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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동아리/보늬샘독서동아리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 빈곤과 청소년, 10년의 기록 (2024.9.23)

by 책이랑 2024. 9. 24.

9월 23일 월요일 저녁 8시, 보늬샘 9월 모임을 했습니다.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로 토론을 했습니다. 이 책은 교사이자 청소년정책을 전공하는 저자가 빈곤가정의 아이들 8명을 10년간 만나오면서 인터뷰하고 연구한 내용을 담은 책입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그동안 아이들을 만나오면서  " 애처롭고 가엾다가 어떨 때는 존경스럽고 대견하다는 느낌이 무수히 교차했다”라고 했는데요, 읽는 과정에 독자들도 비슷한 궤적을 따라 가며 읽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 연구를 10년간 해온 저자도 평범한 사람은 아니고, 연구에 참여하면서 자기 얘기를 해준  8명의 아이들 역시 범상치 않은 부분이 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와, 8명의 '청년' 덕분에 가난에 얽힌 "훨씬 복잡한 생활의 요소와 맥락이 얽힌 상태"를 살펴볼수 있었습니다.

토론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습니다.

-  "디딤돌"이 부족한 상태로서의 가난

- 세대주나 부양자보다는 개인 중심의 복지정책으로의 전환 필요성

- 가족구성원안에서  개인이 "과제분리"될 필요성

- 선별적인 아닌 보편적인 사회복지 시스템의 효율/중요성

- 촉법청소년의 기준연령하향 논의에 대한 우려

정리하다 보니 이 책을 펴낸 마티출판사에서 이책과 묶어 세트로 판매하고 있는 <일인칭 가난 -- 그러나 일인분은 아닌>이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26년간 수급자가정에서 자란 청년이 자기 경험을 쓴 책입니다. 이 저자는 가난의 논의에서 가족을 맨 뒤에 놓겠다고 했어요. 가난을  뭉뚱그리지말고 "실업, 장애, 기혼 여성의 경력 단절,복지를 가족과 기업에서 해결하도록 하는 사회적 분위기, 선별적 복지 시스템, 철저한 복지 신청주의, 공고해진 능력주의"로 풀어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최근에 어떤분께 자국내의 윗 세대보다 영국의 청년과 한국의 청년이 더 잘 통하는 것 같다는 말도 들었는데요, 그렇다면 청년층이 접하는 사회조건이 그 이전 세대보다 더 모질어졌다는 말이겠지요? 그렇다면 토론 말미에 나온 말처럼  AI가 점령한 후기자본주의 사회의 운영 원리로서도 제도변화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 많은 폭의 사람이 '가난'을 겪게 될 것이기 때문에요.

 토론에서 나눈 이야기들을 적지는 못했고요, 이 정도의 기록으로 정리를 대신합니다. ~


 10월 19일 모임에서 뵙겠습니다.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 빈곤과 청소년, 10년의 기록 
강지나 (지은이)돌베개2023-11-06



 
 
25년 경력의 교사이자 청소년 정책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가 빈곤가정에서 자란 여덟 명의 아이들과 10여 년간 만남을 지속하면서 가난한 청소년이 청년이 되면서 처하게 되는 문제, 우리 사회의 교육·노동·복지가 맞물리는 지점을 적극적으로 탐사한다.

이 책은 가난을 둘러싼 겹겹의 현실에 대한 철저한 해부이자 날카로운 정책 제안인 동시에, 가난이라는 굴레 속에서 이들이 어떻게 삶에 대한 통찰과 지혜를 발견해내는지에 대한 가슴 시린 성장담이다. 은유 작가와 장일호 기자가 사려 깊은 추천글을 보탰다.

 

 
책내용 발췌입니다.저작권을 너무 많이 침범하는 것 같아서

접힌글로 넣었습니다.
더보기를 클릭하면 접혀 있는 부분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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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들어가며
P. 7
나는 성장하고 싶은 어린 생명이 가난이란 굴레와 가족으로 인해 어떤 영향을 받고 굴절되고 다시 일어서는지 그들의 목소리로 기록하고 싶었다. 그 안에는 세상에서 흔히 통용되는 가난에 대한 인식이나 이미지와 다른, 삶에 대한 통찰과 지혜가 있었다. 나는 청소년들이 삶에서 얻어낸 그 통찰과 지혜를 학문적으로 담아내고 싶었다.


