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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동아리/보늬샘독서동아리

오웰의 장미(2023.02.20)

by 책이랑 2023. 2. 21.

2월 20일 월요일 오후 8시, 줌으로  모임을  했습니다.  "박학다식"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작가 리베카 솔닛의 책이었는데요, 언급되는 소재의 다양성에 놀라고, 그것을 엮어가는 솜씨에 놀라고,  표현의 정확함에 놀라고, 생각의 깊이에 놀랐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자가 자기 글쓰기, 삶의 태도의 본보기로 삼았던 오웰에 관한 이야기라서 느낀 것, 읽은 것, 취재한 것이 참 많이 담긴 책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토론도 매우 풍부했던 것 같아요. 다 읽은 사람도 다 읽지 못한 사람도 멀리 치우지 못하고 한동안 손 가까이 두게 될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에는  '위기의 시대에 기쁨으로 저항하는 법'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요 옳지 못한 것, 틀린 것에 대해서는 분명히 저항을 하지만 삶의 기쁨을 느끼면서 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장미를 중심에 놓고 직접적인 듯하면서도 빗대어 자신의 얘기를 힘차게 그리고 부드럽게 하고 있는 참 멋있는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같이 읽고 같이 이야기 나누어서 참 좋았습니다.~

 

 

목차

     

    ■  오웰의 장미

    저자 솔닛은 우리의 편견과 달리 오웰이 장미와 정원 가꾸기를 사랑했다는 점을 출발점 삼아, 오웰이 풍자, 전체주의 비판, 권력과 억압에 대한 저항 등 사회의 부정성을 고발하는 것 못지않게 지상의 아름다움과 즐거움, 기쁨을 추구하는 작가였음을 밝혀낸다. 그렇게 솔닛을 통해 오웰은 사랑과 보살핌과 희망을 치열하게 놓지 않은 한 인간으로 하루하루 위기가 고조되어가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나게 된다.

    오웰의 장미 - 10점
    리베카 솔닛 지음, 최애리 옮김/반비

    ◎ 지상의 삶을 사랑한···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오웰[전희상의 런던 책갈피]

    그것은 “인류애”로서의 사회주의 체험이었다. 오웰에게 사회주의는 이데올로기나 사상 체계가 아니었고 유토피아 건설은 한낱 환상에 불과했다. 그는 사회주의라는 이상을 위해 희생과 파괴를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을 경멸했다.
    오웰이 “장미를 심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리베카 솔닛의 <오웰의 장미>에 따르면 장미를 심고 정원을 가꾸는 것은 지극히 인간적이고 미적인 행위다. 여기에는 삶에 대한 특유한 태도, 인생의 의미를 정치적 이상의 실현에서 찾는 입장과 대척점에 있는 시각이 담겨 있다. 물론 오웰은 평생 불의에 강하게 저항했고 뚜렷한 정치적 지향을 갖고 있었다. 다만 정치가 구체적 일상으로부터 유리되고 그것의 말살로 귀결하는 것을 강하게 경계했다.

    https://v.daum.net/v/20221118134611351

    [1] 책을 읽은 소감

    ▶ 끝까지 읽지 못하고 반납한 저자의 다른 책들과 달리 3일에 걸쳐 끝까지 읽었다. 이 책역시 수많은 것들을 다뤘지만 끝까지 읽게 되는 힘이 있었다.
    ▶ 책의 앞부분부터 죽음,망자 등이 등장한다. 그런 소재로 시작하는 것, 글의 전개되는 방식 등이 내 예상과는 달랐다. 그러나 끌림을 가지면서 계속 읽게 되었다.
    ▶ 글의 구성 등이 우수하다. 복잡하기도 하지만 읽을 수록 재미가 있다.
    표현이 풍성한데 동시에 정확하다고 느껴져 좋았다.
    ▶ 언급하는 내용이 진짜로 넓다. 꽃으로서의 장미, 꽃을 기르는 노동자, 석탄, 사회주의, 인클로저, 오웰의 이름 등등 
    한편에서는 지나치게 많은 것을 언급하고 있다고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 저자가 오만가지것을 끌어들이는 이유는  "기후위기"에 관심이 있어서 일 것 같다. 농업의 시작, 역사, 자본주의 등등이 관련있는 내용이라서 그런 거 아닐까?

