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별점과 책읽은 소감
(1) 별점
- 5점~3.5점까지
(2)소감
1. 이 책은 한국사회에 만연한 '아내 폭력'을 공론화 시켰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고 본다.
2001년 또 하나의 문화에서 <나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처음 출간되었을 때 읽었다.
미혼이었던 그때 책 내용을 추상적으로 느껴졌다면
결혼을 하고 딸을 둔 지금은 몸으로 와 닿았다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2.그동안 여성주의라는 주제를 만나면
"인권"이 더 우선적으로 실현되어야 하는 가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책을 읽고 생각을 좀 달리하게 되었다.
(세상의 반을 이루는) 여성의 문제가 이렇게 숨겨져 있다는 것에 놀랐다.
논문으로 쓰여진 글이라 그런지 사용된 언어가 어렵다는 느낌은 아쉽다.
3. 어렵게 쓰여졌다는데 동의 한다.
해당주제를 대중에 널리 알리고 싶다면 좀더 읽기 쉽게 썼어야 했다.
저자가 글이 어렵다고 느껴져야 "글의 격"이 높은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일부러 어렵게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4.책의 내용에 공감을 많이 했다.
다만 책에 제시된 '아내 폭력'과 관련된 통계들이 과연 현실을 반영한 것인지.
내주변의 현실은 그렇지 않은데 과장된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5.제시된 통계들은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성 성폭력 등의 문제를 직시하는 것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과 감정들을 불러온다.
따라서 해당주제를 회피하려는 태도로 인해
실제 사건들이 감추어지기 때문에
-저자는 '아내 폭력'을 규정하기 위해 무려 3페이지를 할애한다.
용어를 규정하는데 이토록 공을 들이는 이유는
용어는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을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용어의 선턱과 사용은 매우 정치적인 행위이다.
'아내 폭력'을 어떤 용어로 표현할 것인가는 곧 이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을 드러낸다.(p.41)
'구타'가 적절하지 않은 이유
'구타'는 물리적 폭력과 때리는 행위 만을 의미만을 나타내기 때문에
'목을 조른 것이지 때린 것이 아니다 ' 라는 가해자의 주장 앞에서
피해 여성은 대응할 논리를 찾지 못함(p.43)
아내 폭력이 아니고 '아내 폭력'인 이유
저자는 여성이 인간이 아니라 단지 아내로 간주되기 때문에
여성의 정체성이 더 이상 아내로 국한되어서는 안된다라는 주장을 하고자 하는데
아내 폭력이라고 쓰면 인간으로서의 여성을 지칭하는 관점을 잃게 되므로
따옴표를 써서 여성주의 정치학에서 본 대안적 가치를 드러내기 위해
따옴표를 사용하는 '아내 폭력'이라는 용어를 채택함.(p.45-46)
용어선택은 '정지적' 문제)
6.이 책을 읽고 나니 지하철 등에서 남자들의 행동에 대한 경계심이 강하게 들었다.
7. 여성주의를 공격하는 논리는 매우 많다.
수많은 적대의견에 대해 논리적으로 대응하다보면
이것이 모여 결과적으로 (복잡해 보이는 ) 어려운 글이 된다고 생각했다.
8.이 책이 처음 출간된 2001년과 지금의 상황을 비교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
지금은 해당주제를 공론화 할수 있는 정도로 변화했다는 생각이 든다.
9. 과연 이 책에 쓰여진 말이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에 '어렵다' 라고 판단하는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읽으면서 감정이 불편해지는 것을 어렵다라고 해석하는 것 일 수 있다.
여성차별, 여성에 대한 폭력은 몇천년이상 지속된 모순이다.
따라서 이미 우리에게 너무나 깊게 내재화 되어 있는 것이며
남자뿐 아니라 여자들에게도 직시하고 싶지 않은
뿌리를 뒤흔드는 내용이다.
저자 정희진의 주장은 레디컬 페미니즘으로 분류되는데 레디컬의 어원은 "뿌리"이다.
남자와 여자 모두 자신의 인식의 뿌리를 건드리면 극심한 공포를 느끼게 된다.
그러나 요즘의 젊은 세대들은 남혐과 여혐으로 대립하면서 논란을 거듭하고 혼란스러워 한다.
그러나 젊은 이들을 이하해하려면 뿌리를 뒤흔드는 이 생각에 대해 알아야 한다.
10. 가정폭력은 한국에서 매우 만연한 현상이라는 것은 사실이라 생각한다.
다만 별점3.5점을 주었는데
'아내 폭력' 은 "가족문제"가 아닌 '인권 문제다'라는 주장을 하려다보니
저자가 무리한 일반화를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폭력을 당하는 아내가 그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는 데에는
경제, 문화적 많은 이유가 있는데 인권을 강조하다보니
다른 원인에 대한 언급은 거의없이 너무 단순화되어 버렸다고 느꼈고
이 점에는 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11 '아내 폭력'은 학력, 소득수준이 낮은 경우에 빈번하게 발생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빈번하지 않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책에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충격이었다.
또 심하게 폭력적 상황은 아니지만 말다툼을 하는 과정에서
'여자가 지혜로와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가부장적인 시각이었기에 그동안 그점에 대해
매우 불편하게 느꼈던 것이라는 것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함께 나눠보고 싶은 논제.
[2] 엄마로서의 역할(대입준비) vs. 개인적인 성취(대학원진학)사이에서의 선택의 문제.
[3]피해자가 생존자가 되어 경험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
[4] 6장에서 폭력남편이 무직이면서도 폭력을 일삼아도 아내가 이혼하지 않고
경제적인 역할까지 하면서 관계를 유지하는 현상이 나오는데
과연 이 남편들의 폭력이 치유될 수 있는 것인지.