P. 8
처음 만날 때는 열예닐곱 살의 청소년이었던 이들이 지금은 서른 즈음의 청년이 되었다. 세월과 함께 이들의 변화와 삶의 굴곡이 고스란히 전해졌고 때로는 애처롭고 가엾다가 어떨 때는 존경스럽고 대견하다는 느낌이 무수히 교차했다. 이들은 자신이 힘들 때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았듯이 자신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원했고, 다른 인터뷰 참여자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해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공개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어려운 환경에 처한 다른 청(소)년들을 위한 마음으로 오랫동안 내 책을 응원해주고 기다려주었다.  
  • “미래를 생각하면 정말 어두워요”
    우울을 견디는 삶, 소희
    [소희 뒷이야기] 가난한 가족은 왜 우울한가?
P. 34
나는 소희가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대학에 입학해서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매우 기뻤다. 똘똘하고 당찬 소희가 역시 세상에 보란 듯이 그 일을 다 헤쳐나갔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학생활을 하는 소희를 다시 만났을 때 여전히 10대 때처럼 우울하고 관계 맺기를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고 의아했다. 힘들면 아직도 과하게 술을 마시고 사귀는 사람들도 예전 친구들의 범위에서 별로 많이 벗어나지 못했다. 그를 오랫동안 보아왔던 사회복지사도 역시 이 부분을 설명하지 못했다. 왜 불안이나 우울과 같은 정서적인 문제가 세대를 이어 반복되는가 하는 질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P. 35
장기적 빈곤층에게는 비슷한 문제행동이 동반되는 사례가 많고, 이런 가정환경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규칙적이고 목표지향적인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아이들이 보기에 통제력과 집중력이 요구되고 규범과 질서를 강조하는 학교환경은, 자신에게 익숙한 풍경이나 습속과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중에 탈학교하거나 학력 경쟁에서 실패하는 아이들은 사회적 낙인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가 쓰는 ‘못 배우고 가난한 놈들‘, ‘게으르고 무능한 사람들‘, ‘악다구니하며 싸우는 집구석‘ 같은 표현들은 모두 이런 문제행동을 비난하며 낙인감을 주는 말들이다.  

p.38
경제학자로서 평생 불평등과 빈곤 문제를 연구해 온 아마티아 센은 <<자유로서의 발전>>에서 빈곤은 단순히 재화의 부족이 아니라 자유로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려는 역량의 박탈이라고 설명했다.
빈곤 상태로 인해 건강한 관계 형성이나 욕구 발현의 기회가 수없이 좌절되고 박탈되면 사람들은 누구나 문제행동을 보인다. 빈곤 대물림은 이런 박탈의 경험이 대를 이어 축적되고 불평등한 사회구조로 고착되는 과정이다. 특히 아동기에 문제행동이 만연한 환경 속에 노출되면 문제행동은 빈곤을 대물림하듯 학습을 통해 대물림될 수 있다.
  • “좋은 아빠가 되고 싶어요”
    바르고 성실한 청년, 영성
    [영성 뒷이야기] 가족에 대한 애틋함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P. 55
나는 영성을 보면서 이런 의문이 들었다. 영성은 가족이 자신에게 꼭 도움이 되기만 했던 것은 아닌데도 왜 가족을 위해 여러 가지 결정을 할까? 영성네 가족은 어려움을 겪고 헤어지는 위기도 있었지만 결국엔 다시 결합하였고 지금은 화목한 예전 관계를 되찾았다. 영성의 성장기에 부모가 보여준 이런 과정은 삶에서 하나의 롤모델이 된 것 같았다.  
P. 63
정상가족은 사회문화적으로도 강력한 밈이 되어 있다. ‘또 하나의 가족‘과 같은 상품 브랜드,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운영되는 회사라는 말이 긍정적인 의미로 통용된다. 마치 ‘가족‘ 같은 관계가 되면 모든 갈등이 녹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은유한다. 일종의 가족지상주의라는 환상을 퍼뜨리는 것인데, 이는 그 관계 안에서 잘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조직사회에서 가장 약자에게 행하는 착취를 은폐한다.
P. 63
정상가족 프레임은 이 프레임 밖에 있는 비정상가족을 모두 소외시키며, 여기에서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한다. 정상가족 프레임은 한국사회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모든 문화와 정책의 기본 단위가되고 어떤 바람직한 삶의 표상이 된다. 이 때문에 중산층은 부와 권력을 세습시켜 안전한 ‘정상가족‘을 자녀 세대도 이어가길 바란다.