    [2] 인상 깊은 인물/ 인상깊은 점

    ▶티나 모도티 - 예술가, 혁명가로서의 삶, 소련과의 관계

    나는 3장에 나오는  '티나 모도티'의 인생에 관심이 갔다. 
    디에고 리베라와 그의 부인 프리다 칼로와는 어떤 관계였는지...등등

    ◈ (28)프레임 밖으로 나와 카메라를 들다, 혁명을 포착하다-여성, 정치를 하다

    “스탈린의 치어리더가 되기를 거절” 숱한 정치적 탄압에도 모험을 계속하다

    1930년 티나 모도티는 독일로 떠났다. 유럽은 파시즘에 잠식당하고 있었다. 그녀는 깊이 절망한다. 광기의 시대에 사진을 찍는 것조차 망설여졌다. 1930년 10월에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역설적이게도 그녀는 혁명의 도시에서 큰 배신감을 느꼈다. “예술가들은 스탈린의 정책에 갈채를 보내는 치어리더가 되어야 했고, 그러지 않았다간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도그마를 이용해 그들을 집요하게 공격하는 이들의 비난을 들어야 했다.” 티나 모도티는 소련 공산당의 공식 사진작가 자리를 거절했다. 그녀의 개인 작업은 소련에서 허용되지 않았다.
     

    [여성, 정치를 하다](28)프레임 밖으로 나와 카메라를 들다, 혁명을 포착하다

    이탈리아서 태어나 열여섯에 미국행무미건조한 일상 속에서 ‘예술가’를 꿈꾸다 “그녀는 정치활동을...

    m.khan.co.kr






    *마거릿 훅스의 <티나 모도티>
    (윤길순 옮김, 해냄, 2004)
    엔리케 크라우세의
    <멕시코 혁명과 영웅들>
    (이성형 옮김, 까치, 2006),
    <멕시코의 역사>
    (멕시코대학원 엮음, 김창민 옮김, 그린비, 2011)

     

    ◈ 혁명·누드·카메라···그녀를 담았던, 그녀가 그렸던

    https://www.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1901241710001#c2b

     

    [김창길의 사진공책] 혁명·누드·카메라···그녀를 담았던, 그녀가 그렸던

    한번쯤은 들어본 이름들이다. 프랑스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과 카미유 클로델, 멕시코 화가 디에고...

    www.khan.co.kr

     

    ▶ 옮긴이의 말 - 줄기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언급하는 것이 지나치게 많고, 아무리 빼도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아 읽기 어려운데  옮긴이의 말이 책의 줄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저자의 관점이 드러나는 감사의 말

    수많은 사람을 언급한다. 사람은 수많은 관계로 얽혀 살아가고 있다는 시각이 감사의 말에도 드러난다.

    ▶여성참정권, 기후위기 등이 모두 연결되었다고 제시한다.

    각 시대마다의 쟁점을 언급하는데, 이 쟁점들은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자기 시대를 비판적으로 봤던 점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시대가 지난 후에 그 시대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시대의 안에 있으면서 똑바로 보기가 쉽지 않은데, 오웰은 그렇게 했다. 엄청난 비난을 받았지만 자신이 몸담고 있던 좌파를 비판한다.

    [3] 인상깊은 구절

    ● 미학적인 경험이 없다면 책과 잡지에 글을 쓰는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다...

