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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동아리/보늬샘독서동아리

제발트가 가해자의 세계로부터 희생자의 세계를 향해 소속감을 이동하는 과정...

by 책이랑 2022. 5. 20.

사라진 자와 남겨진 자
-   「이민자들」을   통해   본   제발트   W.G.    Sebald  의   애도의   시학
탁선미 (한양대)

Ⅰ. 들어가는 말
Ⅱ. 고통의 주체성 – 애도와 우울 
   1. 생존자: 고통과 파괴에 대한 미메시스적 기호
   2. 독일 유대인: 그들은 우리들이었다.
   3. 애도와 우울: 사라진 자와 남은 자
Ⅲ. 󰡔이민자들󰡕 – 포스트 홀로코스트 애도의 내러티브를 찾아서
Ⅳ. 나가는 말

Ⅱ. 고통의 주체성 – 애도와 우울 
  [...] 
   2. 독일 유대인: 그들은 우리들이었다.

제발트의 홀로코스트 유대인 희생자에 대한 전면적인 공감과 연대는 단순히 전후 의 “역사의식이 있는 독일인”이 홀로코스트의 역사를 “자기이해의 출발점”34)으로 삼 는 것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제발트가 객관적으로 자신이 속해있던 가해자의 세계로 부터 희생자의 세계를 향해 정신적, 정서적 소속감을 이동하는 과정에는 몇 개의 심 리적, 경험적 단계가 있었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최초의 경험을 제발트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 16세나 17세 까지는 난 1945년 이전의 역사에 대해서는 사실상 그 무엇도 들은 적이 없었죠. 17세 때인가 비로소 우리는 벨젠 Belsen 수용소의 문이 열리는 기록영화 를 맞닥뜨렸죠. 그랬어요. 그리고 어떻게든 그 상황을 이해해야 했지만 – 물론 그러지 못했죠. 그건 오후였는데, 그 다음에 축구 경기가 있었어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파악하는 데는, 그래서 몇 년이 더 걸렸죠. 60년대 중반이었어요. 이런 사건들이 불과 몇 년 전에 발생했다는 것을 나는 상상할 수가 없었어요.35)


교사의 아무런 설명 없이 이 충격적 영상에 노출된 경험은 아버지의 앨범에서 발 견한 아버지의 폴란드 군영생활을 담은 사진들과 결합되면서, 성장기의 제발트를 섬 뜩한 예감으로 사로잡았다. 이 섬뜩한 단서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발트가 제대로 알게 된 것은 1960년대 중반, 그가 프라이부르크 대학생으로서 프랑크푸르트 재판36) 을 경험하면서였다.

36) 프랑크푸르트 배심 법원에서 1963년부터 시작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의 가해자들에 대한 재판이다. 1963-65년, 1965/66년, 1967/68년 3회에 걸쳐 진행되었고, 그 후 1970년대에도 3 차례 후속 재판이 이어졌다. 흔히 아우슈비츠 재판으로 일컬어지는 이 재판은 1945-1949년 에 진행된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과 달리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벌어진 독일인의 범죄 를 국가가 적시, 고소, 처벌한 재판이었다. 한 저널리스트로부터 아우슈비츠 수용자 살해 목 록문건 7개를 넘겨받은 프리츠 바우어 Fritz Bauer의 각고의 노력과 준비를 거쳐 재판이 열 릴 수 있었다. 현재 프리츠 바우어 연구소는 재판의 모든 녹음 기록을 디지털화 해서, 2004 년부터 온라인상에 공개하고 있다. 

피고인들이 “내가 이웃으로 알았던 종류의 사람들 - 우체부나 철 도공 - 이었다”는 사실, 반면에 증인들은 “내가 전혀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 “브루 클린이나 시드니에서 온 유대인들”37)이라는 사실에서, 제발트는  불과 이십여 년 전 독일에서 엄청난 규모로 삽시간에 유대인들이 추방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 범죄에 평 범한 독일인 대다수가 연루되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노동자 집안 출신으로 1930년대 군인으로서 사회적 성공을 경험한 아버지, 소위 “침묵의 음모”38)가 가장 분명했던 사회 계층에 속한 가족적 배경, 이런 아버지를 비롯해 아버지 세대 전체에 대한 깊은 분노와 이질감은 제발트가 22세의 나이로 독일을 떠나기까지 그의 마음 깊이 자리 잡는다. 그런데 자신의 가족사적 배경 및 사회적 집단 정체성에 대한 이런 부정적 소속감은, 제발트가 맨체스터로 이주하면서 희생자에 대한 대안적 연대감으로 역전되는데, 그것은 망명한 독일 출신 유대인들을 만나면서였다. 프랑크푸르트 재판 을 통해 직면했던 과거의 진실, 즉 “그 역사적 사건들이 실제 사람들에게 벌어졌다 는 것”, 그리고 “그들이 그 모든 장소에 의사로, 영화관 안내원으로, 정비소의 소유주 들로 살았었고, 그런데 그들이 사라졌다는 것 – 또는 사라짐을 당했다는 것”39)의 결 과를 놀랍게도 자신의 현재에서 생생하게 다시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더 나아 가 이들 독일 출신 생존 유대인들은 낯선 대도시 맨체스터에서 “영어를 잘 못했 던”40) 제발트에게 특별한 동질감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그는 빈 출신 유대인으로 1938년 영국에 망명한 엘리아스 카네티 Elias Canetti (1905-1994)의 작품과 운명에 강하게 이끌린다. 또 1933년 가족을 따라 아홉 살 반의 나이로 베를린을 떠나 영국으 로 망명한 번역가 마이클 햄버거 Michael Hamburger (1924-2007)와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이 특별한 유대감을 제발트는 󰡔토성의 고리󰡕(1995)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Ⅱ. 고통의 주체성 – 애도와 우울 
   3. 애도와 우울: 사라진 자와 남은 자

이러한 주관적 상실의 감수성은 프로이트가 일찍이 「애도와 우울 Trauer und Melancholie」(1917)이라는 논문에서 상술한 바로 그것으로, 연인이나 친 구, 부모나 자식과 같은 개인적 애정의 대상이 사라져버린 후 남은 자의 내면에서 나 타나는 심리적 과정이다. 프로이트에게서 애도가 애정이 집중되었던 대상의 상실에 대한 정상적인 심리적 반응이라면, 우울은 복합적이고 병적인 심리적 반응이다. 그러 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애도와 우울의 정신심리학적 성격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상실이 자아의 기존의 자기이해에 중요한 위협이자 도전이 된다는 점이다. 즉, 남은 자는 자아 구성의 일부였던 특정한 대상관계가 사라짐으로써 그 관계에 고착된 심리 에너지가 불안정해지고, 인지적으로는 대상관계를 포함하여 설정했던 자아와 세 계와의 관계가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애도작업 Trauerarbeit은 이 위기에 대응하는 내면적 과정인데, 대상을 상실한 자, 즉 홀로 남겨져 애도하는 자는 사라진 상대에게 향했던 내면의 애정을 거두고, 세계를 애정의 상대가 없이도 자아에게 의미를 갖는 질서로 재해석해내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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