P. 63
반면, ‘정상가족‘의 틀이 공고하면 공고할수록 그 밖에 존재하는 ‘비정상가족‘ 혹은 ‘가족이 없는 개인 단위‘에 대한 배타성은 더욱 커진다. ‘1인가족‘, ‘한부모가정‘, ‘조손가정‘. ‘소년소녀가정‘, ‘장애가족‘, ‘재결합가족‘, ‘다문화가족‘, ‘동성가족‘ 등등 현대사회는 매우 다양한 가족 형태가 존재한다. 이들은 정상가족에 비해 각종 결핍이나 질병, 문제행동 등 많은 어려움을 중첩해서 겪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 정책의 우선순위에서는 밀려나 있다. 예를 들어 출산 지원 정책을 보면, 가장 열악한 상황에 처한 미혼모에 대한 지원 정책은 매년 줄어들고 잇다. 출생률이 낮다고 많은 예산을 들여 출생을 장려한다지만, 실제로는 정상가족의 테두리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일인 셈이다. 

P. 65
가난한 가족일수록 가족을 유지하기 위한 조건들이 취약하기 때문에 ‘비정상가족‘일 가능성이 높고 가난한 가족의 청소년들은 상당수가 바로 여기에 속한 약자들이다. 정상가족의 배타성이 높은 사회일수록 가난한 가족의 청소년들은 소외감과 열패감을 경험한다.

P. 66
그만큼 우리 사회는 정상가족과 비정상가족사이의 거리가 멀고 사회·문화·교육 전반에 걸쳐 차별적으로 인식하며, 정책도 부양자 중심의 혼인과 혈족 관계를 기준으로 설계하고있다. 그 단적인 예가 국회에 계류된 지 1년 넘게 통과되지 못한 생활동반자법이다. 이런 현실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견디기 어려웠던아이들은 자신의 미래 가족에게 평범한 가족을 투영한 셈이다.
화목한 가정을 갖고 싶다는 가난한 청소년들의 소망은 정상가족 프레임 밖에 있었던 자신의 처지에 대한 반응이다.  

 

  • “제 경험을 활용하는 게 제 강점이에요”
    슈퍼 긍정의 에너지, 지현
    [지현 뒷이야기] 가난을 극복하는 힘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P. 81
글을 쓰는 것도 그래요. 장학금을 받으려면 제 사정에 대한 글을 써야 되잖아요. 그렇게 글을 많이 쓰다 보니까 또 글쓰기도 느는 거예요. 왜 이렇게 글을 잘 쓰냐면서 대학교에서 A를 받았어요. 그게 다 도움이 되더라고요(웃음).
지현이 도움을 요청하는 전략은 놀라웠다. 단순히 필수적인 생존 자원을 끌어오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명 확하게 파악하려 했고 자신의 사회적 욕망을 긍정할 줄 알았다.‘생존하는 나‘를 넘어서 ‘살아서 욕망하는 나, ‘사회적 존재로서 의미 있 게 살아가는 나‘를 추구할 줄 알았고 이를 실현시키고자 하는 열망과 에너지가 풍부했다. ‘빈곤‘은 그저 나를 둘러싼 여러 장애물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개인의 부족함이라고 여기는 사회적 인식을 뛰어넘을 수 있었다. 나는 이 지점이 지현의 가장 강인한 면이라고 생각했다. 풍족한 환경 속에서도 사람들은 사회적 압력을 넘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명확히 파악하기 어려운데, 지현은 성장기에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꿋꿋하고 성숙하게 ‘살아서 욕망하는 나(자아) 발견하기‘를 잘 해내고 있었다.  

