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인 12월 18일 반장쌤 댁에서 2024년 마지막모임을 했습니다. 반장쌤이 준비하셔서 점심을 맛있게 먹었어요. 밥을 먹었으니까 디저트를 먹어야 해서 커피를 마시며 케익을 먹었고요, 민o쌤이 가져오신 향긋한 위스키를 치즈,건포도 등의 안주와 맛있게 먹었습니다.
커피를 마시면서 시 낭독을 시작하였습니다. 멋지죠?
민o쌤은 세권의 시집을 가지고 와주셔서 그중에 두편을 소개해주셨습니다. 이야기 나누면서 김행숙 시인의 <작은 집>을 낭독해주셨어요. 이 작품이 수록된 시집 <1914>의 표지가 예사롭지 않았는데 책 표지등은 역시 아트 컬러버레이션으로 지니 서 라는 작가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민o쌤이 사이토 마리코의 책도 가지고 오셨는데요, 이 시인은 1962년생, 오키나와 출신의 일본인입니다. 1993년 한국어로 <입국>이라는 시집을 냈을 당시의 기사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일본어로 시를 쓰다가 한국어로 번역하고, 번역이 잘 되지 않으니 번역하기 쉬운 말을 골라쓰다가 마침내 그냥 한국어로 시를 쓰게 되었다고 하네요. 이분은 2014년부터는 번역가로서의 활동이 두드러지는데『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희랍어 시간(한강)』『아무도 아닌』, 야만적인 앨리스 씨』(황정은) 등을 번역했습니다.
제가 소개한 작품은 미국의 시인이자 페미니스트, 사회활동가인 에이드리언 리치의 <난파선으로 잠수하기 Diving into the Wreck>입니다.바다 아래로 깊숙히 가라 있는 부서진 잔해에 가서 무언가를 찾는다는 내용인데요, 원래는 멀쩡하게 기능하고 반짝거렸을 무엇인가가 지금은 있는지도 모르게 망가진 형태로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래된 신화에도 적혀 있지 않아서 화자가 직접 내려가서 위험을 무릎쓰고 내려가 그걸 탐사한다는 것인데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여성의 역사, 언어일 수도 있다 합니다.
마지막으로 윤o쌤께서은 폴란드 시인 쉼보르스카의 <제목이 없을 수도>를 소개해주셨습니다. 제가 관심있던 토카르추크에 대해 들으러 갔는데 , 강사이신 최성은 교수가 쉼보르스카에 대해 열띈 설명을 해주셔서 언제 끝나나...... 기다렸던 기억이 납니다. 최성은 교수님이 골라 번역한 시선집ㅇ이 있었네요.199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는데, 당시 한림원에서 "모차르트의 음악같이 잘 다듬어진 구조에, 베토벤의 음악처럼 냉철한 사유 속에서 뜨겁게 폭발하는 그 무엇을 겸비했다"는 평가를 했다고 합니다.
(간단할 줄 알고 정리를 시작했는데 제가 알고 싶은게 많아서 정리를 다섯시간째 하고 있네요.오늘은 일단 여기까지만 정리하고(나누었던 시 올려주시면 추가로정리하겠습니다.)
내년 1월에는 쉼보르스카의 시선집 <끝과 시작>을 읽고 이야기 나누기로 했습니다.
