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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문학/페란테

우리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력

by 책이랑 2020. 6. 17.

큰 목표:권력, 파워란 무엇인가?
이것은 타임즈의 철학 시리즈의 특별한 부분입니다.12명이 넘는 유명한 사상가와 작가들이 "권력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합니다.


원문 주소:https://www.nytimes.com/2019/05/17/opinion/elena-ferrante-on-women-power.html

THE BIG IDEAS: 권력이란 무엇인가?

엘레나 페란테: 우리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력
여성이 말하는 이야기가 권력이다. 몇백년 동안 , 남성들이 스토리텔링을 식민지배했었다. 이제, 그시대는 끝났다.
2019년 5월 19일 

엘레나 페란테 (소설가) 


권력, 이것은 다루기 힘든데도,
 많은 사람이 선망한다. 권력을 원하지 않는 사람, 집단, 정당, 폭도는 없는데, 그들 모두는 다른 사람이 권력을 사용하지 않은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나도  다르지 않다. 내게 권한이 부여되는 것이 항상 두렵긴 했었지만.  학교, 직장 등의 어떤 조직에서나 남자들이 그 조직을 지배했고 여자들은 남자들의 방식을 수용했다. 나는 그런 것에 편안함을 느끼지 못했기에 언제나 주변부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내가 남자들과의 갈등을 계속 유지할 힘이 없어서, 나의 관점을 남성들의 관점으로 각색해서 나자신을 배신할 거라는 걸 확신 했다. 수천년 동안, 권력에 대한 표현은 세상에 대한 남성들의 태도에 의해 좌우되어 왔다. 여성들은 남성들이 사용해 온  전통적인 방식으로만 권력이 사용될 수 있는 것으로 알았다.


어렸을 때부터 나를 매료시켜 온 권력의 한 형태가 있다. 비록 남성들에 의해 광위하게 식민지화 되어 왔지만, 그건 바로 스토리텔링의 힘이다. 이야기를 하는 것은 진정한 권력의 한 종류로서 사소한 것이 아니다. 이야기는 경험에 형태를 부여한다. 때로는 전통적인 문학적 형식을 수용함으로써, 때로는 그것들을 그 형식을 뒤집음으로써, 때로는 그것들을 재구성함으로써. 이야기는 독자들을 이야기의 거미줄, 웹으로 끌어들여, 독자들이 생각을 하게 하고 독자가 거기에 몸과 마음을 기울이게 함으로써 독자들을 참여시킨다.  독자들은 그 검은 실(이야기)를 사람, 아이디어, 감정, 행동, 도시, 세계, 인간, 삶으로 바꾼다. 다시 말하면 스토리텔링은 우리 자신이 부여한 기호로 현실의 혼돈에 질서를 만드는 힘을 제공한다. 그리고 이것은 정치적인 권력과 많이 다른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스토리텔링이 여러 권력 중 하나라는 걸 몰랐다. 나중에서야 이런 것 알게 되었고,  때때로 책임감으로 몸이 마비되는 것을 느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하지만 권력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좋으냐 나쁘냐는 우리가 권력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나이가 더 들수록 이야기를 나쁘게 사용하는 것이 더 두렵다. 내의도는 전반적으로 선하지만, 스토리텔링이 바르게 될 때도 있고 잘못될 때도 있다. 그러나 내가 유일하게 위안을 삼는 것은 아무리 잘못된 생각으로 나쁘게 쓰여진 이야기가 있다 해도, 그 피해가 전쟁, 토굴, 집단 학살, 게토, 집단 수용소, 강제 수용소 등의 끔찍한 정치적 경제적 잘못된 운영에 의해 생기는 피해보다 항상 작을 것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나는 더 명백하고 위험한 형태의 권력을 다루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글을 쓰기로 선택한 것 같다. 그리고 또한 남을 지배하는 기술에 대한 거리감으로 인해, 때로는 글쓰기가 권력의 남용에 대응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인 것처럼 보였다.