P. 97
그런데 이런 외적인 조건 외에도 지현에게는 분명 다른 힘이 더 있었다. 나는 이를 ‘성찰하는 힘‘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수많은 청소년 인터뷰이 중에서 성공적으로 가난에서 벗어난 친구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점이다. 성찰하는 힘은 인간이 사회적·정신적으로 성숙해지고, 독립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P. 99
가난 때문에 의식주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할 수 없다는 것은 그냥 불편한 정도를 넘어, 사회적 개체로서 ‘나’의 위신과 존재가 부정당하는 일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자아는 자신감을 상실하고 사회적 존재 가치가 없는 것처럼 느끼고 자신의 욕구에 대해 둔감해진다.그래서 빈곤층이 전략적 사고나 내면의 강인한 힘을 갖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지현의 ‘도움 요청‘과 ‘성찰하는 힘‘은 가난한 상황 속에서도 에너지를 생존에만 다 쏟아붓지 않으면서 어떻게 자신의 사회적 존재가치를 보듬고, 어떻게 자아의 욕구를 발견할 수 있는지 하나의 훌륭한 전략을 보여준다. 이는 빈곤정책을 고민할 때 단순한 경제적 지원이나 기회 제공을 넘어서서 다른 차원을 고려해야 할 필요성을 일깨워준다.  

 

  • “나중에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우울한 청춘의 그늘, 연우
    [연우 뒷이야기] 자신에게 잘 맞는 길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P. 110~111
원래는 제가 중2 때, 공부를 아예 놓고 있다가 다시 시작해서 인문계 쪽으로 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엄마 아빠가 결사반대를 했어요. 기술이나 배우라고. 인문 쪽으로 나가면 공부를 특출 나게 잘해야 좋은 대학에 가고 안정적인 직업을 얻잖아요. 기술 쪽은 그렇지 않아도 먹고살기가 쉽다고. 중학교 때는 꿈이 없었고 하고 싶은 것도 없었어요. (…) 전공이 인테리어 디자인이에요. 원래는 친구 따라 들어갔는데, 가서 보니까 재미도 있고 잘하는 것 같고….  

그런 점에서 보면 연우가 다른 청소년들과 달랐던 점은 누구보다도 사색하는 시간을 잘 영위했다는 것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가족과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에 대해 조용히 생각했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떤 부분이 인생에서 후회되나,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깊이 고민했다. 연우가 디자인 평면도를 그리는 일을 해보고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라는 것을 알아낸 것도 이런 시간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을 발견하자 주도적이고 계획적으로 자기 구상을 실행으로 옮겼는데, 나는 연우가 보여준 이러한 주도성과 자율성이 사색하는 시간을 통해 형성된 자아정체감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청소년들에게는 홀로 충분한 시간을 갖고 생각해보고 선택하고 결정하고,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서는 경험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P. 111
가난한 가정의 청소년일수록 진로 선택의 중요한 장면에서 부모나 교사로부터 특별한 조언이나 지도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P. 121
가난한 가정의 청소년들이 주변에 안정적으로 돌봐줄 지지체계가 부실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에게 이 과업 달성의 과정은 아픔과 혼란이 더욱 클 것이다. 하지만 사색하는 시간을 가져본 아이는 이후에도 자신만의 길을 걸어갈 줄 안다. 그 시간이 자아존중감을 길러주는 자양분이 되기 때문이다.


P. 126
청소년을 다룬 소설이나 영화들을 보면 주인공이 방향도 없고 할 일도 없이 배회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겉으로는 그저 싸돌아다니는 모습이어도 속으로는 골똘히 자신의 내면과 치열하게 만나는 시간이다. 젊은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이런 아무런 목적이 없는 시간 또한 ‘사색하는 시간‘이다. 
  • “여기서 밀리면 끝이에요”
    빈곤의 늪, 수정
    [수정 뒷이야기] 취업 이후에도 왜 빈곤 대물림은 끊이지 않는가?

