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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동아리/보늬샘독서동아리

나목(박완서, 2024.1.22)

by 책이랑 2024. 1. 23.

1월 22일 월요일, 보늬샘 1월 모임을 했습니다.  저녁의 모임을 기다리면서 하루를 잘 보냈던것 같습니다. 오랫만에 O미쌤도 참석하셔서 더욱 반가운 모임이었습니다.


이날은 박완서 작가의 등단작인 <나목>으로 토론했는데요, 1970년의 작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생생했습니다. 책 읽은 소감, 박완서 작가의 등단과 박수근 작가와의 인연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고 옥희도씨와 어머니 등 등장인물들에 대한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저는 책을 읽을 때 어머니에 대한 분노가 아주 컸고, 토론을 하면서도 그랬는데요,  토론끝에는 어머니를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되었어요.  여성이 '아들'의 '어머니'였을 때만 가치있는 존재로 여겨졌던 탓이겠지요. 전쟁으로 인해 많은 것이 흔들린 시기에 그 모순이 더 잘 보이게 된거라는 논문의 귀절에 과연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목>이 작가의 등단작이면서도 박완서 작가의 작품에서 되풀이 되는 모티브가 있기에 논문이 많이 있었는데요, 그중에 박완서 작가가 40살에 등단한 사회적 배경을 짚은 논문이 인상적이었어요.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 또 생각나는 대목이었습니다. 물적, 사회적 토대가 무르 익어야 가능했다는 것이지요. 또  어제 토론에서 수O쌤이  음식에 대한 서술이 인상적이었다고 했었는데요, 박완서 작가의 작품에 나타나는 '음식'을 주제로 쓴 논문도 있어서 반가웠읍니다. 

등장인물들의 모자란 점에 대해 아쉬워하고 화내고 했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전쟁은 정말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것으로 생각이 모아졌어요.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에 대한 측은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모진일을 겪고도 계속 살아가려면 나목을 보고도 이파리가 무성해지고 찬란해질 것을 기대하는 마음이 있어야 할 거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2월에는 만나서 모임을 하기로 했습니다. 한국문학의 품격을 높여주는 작가 라는 이야기를 듣는 권여선 의 <각각의 계절>로 토론하기로 했습니다.

 

목차

    책소개: 나목

     

    나목 - 10점
    박완서 지음/세계사
     

     

    '박완서 소설전집 결정판' 1권. 1.4후퇴 후, 암담하고 불안한 시기에 텅 빈 서울에 남겨진 사람들의 전쟁의 상흔과 사랑, 예술에 대한 사랑 등 생생한 이야기를 PX 초상화부에 근무하는 스무 살 여성의 시각에서 담아낸 작품이다. 박완서 작가가 스무 살에 PX 초상화부에 근무하며 만난 故박수근 화백을 떠올리며 쓴 소설이다.

    박완서는 1970년, 제1회 「여성동아」 여류 장편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며 마흔에 작가로 데뷔했다. <나목>은 박완서 작가의 대표작인 동시에 '40세에 썼지만, 가히 20세 미만의 젊고 착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쓴 가장 사랑한 작품이기도 하다.

     

    ※ 박완서 작가의 <나목>을 다룬 논문들

    1 한국 전쟁기 모녀 관계 중심 여성 서사의 계보화 및 구술사/생활사적 성격 탐구 –박완서 『나목』, 황정은 『연년세세』를 중심으로
    2 모성으로부터 거부당한 딸의 욕망 -박완서 『나목』론-
    3 박완서 소설에 나타난 사랑의 의미 - 『나목』, 『목마른 계절』, 『그 남자네 집』을 중심으로
    4 살아남아 집에 갇힌 남자 : 박완서 소설 『도시의 흉년』에 나타난 돌봄의 감옥과 이동성 없는 남성 주체
    5 체험주의적 상상력을 통해 본 박완서 초기 장편소설 연구 -「나목」, 『목마른 계절』을 중심으로
    6 박완서 소설과 잠의 젠더화 : 『나목』과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대상으로
    7 1960년대 근대화와 '보통' 여성의 문학 행위 - 박완서의 『나목』 창작 및 등단 과정을 중심으로
    8 박완서 자서전 소설에 나타난 사랑 연구 : 『나목』과 『그 남자네 집』을 중심으로
    9 박완서 소설에 나타난 결혼 양상 연구
    10 텍스트 마이닝을 활용한 박완서 문학의 키워드 재생산 : 국내논문과 단편소설을 중심으로
    11 박완서의 장편소설에 나타난 음식의 문학적 재현과 의미
    12 1970년대 여성문학장의 형성과 '보통' 여성의 작가적 시민권 주장 —박완서를 중심으로
    13 『나목』에 나타난 자아 성장 연구
    14 『나목』의 토포필리아 연구
    15 박완서의 『나목』에 나타난 여성의 탈장소와 이동성의 주체
    16 박완서 소설 속 미군 피엑스의미국 표상과 인간상품화 양상
    17 박완서의 『도시의 흉년』 에 나타난 '나'의 관계 양상 연구
    18 박완서 소설 인물의 방어기제 연구 : 『나목』 , 『오만과 몽상』을 중심으로
    19 박완서 소설의 여성적 주체 양상 연구
    20 박완서 소설에 나타난 사랑의 탈낭만화