    페르메이르의 그림은 왜 고요함이 필요한지, 운하나 푸른빛깔이나 네덜란드 부르주아지의 가정생활의 가치를 바라보는것이, 또는 그저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이 왜 필요한지를말해준다. 자세히 들여다보는 일 그 자체가 우리를 지탱해주는일종의 양식이 되어주는 것이다. 나는 왜 쓰는가」에서 오웰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폭로하고 싶은 어떤 거짓이나주목을 끌고 싶은 어떤 사실이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나의 우선적인 관심사는 남들이 들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미학적인 경험이 없다면, 나는 책은 물론이고 잡지의 기사를 쓰는 일도 할수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의제는 빵이라 하더라도, 장미가 곁들여지게 마련인 것이다. p.134

     

    ● 인간됨의 본질은 완벽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고, 신의를 위해 기꺼이 죄를 저지르는 것이며, 금욕주의를 밀고 나가지  않는 것이고, 패배를 각오하는 것이다.

    '초월적인'의 반대말은 '터 잡고 뿌리내린'일 터이다. 오웰은 다음 세상이 아니라 이 세상의 것들을 사랑했고 평범한 기쁨들과 즐거움들에 대한 애착을 지니고 있었다. 이 에세이에서 그는 자신의 또 한가지 신조를 이렇게 밝혔다. "인간됨의 본질은 완벽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고, 때로 신의를 위해 기꺼이 죄를 저지르는 것이며, 정다운 육체관계를 불가능하게 만들 정도로 금욕주의를 밀고 나가지 않는 것이고, 결국엔 생에 패배하여 부서질 각오를 하는 것이다. 이는 다른 인간들에게 우리의 사랑을 걸자면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할 대가이다. 물론 술이나 담배 같은 것은 성인이 피해야 할 것이지만, 성인됨이라는 것도 사실 사람들이 피해야 할 무엇이다. 많은 사람들은 진심으로 성인이 되기를 바라지 않으며, 성인됨에 도달하거나 그러기를 갈망하는 사람은 인간이 되고자 하는 유혹을 전혀 못 느껴 보았는지도 모른다."p.25

     

    ● 윤리성과 심미성이 별개가 아닌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명징성, 정직성, 정확성, 진실성 등이 아름다운 것은 그런것들 가운데서 비로소 대상이 진실하게 재현될 수 있고, 앎이 민주화되고, 사람들이 힘을 얻고, 문들이 열리고, 정보가 자유롭게이동하고, 계약들이 준수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런 글은 그자체로 아름다우며, 그 글에서 흘러나오는 것에서도 아름답다.
    오웰의 작품에는 더 인습적인 종류의 아름다움 버마의 숲에서 영국의 초원에 이르는 자연 경관, 그 모든 꽃들과 두꺼비의 황금빛 눈알에 이르기까지도 있다. 하지만 윤리와 심미성이 별개가아닌 이 아름다움, 진실과 전일성의 언어적 아름다움이야말로 그가 자신의 글쓰기에서 도달하고자 노력했던 핵심적인 아름다움이다. 그런 아름다움은 언어와 그것이 묘사하는 것 사이, 한 사람과 다른 사람 사이, 한 공동체나 사회의 구성원들 사이에서 일종의 온전함이요 유대감으로 작용한다.p.309

     