P. 143
수정처럼 가난한 환경에 놓인 청소년들은 본인이 취업을 했더라도 그 환경에서 온전히 벗어나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한국사회는 자식의 부모 돌봄이라는효를 중시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고, 부모에 대한 부양 의무를 개인에게 지우는 가족 중심 문화가 강력하다.성년이 된 청년은 독립적인 개인이기보다는 한 가족의 구성원이라는 정체성을 더 크게 부여받는다. 성인이 된 후에 하는 연애, 공부, 취업에 가족이 깊이 개입한다. 

P. 146
저만 봤을 때는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으니까 기반이 어느 정도 다져진 것 같은데, 집안 전체를 봤을 때는 더 부족해진 느낌이고 더 힘들어진 것 같아요. 그리고 앞으로 뭔가가 없고 그냥 이 자리에 머물러 있을 것 같은 느낌? 한없이 꿈을 접어야 할 것 같은 느낌? 꿈이 현실과 부딪친다고 하잖아요. 그 말이 이해가 돼요. 처음에는 꿈만 생각했는데, 현실을 보면서 꿈을 실현하는 게 안 되는구나 싶어요. 그럼 앞을 내다보기가 힘들잖아요. 

P. 146
아마티아 센의 이야기에 따른다면 가난을 벗어난다는 것은 대학에 가거나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는, 흔히 개천에서 용 나는 ‘성공’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박탈된 역량을 인식하고 되찾는 과정이다. 여기서 역량은 “개인이 가치 있게 여기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실절적인 자유”이다.

P. 156
부모의 부양 책임이 기본적으로 자녀에게 있다는 것은 농경 중심 사회나 대가족 제도에서나 통용되는 일이다. 직종이 분화되고 다양화되는 현대 산업사회에서는 노동자들의 이동성과 노동시장 변수가많다. 지금은 평생직장이라는 말도 사라지고 있고, 2020년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비정규직의 비율은 40%나 된다. 현재 청년층은 이런 노동시장의 조건 속에서 비정규직과 정규직을 오가며 이동성이 많고 불안정성이 높은 직종에서 근무하고 있다. 가난한 가정의 자녀 세대는 여기에 가난한 부모를 부양해야 할 이중고를 짊어지고 있는 셈이다. 

P. 157
즉, 노인빈곤은 인구구조의 변화, 부의 축적구조의 불평등, 사회복지 제도의 미성숙에 그 원인이 있다. 이렇게 복합적인 문제를 두고, 노동시장불안정성과 높아진 자산가치 때문에 내 집 마련도 어려운 자녀 세대에게 부양 의무를 다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사회복지계에서 국민기초생활법상 부양의무자를 폐기하라고 끊임없이 요구해온 것은 이런 배경을 밑바탕으로 하고 있다. 상속법 제도에도 문제가 있다. 부모의 빚이 부모 사망 후 상속 포기나 한정승인을 하지 않으면, 법적으로 자녀에게 상속된다. 기본적으로 이런 법안에 깔려 있는, 가족 공동체를 하나의 단위로 인식하는 습속부터 바꾸어야 한다. 

pp.158~159
이런 구조하에서 빈곤층 청년들은 출발선부터 불평등한 구조 아래 놓인다. 빨리 졸업하고 취업을 해서 생계에 보탬이 되거나 독립을 해야 하기 때문에 취업 준비를 하며 부모에게 의지하는 생활은 꿈꾸기 어렵다. 수정은 더 안정적이고 좋은 일자리를 위해 1년간 집에 돈을 가져올 수 없다고 했다가 가족들에게 모진 소리를 들어야 했다. (……) 더욱이 출발선이 다르면 이후 노동 시장에서의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뿐 개선되진 않는다. 

P. 159
천현우 작가가 자신이 용접공으로 일했던 경험을 담은 책 <쇳밥일지>를 보면, 충분한 휴식과 마땅한 임금이 보장된 좋은 일자리가 가난한 고졸 노동자계급에게 얼마나 멀리 있는지 알 수 있다. 툭하면 산업재해를 당하고, 아무리 경력을 쌓아도 입금에 반영되지 않으며, 미래를 위한 공부나 여가가 보장되지 않는 삶은 21세기 동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보기에는 매우 참혹하다. 청년 세대의 가난은 과도기적이고 진화하는 과정에서 일순간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들에게는 현재의 가난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지만, 직업훈련 지원, 주거 안정 자금, 일-학교병행이나 일-가정 병행(결혼한 경우) 제도 등이 더 절실해 보인다. 이런 제도들은 가난한 청년들에게 평생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안전망이 될 것이다.  