어제 말씀 나눈 것 처럼 내년에도 꾸준하게 만나고
이렇게 저렇게 색다르게 만나보아요~~
목차
작은 집 - 김행숙
작은 집- 김행숙
리셋하자, 드디어 신이 결정을 내린 것이다. 신의 말에 순종하여 밤낮으로 흰 눈이 내리고, 흰 눈이 내리고, 흰 눈이 내려서…… 이 세상 모든 발자국을 싹 지웠네. 보기에 참 아름답구나. 그런데…… 신이란 작자가 말이지, 이 광활한 세계를 한눈에 둘러보느라 시야가 너무 넓어지고 멀어진 나머지 조그만 집 한채를 자기 속눈썹 한 올처럼 보지 못했다지 뭔가. 옛날 옛적에 잃어버린 꽃신 한 짝과 같은 그 집에서는 늙은 여자 혼자 살고 있었다네. 어느덧 늙어서 동작도 굼뜨고 눈도 침침하고 기억하는 것도 점점 줄어들어 인생이 한 줌의 보리쌀 같았대. 늙은 여자 한 명이 날마다 불을 지피는 세계가 있고, 마침내 늙은 여자 한 명이 최후의 불꽃을 꺼뜨린 세계가 있어서, 신이 견주어본다면 이 두개의 시간은 숲으로 가는 길과 바다로 가는 길이 갈라지듯이 점점 더 멀어지는가. 하늘과 땅이 가장 멀어지는…… 그곳에서 맞붙듯이 점점 더 가까워지는가. 그리하여 신이 그윽하게 굽어보면 분별없이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 속 세상이었을까. 잊은 것이 퍼뜩 생각난 듯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하네. 이번엔 검은 눈이 비스듬히 내리기 시작하네.
<1914년 |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7> 김행숙
표지 디자인: 지니 서
지니 서(Jinnie Seo, B.1963)는 뉴욕대학교(New York University) 생물학 학사 졸업 후 스코히건 회화조각학교 (Skowhegan School of Painting and Sculpture)에서 수학하고 뉴욕대 회화과 석사 과정을 마쳤다. 현재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니 서는 자신의 의식에 기억의 형태로 자리 잡고 있는 특정한 순간의 포괄적인 감정에서 그 감정의 타래를 세심하게 풀어내어 독립적인 조형 관념의 형태로 만들고 그것을 현실의 세계에서 구체화시키는 작업을 한다. 감정은 주체와 특정한 공간 및 사물과의 상호 관계에 의해 생겨나기에 대부분 경험의 파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지니 서 설치 작품 이 장소 특정적(site-specific) 형태를 지향하는 이유와도 연관된다. 출처6 https://gallerybaton.com/ko/artists/45-jinnie-seo/
시인 김행숙ⓛ , "타자와 호흡할 거리 남겨두세요"
주간한국 2010.11.24
"가까이 가는 것의 불가능성을 드러내는 게 '호흡'인 거 같아요. 얼굴에서 틈을 다 없애면 숨이 막혀 죽잖아요. 타자와 내가 아무리 거리를 좁히려고 해도 '호흡할 틈'은 남겨둬야 하는 거죠. 영화 정사 장면에서 치명적 합일을 꿈꾸며 목을 조르는 것, '호흡 멈추기'가 등장하는 건 그래서인 것 같아요. 어떤 불가능을 넘어서려는 욕망 같은데, 이번 시집을 쓰면서 그런 생각을 했죠."
*<타인의 의미> 출간시의 기사
https://weekly.hankooki.com/news/articleView.html?idxno=4087693
입국-사이토 마리코
입국
사이토 마리코
수수께끼보다 일찍 밀항해 오는 것은 기억이다
비밀보다 일찍 월경해오는 것은 마음이다
그 해협을 얼릴 수는 없다
막차보다 일찍 떠날 첫차가 항상 있다.
먼저 차를 놓친 사람들이
언제나 일찍 고향에 도착했다
그 역을 막을 수는 없다
<단 하나의 눈송이> - 사이토 마리코
봄날의책 세계시인선 2권. 일본 작가 사이토 마리코가 한국어로 쓴 시집이다. 시인은 비모어를 배우는 과정을 열 달이 아닌 십년 동안 공들여 키워야 가능한 태교의 과정으로 묘사하고 있다. 사이토 마리코의 이 시집은 생각의 산물이 아니라, 보고 느낀 것, 다시 말해 감정의 소산이다. 사이토 마리코에게 시인이란 '하루'라는 새를 쉬게 하고 싶어 긴 홰가 되고자 하는 인간이다.
