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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독토

새벽독토 20기 (4)〈로마법 수업〉 (‘20.2.15)

by 책이랑 2020. 2. 11.

 새벽독토 20기 (4)
〈로마법 수업〉
- 흔들리지 않는 삶을 위한 천 년의 학교 
한동일 지음/문학동네



  한국인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인 저자 한동일의 명강의.  로마법은 인류법의 기원이자 인간다운 삶과 공동체에 대한 길고 치열한 고민의 기록이다. 로마제국  패망 후 교회는 로마법을 받아들여 교회법을 만들었고 우리나라의  민사소송법은  원상회복, 무죄추정의 원칙, 기득권 보호,  소송대리인 제도, 불법행위 금지, 긴급피난 제도 등 교회법의 구조와 절차를 그대로 이어 받았다. 
 저자는 로마시대와 현재를 부단히 오가며, 변치 않는 인간의 속성과 사람 사이의 끝없는 갈등, 그리고 그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을 때 소통하고 화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보여주며 뜨거운 인류애와 정의로운 삶에 대한 신념을 전달한다.

저의 로마법 수업이 파국으로 치닫는 이 사회에 큰 충격과 전환을 가져올 수는 없겠지만, 당신의 가슴에 작은 파동은 일으킬 수있기를, 그리고 당신의 마음에 찾아온 그 일렁거림이 ‘세계의 조용한 혁명‘으로 이어지길 소망해봅니다.


법으로 읽는 유럽사 
한동일 지음/글항아리




고대, 중세, 근대의 역사를 로마법, 교회법, 보통법의 원리로 읽는다.  우리 법은 조선시대와는 단절을 겪으면서 그 기원을 유럽법에 두고 있고, 유럽법은 바로 로마법과 교회법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이 책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법이 어떤 역사와 정신 속에서 유래하게 되었는가 그 연결고리를 밝혀나갈 작업이 될 것이다.

■ 

1. '천년제국' 로마의 법률을 현대인의 시선으로 펼쳐낸 이 책에 대한 별점과 소감
▶ 별점 4/ 3.5/ 4/ 4.5/4.5/4/ 3.8/ 3.2/ 3.5/ 3.2/ 3.2
 4.5점이다.
- 전작인 <라틴어 수업>을 집중해서 읽었고 주변 여러 사람에게 선물하기도 했었다.
- 옛 것을 현대에 맞추어 말하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이 쓰였기에 편안하게 읽힌다.

 자신의 전문분야인 '법'으로 세상을 보는 관점을 제시했다.
- 저자는 '인간'을 강조한다.그런데 사실 '인간'은 매우 폭이 넓은 주제이다.

- 나는 이책과 함께 리차드 세넷의 <불평등 사회의 인간존중>이라는 책과 동시에 읽었다. 이런 연결성을 제공한 것에 높은 평가를 주고 싶다.


"로마법 수업은 곧 인간학 수업입니다.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더욱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투쟁이자 꿈입니다. 거대하고 휘황한 문명은 우리를 저마다 안격과 이상을 지닌 인간의 지위에서 끌어내려 무수한 소비자이자 무지한 대중의 일원으로 전락시키려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언제나 단독하고 존엄한 인간일 것 입니다. " 

평등 사회의 인간 존중  
리차드 세넷 지음, 유강은 옮김/문예출판


경제적 토대의 차이가 만들어 내는 존중의 불평등을 넘어서, 어떻게 서로를 존중할 것인가의 문제를 성찰하는 책이다. 존중이란 무엇이며 무엇이 우리 안에서 타인에 대한 존중을 어렵게 만드는지를 분석하면서, 사회적 존중의 문제를 고찰한다.


 뒤표지에 있는 "소비자"라는 단어를 보고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이 떠올랐다.
- 인간은 단지 상품의 소비자를 넘어서는 정신적 존재, 혼자가 아니라 같이 살아가는 존재라는 생각에서 두 저자의 생각이 일맥상통한다고 느꼈다. 

처음에는 나 스스로를  시민권자로 생각하고 읽었다가 두번째 읽을 때  사실 내 지위는 '노예'라고 달았다. 여자이지만 교육과정에서는 '남성적인 인간'으로서 주입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  내용을 수월하게 전달하는 점이 돋보인다. 
-  그러나 어떤 한사람/ 여성/소수자를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인식한다고 느껴지는 것, 어머니가 하셨던 '희생' 을 말하면서 '구조'에 대한 말이 없이 미담으로 언급하는 것은 아쉽다.