이런 폭력은 치유될수 없는 것으로 간주하여 "격리"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5]토론 소감.
[2] 엄마로서의 역할(대입준비) vs. 개인적인 성취(대학원진학)사이에서의 선택의 문제.
- 가장 먼저 자녀의 대학진학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정립해야 한다.
(어떤 수준의 학교는 가야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시기에 꼭 가야한다 등등)
그리고 내인생과 자녀의 인생을 분리된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희생이 올바른 사랑이 아닐 수 있다.
엄마의 희생이 훗날 자녀에게 부담감, 부채로 작용하기도 하며
잘못된 역할 모델로 작용할 수 있다.
-학비 등의 현실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검토해야 한다.
-엄마로서 돌보는 역할은 줄어들 수 있으나,
대학원에 진학하여 공부하고 사회에서의 자기 영역을 만들어 나감으로써
이전과는 다른 측면에서, 자녀와 남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학업에 집중하다보면 자연히 그동안 도맡아 해오던
살림과 집안경영에 대한 비중이 줄어든다.
이부분을 가족과 의논하고 그 부분을 분담하는 방식에 대한 사전합의가 필요하다.
만일 이부분을 사전에 의논하지 않으면
하고자 하는 일을 끝맿지 못하고 중도포기할 가능성이 커진다.
-엄마가 대학원에 진학하면
아이의 대입준비에 차질이 생긴다는 생각에 동의하기 어렵다.
자녀의 진학에 있어 엄마의 영향은 엄마의 생각보다 크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학은 어디까지나 아이 노력여하에 달려 있으므로
엄마는 부담감과 의무를 크게 느끼지만
실제적인 영향력은 크지 않다고 느낀다.
[3]피해자가 생존자가 되어 경험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
-고립된 상태를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
-같은 문제를 겪은 사람들의 모임인 자조모임 등을 통해서
언어화되고 공감을 주고 받는 것이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혐오"라는 것이 범죄에 해당한다는 인식이 없다. 큰 문제이다.
- (일반적인 법제도하에서는 어림없고)
여성단체가 특정사건에 개입하여 지원할 때야 피해자의 입장을 지켜낼 수 있다.
- 할 수 있는 수준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바꾸어 나가는 사람의 의견에 동조해주고
지지를 밝히는 것은 매우 기초적인 수준의 행동이지만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여성인 우리 내부에도 가부장적 시각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가부장적인 시각이란 단지 여성과 남성에 국한된 것이 아니며
동성애자등 성소수자, 우리사회의 약자를 바라보는 시각까지도 확장되는 개념이다.
-공감이라고 하니 문득 세월호 가족들에게
전문가가 개입하여 상담하려 했던 사례가 떠오른다.
정신과 의사인 정혜신씨에 따르면 세월호 사건 당시 투입된 심리 상담 전문가들은
일정한 시간안에 심리치유를 받아야 한다는 이른바 ‘골든 타임’에 집착했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심리상담을 회피했는데
아이를 죽게 했다는 죄를 가진 자신이 자기 고통을 돌봐서는 안된다고 하는
죄책감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심리상담 매뉴얼에 집착하여
유가족들에게 상처를 줬다.
자신을 우월한 위치에 놓으면서
상대방을 대상화하지 말아야 하며
내면에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상처는 그것이 객관화 될때까지 드러내야 한다.
그런데 정작 부모가 감당하지 못하여
아이들이 상처를 드러내는 것을 막기도 한다.
그러나 같은 또래가 공감해줄 때 아이들은 진정으로 위로받는 것을 보고
오히려 아이들의 어른보다 더 깊은 마음을 가졌다고 느낀다.
-아주 어려서부터 친아버지에게 지속적으로 성폭력을 당한 경우
사회생활을 잘 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세세하게 들여다 보면 납득하지 못하는 이상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과거의 경험으로 인한 상처가 현재의 삶을 망가뜨리게 만드는 것이라고 본다.
- 만일 이 사람이 절친한 친구라면
이문제를 공론화하고 친구의 입장에서 얼마나 힘들었겠는지를 공감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라는 책이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에 참가했던 여성중 200여명을 인터뷰하고
기록한 책이다.
매우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노인이 된 소녀들은
그 사실을 다 기억하고 있었다.
과거의 고통스러운 경험은 언어화 되지 않는다면 결코 잊혀지거나 극복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수 있다.
[5]토론 소감.
15년전에 떠나온 고향인 외딴섬에 사는 엄마가
자기의 고용주인 베라여사를 죽이려했다는 살인혐의를 받게 되자 딸은 황급히 귀향한다.
그러나 과거에 엄마가 아버지를 유도하여 죽게 했다는 것 때문에 딸은 뉴욕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엄마가 남긴 녹음테이프에서 그 일의 전말과, 딸 자신이 잊어버렸던, 잊으려 애를써 마침내 잊혀진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과인지 가능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한여성이 자녀의 성적과 진학을 놓고" 극성엄마"인 행동을 하는 것은
자녀를 상위급 대학에 보낸 것의 여부를 가지고
그 여성을 좋은 여자, 좋은 엄마로 평가하려는 가부장적 시각 때문이라는
눈에 보이는 현상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힘/논리를 찾아보려는 시각이 필요하다.
낭송 모임 등에서 이 주제를 다루는 것,
그게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실천인것 같다.
여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저자도 밝힌 바와 같이
부모와 자식 등의 인간관계에서의 폭력과 폭력성까지 확장된 생각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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