일본 작가가 한국어로 쓴 시집, 『단 하나의 눈송이』
어쨌든, 피할 수 없는 대목일 듯하다. 시의 보편성, 시집이 담아낸 개성 넘치는 세계, 시어가 얼마나 생동한가보다, 일본 시인이 ‘한국어’로 쓴 시집이라는 지점이 어쩔 수 없이 흥미로운 화제가 될 만하다.
“여기에 실린 시를 처음에 썼을 때는 먼저 일본어로 쓰고 나중에 한국어로 고쳤다. 그러다, 쓰면서 번역하기 어려운 말이 나오자 다른 말로 바꾸어 쓰고 또 한국어로 번역하기 쉬운 말을 골라서 쓰게 되었다. 그다음에는 처음부터 한국어로 생각하고 한국어로 쓰는 것이 오히려 편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시인의 말」에서
수록시들 중 「소식」부터는 한국어로 생각하고 바로 한국어로 쓴 것들이다.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58783398>
사이토 마리코
《입국》은 이방인, 아니 경계에 선 자가 바라본 한국과 한국인이다. 일본해도 아니고 동해도 아닌 그저 있는 그대로 바다를 바라보려고 하는 ‘무국적’의 시각이다. ‘문의 입장은 중립적이다’라고 그가 썼듯이 출구도 아니고 입구도 아닌 문과 같은 자리, 즉 ‘사이’(間)에 그는 서있다. “고향과 모국어를 지킬 권리도 있지만 그것을 버릴 권리도 인간에게는 있다. 나는 이방인의 삶을 선택했다”고 그는 말했다.
어느 한쪽으로도 경사되지 않는 눈길로 그가 바라본 한국 · 한국인은 나무와 윤동주로 상징되는 역사와 한국만의 유별난 시대 상황, 그리고 한국어와 일본어 사이에서 번역이 불가능한 침묵으로 압축된다.
[...]
사이토 마리코씨는 60년 일본 니가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사이토 분이치씨(70)는 니가타 대학 물리학과 교수였는데 딸 둘만을 두었다. 그 두 딸은 아버지로부터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말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을 만큼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자라났다. 둘째딸인 마리코는 어릴 적에 유적이나 폐허를 유독 좋아하는 이상한 아이였다. 니가타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의 삶에는 드라마가 없었다. 다른 구석이 있었다면 시를 즐겨 읽었다는 정도였다.
“비슷한 점이 많은 형제 같은 민족이 피지배 · 지배의 상처를 남긴 것은 큰 불행이었다”라고 그는 말했다. 황국사관(식민사관)을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으로 한국 교포와 일본 친구들과 그룹을 만들어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때가 80년이었다. 당시 메이지 대학에는 한국어 강좌가 없었다. 한국에 유학해 한국문학을 전공하고 돌아온 일본 선배를 선생으로 모셨다. 그 선배는 아내가 한국 여성이어서 한국어 공부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처음 보는 한글은 모양부터가 매우 합리적이었다.
[...]
82년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그해 여름 부산을 거쳐 서울로 갔었는데, 부산에서는 승차거부를 당하기도 했다. 일본 역사 교과서의 왜곡 문제로 반일 감정이 극심했을 때였다. 3주 동안 머물면서 한국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자고 작정했다. 문예지 《현대시수첩》에 일본어 시를 발표한 것이다. 고 채광석씨의 평론을 일어로 번역했으며 90년에는 첫 일어 시집《울림 날개침 눈보라》를 출간했다.
한국 유학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도쿄를 떠나고 싶어했다. 정보화 사회의 노예가 되는 것만 같았고 또 막 서른살이 된 것이었다. 91년초 한국을 다시 찾았다. “오키나와에서 돌아보니 서울에서 1년 3개월을 보낸 사람은 사이토 마리코가 아닌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걸음걸이조차 한국어 리듬에 맞아떨어졌고 그렇게 많은 시가 나온 것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그런 적이 없었다.
