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박물관옆 카페 에무에서 오~~~랫만에 대면 모임을 가졌습니다. 수경쌤 제안으로 여기서 만났는데요, 신선함과 편안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어요. 우리 보늬쌤 1기 동아리는 1년간의 휴식기를 깨고 올 2월부터 매월 1회 토론을 했습니다. 그리고 2021년 마지막 달에, 마침내 대면모임을 하게 되었네요.
저는 연말모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토론하기로 했었네요. 저자와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어제 저에게 제일 재미 있었던 대목은 OO쌤의 따님이, 엄마와 아빠가 일상적으로 나누는 전화통화를 듣고,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는데요, ㅋ 동지애는 사랑이 아닐까요?
화상이 아니라 직접 만나니 책얘기 말고도, 머리속에 있는 크고 작은 고민들을 입밖으로 꺼내놓게 되었고요, 도움말씀도 들을 수 있었어요. 굳이 숨기려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얼굴을 봐야 나오는 얘기도 있나 봐요. 그래서 점심먹고 헤어질 때, 내년 봄 상황이 어떨지는 아직 모르지만, 분기당 1회 대면모임을 목표로 해보자는 얘기를 나누었어요.
2022년 첫번째 토론일시는 1월 17일(월) 저녁 7시인데요, 책은 정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목차
[0] 2021년 보늬샘 토론/모임 일시, 토론도서
2월 22일 <연애소설을 익는 노인>
3월 22일 <올리브 키터리지>
4월 19일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들>
5월 <다시 올리브>
6월 21일 읽고 있는 책 소개
7월 20일 <고양이 요람>
8월 15일 <사이보그가 되다>
9월 27일 <이탈로 칼비노 우리들의 선조 3부작>
10월 18일 <호박색 밤>
11월 15일 -전하영의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중
12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1] 까페 에무
저희는 까페 에무에서 만났어요. 언젠가 우리가 정동에서 토론한 후, 몇몇이서 경희궁을 잠깐 산책하면서 건너편 건물 옥상에 있는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고, 저곳은 어디일까 궁굼해 했었는데요,
그때 그 언덕에서 건너다 본 건물이 바로 복합문화공간 에무였네요. 저에게는 <한국생활사박물관>으로 대표되는 사계절 출판사의 옛날 사옥이라고 하네요.
서울역사박물관을 바라보고 골목으로 5분정도 걸어가는 위치에 있는 복합공간 에무. 지하2층 미술관, 지하 1층 공연장, 1층은 까페, 2~3층에는 영화관, 옥상 정원까페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에무라는 이름은 네덜란드의 철학자 에라스무스에서 따왔다고 하고, 실제로 유럽의 에라스무스 재단과도 교류하고 있다고 합니다.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1466/69~1536) 는 르네상스 시대 네덜란드의 인문학자, 신학자, 철학자로서 마르틴 루터와 함께 세속화된 당시 교회와 성직자들을 비판하던 종교개혁가들 중 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유럽의 인문정신을 대표하는 인물인가봐요.
1층 까페안의 책꽃이들에는 사계절 출판사의 책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계산을 한 후에만 읽을 수 있습니다.
눈오는 지난 토요일에 찍었던, 까페안 풍경입니다. 사진에 있는 창 바깥이 경희궁 끝언덕이고요, 어제 저희는 - 빨간모자 쓰신분의 왼쪽에 있는, 사진에는 안보이는 긴 탁자에 앉았습니다.
저는 어제 토론하기로 한 책이 있었다는 것 조차 잊고 있었는데요, 얘기를 나누고 와서 조금 찾아본 내용을 덧붙여 봅니다.
[2] 프랑수와즈 사강의 소설의 특징
-철학적 고뇌나 탐구가 없는 일상의 권태
사강이 프랑스의 문단을 놀라게 한 이유는 그녀의 소설이 '전혀 심각하지 않다' 는데 있었다. 그녀가 등장하기 까지 프랑스의 문단을 지배하고 있던 사조는 실존주의였다. 사르트르와 카뮈를 대표로 하는 실존주의 문학이 튼튼한 아성을 굳혀, 문학은 반드시 철학의 성격을 겸비해야만 하는 것으로 되어있었다. 그런데 사강의 소설은 철학적 고뇌나 탐구가 전혀 없이 자잘한 일상의 권태와 세속적 연애심리만을 다루고 있었던 것이다.사강의 소설이 독자들로부터 환영을 받게된 이유중 하나는 실존주의 문학이 갖는 '무거움' 에 대한 염증에 있었다. 문학이 주는 가볍고 경쾌한 카타르시스 효과를 독자들은 내심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소설이란 원래 이성보다는 감성을, 모럴보다는 본능을 추구하는 장르이다. 그런데 실존주의 문학은 독자들에게 이성과 모럴을 강요했고, 소설을 철학 교과서처럼 딱딱하게 만들어 읽는 사람을 피곤하게 했다.사강의 소설이 갖는 특징 중 하나는 그녀의 소설이 무척이나 짧다는 것이다. 그녀는 우리나라 2백자 원고지로 쳐서 4백장 안팎의 분량을 넘는 소설을 결코 쓰지 않았다. 그러니까 분량으로만 따지면 그저 중편소설 정도의 소품이 되는 셈이다.프랑스는 원래 대하소설이 많기로 유명한 나라다. 위고의 <레 미제라블>이나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등 이른바 명작으로 불리는 소설들은 거의가 대하소설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사강의 짧디짧은 소설이 독서계를 장악했으니, 이는 가히 경천동지할 일이었다. 또한 그녀의 소설은 자잘한 연애심리로만 시종하여 스케일을 전혀 느낄 수 없다. 문장도 짧은 단문이고 역사의식이나 이데올로기적 취향같은 것도 보이지 않는다. 바로 이런 점이 그녀의 대담한 독창성으로 인정됐고, 사강의 신화를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 작가들이 크게 참고해야할 사항이다.
출처: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58411.html
[3] 인상깊은 구절
“그리고 당신,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이 죽음의 이름으로,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을 고발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고독 형을 선고합니다.”
"Et vous, je vous accuse de n'avoir pas fait votre devoir d'être humain. Au nom de ce mort, je vous accuse d'avoir laissé passer l'amour, d'avoir négligé le devoir d'être heureuse, d'avoir vécu de faux-fuyants, d'expédients et de résignation. Vous devriez être condamnée à mort, vous serez condamnée à la solitude."
“In the name of the deceased, I charge you for letting the love pass by, for neglecting the duty to be happy, for living out of excuses, pretense and accepting with the fate. You should be condemned to death, but you'll be sentenced to solitude.”
[4] 다음토론:
다음번 토론 도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는데요. 세번째 월요일은 1월 17일(월) 저녁 7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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