신화/영화를 통해 머리속에 만들어진 로마에 대한 아름다움이 있었는데, 이책을 읽으면서  그게 무너졌다. 

▶ 당신은 자유인입니까? 노예입니까? 라는 첫머리를 읽고 기대에 부풀어 읽어 내려갔는데  뒷부분으로 가면서 실망했다. ex)형벌의 종류의 열거 등.

▶  '정보'가 있거나 '강렬함'이 있어야 글이 잘 읽히는데  바쁘게 지내다 보니 이 책이 지닌 세심한 결을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 재벌과 서민의 생활은 비슷하지 않고,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최근 계단에서 넘어져 다쳤는데, 팔다리의 멍을 보면서 로마의 '매맞는 노예'의 심정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 불교경전 구절을 말하는 '스님'의 글 같았다.
-  지금, 한국 사회의 현실에 대한 언급이 없어,  '논점을 뭉게는 느낌'이다.
- 인간으로서의 여성이 아니라
여성 ='어머니' 로 대표하거나 여성=보호할 대상, 약자, 인간의 기원, 탄생이라고 하는 데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중' 을 독자로 생각했기에 가지게 된 난점이 있을 것이다.
- 또 로마법에 꿰맞추다보니 자기 생각이 드러나지 않았다. 구체적 판례를 제시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 여성과 어머니를 분리시키지 못하는 것은 인식의 한계이고, 카톨릭 신부라는 것도 한계로 작용했을 것이다.


3. 젊은이들이 비혼을 선택하고  출산 거부하는 것의 이유로 우리사회의  특권과 반칙이 난무하는 것 때문이라는 말에 대해

 차이는 어느 사회나 있게 마련이지만, 그것이 심한 차별로 이어지는 것이 문제이다.
- 비록 현재는 만족스럽지 않다고 하더라도 미래가 희망적이라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20대가 보는  우리사회가 희망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 최근 미국은 '절망사'가 증가되고 있다고 한다. 불평등이 심화되는 것이 요인일 것이다.  사회 전체적으로 해결의지를 내지 않는다면 고쳐지기 어렵다.

미국에 '절망사'가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프레시안,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2020.02.13 
http://m.pressian.com/m/m_article/?no=278102#08gq
- 자살,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으로 죽는 사람들이 크게 증가함.
- 미국 노동 계급의 장기적이고 점차적인 몰락(소득과 학력의 양극화), 약한 사회안전망탓
보편적 의료보험 제도 도입이 시급함
-  "자본주의가 사람에게 봉사하는 체제"로  만들어나가야 
-  전세계에 확산될 가능성

포린어페어 원문
:The Epidemic of Despair 절망의 전염
Will America’s Mortality Crisis Spread to the Rest of the World?
미국의 '절망사' 위기 전세계로 번져 나갈까?

By Anne Case and Angus Deaton March/April 2020
https://www.foreignaffairs.com/articles/united-states/2020-02-03/epidemic-despair


 선택한 것은 아닌데, 사회가 변화해왔고, '비혼'이 되었다.
- 독립은 얻었는데 '자유'는 잘 모르겠다.
- 나도 
부모세대보다 더 나은 삶을 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출산 하고 싶다는 생각도 별로 들지 않는다.  

  "청춘, 유예된 삶에 흡수되다" 라는 글을 읽었다.
- 작고 안전하게 살려는 생각으로, 공부→ 자기개발 
→ 노후 등으로 유예하면서 그순간을 온전한 1인분의 삶으로 살지 못한다는 것이다.

[Why] 청춘, '유예된 삶'에 흡수되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7/01/2016070101540.html 2016.07.02 백영옥·소설가 조선일보 
두 권의 책을 읽고 내가 느낀 것은 서로 맞닿아 있었다. 나는 한국 사회의 많은 문제들이 '공부'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 한국 사회는 사람의 성장에 대해 '성공' 이외의 답을 줄 수 없는 무능력 상태에 빠져 있다. 우리는 앎이 교육으로, 부모가 학부모로, 시민이 소비자로 뒤바뀐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공부 중독 
엄기호.하지현 지음/위고
교육, 취업, 부동산, 노후, 경제 불평등까지 거의 모든 영역의 사회문제들을 빨아들이고 있는 공부라는 블랙홀이 2015년 현재의 대한민국을 어떻게 게걸스럽게 잠식하고 있는지 분석하고,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공부 논쟁  
김대식.김두식 지음/창비

엘리트집단의 기득권 지키기, 스펙 쌓기와 취업에 목을 매는 학부모, 15세에 인생을 결정짓는 교육 구조와 대학의 서열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 교육과 기회의 평등이 무너지고 있는 한국사회 공부 현장을 날것 그대로 전해준다. 그리고 장원급제만 욕망하는 한국 사회에 새로운 공부를 제안한다.