윤동주 한용운 김소월을 통해 한국시를 처음 접했고 이어 김지하 정현종 황동규 강은교 오규원 최승호 황지우 이성복, 그리고 허수경과 고 기형도의 시들을 즐겨 읽었다. 한국시에는 일본시에 없는 무엇이 있었다. 그는 “일본시는 희로애락 가운데 노가 없다. 그러나 한국시에는 그 노가 있다”는 그의 선배 시인인 이바라키 노리코의 지적에 동감한다. “일본에는 서정 시인만 있고, 사회적 영향력도 한국에 비해 미약하다”라고 그는 말했다.
[...]
출처: “나는 이방인의 삶 택했다” 사이토 마리코 한국어 시집 《입국》펴내… 꾸밈없는 내용 ‘수준작’ 평가
시사저널:1993.11.25 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07714#google_vignette
난파선 속으로 잠수하기 (에이드리언 리치)
난파선 속으로 잠수하기 (에이드리언 리치)
우선 신화에 대한 책을 읽고,
카메라에 필름을 채우고,
칼날이 날카로운지 확인한 뒤,
나는 몸을 보호할 검은색 고무 잠수복
우스꽝스러운 물갈퀴
무겁고 불편해보이는 잠수 마스크를 착용한다
민첩한 잠수 팀과 함께
햇살 가득한 배를 타고 다니는 쿠스토와 달리
난 여기서 홀로
이 일을 해야 할 것이다.
사다리가 있다.
배의 측면 가까운 곳에
무심하게 매달린
사다리는 항상 거기 있다.
우리는 그것이 어디에 쓰이는 줄 안다,
그걸 사용했던 사람이 우리니까.
그렇지 않다면
그건 말라비틀어진 선원의 밧줄에 불과하다,
그저 잡다한 여러 장비 중 하나일 뿐이다.
난 아래쪽으로 내려간다.
사다리를 하나씩하나씩 밟으며
조용히 산소가 차오른다.
푸른 불빛
우리 인간 세계의 대기를 구성하는
확실한 원소.
나는 계속 내려간다.
물갈퀴 때문에 절룩거린다,
벌레처럼 사다리에 딱 붙어 기어간다,
거기엔 시작되는 지점을 알려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공기는 처음에는 푸르스름하다가 그 뒤엔
더 퍼래지고 그 뒤엔 녹색으로 그 뒤엔 검은색으로
변한다, 난 눈앞이 캄캄해지며 정신을 잃을 뻔했지만
강력한 잠수 마스크 덕에
피돌기가 재빨리 이루어졌다.
바다는 전혀 딴 세계이다,
바다엔 권력의 문제가 없다.
나는 홀로 배워야 한다,
무리하지 않게 내 몸을 바다 깊숙이
집어 넣는 법을.
그리고 지금, 들쭉날쭉한 부채를 흔들거리는
산호 사이에,
항상 여기서 살아왔던
수많은 존재 속에 있고 보니
내가 여기 내려온 이유를
잊어버리기 쉽다
게다가
여기 이 밑에선 숨도 다르게 쉬어야 한다.
난 난파선을 탐색하러 내려왔다.
단어들이 목적이다.
단어들이 지도이다.
난 이미 행해진 파괴의 정도와
그럼에도 살아남은 보물들을 보러 왔다.
난 손전등에 불을 켜 비춰본다.
물고기나 해초보다
더 영원한 어떤 것의
측면을 따라 천천히
내가 찾으러 왔던 것,
[그것은] 잔해 그 자체이지 잔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 자체일 뿐 그것을 둘러싼 신화가 아니다.
익사자의 얼굴은 언제나 태양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훼손된 증거
소금에 절고 물결에 쓸려 너덜너덜해진 아름다움
참변을 당한 갈비뼈가
멈칫거리며 찾아드는 물고기 사이에서
그 주장을 굽히고 있다.
이곳이 바로 그곳이다.