    ● 세상에서 물러나는 것은, 좀 더 폭넓게 세상과 연결되기 위해서이다

    1940년 그는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어느 설문 조사에서 자신의 생활을 이렇게 묘사했다. "글 쓰는 본업 외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정원가꾸기, 특히 텃밭 가꾸기이다." 그것이 그에게 얼마나 중요했던가는 1933년 처음 시민농장을 분양받았을 때부터 그 자신이 죽어가던 무렵 생명을 불어넣으려 애썼던 마지막 정원에 이르기까지, 그가 그 일에 쏟은 정성과 노동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척도는 덜 계량적이지만 더 의미심장한 것, 즉 그가 그 일에서 발견했던 기쁨과 의미에 있다. 그는 정원을 원했고, 정원에서 일하기를 원했다. 자기가 먹을 것과 좀 더 무형의 것들을 생산하기 원했다. 그는 꽃과 과일나무와 채소와 닭과 염소를 원했고, 새와 하늘과 계절의 변화를 지켜보기를 원했다. 그는 1946년 나는 왜 쓰는가에서 밝혔던 소신대로 이 땅을 사랑했던것이 분명하다. 그는 수선화와 고슴도치와 민달팽이에 대해 궁금해했고, 동식물과 날씨를 관찰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런 관심사들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창공으로부터 지상으로 돌아오게 한다. 그것들은 글쓰기의 반대로 상상될 수도있을 것이다. 글쓰기는 답답한 일이다. 자신이 무엇을 하려는지,또 언제쯤 끝날 것인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작업을 마친 후 몇달, 몇 년 혹은 몇십 년 후에는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전혀 확신할 수 없는 일이다. 글쓰기로 무엇을 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그들이 싸우자고 나타나지 않는 한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대체로 알아볼 수 없는 일이다. 작가로서, 당신은 세상으로부터 물러나 연을 끊지만, 그것은 좀 더 폭넓게 세상과 연결되기 위해, 즉 이 관조적인 상태에서 짜 맞추어진말들을 다른 곳에서 읽을 사람들과 연결되기 위해서이다. 글쓰기에서 생생한 것은 그것이 오감을 어떻게 자극하느냐가 아니라 상상력에 어떻게 호소하느냐이다. 전쟁터와 탄생과 진창길을, 또는냄새를 오웰은 그의 책들에 묘사된 악취로 유명해지게 된다. 묘사할 수는 있지만, 그래 봤자 그것은 진짜 피도, 진흙도, 삶은양배추도 아닌, 백지 위의 검은 글자들일 뿐이다.

    정원은 글쓰기의 육체 없는 불확실성과는 정반대인 것을 제공한다. 그것은 모든 감각에 생생하게 와닿는 육체노동의 공간, 최상의 그리고 가장 문자 그대로의 방식으로 더러워질 공간이며, 즉각적이고 이론의 여지 없는 효과를 볼 기회이다. 땅을 판다면 하루의 끝에는 얼마나 팠는가가 닭들이 낳은 달걀의 개수만큼이나 분명하다. 문학 평론가 쿠니오 신Kunio Shin 은 1984』의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에 대해 이렇게 썼다. "경험의 견실성뿐 아니라 외적 현실의 존재 자체가 당에 의해 암묵적으로 부인되는 세계에서, 윈스턴이 '돌은 단단하고 물은 축축하며 떠받치지 않은 물체는 지구 중심을 향해 떨어진다' 같은 뻔한 진리를 붙들려는 시도는 그 자체로 정치적 저항의 필사적인 몸짓이다."『1984』의 또 다른 곳에서 오웰은 이렇게 선언한다. "당은 당신에게 눈과 귀의 자명성을 거부하라고 명했소."이는 물질적·감각적 세계에서의 직접적 관찰과 일차적 만남을 저항 행위로, 또는적어도 저항할 줄 아는 자아를 강화하는 행위로 만든다. 이런 직접적 경험으로 자주 시간을 보내는 것은 사태를 명확하게 하는 방법이요, 단어의 소용돌이와 그것이 휘저어 올릴 수 있는 혼돈으로부터 벗어나는 한 방법이다. 거짓과 환상의 시대에 정원은 성장 과정과 시간의 흐름의 영역에, 물리학·기상학·수력학·생물학의 법칙의 영역에, 그리고 감각의 영역에 뿌리박는 한 방식이다. pp.67-69

     

    [4] 토론소감

    ▶ 여러 소재를 사용하는데 스며들듯이 자신의 주제로 끌고 갔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 저자가 기술하는 오웰의 태도가 고 신영복 선생님과 비슷한 것 같다.
    당대가 아닌 다음 대의 사람을 위해 행동하는 것,  사상이 아닌  인간적인 마음인 '양심'을 중심에 놓아야 한다고 했다.https://booksreview.tistory.com/487

    태풍 한가운데에 눈이 있는 것처럼 사람은 한가운데에 '양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것을 다 잃어도 인간성만을 잃지 말아야합니다.

