경험할 수 있는 장소로 묘사한다. p.17
    그들에게 감옥은 *친구뿐만 아니라 *도움과 돌봄까지 제공되는 안식처였다. 

    ▶로봇이 더 많이 도입된다면 배려가 필요한 행동은 로봇에게만 의존하면서 인간사이의 배려행동은 더 약화되지 않을까 싶었다.  서로에게 친절하지 않고 배려가 없는 사회로 갈까 하는 우려가 생겼다.

    [2] 책을 읽으면서 생긴 행동 변화

    ▶ 일상에서 사소하지만 친절한 행동이 늘어났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려며 이웃에게 인사를 하거나 힘들어 하는 노인분께 말을 건내는 것,  까페, 독서회 등 커뮤니티라고 이름 붙여진 모임 외에 내가 지나는 길 등, 일상에서 하는 나의 작은 사회적 행동들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또한 친정 어머니의 식사와 약을 챙겨주는 일들이 힘들지만 내가 어머니를 챙겨주면서 행복을 맛본다.

    ▶이전에는 각자의 방에 들어가기가 바빴다면 코로나로 인해 더 긴~ 시간동안 오래 집에 있게 되면서, 아이들과 이야기 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읽고 있는 책에 대해 말하기도 하고, 같이 서점에 다녀오기도 했다.  작지만 금방 행복해지는 행동이다. 나의 일상에서 이런 시간을 찾으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

    ▶ 나 역시 일상에서 인간적인 접촉을 늘려 보려고 한다.  친구를 직접 만나는 것, 작은 인사를 하는 것 등.

    외로움Loneliness이란 혼자 있는 것as being alone과 같은 것이 아니다. 외로움 감정적 친밀감, 연결 욕구에 대한 반응이 충분하지 않아서 생기는 결핍감이다. 사람마다 편안함을 느끼는 수준의 접촉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진정으로 고독에 만족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연애 중이거나 겉보기에 폭넓은 친구층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깊은 외로움을 느낀다. 외로움은 숫자에 관한 것이 아니다. 외로움은 연결의 깊이, 자신이 인식되고 사랑받는 느낌에 관한 것이다. Loneliness is not about numbers. It’s about the depth of the connection, the feeling that you are being seen and loved. (저자가 본인의 페이스북에 공유한 가디언지 기사)
     https://www.theguardian.com/society/2021/jul/18/loneliness-coping-with-the-gap-where-friends-used-to-be

     

    사회만 우리에게 무언가를 하는게 아니라 우리도 사회에 무언가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회에 참여해 사회를 형성한다. 이 파괴적인 외로움의 여정을 중지시키고 상실된 공동체 의식과 통합의 감각을 회복하고자 한다면 우리가 반드시 취해야 할 단계들이 있으며 그 과정에서 절충(개인주의냐 공동체주의냐, 개인의 이익이냐 사회적 선이냐. 익명성이나 익숙함이나, 편의나 돌봄이나, 자기에게 옳은 것이나 공동체에최선인 것이나, 자유냐 동지애냐)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 선택이 서로 배타적인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가 아무 대가 없이 얻을 수 있다고 거짓되게 약속해온 자유의 일부는 포기해야 한다.  pp.32-33 -1장 〈지금은 외로운 세기다〉

     


     

    [3] 인상깊은 구절

    세계화, 도시화, 불평등 심화, 권력 비대칭에 의해, 인구구조의 변화, 이동성 증가, 기술 발달로 인한 혼란, 긴축정책에 의해 그리고 이제는 코로나바이러스가 불러일으킨 변화에 의해 외로움은 그 형태가 달라졌다. (중략) 우리시대 외로움의 징후는 우리가 정치인과 정치로부터 단절되어 있다는 느낌, 우리의 일과 일터에서 소외되어 있다는 느낌, 사회의 소득에서 배제되어 있다는 느낌, 스스로가 힘이 없고 무시당하는 존재라는 느낌까지 아우른다. 내가 정의하는 외로움은 단순히 남과 가까워지고 싶은 소망 이상을 의미한다. 그것은 누군가 내 말을 들어주고 나를봐주고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는 욕구, 힘을 갖고 싶은 욕구, 공정하고 다정하게 인격적으로 대우받고 싶은 욕구의 표현이다. 외로움에 대한 전통적인 척도는 이 가운데 일부만 포착할 뿐이다.  pp.23-24 -1장 〈지금은 외로운 세기다〉

     

    ▶ 아이들이 어렸을 때,  빗길에 교통사고가 났다. 100% 상대방의 과실이었지만 나도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았어야 했는데, 주부라고 하자 경찰이 '무직이군요'라고 했다. 그런 취급이 부당하다고 느껴 경찰에게 한마디를 했다. 그러나 남편은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런 취급은 내가 애쓰며 하고 있는 일, 기여하고 있는 바를 인정받지 못하고 사회의 구성원에서 배제되는 것이 기 때문이다. 그때의 그 느낌은 아직도 남아 있다.