 

  • “오토바이를 타면 답답한 기분이 풀려요”
    말 그대로 질풍노도, 현석
    [현석 뒷이야기] 범죄를 저지르는 청소년은 누구인가?

P. 189
우리는 가정과 사회로부터 너무 받은 것이 없고 자기 통제를 훈련받지도 못한 청소년들이 이리저리 휩쓸려다니다가 사회 부적응자가 되도록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청소년기에 그들이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가난한 가정을 대신해서 돌봐주려는 우리의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P. 190
단적인 예로 ‘청소년 보호관찰‘을 들 수 있다. 비행이나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을 교화하는 대표적인 제도가 청소년 보호관찰인데,
처벌보다는 선도를 목적으로 소년범을 교정시설에 구금하는 대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면서 보호관찰관의 지도·감독 및 원호를 받게 하는 제도이다. 특히 가정이 불우하여 보호자가 제 역할을 하지못할 때 보호관찰관은 수시로 그런 역할도 맡아야 할 때가 많다. 그런데 2021년 기준으로 1명의 보호관찰관이 관리하는 청소년 수는118 명에 달한다. OECD 주요 국가의 보호관찰관이 1인당 27.3명을담당하는 것과 큰 차이가 있다.  
  • “돈이 없으면 불안해요”
    미래 사업가, 우빈
    [우빈 뒷이야기] 일하는 청소년들은 어떤 삶을 꿈꾸고 있나?


P. 207
집이 답답하고요. 그냥 집에 있는 게 답답했어요. 맨날 누나랑 싸우고 나가고 싶어했어요. (…) 거의 제가 사고 친 것 때문에 싸우고요. 돈 갖고도 싸우고요. 누나가 돈을 빌려줬는데 제가 안 갚았거든요. 집안 살림에 대해서 저한테 말한 적은 없어요. 저는 집에서 밥을 잘 안 먹고요. 

다른 걸 하자니 이것만큼 자신 있는 게 없어요. 이런 일은 인맥이 많이 늘더라고요. 지금 이 나이인데도 벌써 주류회사 사람들, 유통업체, 식자재 이런 계열은 웬만하면 알고 지내니까요. 막상 이걸 떠나 다른 걸 하기에는 인맥도 없고 잘할 자신도 없어요. 대학 가도 잘할 자신이 없고…. (…) 이 업종 사람들 보면 저같이 가난하게 산 사람들인데 다 성공했잖아요. 인생 사신 얘길 다 들어보면 저보다 심하신 분들도 있더라고요. 다 도와준대요. 같이 해보자는 사람도 있어요. 

P. 221
우빈은 돈이 있어야 안심이 된다고 했다. 다른 빈곤가정 청소년들에게서도 공통적으로 들을 수 있는 이야기이다. 어릴 때부터 사용할 수 있는 재화가 부족해서 많은 어려움과 결핍감을 경험했던 이들에게는 자신이 언제든지 쓸 수 있는 수중의 현금이 심리적인 안정감을 준다. 그 외 다른 데에는 기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를 하면, 용돈을 받는 친구들보다 항상 풍족하게 돈을 쓸 수 있다.
특히 배달 아르바이트는 심야에 하는 경우가 많고 위험수당이 있기 때문에 임금이 꽤 높은데, 이런 생활에 익숙해지면 돈이 없는 상태는 견디기 힘들다. 게다가 우리 사회에는 청소년들이 쉽게 접근할수 있는 일자리가 많다

P. 223
우빈 같은 가난한 청소년들에게 ˝겨우 그것밖에 꿈이 안 되냐˝, ˝대학은 가야 한다˝, ˝더 크고 긴 안목으로 생각해야지˝, ˝현재에 안주할 거냐˝고 얘기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가 이들이 장기적인 안목에, 바람직한 좋은 일자리에 접근할 수 있도록 길을 내어주지 않았고, 실제로 이들이 갈 수 있는 좋은 일자리란 매우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최대한 현실적인 미래를 그리는 우빈들을 오히려 응원해야 하는 것 아닐까? 
  • “사람들 시선이 싫어요”
    눈에 띄지만 시선이 무서운, 혜주
    [혜주 뒷이야기] 학교 밖 세상의 시선이 왜 두려웠을까?

