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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문학/페란테

한때 우리의 피부로 보였던 것을 고통 없이 떼어 낼 수는 없다.

by 책이랑 2020. 6. 14.

나는 격변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 나는 폭풍우 속으로 뛰쳐나오곤 했다.
나는 변화가 확실한 긍정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쓸모없는 것들을 많이 축적했다는 것을 깨닫도록 도와준다.

https://www.theguardian.com/lifeandstyle/2018/aug/18/elena-ferrante-love-upheaval-child-rush-out-storm

<즐거운 해방감이 온몸에 퍼진다>

나는 변화를 두려워한 적이 없다. 그동안 몇번의 이사를 하면서  불편하거나, 이사한 걸 후회 하거나, 오랜기간동안 적응하기 힘들어 했던 기억은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사하는 걸 싫어한다. 몇몇 사람은 이사는 명을 단축시킬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이탈리아어로 , '트라스로코',  즉 "어떤 장소를 가로질러"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그 단어를 들으면 앞쪽으로 도약해야 할 필요가 생긴 어떤 순간, 장소를 옮기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모으는 것ㅡ 그래서 뭔가 발견하고 배울 것이 모두 있는 다른 장소로 옮아가는 것이 떠오른다.


다시 말한다면, 나는 변화가 긍정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 한 예로, 변화는 우리가 쓸모 없는 것들을 많이 축적해 왔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정말 아무 것도 쓸모가 없는 거라는 건 거의 없으므로,  우리는 물건과 공간, 그리고 때때로 사람들에게 애착을 갖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들이 없어지더라도  (사실) 우리의 삶은 가난해 지지 않으며, (어떤 때는) 그것들이 없어질 때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기도 한다.


그런 변화들이 급진적으로 일어날 때, 나는 잠시 주저함을 느낀 후, 행복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어렸을 때 나는 폭풍이 다가와서 대기가 전기로 충전될 되는 때에는 , 내가 밖에 있어야 하는 모든 종류의 핑게를 만들어 냈었다. 핑게를 대고 밖에 머물러 비가 오는 것을 느꼈고, 그렇게 해서 떨어지는 첫번째 빗방울을 맞았고, 엄마가 안으로 들어 오라고 말하기 전에 이미 완전히 흠뻑 젖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의 그런 성향은 내가 변화의 다른 면을 느끼는 데에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다른 면이란 바로 고통이다. 여기서 고통이란 작은 변화에 따르는  사소한 불편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변화로 인해 나의 오래 된 삶의 모델이 파괴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고 그걸 강요할 때 만들어지는 파괴적인 힘을 말한다.  도살장에서 느낄 법한, 압도당적인 고통도 있다. 그런 처치의 사람들은 분노하고, 오래 된 습관의 껍데기 안에서 저항하고, 희망을 포기하고, 마침내, 어제의 세상이 내일은 여기에 있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무너진다. 그것은 한가지 삶의 방식이 쇠퇴할 때 따라오는 고통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쓰는 작품에서조차도 과거의 삶이 얼마나 멋진 것이었는 지를 후회 해본 적이 없다. 나는 항상 급속한 변화에 대해 기쁨을 느껴 왔다. 이것이 나는  비교적 최근에서야 변화에 따라오는 고통이 인간에게 깊은 흔적을 남긴다는 것을 알게된 이유일 것이다. 여성들의 삶에서 일어난 많은 혁명적 변화에 따라 왔던 기쁨을 넘어서 살펴보면, 기쁨만큼의 고통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그러한 변화 때문에 발생한 고통은 거의 말로 서술되지 않았다.


자유롭게 되기 위한 행동이라고 할지라도, 우리가 그동안 인생의 초기 몇년부터 입어왔던 옷을 벗는다는 것은 - 내 몸에 더 맞고, 더 축제적이고, 더 과감하고, 더 정당한 옷을 입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 어디선가 상처가 생길 수 있다. 한때는 자신의 피부였던 것을 고통 없이 떼어 낼 수 없다. 어떤 것은 지속되고 저항한다. 분명 해방의 즐거움은 널리 퍼진다. 그러나 두려움과 고통에 대해 침묵하는 것는 것은 실수이다.  마취로는 상처를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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