그리고 난 여기 있다, 짙은 검은색 머리칼을 나부끼는 인어아가씨,
갑옷같이 탄탄한 몸매를 뽐내는 인어 총각과
우리는 조용히 원을 그리며
난파선 주변을 돈다.
우리는 배밑으로 잠수를 한다.
나는 그녀다, 나는 그다.
그 익사자는 눈을 뜬 채로 잠자고 있다.
가슴엔 아직도 스트레스를 품고 있다.
은빛, 구리빛, 선홍빛 짐이
드럼통 밖으로 무심하게
반쯤 삐져나와 썩은 채 너울거린다.
우린 반쯤 망가진 도구들이다.
예전에 항해에 쓰였던
물 먹은 나무
고장난 나침반이다.
우린, 난, 넌
소심해서 혹은 용감해서
여기에 다시 돌아오는 길을 찾는 사람이다,
칼 한 자루, 카메라 한 대,
우리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은
신화에 대한 책 한 권을 가지고.
<난파선 속으로 잠수하기> 해설
이 시는 여성에 대한 역사적 억압과 지워짐에 대한 확장된 은유로 읽을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시는 여성이 과거의 '난파선'을 조사하고 배워 여성에게 가해진 '피해'를 확인하고, 궁극적으로 억압적인 세상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존재하고 주장해야 할 필요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시의 화자는 난파선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신화의 책'을 읽었지만, 이러한 신화가 부적절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페미니스트 렌즈를 통해 이 시를 해석하면, 이 신화는 여성의 행동 방식에 대한 구시대적 관념을 나타냅니다. 이러한 신화는 성 역할을 형성하고 여성을 사회의 변방으로 밀어낸 역사적 내러티브입니다.
그러나 신화책은 남성 지배적인 세계의 유물이며 화자는 이에 대해 깊은 의구심을 품습니다. 이는 화자를 물속으로 밀어 넣으며 은유적으로 여성의 간과된 역사에 대한 탐험으로 안내합니다. 화자는 혼자이고 바다는 깊어, 성별에 대한 환원적 사고가 얼마나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지, 얼마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지, 따라서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화자가 얼마나 깊이 잠수해야 하는지를 강조하는 동시에 그러한 작업의 벅찬 본질을 강조합니다. 화자는 다이빙을 하면서 카메라를 들고 직접 상황을 기록하는 한편, 남성과 여성에 대한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칼을 들고 잠수합니다.
난파선에 도착한 화자는 난파선의 “손상”과 함께 “실타래처럼 얽힌 아름다움”, “재앙의 갈비뼈”,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보물”을 감상합니다. 이는 이곳에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지만 바다 밑바닥에 “썩도록 방치”되어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것을 찾아서 기록하는 것이 다이버의 임무이며, 따라서 카메라와 이 시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 다음 화자는 인어와 인어공주 모두 여성이자 여성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는 화자가 더 이상 여성성이나 남성성에 대한 편협한 생각에 갇혀 있을 수 없음을 시사하며, 가부장적인 역사의 행진에서 지워지고 훼손된 퀴어를 포함하도록 시의 범위를 확장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시의 마지막 행에서 화자는 신화의 책에 “우리 이름”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고 밝힙니다. 따라서 이 시는 여성의 목소리가 지워지는 것에 대한 강력한 성명이자, 평소에는 잘 들리지 않는 이야기를 증폭하고, 이해하고,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요구가 됩니다.