     

    ▶ 오웰은 '정원'을 오웰이 전쟁과 정반대의 위치에 놓았던 것 같다. 정원 가꾸면서 느끼는 독특한 평화에 대해 서술한다.
    -또 정원/나무/장미는 삶의 다양한 문제를 의미하며 이것들을 어떻게 가꾸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 사물을 한쪽으로 바라볼 때의 문제에 대해 계속 말하고 있다. 

     자연에 대한 사랑이 미덕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나치,우생학지지자들 등도 자연사랑을 추구했다.)

    19세기와 20세기에 이르면, 자연의 완상은 대개 세련과 미덕의 표지였다. 물론 스탈린도자기 별장들에 만들어놓은 정원과온실을 사랑했고, 나치는 인종적 순수성과 자연보호, 특히 숲의 보호라는 관념을 융합시켰다. 그리고 미국의 초기 환경보호 단체들 중에도 우생학적 관점을 지지한 곳이 적지 않았다. 자연을 사랑하는 덕스러운 방식들이 있겠지만, 자연에 대한 사랑이 미덕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p. 219
    영문판 표지
    오웰의 무덤가에 핀 장미


     

    더 저널리스트 : 조지 오웰 - 10점
    조지 오웰 지음, 김영진 엮음/한빛비즈

     

    '더 저널리스트' 시리즈의 두 번째 책. 조지 오웰이 저널리스트로서 작성한 방대한 기사와 칼럼, 기고문 중에서 그의 철학이 가장 잘 드러나는 글 57편을 선별한 저널리즘 작품집이다. 오웰의 관점을 더욱 명확히 하기 위해 주제와 의미별로 묶어 정리했다. 대부분 국내 초역이다.

    오웰의 에세이와 칼럼은 몇 차례 국내에 소개된 바 있지만, 그가 남긴 작품 수에 비해 소개된 글은 적고, 관심사의 폭은 너무 넓다. 그 탓에 하나로 관통하는 주제가 명확하지 않았다. 글 하나하나에 오웰의 독특한 시각이 잘 담겨 있지만, 뚜렷한 관점을 갖고 들여다보지 않으면 생각의 흐름을 따라잡기가 쉽지 않았다.

    이러한 아쉬움을 줄이기 위해 이 책은 명확한 주제에 집중했다. 지금, 여기의 우리가 다시 곱씹어야 할 이야기를 우선했다. 당시의 사건이나 인물을 설명할 때도 독자들이 궁금해할 내용을 먼저 고민했다. 오웰의 의도를 분명히 이해할 수 있도록 배경 설명 등 필요한 곳마다 각주를 달았다. 가장 ‘오웰다운’ 생각을 담는 데 주력했다.
    1부|평등
    2부|진실
    3부|전쟁
    4부|미래
    5부|삶
    6부|표현의 자유

     

    [5] 오웰연표

    •  1903 - 인도 모티하리에서 출생
      인도 모티하리에서 출생6월 25일, 영국 식민지 인도의 모티하리에서 본명 '에릭 아서 블레어 Eric Arthur Blair'로 태어났다. 아버지 리처드 블레어는 인도행정부 아편국에 근무하고 있었다. 영국이 인도에서 생산해중국으로 수출하는 아편 재배를 감독하는 역할이었다. 어머니아이다 리무진은 식민지 내 유럽인 휴양지 학교에서 근무했다.
      오웰은 2녀 1남 중 둘째로 태어났다.