    [1] 책 읽은 소감

    ▶ 이런 책을 습작없이 쓸 수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고, 박수근 작가와 인연의 내용이 궁금해서 읽어보고 싶었다.
    - 박완서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증언'하는 것이 글을 쓰는 동기임을 밝히기도 했다.

     연기가 오르는 집이 어쩌면 한 집도 없단 말인가. 형무소에 인공기라도 꽂혀 있다면 오히려 덜 무서울 것 같았다. 이 큰 도시에 우리만 남아 있다. 이 거대한 공허를 보는 것도 나 혼자뿐이고 앞으로 닥칠 미지의 사태를 보는 것도 우리뿐이라니.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차라리 우리도 감쪽같이 소멸할 방법이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그때 문득 막다른 골목까지 쫓긴 도망자가 휙 돌아서는 것처럼 찰나적으로 사고의 전환이 왔다. 나만 보았다는데 무슨 뜻이 있을 것 같았다. 우리만 여기 남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약한 우연이 엎치고 덮쳤던가. 그래,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그거야말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다. 증언할 게 어찌 이 거대한 공허뿐이랴.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지. 그래야 난 벌레를 벗어날 수가 있다. 그건 앞으로 언젠가 글을 쓸 것 같은 예감이었다. 그 예감이 공포를 몰아 냈다. 조금밖에 없는 식량도 걱정이 안 됐다. 다닥다닥 붙은 빈집들이 식량으로 보였다. 집집마다. 설마 밀가루 몇줌 보리쌀 한두 됫박쯤 없을라구. 나는 벌써 빈집을 털 계획까지 세워놓고 있었기 때문에 목구멍이 포도청도 겁나지 않았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세계사, 2012, pp.282~283)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4944813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소설전집 결정판 19권. 자신의 경험을 소설 소재로 녹여내 왔던 박완서가 오롯이 본인의 경험만을 써내려간 자전적 이야기다. 일제강점기 국민학생으로서의 기억, 창씨개명 경험, 세계2

    www.aladin.co.kr

     

    '40대 등단'이라는 이력이 인상적이다.
    -1960년대 들어 여성들이 비로소 문학행위에 참여할 수 있는 시간적, 경제적 여유를 가지게 됨
    - 박완서 작가 역시 막내가 유치원에 들어간 때라고 한다.

    “제가 마흔에 글 쓰기를 시작한 걸 가지고 왜 하필 그때였나, 그동안은 어떻게 참았냐 하시는 분들이 더러 있는데, 제겐 막내까지 유치원에 들어 간 바로 그 당시가 다시 뭔가를 시작하기에 가장 적합한 때였습니다.”

    이나리, <불을 껴안은 얼음, 소설가 박완서>, ≪신동아≫, 2003.7, 279면.