출처:https://www.litcharts.com/poetry/adrienne-rich/diving-into-the-wreck
에이드리언 리치 ①- (필자:장영은)
에이드리언 리치
아드리안 세실 리치은 미국의 시인, 수필가였다. "20세기 후반의 가장 널리 읽히고 영향력 있는 시인 중 한 명"으로 불렸고, "여성과 레즈비언에 대한 억압을 시적 담론의 최전선으로" 가져온 것으로 평가되었다
https://blog.naver.com/minumworld/221838700176
에이드리언 리치 ② - (필자 : 2012년 후배 시인이 쓴 추모의 글)
그녀는 1976년 획기적인 페미니즘 논문인 “여성 탄생: 경험과 제도로서의 모성”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많은 남성의 두려움은 여성이 온전한 인간이 됨으로써 남성의 어머니가 되어 젖과 자장가, 유아가 어머니와 관련된 지속적인 관심을 제공하는 일을 중단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라고 썼습니다. 페미니즘에 대한 남성의 많은 두려움은 유아기주의, 즉 어머니의 아들로 남아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여성을 소유하고자 하는 갈망입니다.”
[...]
하지만 Rich는 여성의 시선에서 시를 재창조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랄프 엘리슨과 제임스 볼드윈, 랭스턴 휴즈, 조라 닐 허스턴이 흑인 작가로서 했던 것처럼 영원한 하층민인 여성의 관점에서 작가들의 세계를 재창조하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관심사는 어머니, 아내, 딸, 며느리, 연인, 애인, 정부 등 여성들의 고민이었습니다. 그녀는 시와 에세이를 통해 삶의 모든 측면에서 여성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여주었습니다. 과도기적 여성 세대의 일원으로서, 즉 단순히 Mrs. 라는 위치가 아닌 아닌 자신의 커리어와 삶을 찾기 위해 대학에 진학한 어머니 세대의 여성으로서 그녀는 남성의 삶만큼이나 여성의 삶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이는 아카데미에 충격을 주었고 수년 동안 그녀에게 '날카로운'이라는 별명을 여러 번 얻게 했습니다.
리치는 우리 시대의 가장 찬사를 받는 시인 중 한 명이었지만 계관시인은 되지 못했습니다) 국가나 왕에 의해 공식적으로 임명된 시인 또는 그 칭호). 아마도 정치적 결정이나 설명할 수 없는 무시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작품, 작품, 삶은 모두 여성과 여성 시인 세대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데 기여했습니다. 그녀의 작품은 우리에게 현실과 가능성realities and possibilities을 열어젖혔습니다. 그녀는 여성이 더 이상 2등 계급이 되지 않을 수 있다고 믿게 만들었고, 그날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운동가뿐만 아니라 작가, 시인, 사상가들의 일이라는 것을 믿게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난파선 속으로 다이빙>에서 그 모험을 묘사하면서 여성, 퀴어, 유색인종, 가난한 사람, 수감자 등이 온전한 인격체 full person-hood 를 향하는 여정을 계속 묘사했습니다.
[...]
이름 붙여지지 않은 것, 이미지로 묘사되지 않은 것, 전기에서 생략된 것, 편지 모음집에서 검열된 것, 다른 것으로 잘못 명명된 것, 찾기 어려운 것, 부적절하거나 거짓된 언어 아래 의미가 붕괴되어 기억 속에 묻힌 것, 이것은 단지 말로 되지않은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는 (나쁜)것?(이 될 것입니다. not merely unspoken, but unspeakable.?
출처: https://lambdaliterary.org/2012/03/in-remembrance-adrienne-rich/ 에이드리언 리치 사망시 그를 추모하는 후배 시인의 글
<더 이상 어머니는 없다> - 경험과 제도로서의 모성
어머니의 경험과 제도로, 그 경험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분석한 글로, 글 전체의 내용도 가부장제도 하 정치, 문화 및 예술, 신화, 심리학, 의학 분야에서 어머니가 되는 경험이 어떻게 박탈당하고 억압, 조장되며 이것이 여성의 자기 인식에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가를 다각도로 다루고 있다.
<우리 죽은자들이 깨어날 때>
“우리는 과거의 글쓰기에 대해 알아야 하고,
우리가 이제껏 알아왔던 것과는 다르게 알아야 한다.”