P. 247
나는 10여 년에 걸쳐 봐온 혜주의 변화 과정을 생각해보았다. 10대에 혜주는 거리를 헤매며 사람들의 시선에
당혹해하는 아이였고, 20대 초반의 혜주는 빈손으로 집을 나와 어찌할 줄 모르는 청년이었다. 가족들은 그녀를 구제불능에 집안의 골칫거리로 여겼다. 본인도 자신의 삶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시기를 거치고 나서 서서히 자기 자리를 찾아가고 제 역할을 해나가는 모습이 내게 대견해 보였다.
혜주는 “이제 늙어서 뭐 어쩌겠어요. 그냥 해봐야죠”란 말을 많이 했다. 아이들은 좌충우돌하며 성장하고 어느덧 자신의 두 발로 서게 된다. 아이들이 충분히 ‘늙을 때까지’ 우리는 지지해주고 기회를 주고 기다려줘야 하는지도 모른다. 

P. 253
혜주가 화장을 진하게 하고 여성성을 과시하는 행동을하는 것은 모두 외모로 성적 어필을 하기 위함이었다. 즉, 여성이 하나의 인격이 아니라 성적 대상으로 상대에게 호소해야 이롭다는 것은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중요하게 통용되는 원칙이다. 사회의 지배적인 구조와 인식이 아직 어린 이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음을알 수 있다.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 보는 인식은 성적으로 자유로운 여성을 ‘창녀‘로 규정하고 혐오하는 인식과 궤를 같이한다. 가출한 여자 청소년들은 학교로 돌아가면 이 혐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못하다. 남자 청소년들이 가출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 나가며
P. 257
공정한 어떤 잣대로 재봐도,미국 최고의 아동살인범은 가난이다.-테리사 푸니시엘로(미국 복지권리운동 조직가) 

P. 258
최첨단 정보통신 기술에 힘입어 SNS에 올라오는 환상적인 이미지와 AI를 활용한 생활의 편리성 덕분에 가난은 이제 사라진 옛날 문제인 듯 보이기도 한다. 분명 빈곤으로 인한 불평등은 도처에서 작동 중인데 우리는 감지하지 못한 채 가난은 점점 더 어두운 곳으로 은폐되고 그 검은 그림자는 사회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는 셈이다.

P. 262
하위계층의 문제이니 열심히 노력해서 상층에 올라서면 문제가 없지 않겠느냐고 얘기할 수 있다. 만약 당신 가족의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거나 재능이 있어서, 혹은 가족 찬스를 이용해서 좋은 대학과 좋은 일자리를 얻었다고 하자. 그 아이가 과연 이 불평등한 세상에서 혼자 행복할 수있을까? 사회에 불평등한 현상들이 쌓이고, 이에 대한 분노와 좌절감이 사회 전반에 누적되면 누구에게도 안전하고 좋은 사회란 있을 수 없다.

P. 277
청년 빈곤 문제가 심각하게 떠오르자 지난 7~8년간 청년층에 대한 복지 제도는 다양하게 마련되고 있다. 자산 지원, 건강 지원, 청년 취약계층 지원 등이 생겨났고, 특히 취약계층 지원은 학교 밖 청소년의 진학 및 취업 지도와 보호종료 아동에 대한 자립 지원, 소득분위에 따른주택자금 지원 등이 있다.