우리 사회는 결혼이 고통이라고 생각하는 청년들에게 어떤 경제적, 정서적 지지를 제공하고 있나요? 한 아이를 기르려면 온 마 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지요. 과연 우리 사회는 아이를 낳아 기르고 교육하기 좋은 사회일까요? 문밖을 나가면 진정한 어른들을만날 수 있는 사회인가요?

  고객이자 팀원이기에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에 대한 강의를 여러번 들었다. 또 같이 생활하면서 강의에서 들은 대로 "하기 싫은 것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목격하기도 한다. 밀레니얼 세대는 1인당 국민소득 3만불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이기에  못사는 나라에서 태어난 나와는 행동이 다르다. 배가 너무 고프지만 입맛에 맛지 않는 라면은 먹지 않는 것 등 

 

 젊은이들은 특권을 가진 층, 586 세대들이 기본적인 상식도  없이 행동하는 것에 실망한다.
- 또한 전세계적인 범위에서 무한경쟁을 하고 있기에 자기의 일에서 성취감을 가지기도 어렵다. 사회적 열등감과 박탈감 때문에 나 개인으로 살기에도 버거우므로 공동체를 이루는 결혼은 두려운 일이 된다. 

 기득권이 제도를 마련해서 젊은 사람들이 희망적인 생각을 가질수 있도록 하는 것이 먼저이다. 그러기보다 현실의 문제에 대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세대를 탓하는 것이 문제이다. 

 현실에서는 법과 vs. 그 법의 적용은 괴리가 있다. 특권과 반칙 때문인데 이를 줄이기 위해 법학자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서술했어야 한다. 그것이 없어서 '현실'과 괴리된 스님의 이야기 같다고 느끼는 것이다.

 자유와 끼를 강조하는 교육을 했는데,  사회에서는 그걸 펼칠 여지를 주지 않는다.
또한 지난정권에서의 사법농단에 대해 보통의 국민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허황된 판례가 나오고 있다. 

“위헌적 행위지만…형사처벌 못해” ‘재판 개입’ 임성근 판사 1심 무죄
경향신문 2020.02.14 21:23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2142123015&code=940301

“위헌적 행위지만…형사처벌 못해” ‘재판 개입’ 임성근 판사 1심 무죄

 경쟁이 우리사회의 전체코드이기에 현실에 '존중'이  없는 것이 문제다.

 로마라는 시대는 긴시간이기에  당시 시대의 맥락을 훑어하며 엄중하게 서술해야만 설득력이 있을 것 같다.

(▶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촛점을 전면에 놓고 서술해서,  로마법을 억지로 뜯어 맞춘 느낌이 들 것이다.)




4. 로마가 번성할 수 있었던 이유로 지속적인 신분상승, 사회구성원 간의 융합과 동화의 장을 꼽으면서 신분상승의 사다리를 유지하는 것은  사회정의, 정책의 차원을 넘어 사회발전에 필요하다고하는 저자의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 신분 상승' 은 민감한  용어로서 주의 깊게 사용해야 한다. "명문대를 나온= 엘리트" 도 마찬가지인데  이런 말들은 전제가 불합리하다고 비판하고, 해체하고 있는 용어이다.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특권층의 신분을 하강시키는 것을 말하는 것이 먼저라 생각한다. 왜 늘 소외계층의 신분 상승만을 얘기하는지???

 로마가 노예를 자유인이 되게 한 데는 사회경제적인  필요가 있을 텐데 그런 설명이 없어서 아쉽다. 또  신분, 계급 등을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는지?  사회과학적인 엄밀함이 부족해 보인다.

 버스타고 오다가 <담론>의 뒷부분에서 '가치론'을 읽었다. 자본이 이익을 취하고 있지만 사실 그것은 사회적으로 생산된 것이므로 모든 사람에게 귀속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부가 편중되어서는 안되는 이유를 뒷받침하는 논리로 느껴졌다.

  저자는 인간은  자유인과 노예의 두 가지로 구분된다고 하는 로마법과 달리 현대의 법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사회에서 통용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그것을 어떻게 이룰 것인지? 에 대해 말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신분계층이 분명히 있다. 없는 듯 위장하는 것이 현대사회의 비열함이다.
신분이 교묘하게 강화되고 있다.
  