    ■ 이슬아 작가-  모부/엄마급여=아빠급여*2 의 이유

    - 이슬아 작가의 글을 구독하고 있다. 작가는 어머니, 아버지를 지칭할 때 '모부'라는 말을 한다.  그리고  자신이 글을 쓰는데 필요한 일을  하기에  두분을 그 일에 고용했다고 하면서 비용을 지급한다고 한다. 어머니에게 2배의 임금을 드린다고 한다. 기여하는바가 2배 이상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슬아 작가의 확장은 현재 진행형이다. 시트콤을 염두에 둔 작품도 이미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아시아 최초의 가녀장제에 대한 글”이라며 “서른 살 딸이 부모를 고용해서 일을 꾸려가는, 사실 저희 가족 (출판사) 이야기를 토대로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너무 잘 쓰고 싶어서 못쓰겠어요”라고. 

    https://www.sullalee.com/hey-uhm-publisher


    [4] 적대적 건축물과 포용적 건축물

    저자는 5장  도시는 어떻게 그들을 배제하는가에서 결과적으로 사람사이의 직접접촉을 감소 시키는 공공시설, 건축물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주민을 포용하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 시카고공공도서관 개발사업-주택개발+공동체의 중심이 되는 도서관
     마을 상점,  바르셀로나의 차량이 다니지 않는  슈퍼블록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고요

    - 런던 킹스칼리지의 타운하우스- 상호작용을 촉진하는 공간설계

    저자가 본인의 페이스북에 런던에 있는 대학의 킹스칼리지의 타운하우스를 소개 했어요. 
    1층은 넓직한 계단이 있는 상호작용을 위한 공간, 공연장이고, 그 둘레로 댄스연습실이 있고
    2층은 그룹 활동을 위한 공간 3층은 속삭이는 정도의 소음이 허용되는 학습공간, 4층은 창너머로 템즈강이 보이는 조용한 학습공간이고 5층은 옥상카페네요.  상호작용을 적극적으로 촉진하는 공간으로 이름있는 건축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5] 9장 알렉사와 로봇만이 웃게 한다.

    9장 알렉사와 섹스 로봇만이 웃게 한다
    포옹을 팝니다 | 그녀는 나를 웃게 해요 | 무생물 사랑 | 동료 병사들 | 소셜 로봇이 온다 | 우리 모두를 위한 친구 | 섹스에 관해 이야기해봅시다 | 알렉사의 신기술은 ‘불친절?’ | 그냥 날 로봇이랑 내버려둬 | 더 인간적이기 위한 도전

     

    외로움이 순수하게 개인의 문제일 때는 로봇이 진정으로 의미 있는 역할을 해줄 수 있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특히 친구가 될 수 없는무언가가 로봇에 내재해 있으리라고 추측하는 것은 범주 오류다. 당신이 지금까지 살면서 맺은 우정의 폭을 생각해보자. 어떤 경우에는 동등한 관계였겠지만 언제나 그렇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일부 관계에서는 가치관이 잘 맞고 관심사가 통했겠지만 일부 관계에서는 친구의 진짜 생각과 느낌을 가늠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과 로봇의우정은 비록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완벽한 우정(이른바 '덕을 추구하는 우정의 기준을 전부 만족시키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함께 대화하고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을 갈망하는 사람의 인간적 필요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어떤 면에서 로봇은 돌봄, 지지, 애정을 모든 사람(늙는 젊든, 추하든 아름답든)에게 건네기 때문에 외로움에 평등주의적 해결책을 제시해줄 수도 있다.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아무리 노쇠하고 인기나 매력이 없어도 로봇은 우리를 위해 늘 거기에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로봇을 살 경제적 능력이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외로움은 순수하게 개인의 문제일 수 없다. 아울러 비록 로봇이 우리가 혼자인 느낌을 덜 받게 해주고 서로 연결되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켜준다고 해도 우리는 그 대가로 시로를 인간적으로 대하고 함께 관계 맺는 방식을 잃을 수도 있다. 우리가 로봇을 대하는 태도가 우리가 서로를 대하는 방식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사람들이 로봇에게 매우 불친절할 때도 있다는 것을, 심지어 잔인할 때도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pp.307-308

    일상에 도입된 로봇에 관한 소개가 있다. 돌봄과 섹스에 로봇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 돌봄분야에서 경제성이 없어  이루어지지 못한 서비스를  로봇으로 커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 노인 돌봄 인형 효돌

    https://hyodol.com/product/list.html?cate_no=23 

    ▶ 책에 로봇에 애착을 느끼는 현상이 나와 있지만, 인간에게도 질리듯이 로봇에게도 질릴 것이고, 버릴 것이다.  (어쩌면 생각보다  쉽게 버릴 수 있다.) 
     