     

    1960년대 근대화와 ‘보통’ 여성의 문학 행위 -박완서의 󰡔나목󰡕 창작 및 등단 과정을 중심으로
    한 경 희*1)
    현대소설연구 제78호 2020.6 365 - 411 (47page)
    http://www.jkfr.co.kr/xml/24528/24528.pdf


    1960년대는 한국 여성들의 문학 행위에 있어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던 시기였다. 근대화 및 경제발전에 의해 경제력 향상, 가옥 구조 변화, 가전제품 도입, 가족 규모 축소 등이 일어남에 따라 그간 문학 행위를 할 수 없었던 여성들도 문학 행위에 참여할 수 있는 시간적․경제적 여유를 점차 가지게 된 시기였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 중산층 여성들이 새로운 소비층으로 부상해감에 따라 일간지, 시사지, 여성지, 라디오, TV 등의 대중매체들은 여성 일반을 상대로 담론 장을 개방하였으며, 그 결과 상류층 엘리트 여성들만 가능했던 문학 행위가 대중화되었다. 새로운 여성 독자층의 부상은 여성문학의 감성 구조를 변화해나갔다. ‘여류적’ 경향이라 일컬어지는 불안, 고독, 자폐의 관념적 정서가 아닌 생활의 활기를 공유할 수 있는 사실적인 읽을거리들에 대한 수요가 높아졌으며, 이는 여성문학의 물적 기반이었던 여성지의 세대교체를 낳았다. ‘교양’ 함양을 모토로 1955년 창간된 ≪여원≫이 1970년에 폐간되고, 1967년에 ‘실용’을 모토로 ≪여성동아≫가 창간된 것은 이러한 사정 때문이었다. ≪여성동아≫는 ‘여류장편소설공모’를 통해 새로운 독자층으로 부상한 서울 중산층 여성들을 문학 생산자로서 ‘정식’ 자리매김하였다. 

    서울 중산층 가정의 20년 차 전업주부이자, 미성년 자녀가 5명 있었던 40세의 박완서가 소설을 쓸 수 있었던 것도 이와 같은 시공간적 맥락 속에서 비로소 가능한 것이었다. 냉장고와 TV 같은 가전제품의 도입과 육아 부담의 감소가 박완서로 하여금 글을 쓸 시간을 주었으며, 여성 대중에게 전업 작가의 길을 열어준 ≪여성동아≫의 ‘여류장편소설공모’와 같은 제도가 신설되었기에 비로소 작가가 될 수 있었다. 

    제3회 ≪여성동아≫ ‘여류장편소설공모’ 당선작이자 박완서의 첫 소설 󰡔나목󰡕(1970)은 전후 여류 문예적 경향을 탈피하고 ‘생활’ 감수성을 바탕으로 재구조화되고 있던 1960년대 중후반 여성서사문화 속에서 쓰인 소설로, 박완서라는 작가가 세대․계층․젠더․지역적 특성이 교차하는 담론 집단 속에서 구성되었음을 보여준다󰡔나목󰡕의 모티프가 되었던 박수
    근이라는 선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는, 당대의 사회적 변혁을 평범한 전업주부인 자신(들)의 입장에서 어떻게 경험/해석하고 있는지 ‘생활수기’의 형식으로 의사소통하고자 했던 도시 중산층 여성 전체 분위기 속에서 박완서에게 묘사의 대상으로 떠올랐던 것이었다. 박완서는 이 전달의 작업을 유별히 생생하고 강렬하게 잘 할 수 있었기에 전문적 문학 행위자가 
    되었다. 그러나 이 사실이 박완서가 평범한 전업주부이기를 그쳤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박완서의 초기 작품 󰡔나목󰡕(1970)과 한발기 (1973)가 변화하는 사회에 따른 작가 개인의 반응뿐만 아니라 당대 여성 일반의 공동의 의미를 띠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 오래된 소설이라 주저되었지만 읽기 시작하면서 한번에 읽히는 '가독성'에 놀랐다.

    px가 있었다는 명동신세계백화점이 있는 충무로에서 중앙우체국을 지나 을지로, 화신 백화점 앞을 지나 계동에 있는 집까지의 퇴근길에 대한 묘사가 생생했다. 

    -이전의 여성 작가들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작품으로서 필력, 구성, 주제의식 등 후대의 여성작가들이 의지 할수 있는 '선배여성작가'가 탄생한 순간이다.

    ▶ 문장이 수려하고 섬세하다고도 볼 수 있기도 하지만 문장이 길어 읽기 어려웠다.

     

    [2] 등장인물들

    - 옥희도

    ▶ 의지가 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시기에 옥희도는 이경이가 기대고 싶은 존재였을 것 같다.
    ▶ 모두 먹고 살기에만 열을 올리고 있을 때  유일하게  '예술'로 인간다음을 추구하는 인물이기에 끌렸을 것 같다. 