그러나 저는 어떤 면에서는 로마시대와 오늘날에는 큰 차이가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노골적인 신분제만 없다 뿐이지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조건과 양상은 어떤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거든요. 물론 오늘날에는 ‘자유인인가? 노예인가?‘라고대놓고 묻거나 신원을 조회하는 일은 거의 없지요. 하지만 지금도 우리 사회는 소속과 경제력에 대한 교묘한 질문을 통해 끊임없이사람을 가르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정규직인가? 비정규직인가?˝
˝당신은 전임교수인가? 시간강사인가?˝



5. 로마의 “맹수형(담나티오 아드 베스티아스damnatio ad bestias)”은 희망을 꿈꿀 수 없는 암담한 상황에서 희망처럼 보이는 거짓등불을 멀리서 반짝여주는 것”으로 이것이  인간에게 가장 잔인한 일이라는 저자의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글을 읽으니 학업이 주는 변화에 대해 믿음에 따라 상위계층의 아이들과 하위계층의 아이들의 노력이 달라진다는 내용이 생각난다.  또 우리가 실제로는 희망을 가질 수 없는 환경임에도 , 노력하면 달라질수 있다는 것 처럼 하면서 구경하고 있는 관객은 아닌가? 하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희망의 여지를 '준다.' 고 하는 것과
당사자가 살고자 하는 욕구를 갖는 것은 차이가 있다.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

 '희망고문'이라는 말이 있다. 아이들에게 '희망'으로 제시하는 말들이 족쇄가 될 수 있음을 뜻한다.  "나중에"  ~ 할 거야 라고 하면서 ~하기를 종용한다.





■ 

1.현재의 자신은 권리와 책임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살고 있는 자유인과 스스로 노예인 줄도 모르는 노예 중  어느 쪽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시는지

- 노예 7 
- 자유인 4

 나는 20%인 자유인은 아닌 것 같고, 노예에서 자유인이 된 리베리투스거나, 일 잘하는 노예...인 것 같다.

 학교졸업후 직장생활을 시작했는데, 오랜 기간 하다보니 '을'정신이 몸에 배면서 어디서나 자동으로 자리양보를 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의사 노예'도 있었다고 하니 나도 노예인 것 같다.

  나는 자유인인 것 같다.
회사에서는 을로 일하니까 노예이지만 그렇게 번 돈을 쓸 때는 선택가능하니까 자유인이다.

  나는 경제적으로는 노예가 맞는데
정신적으로는 노예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해야 현실의 괴로움을 이길 수 있다.)

  노예가 각성을 하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각성이 후회된다.


“해방노예의 비애를 오늘날의 현실에 투영해본다면 지나친 생각일까요. 돈과 경제력에 관한 한 모든 이가 노예와 다름없음을 그대로 인정하고 인식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자신이 노예인 줄도 모르고 노예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예 돈과 권력 앞에 납작 엎드려 조용히 순종하는 것이 삶의 지혜라도 되는 양 그렇지 못한 사람을 비웃고 짓밟습니다. 해방노예가 노예를 짓밟는 것 같은 구도가 연상되는 현대의 슬픈 풍속도입니다. 문득, 인간이란 무엇인지를 묻게 됩니다. 2천 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인간의 존재와 태도 가운데 변치 않는 비겁과 악습이 존재함을 아프게 느낍니다.”
- 「동수저가 된 흙수저의 비애」, p. 53


한편, 재독 철학자 한병철 선생은 이렇게 썼습니다. 독일어의 ˝자유롭다.frei, 평화Friede, 친구Freund와 같은 표현의 인도게르만어 어원인 fri‘는 ‘사랑하다‘라는 뜻이다. 인간은 바로 사랑과 우정의 관계 속에서 자유를 느끼는 것이다. 묶여 있지 않음으로 해서가 아니라 묶여 있음으로 해서 자유로워진다. * 어딘가에 묶여 있지않음이 아니라 묶여 있어야 느끼는 ‘자유‘라는 말뜻을 통해, 이 지상 여정에서 순례자로서의 나‘ ‘단순 체류자로서의 나‘ ‘관광객으로서의 나‘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유한한 인간의 삶, 언젠가는 죽음으로써 이곳을 떠나야 하는 삶, 결국 이 불평등한 사회에서 우리가 그나마의 자유를 찾을 길은, 사회의 일원으로 묶여 있다 할지라도 지위와 계층을 구분하지 않고 그저 사람 대 사람으로서 사랑과 우정을 나누는 것뿐이 아닐는지요.