    그리고 사회 전체 차원에서 우리가 남을 돌보는 행위를 더는 하지 않으면 우리는 근본적인 뭔가를 상실하게 된다. 우리기 서로에게 필요하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서로의 요구나 권리나 욕구를 존중하겠는가? 기계가 보살핌의 영역에서 인간을 대체하고 돌보미의 역할을 자처하는 세계는 포용적 민주주의, 호혜성, 연민, 돌봄과 같은 토대와 근본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세계다.

    21세기에 점차 확대되어가는 외로움 위기에 기술이 줄 수 있는 답은 제한적이다. 그리고 여기에도 다양한 위험이 수반된다. 가상 비서, 소셜 로봇, 심지어 섹스 로봇도 개인적 차원에서의 외로움 완화에는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이러한 기술이(그에 따른 이득이 경제적인 것이든 다른 어떤 것이든) 인간 사이의 접촉, 인간의 우정과 돌봄을희생하면서까지 도입되어서도 안 된다. 잠재적인 사회적 여파가 지나치게 심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교실 현장에서 스크린이 아이들의 교육에 일익이 될 수는 있지만 결코 인간 교사를 대체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과 맥을 같이한다.

    오히려 우리는 로봇공학, AI, 감성 AI의 발전을 우리 각자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야 한다. 그것은 우리 각자가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를높이고, 주변 사람을 더 잘 돌보고, 서로를 조금 더 보살피고, 남에게더 공감적이고 이타적이 되기 위한 도전, 언제나 로봇보다 더 인간적이기 위해 자기 자신의 한계를 밀어붙이는 도전, 그리고 어쩌면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로봇으로부터도 배우는 도전이 될 것이다.  p.319

     

    [6] 10장 외로움 경제, 접촉하고 연결하라

    모든 외로운 사람들 | 마지막 한 조각 | 상업화된 공동체 | ‘공유 경제’는 또다른 속임일까 | 우리가 아닌 나 | 공동체는 돈으로 살 수 없고 연습이 필요하다 | 배타적인 공동체

    하지만 상업화된 공동체가 소속감을 어떤 방식으로 느끼게 해주든 여기에는 여전히 포용의 문제가 남는다. 입장료가 저렴한 한국의 콜라텍, 연금 생활자와 미취업자에게 수업료를 할인해주는 요가원, 보조금을 받는 독서회는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 예외적인 사례다. 상업화된 공동체에 관해서라면 대개의 경우 충분한 비용을 내지 않으면 초대받지 못한다. 

    ▶ 1공유경제를 다루었는데, 공유경제의 가치를 같이 하는 사람이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잘 실현이 안된다고 한다.  (돈을 버는게 목적이고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진정한 목표는 아니기 때문에??)

    ▶ 여러 커뮤니티를 경험한 '커뮤니티 덕후'가  말하길 서로 지긋지긋해지는 지점을 지나, 미운정까지 들어야 공동체가 형성된다고 한다. 그런 일은 당연히 생긴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생각해보니 타는 목마름으로 찾던 '가족 같은 공동체' '효리네 민박'은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만 볼 수 있다. 다들 와르르 웃고, 음식을 하는 그러한 공동체는 그 뒤에 정말 수많은 고민과 갈등, 삐짐, 투덜거림, 온갖 집안일, 피곤함 등등이 동반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갈등, 특히 내적 갈등이 묘사가 되겠는가? 그러니 다들 그 어려움을 쏙- 빼놓고 아름다운 장면, 함께 요리하는 장면만 보면서 일명 '커뮤니티' 환상만 잔뜩 커진 게 아닌가 싶다. 
    사실 같이 살면 속상한 날들이 더 많고, 혼자 집안일하면서 투덜거리는 날들이 더 많은데 말입니다! 아!
    -8화 가족의 탄생 중에서

     

     

    [브런치북] 커뮤니티 덕후의 탄생

    아마도 우리는 유사 이래 가장 외로운 세대일 것이다. 사람 냄새를 찾아서 훌훌 떠났다. 흔한 퇴사 후 세계여행일 수도 있었고, 남들은 디지털 노마드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난 그냥 사람이 겁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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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판, 번역판 책표지들, 기사 일러스트레이션입니다.

     

    영어판 표지

    킨들판 / 독일어판 표지

    이탈리아 번역본 표지
    일본어 번역본 표지
    책소개 기사에 있었던 일러스트입니다.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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