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경전에는 ‘무상無常’이라는 말이 수없이 많이 나온다. 그런데 눈길을 끄는 것은 어떤 이론적인 설명도 없이 불쑥 나온다는 점이다. 초기 경전에서는 무상의 이유나 근거를 파고드는 일이 없다. 무상은 차분한 마음으로 자신과 주위를 둘러보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그래서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는 우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다음의 이야기를 들어 보라.
부처님 당시 인도 코살라국의 수도 사위성에 크리샤 가우타미라는 여인이 살고 있었다. 그녀는 결혼해서 좀처럼 아기를 갖지 못하다가 겨우 아들 하나를 얻었다. 아들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정상을 벗어나 지나칠 정도였다. 그런데 그 아들이 걸음마를 떼고 한창 재롱을 부리던 나이에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화에 대한 어떤 생각도 없이, 이것이 화라는 생각도 없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그것을 만난 것처럼 ‘이것이 무엇일까?’ 하는 일념으로 그냥 그것과 만나라. 당신 몸에도 마음에도 진정 초면初面의 화뿐일 때, 당신은 맨눈으로 화를 본다.
...
무상의 세계를 거부하지 않고 이렇게 맨눈으로 볼 수 있다면, ‘무상’은 더 이상 ‘허무’의 동의어가 아니다. 변해가는 순간순간이 매번 새로운 순간으로 승화하고, 매일 매일이 그 자체로서 완성된 나날로 변모한다. 깨달은 자는 이 순간은 이 순간을 잡념 없이 100퍼센트 살고, 다음 순간은 다음 순간을 그렇게 산다. 매 순간에는 과거가 남긴 앙금도 없고 미래가 드리우는 그림자도 없다. 이 순간이 전부다. 그러므로 이 순간이 곧 영원이요, 영원이 곧 이 순간이다.
https://www.bulkwang.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981
이 아이를 살려 낼 약이 없습니까? - 불광미디어
신은숙 作. 삶 1 장휘옥과 김사업은 전문 수행자의 길을 걷기 위해 2001년 함께 대학 강단을 떠나 남해안의 외딴 섬 오곡도로 들어갔다. 이후 세계의 고승들을 찾아다니면서 수행했으며, 2003년
www.bulkwang.co.kr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