하지만 이 제도들의 한계점도 분명히 있다. 사회가 다양하게 분화하고 있는 만큼 다양한 직업군이 생겼다가 소멸하는 일이 잦다. 청년층의 특징은 일자리와 주거에 변동이 심하고 집단으로 군집하기보다는 개별적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 정책도 이에 맞춰 청년층을 동질한 집단으로 보기보다는 이질적 특성을 고려해야 하고, 세대주나 부양자보다는 개인 중심의 정책으로 기획해야 하며, 유연하고 다양한 제도와 전달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이런 제도들이 거대한 사회 문제를 해결해줄 수는 없지만 당장 어려움에 처한 청년들을 도울 수는 있다.

임금 불평등이나 주변부 노동시장의 문제가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렵다면, 이런 청년들을 도와주는 사회 정책들은 좀 더 기본적이니 인프라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청년세대는 사회 전반적인 불평등과 다차원의 차별을 경험하고 있는 세대이다. 이들을 위한 사회정책은 ‘가난을 증명하고 신고해야 하는’ 선별적 방식이 아니라 청년 세대라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제도적이고 보편적인 방식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 일인칭 가난 -- 그러나 일인분은 아닌

일인칭 가난 - 10점
안온 지음/마티

 

 

P. 77
가난하고 어린 사람을대하는 어른들의 태도와 온도는 이렇게 요동치곤했다. 취소했다가 사과했다가, 깔보았다가 추어올렸다.
사무적이었다가 다정했다가, 냉했다가 끓어올랐다.
끓어오른 자신에게 도취되었을 뿐, 사실 가난하고 어린사람에겐 관심이 없었다. 

P. 116
나는 가난을 말할 때 가족을 맨 뒤에 배치한다. 가족이 그 모양이니까 그렇게 됐지 따위의 말을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불행한 가족과 가난을 세트 취급하는 클리셰가 지겹다. 내 가난은 가족이 아니라 교통사고, 알코올중독, 여성의 경력 단절과 저임금, 젠더폭력 및 가정폭력과 세트였다.

가난은 개인적일 수 없다. 실업, 장애, 기혼 여성의 경력 단절부터 복지를 가족과 기업에서 해결하도록 하는 사회적 분위기, 선별적 복지 시스템, 철저한 복지 신청주의, 공고해진 능력주의 등과 떼려야 뗄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가난을 이야기할 때 가족을 제일 나중에 언급한다고 쓴다. 알코올중독이었던 시각장애인 아빠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웠던 엄마에 대해 말하면, 가난의 원인이 ‘가족’으로 수렴되기 때문이다. 가난에서 ‘불행한 가정사’를 걷어내고 나면 상황은 더욱 명료해진다. 저자는 “내 가난은 교통사고, 알코올중독, 여성의 경력 단절과 저임금, 젠더폭력 및 가정폭력과 세트였다”고 말한다.(116쪽) 

부록 「복지 신청 바로가기」(147쪽)에서는 한국의 복지 시스템이 ‘신청자’가 없이는 사실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대학교와 대학원을 다니는 내내 과외와 학원, 고깃집, 빵집 등에서 쉴 새 없이 아르바이트 노동을 하는 와중에도 저자는 수시로 장학금 연장을 확인하고,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무원들과 씨름했다. 내일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몇 년 뒤에 어떤 직종에서 일하고 싶은지 고민할 시간 자원이 없는 가난한 청년들에게서 잠 잘 시간마저 빼앗는 것이 선별 복지에서 탈락하면 안 된다는 절박함은 아닌지 이 책은 묻는다.

책이 끝나도 가난은 끝나지 않기에
33개의 일화를 땋은 이 책은 분량이 그리 많지 않다. 책을 완독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그다지 길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 날들을 반복해서 겪었고, 겪고 있다. 이것이 핵심이다. 책이 끝나도 저자의 가난은 끝나지 않으며, 설령 언젠가 저자의 가난이 과거형이 되더라도 우리 사회의 가난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 이 책은 가난에 대한 현재 진행형의 관심을 촉구한다.
저자는 자신이 책임질 수 없는 분석이나 대안 제시를 하지 않는다. 자신이 겪은 가난의 의미를 애써 찾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쓸 뿐이다. 이 편린을 맥락화하고 귀히 다루는 것은 이제 사회의 몫이다. 

 

 

2024.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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