    “김장철 소스리 바람에 떠는 나목, 이제 막 마지막 낙엽을 끝낸 김장철 나목이기에 봄은 아직 멀건만 그의 수심엔 봄에의 향기가 애닯도록 절실하다.  그러나 보채지 않고 늠름하게, 여러 가지들이 빈틈없이 완전한 조화를 이룬 채 서 있는 나목, 그 옆을 지나는 춥디추운 김장철 여인들.

    여인들의 눈앞엔 겨울이 있고, 나목에겐 아직 멀지만 봄에의 믿음이 있다.봄에의 믿음. 나목을 저리도 의연하게 함이 바로 봄에의 믿음이리라. 나는 홀연히 옥희도 씨가 바로 저 나목이었음을 안다. 그가 불우했던 시절, 온 민족이 암담했던 시절, 그 시절을 그는 바로 저 김장철의 나목처럼 살았음을 나는 알고 있다.” p.376

     

    - 어머니

    ▶" 어쩌면 하늘도 무심하시지. 아들들은 몽땅 잡아가시고 계집애만 남겨놓으셨노." (p.302)"
    라는 어머니의 말에 정말 놀랐었다. 어머니에게 온전한 인간이 아닌 것에 분노하는 주인공의 심정에 깊이 공감했다.

    어머니가 별안간 눈을 크게 떴다. 처음엔 눈이 부신 듯이 가늘게그러다가 점점 크게 열리며 내 눈과 마주쳤다.
    "엄마, 나예요. 경아."
    나는 벅찬 탄성을 질렀다. 참으로 오랜만에 어머니의 눈에 부연안개가 걷히고 어떤 감정이 담겼다. 나는 내 시선을 조금이라도 어머니로부터 비끼면 모처럼 돌아온 어머니의 영혼이 다시 훌쩍 떠나버릴 것 같아 열심히 어머니의 눈에 눈을 맞추었다.
    그러나 빛나던 어머니의 눈이 점점 귀찮다는 듯이 게슴츠레 감기며 나에게 잡혔던 손을 슬그머니 빼내고 부시시 돌아눕더니 휴 하고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을 쉬었다.
    "어쩌면 하늘도 무심하시지. 아들들은 몽땅 잡아가시고 계집애만 남겨놓으셨노."
    나는 비실비실 일어섰다. 간신히 안방 미닫이를 열고 대청으로나왔다. 시야가 부옇게 흐려 보였다. 나는 그 부연 것을 헤치려고자꾸만 눈을 꿈벅이며 북창문을 열었다. 우수수하고 스산한 바람이치마폭으로 펄렁 안겨왔다. 나는 맥없이 몸을 떨었다. 바람이 다시뒷마당을 골고루 휩쓸었다. 솨아 하고 정원수들이 상쾌하고도 춥디추운 소리를 냈다. 나는 비로소 자지러지게 노오란 은행나무를 보았다. 화려한 광경이었다.

    그는 얼마나 풍부한 의상을 걸쳤기에 저렇게 노오란 빛들을 마구쏟아놓고도 저렇게 변함없이 아름다울 수 있는 걸까? 그것은 꽃보다도 훨씬 찬란했다.
    나는 휘청휘청 뒷마당으로 내려섰다. 나무 밑은 노오란 융단을깐 것처럼 알맞게 푹신했다. 나는 그 화려한 융단 위에 몸을 던졌다. '어쩌면 계집애만 남겨놓으셨노 원성과도 같은, 주문과도 같은 끔찍한 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그만 그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또 흔들었다. 그러고도 모자라 몸을 뒹굴렸다. 우수수 금빛 조각들이 때로는 한 잎 두잎 날고, 때로는 한꺼번에 쏟아져왔다.
    나는 돌연 뒹굴기를 멈추고 세차게 흐느꼈다. 오열은 한번 시작하자 멈출 수가 없었다. 마치 노오란 잎들이 땅으로 쏟아지듯이 나는 그렇게 울었다. 노오란 잎이 하나라도 나무에 있는 한 낙엽은 계속될 것이고, 나는 내 속에 축적된 눈물만큼만 울면 되는 것이다.
    조금치의 슬픔도 동반되지 않은 그냥 순수한 울음일 따름인 울음끝에 나는 부드러운 융단 위에서 혼곤한 숙면에 빠졌다.
    그 후부터 나는 어머니의 병상을 지키기보다는 은행나무 밑에서많은 시간을 보냈다.
    아무리 쏟아져도 다할 날이 없을 것같이 풍성하던 황금빛 의상도점점 희박해갔다. 나는 두터운 융단 위에 누워, 성깃한 노란 잎 사이로 푸른 하늘을 마음껏 바라볼 수 있었다. 나는 그런 시간이 좋았다. 무엇보다도 살아 있다는 것이 조금도 거리낌없어 좋았다.
    그날 이후 나는 어머니를 될 수 있는 대로 피하고 있었다. (pp.302-303)

     

    ▶'망가진 인간'에 대한 묘사가 사실적이다.