침묵당한 약자의 목소리를 되살리기 위해
평생에 걸쳐 몰두한 문학과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들
“의식이 깨어나는 시대에 산다는 건 참으로 신나는 일이다. 동시에 혼란스럽고 어지럽고 고통스럽기도 하다. 죽은 자들과 잠자는 의식이 깨어나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고, 오래된 텍스트를 다시 보고, 새롭게 비판하는 때가 됐다.” _본문 26쪽
에이드리언 리치는 미국 페미니즘에 있어 매우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명이다. 그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여성 인권, 그리고 다양한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다수의 시와 산문을 발표해 여성운동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1970년대에 대학들이 여성학과를 개설한 이후 가장 많이 읽힌 작가가 됐다.
[...]
그가 1960년대부터 2006년까지 평생에 걸쳐 쓴 중요한 산문을 엮은 이 책에는 에이드리언 리치만이 할 수 있었던 다양하고 파격적인 시도들이 담겨 있다. 이는 시인으로서 자신의 역할이 ‘보통이 되지 못한 사람들’ 내면에 축적된 분노를 방출하도록 돕는 데, 백인 사회, 가부장제, 남성의 힘에 굴복하거나 타협하지 않는 데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 노력들은 그동안 문학사에서 조명받지 못했던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다시 보기’하고, 제도로서 ‘모성’을 해체하는 연구, 레즈비언 페미니즘 이론 확립, 시인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민에 가닿는다.
제목이 없을 수도( 비스와봐 쉼보르스카)
제목이 없을 수도
: 비스와봐 쉼보르스카
어쩌다 보니 이 화창한 아침,
어느 한적한 강가의 나무 그늘 아래 이렇게 앉아 있다.
이것은 역사의 한 페이지에는 결코 기록되지 않을 지극히 사소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
동기가 무엇인지 낱낱이 분석되어져야 할
중요한 전투나 조약도 아니고,
기억할 만한 폭군의 학살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바로 지금 이 강변에 앉아 있고,
그것은 움직일 수 없는 명백한 사실.
내가 이 자리에 이렇게 도달했다는 건 어딘가에서 이곳을 향해 출발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갑판에 오르기에 앞서
다른 정복자들과 마찬가지로
육지의 여러 곳에서 은둔하고 있었으리라.
비록 일시적인 순간에 불과하다 해도 누구나 자신만의 무수한 과거를 지니고 있으니
토요일이 오기 전에는 자신만의 금요일이 있으며,
유월이 오기 전에는 자신만의 오월이 있게 마련.
사령관의 망원경에 포착된 풍경처럼 지극히 현실적인 자신만의 지평선을 가지고 있다.
이 나무는 수년 전에 뿌리를 내린 포플러나무.
이 강은 오늘이 아니라 이미 예전부터 유유히 흐르던 라바 강.
관목 사이 저 오솔길을 누군가가 밟은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구름을 뿔뿔이 흩어놓기 위해
바람은 한발 앞서 구름을 여기까지 싣고 왔으리라.
비록 요란하고 거창한 사건은 일어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세상의 세부적인 항목들이 빈곤해진 건 아닐 테니.
민족의 대이동이 세상을 덮쳤을 때보다
그저 조금 덜 그럴싸할 뿐,
그저 조금 덜 명확할 뿐.
침묵이 꼭 비밀 조약에만 수반되는 것도 아니고,
원인과 그 일행이 항상 성대한 대관식에만 참석하는 것도 아니다.
혁명의 기념일은 강가의 조약돌도
열심히 챙기고 있다.
환경이 수놓은 자수는 복잡하고 견고하다.
풀 속에 숨어 있는 개미의 바느질 한 땀,
대지 위에 꿰매진 잔디,
나뭇가지로 뜨개질한 파도의 문양.
어쩌다 보니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고,
바로 이 자리에서 강물을 바라보게 되었다.
내 위로 하얀 나비가 오직 자신만의 것인 날개를 파닥거리며,
내 손에 그림자를 남긴 채 포드닥 날아간다.
다른 무엇도 아니고,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오직 자신만의 것인
그림자를 남긴 채.