어쨌든, 나는 주로 글을 쓰기로 결정했다. 왜냐하면, 소녀로서, 나는 특히 문학이 여성을 환영한다고 잘못 생각했기 때문이다. 조반니 보카치오(1313~1375)의 데카메론(Decameron)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탈리아와 유럽의 위대한 서사적 전통의 기원인 이 작품에서, 10명의 젊은이들-7명의 여자와 3명의 남자-은 10일 동안 교대로 이야기를 한다. 16세 즈음에, 나는 보카치오가, 그가 내세운 화자들을 살편보니 그들 대부분이 여자라는 것을 확신했다.  현대 스토리의 아버지인 위대한 작가가 일곱명의 위대한 여성 해설자를 내세우고 있었다.거기에 뭔가 희망이 있었다.

나중에서야 나는 소설인 "디카메론"에서 보카지오는 여성들에게 관대했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상황이 매우 다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여성들은 문학 세계에서도, 주변부로 밀려났다. 그것은 사실이다: 모든 종류의 도서관과 기록 보관소는 불균형적으로 많은 남성들의 생각과 행동을 보존하고 있다. 우리 여성의 강력한 가계도를 세우는 것은 섬세하고 힘든 과제일 것이다.

상황이 다르게 전개되었다면, 여성이 남성들보다 더 잘 했을까? 궁극적으로 지금 우리가 지금의 그들보다 더 나은가? 어렸을 때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요즘은 잘 모르겠다.

나는 어떤 이상화도 피하는 경향이 있다. 내 생각에, 모든 여성들이 명예롭고, 착하고, 매우 똑똑하고, 두려움이 없고, 결점이 없고  무엇보다도, 여성이 남성의 공범자가 아니라는 생각은 합당한 판단이 아니다.

여성의 광범위한 공모는 사실 심각한 문제이다. 권력은 여전히 남성들의 손에 있고, 확고한 민주주의 전통을 가진 사회에서, 여성이 더 자주 지휘권을 갖게 된 경우, 그건 우리가 문제에 맞서고 해결하는 남성적 방법을 내면화했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는 또다른 근거가 될 뿐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종종 여성이 남성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순종적이고, 순종적이라는 것을 보여 주게 된다.

한 여성이 비관습적인  정치적 지능을 사용해서 권력구조 속으로 자기를 밀어 넣는다고 가정한 경우에도 사실은 그녀의 비관습은 전통적인 남성 지배 문화와 일치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그런 방법으로 권력을 획득한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승리했을 때의 즐거움을 누리기 해서인가?

나는 "마침내 여성 대통령 혹은 수상이나 노벨상 수상자, 혹은 현재의 정치적, 문화적 계층 위에 있는 어떤 다른 지위를 얻었다!"라는 수사적 표현에 특별히 휘둘린 적이 없다.  이 때의 내가 제기하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 어떤 문화에서, 어떤 권력체계 내에서, 여성들이 최고 지위에 올랐는가?"

압력에 의한 변화가 진행 중이다.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기대되고 있다.  현재와 가까운 미래에 닥쳐올 재앙의 끝자락에 있는 이행성의 남성들이 만들어 낸 것에서 여성, 우리 자신을 분리해서 끄집어 내는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지금은 권력에 대한 여성의 비전에 운명을 걸어야 할 때 일 것이다. 모든 분야에서 여성이 이룬 업적의 힘이 보태지고 그 힘으로 건설해야 한다. 현재 우리가 이룬 것은 소수의 예외 exceptionalism이다. 남성들은 (아직) 여성을 온화한 태도로 인정 하는데,  그 이유는 진정으로 자율적인 여성, "당신 잘 하는군. 남자같아" 라는 말로는 복종시킬키지 못할 여성이 아직 매우 소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여성의 업적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우리가 남성 권력 체계가 제공하는 빵 부스러기를 즐기기 위해 항상 우리가 그를 묵인하고 있거나 그에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힘은 남자의 허가 없이도 할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하고 활동적이어야 한다.

데카메론의 7명의 여성 화자들은 다시는 위대한 지오바니 보카치오에게 자신을 의지할 필요가 없다. 수많은 여성 독자들과 함께, 그들은 세상을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묘사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점점 더 광범위해 지고는 익숙하지 않은 여성적인 이야기는 이제 권력을 장악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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