    ● 이경이 옥희도의 집에서 자고 온날 어머니는 이경이를 마중나왔던 건가?

    ▶확실하지 않다. 근거가 없지만 이경이 꾸며서 말한 대목이 나온다.

    옥희도 씨가 부인을 앞세우고 들어왔다. 다른 환쟁이들은 어제부터 사랑에서 제일 떠들썩한 조개 노릇을 하고 있는데 그에겐 부음이 늦게 간 모양이었다.
    나는 아주 서툰 상제였지만 옥희도 씨 부부의 조상도 아주 서툴렀다. 특히 그녀는 아무 말도 못하고 입만 쭝깃대다가 맑은 눈이젖어갔다.
    검정 세루 두루마기 밑으로 검정 치마가 엿보이는 검은 차림의 그녀는 차라리 나보다 더 창백했다. 그러나 물론 태수의 형수처럼 곡을 하는 일은 없이 눈물 어린 눈을 천장께로 돌리고 두루마기와 같은 천의 숄을 벗었다.
    흰 동정과 우아한 목이 드러났다. 나는 그녀에게 몸을 던졌다. 그리고 처음으로 서럽게 서럽게 호곡했다.
    "어쩌다 이런 일을…………."
    그녀도 흐느끼며 겨우 한마디 했다. 나는 한동안 세찬 호곡을 가라앉히면서 띄엄띄엄
    "저 때문이었어요. 저 때문이란 말예요. 그때 있잖아요? 제가 아주머니댁에서 자고 온 날 어머니는 밤새, 저 골목 밖에서 떨면서 저를 기다리셨대요. 노인네가 그 추운 밤에 그래서 그만 급성 폐렴이돼서 그만 그만...."
    나는 다시 울음을 이었다.
    "그랬군요. 어쩌면 그랬군요."
    그녀가 내 등을 어루만졌다. 그녀는 딴 아무 말도 안했지만 그녀의 부드러운 손길로 나는 충분히 위로받고 있었다.

    "그랬구만 쯧쯧.
    사돈댁이 또 한 번 울먹한 소리를 하며 치마끈으로 눈물을 찍어내는 눈치였다.
    나의 한마디로 어머니의 죽음에 생판 새로운 뜻이 주어지고 안방에 모여 앉은 여자 조객들은 숙연한 채 한동안 말들을 잊고 있었다.
    나의 호곡은 제풀에 훌쩍임으로 변하고 마침내 벗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이 나 때문이라는 생각에서도 차츰 꿈에서 깨끗이 깨어났다.
    나는 그런 엉뚱한 생각 때문에 호곡을 했는지 호곡을 하고 싶어 그런 엉뚱한 생각을 꾸며댔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무튼 늦게나마 다행히 그 생각에서 완전히 깨어났다. 그리고 적지 아니 당혹했다. 어쩌자고 나는 또다시 또 하나의 죽음의 핑계가 되려는 것일까?
    그럴 수는 없었다. 또다시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목이 긴 여자의 우아한 어깨에서 잠깐 슬픈 꿈을 꾸고 싶었을뿐인데. 슬프고도 좀 아름다운, 그러나 어리석은 꿈을 꾼 것뿐인데.(pp.347-348)

    - 태수

    ▶ 작품이 쓰여진 1970년의 분위기를 짐작할 때,  미국에 대한 태수의 비판적인 발언은 이례적이고 '용감'한 것 같다.