이런 광경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더 이상 확신을 할 수가 없다. 과연 중요한 것이 중요하지 않은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함부로 단정 지을 수 있는지.
「끝과 시작」320쪽
쉼보르스카
쉼보르스카는 1945년 데뷔 이래 6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실존 철학과 접목한 시를 꾸준히 발표하면서 대시인의 반열에 올랐으며, 1996년 여성으로서는 아홉번째, 여성 시인으로서는 세번째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쉼보르스카의 시에는 서양의 전통적인 사조나 미학 담론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우주적 상상력이 투영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이성 중심적 논리와 인과율에 뿌리를 두고 있는 서양 철학의 패러다임으로는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 관계론적 · 상생적 사유가 엿보인다. ‘혼돈’과 ‘해체’ 속에서 사유의 조화로운 동참을 권유하는 미의식은 쉼보르스카의 시학이 이룩한 가장 뛰어난 성과 중의 하나이며,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서구의 비평가들은 쉼보르스카의 시를 낯설고 이질적이면서, 동시에 새롭고 독창적인 것으로 평가한다.
흔히 쉼보르스카의 시를 논할 때 “모차르트의 음악같이 잘 다듬어진 구조에, 베토벤의 음악처럼 냉철한 사유 속에서 뜨겁게 폭발하는 그 무엇을 겸비했다”는 스웨덴 한림원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 연설문이 인용되곤 한다. 그만큼 쉼보르스카는 간결하면서도 절제된 표현, 정곡을 찌르는 명징한 언어, 풍부한 상징과 은유, 적절한 우화와 패러독스 등을 동원하여 독자의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자극하는 완성도 높은 구조를 만들고, 그 안에 역사와 문학에 대한 고찰이나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 그리고 인간의 실존 문제에 대한 철학적 명상을 담은, 독특한 작품 세계를 보여주었다.
대산세계문학총서의 62번째 권으로 출간된 이 시선집에는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자선(自選) 시집 Wiersze wybrane>(2000)과 2002년에 출간된 <순간 Chwila>, <콜론Dwukropek>(2005)에 수록된 작품 중에서 옮긴이가 뽑은 170편의 시가 수록돼 있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자선 시집>은 시인의 첫 시집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1952)에서부터 아홉번째 시집인 <끝과 시작>(1993)에 이르기까지 총 9권의 시집과 기타 미공개 작품들 가운데서 시인이 직접 선별한 184편의 시가 수록된 책이다.
이러한 쉼보르스카의 시는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일본어 등 총 28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출처: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4530634
* 폴란드 문학은 문학이 민족의 구심점이 됨
- 123년간 국가가 없었음에도 문학을 구심점으로 민족의 정체성과 언어를 수호함
* 폴란드 문학의 생명력과 원동력
- 문학적 토양이 풍부-원형이 잘 보존되고 어휘가 풍부하다는 점
- 문학이 민족의 정체성을 수호하는 구심적 역할을 해왔으며
- 종교적 이유로 '수난'을 당한다는 생각을 함
다음 토론책
<끝과 시작 (리커버)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시선집>
199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폴란드의 여성 시인 비슬라바 쉼보르스카의 시선집. 1945년 등단작부터 2005년 작까지, 60여 년에 걸친 시인의 작품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혼돈과 해체 속에서 사유의 조화로운 동참을 권유하는 미의식'은, 쉼보르스카의 시학이 이룩한 가장 뛰어난 성과로 평가되어 왔다.
흔히 쉼보르스카의 시를 논할 때 "모차르트의 음악같이 잘 다듬어진 구조에, 베토벤의 음악처럼 냉철한 사유 속에서 뜨겁게 폭발하는 그 무엇을 겸비했다"는 스웨덴 한림원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 연설문이 인용되곤 한다.
<내일은 없다>에 곡을 붙인 노래
https://www.youtube.com/watch?v=rR001X7JQy8
<첫눈에 반한 사랑> 쉼보르스카의 그림책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