■ 

▶ 4권중 1권만 내가 고를만한 책이었다. 생각도 못한 책을 읽고 토론한 게 나에게는 기회였다. 비판적 읽기를 해서 좋았다.
▶ 책을 읽으며 가진 생각, 의문들이 토론에서 사람을 통해 해소되어 좋았다.

▶21기를 신청하지 못해 아쉽다. 봄나들이 모임에  O.B로서 초대해 주시기 바란다.

▶법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여러사람의 말들과 +책을 통해 의미를 새겨볼 수 있었다.

▶토론의 수준을 낮추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든다. 그러나 새토에서 나눈 이야기는 머리에 남아 계속 울린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고 환상을 가졌던 것 같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으나 생각만큼 가볍지는 않았다

▶ 출퇴근 시에 책을 읽어야 하기에 자차가 아닌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다.
다음 기수의 책이 만만하지 않은데, 해당 책은 꼭 1독을 하고 오려고 한다.

▶ 책에 비판적인 얘기를 많이 했지만 실정법과 자연법을 말하면서 현재 우리사회는 불평등 하다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해주어 고마운 마음이다.

▶ 사회 구성원도 계층의 순환이 되어야 하듯이, 새토도 순환이 필요하다.
쉴 때도 되었다 싶어서 다음 기수를 신청하지 않았다. 앞으로 새토의 사다리가 없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지난 3년간은 개인적으로 크게 변화하고 성장하는 시기였다. 함께 해준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 법과 제도만으로는 아닌 이유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한나 아렌트에 의하면 집단적인 무질서의 원인은 인간의 정신이고 법과 질서는 이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했다.
-60년대의 기치는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다."라는 말인데 
마틴 스콜세지는 개인적인 것은 창의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봉준호 감독은 60년대 반문화 어법을 만들어낸  감독의 그 말을 들으면서 연결점을 찾았다.
- (마틴 스콜세지와 봉중호 감독의 관계처럼 )지적활동의 자양분이 되어주는 새토는 나에게 매우 소중하다.

봉준호가 직접 수상소감에서 언급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책이 화제다. 

10일(현지시간) 봉준호 감독은 영화 ’기생충’으로 감독상을 수상한 이후 수상소감에서 할리우드의 거장 마틴 스콜세지 감독을 언급했다. 

그는 "제가 어린 시절 영화 공부 할때 책에서 본 글이지만 그분의 말씀을 가슴에 새겼다"며 "그 말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말씀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고 말하며 함께 후보에 오른 마틴 스콜세지 감독을 직접 언급했다. 

거장 마틴 스콜세지는 해당 수상소감을 들으며 박수를 쳤고 이어 봉준호는 "오스카에서 허락한다면 텍사스 전기톱으로 트로피를 나누고 싶다"고 말하며 영화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을 빗댄 수상소감으로 화제를 모았다. 

한편 마틴 스콜세지의 명언인 "The most personal is the most creative-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가 담긴 해당 책은 마틴 스콜세지가 1994년 발간한 책 ‘마틴 스콜세지 : 영화로서의 삶-비열한 거리‘로 알려졌다. 
 출처 : 톱스타뉴스(http://www.topstarnews.net)

▶ 법이 주제이지만  부드럽게 스며들 수 있기에 선정했다. 이 책이 책읽는 문화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20기 토론을 마쳤다.
21기에 같이 하지 못하는 분도 계셔서 아쉽다.
태극기 집회도 다시 시작되는 것을 보니 봄이 되었다.
21기 토론에서 뵙겠다.


티렌티우스Publius Terentius Afer의 희극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저는 이 말을 저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분들이 기억해주었으면 합니다.

˝나는 인간이다. 그래서 인간사 중 어느 것도 나와 무관한 것은없다고 생각한다.˝


푸블리우스 테렌티우스 아페르(Publius Terentius Afer, 기원전 195년 또는 185년 – 기원전 159년)은 고대 로마시대의 희극작가이자 시인이다. 북아프리카 출신의 노예였는데 그의 재능에 감복한 주인에 의해 교육을 받고 해방되어 극작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가 쓴 희곡작품은 모두 6개가 남아 전해지고 있다.

테렌티우스의 작품에서 자주 인용되는 어구로는 "Homo sum, humani nil a me alienum puto" 이 있는데 이는 "나는 인간이다, 나는 인간에 대한 것은 그 어떤 것도 남의 일로 보지 않는다"는 뜻으로 그의 희곡 《고행자》 (Heauton Timorumenos)에 나오는 경구이다. 
출처: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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