    ▶젊은 남성으로서 평범하고 건강한 욕구를 지녔다고 생각해서 호감이었다.
    전쟁시기에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생존으로 볼 때, 적합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 시궁창 같은 파티 소리, 제발 그만해요. 성인이 되어 신사복차림으로 사랑하는 여자를 동반하고 파티에 가는 꿈쯤은 평범한 사내 녀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꾸는 꿈이죠. 그 꿈이 너무 쉽사리왔다 싶어 서둘렀다가 공연히 치사한 구경만 하구…………. 하여튼 미안해요." (p.100)

     

    - 다이아나 김

    ▶아들 둘을 키우는 어머니의 역할을 기대하면서도 미군을 상대로 몸을 파는 것에 대해 비도덕적이라고 비난받는다.

    - 미숙

     

    -태수의 형수

    ▶이 사람 덕분에 상을 무사히 치를 수 있었다. 남의 삶에 함부로 침입하는 무례한 사람이라 여길 수도 있지만, 꼭 필요한 일을 해주는, 필요한 사람이기도 하다.

    ▶  정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 옥희도씨 아내

     

     

    [3] 전쟁 상태적 신체

    . 아니, 그러니까 이것은… 이것은 강력한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의 몸과 마음의 기록입니다. 제가 읽은 <나목>은 스무 살의 생명력 넘치고 재기발랄한 청년이 전쟁을 직격으로 맞으며 겪었던 수많은 느낌의 증언이며, 트라우마 이후 고통과 회복에 대해 본인이 쓴 차트라고 불러도 무방할 기록입니다 [...]

    제가 경아의 주치의라면 이런 이야기들을 해주고 싶습니다. 전쟁과 같은 강력한 트라우마 사건은 삶의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는 신념의 토대를 부수기에, 트라우마 당사자는 존재와 정체성의 위기를 겪게 된다고. 그리고 삶을 지탱하는 보호와 보살핌의 밖으로 내던져지는 경험을 한 당사자는 온몸에 기억된 말할 수 없는 고통과 비밀을 끊임없이 재경험하고 주목하면서 동시에 이 고통의 존재를 외면하게 된다고 말입니다. 이것이 ‘침습’과 ‘회피’를 동시에 경험하는 트라우마의 중심적 변증법이며, 당사자를 죽고 싶고 살고 싶고 또 죽고 싶게 만든다고도요.

    경아가 예술을 잊지 않고 몰입을 바라던 옥희도와 함께 있고 싶었던 것도 우직한 생명력과 봄에의 믿음을 가진 사람이 필요해서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잠시나마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주었을 것입니다. 트라우마의 반대말은 연결이니까요. 가난과 전쟁 속에서도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리고 싶다’던 박수근 화가의 진심과 박완서 작가 안의 ‘삶의 기쁨에의 끈질긴 집념’은 이렇게 소설 속에서 만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촌스러운 직업병을 발휘해, 고통 속에 있는 이들에게 경아의 독백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노오란 은행잎이 마지막 한 잎까지 떨어지듯 나는 내 속에 축적된 눈물만큼만 울면 된다.”
    https://www.khan.co.kr/culture/book/article/202310132007005#c2b

     

    [4] 음식에 대한 서술

    떡국

      해가 1952년으로 바뀌고 나는 21세가 되었다.
      설날 아침에도 나는 김칫국이 반찬의 전부인 아침상을 받았다. 나는 며칠 전서부터 설에 만두를 해달라고 어머니를 졸랐고, 그럴때마다 어머니는 시들한 대답을 했었는데 어머니는 기어이 내 기대를 허탕치게 하고 말았다.
      시척지근한 김칫국에 밥을 몇 숟갈 떠서 말아서 홀짝홀짝 들이마시려 했으나 잘 안 되었다. 울적함이 쉽사리 달래지지 않은 채 목구멍 근처에 묵직하게 걸려있었다.
    "그래도 설날인데 만두라도 좀 빚으시지. 흰 떡 하긴 번거롭지만······."

      어머니는 대꾸 없이 언제나와 똑같은 양의 식사를 우물우물 한껏느리게 끝내고 나서야,
    "철은 무슨 놈의 설이누, 같잖게시리. 한두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구......."
    독백처럼 입속에서 웅얼거렸다.
    나는 목구멍 근처에 걸려 있던 덩어리가 뜨겁게 콱 치미는 걸 의식하며 막상을 들고 나가려고 뭉칫거리며 일어서는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잡았다.

    "엄마. 우린 아직은 살아 있어요. 살아 있는 건 변화하게 마련 아네요. 우리도 최소한 살아 있다는 증거로라도 무슨 변화가 좀 있어얄게 아녜요?"
    "  왜? 이대로도 우린 살아 있는데."
    "변화는 생기를 줘요. 엄마, 난 생기에 굶주리고 있어요. 엄마가밥을 만두로 바꿔만 줬더라도………. 그건 엄마가 할 수 있는 아주 쉬운 일이잖아요. 그런 쉽고 작은 일이 딸에게 싱싱한 생기를 불어넣을 수도 있다는 걸 엄만 왜 몰라요?"

      어머니의 부연 시선이 아무런 뜻도 지니지 않은 채 나를 보는지 내어깨 너머로 윗의 장롱을 보는지 초점 없이 한군데 머물러 있었다.   
      나는 이내 어머니가 다만 나에게 잡힌 치맛자락을 놔주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란 걸 알아차렸다. 그리고 또한 내 바람이 완강하게거부당하고 있음도, 그 거부 앞에 내가 얼마나 무력한가도 알아차렸다. (pp.126-127)

     

    빈대떡

    부연 눈에 어쩌면 감정이 깃들이게 할 수도 있으리라는 바람이었다.
    나는 엄마를 야단스럽게 부르며 대문을 덜컹댔다. 가슴이 훈훈했다. 아직도 식지 않은 빈대떡 때문이었다. 나는 한 손으로 어머니의손을 잡고 한손으론 불룩한 가슴을 안고 어느 때보다도 어머니에게 몸을 밀착시켰다.
    "엄마, 엄마 무슨 냄새 안나요? 좋은 냄새, 알아맞히세요. 흠흠."
    "냄샌?"
    어머니는 시들게 대꾸하고 마른 나뭇가지 같은 손은 결코 마주 잡아오지 않았다.
    나는 댓돌에 서고 어머니는 희미한 전등이 매달린 부엌으로 들어갔다.
    "엄마 빈대떡."
    나는 불쑥 그것을 내밀었다.
    "식기 전에 잡숴보셔요. 식을까 봐 가슴에 품고 왔어요."
    이번에야말로 설마 어머니의 눈빛이 무슨 뜻을 지녀오겠지 기대하며 주시했다. 어머니는 시들하게 받아놓고 습관화된 딴일을 시작했다. 국을 데우고 상에다 수저와 그릇들을 올려놓고, 어머니의눈은 결코 딴 뜻을 지니지 않았다. 죽지 못해 살고 있을 뿐이라는 완강한 고집 외에는 나는 빈대떡 산 것을 후회했다. 가슴에 품고 왔음도.
    특히 내가 한 나중 말, 식을까 봐 가슴에 품고 왔어요" 를 후회했다. 물건이라면 뺏고 싶도록 그 말을 돌려받고 싶었다.(p.251)

     

    [5] 박완서 작가의 수필- < 보석처럼 빛나던 나무와 여인>

    초상화 그리던 시절의 박수근 - 박 완 서 소..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초상화 그리던 시절의 박수근 - 박 완 서 소설가

    (화가-이야기) 2008-12-24 23:19:19 초상화 그리던 시절의 박수근 박 완 서 소설가 박수근 화백을 알게 된 ...

    blog.naver.com

     

     

    박완서 -보석처럼 빛나던 나무와 여인 (『못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중에서
    https://youtu.be/l1XT2Yh1zcA?si=iD3pUt83xv8UXdrA

     

    ※ 추천 영화 -켄 로치 감독의 <나의 올드 오크>

    영국 북동부의 폐광촌에서 오래된 펍 ‘올드 오크’를 운영하는 ‘TJ’는
    어느 날 마을로 들어선 낯선 버스에서 사진작가가 꿈인 소녀 ‘야라’를 만난다

    마을 주민들은 불쑥 찾아온 ‘야라’네 가족과 다른 사람들을 반기지 않지만
    ‘TJ’와 ‘야라’는 ‘올드 오크’에서특별한 우정을 쌓아가는데···

    “중요한 건 무언가를 함께 한다는 거야”

    http://www.cine21.com/movie/info/?movie_id=61074

     

    영화 [나의 올드 오크] 상세정보

    영국 북동부의 폐광촌에서 오래된 펍 ‘올드 오크’를 운영하는 ‘TJ’는 어느 날 마을로 들어선 낯선 버스에서 사진작가가 꿈인 소녀 ‘야라’를 만난다 마을 주민들은 불쑥 찾아온 ‘야라’

    www.cine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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