    • 1904 - 영국으로이주
      영국으로 이주아버지를 제외하고 전 가족이 영국으로 이주했다. 당시에는 자녀를 데리고 생활 여건이 더 나은 본국(영국)으로 귀국하는 게 흔한 일이었다. 아버지는 1912년 따로 귀국해 합류했다. 오웰은 위아래 다섯 살 터울의 형제를 둔 탓에 혼자 시간을 보내고 공상하는 데 익숙했다. 그래서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 1917 - 이튼 칼리지 입학, 인도 제국경찰로 버마에서 근무
      고등학교 입학(14세)기숙학교 세인트 시프리언즈를 졸업하고 명문 사립학교인 이튼 칼리지에 입학했다.
      922 버마에서 인도제국경찰로 근무(19세)오웰이 공부를 잘한 편은 아니었다. 가정 형편상 장학금 없이 대학을 가기는 힘들었다. 오웰은 고등학교 졸업 후 인도제국경찰에 지원해 합격한다. 당시 영국 식민지인 버마(오늘날 미얀마)에배치되어 1927년까지 근무한다.

    •  1928- 런던과 파리에서 밑바닥 생활(25세)
      영국으로 돌아와 런던 거리에서 부랑자 생활을 시작한다. 곧 파리로 건너가 글을 쓰기 시작한다. 접시닦이 등의 노동을 하며 근근이 살았다. 평생 따라다닐 건강 문제가 점차 악화되기 시작했다.

    • 1930
      다시 파리에서 런던으로 돌아와 밑바닥 생활을 이어갔다.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썼다.

    • 1933 작가 조지 오웰의 시작(30세)
      처음으로 필명 '조지 오웰'을 쓴 작품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이 출간된다. 1931년에 원고를 완성했지만 출판사로부터 연거푸 거절당한 작품이었다. 잠시 교사로 일하다 연말께 폐렴이심해져 그만둔다. 조금 나아진 이듬해부터 서점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첫 소설 《버마 시절》을 발표했다.

    • 1936 에일린 오쇼너시와 결혼(33세)
      6월, 교육심리학 석사 공부 중이던 에일린 오쇼너시와 결혼한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의 집필을 시작했다. 이때 발표한 작품으로 <엽란을 날려라》 《코끼리를 쏘다> 등이 있다. 공화파 쪽에서스페인 내전에 참전하기 위해 스페인으로 떠난다.

    • 1937 스페인 내전 참전 (34세)
      마르크스주의 통일노동자당의 의용군으로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다. 5월, 파시스트 측 저격수의 총알이 오웰의 목을 관통했다. 다행히 살아남아 치료받았다. 스페인 내전에 참가한 좌파 내부의분열과 충돌로 체포될 뻔했다. 아내와 함께 스페인을 탈출하고, 귀국해서 《카탈로니아 찬가> 집필을 시작했다.

    • 1938 건강 악화(35세)
      계속 건강이 좋지 않아 요양원에 머물렀다. 독립노동당에 가입했다. 연말에 모로코로 떠나 마라케시에 6개월 정도 머물며 요양했다.

    • 1939 제2차 세계대전 발발(36세)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며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이틀 후 영국과 프랑스도 독일에 전쟁을 선포했다.

    • 1940 향토방위군 가입 (37세)
      향토방위군에 가입했다. 몇 년 후 건강상의 이유로 그만두었다.

    •  1941 BBC 라디오 근무 (38세)
      8월, BBC 라디오에서 방송 대본을 쓰고 낭독했다. 인도 청취자를 대상으로 현지어 방송을 송출하는 동부 서비스의 인도 파트소속이었다. 이때 프로파간다를 포함한 전쟁 논평을 백여 편 작성했다. 문학 리뷰나 대담 프로그램 대본도 백여 편 정도 썼다.

    •  1943 BBC에서 트리뷴으로 이직 (40세)
      11월, 하고 있는 일에 회의를 많이 느끼고 BBC를 떠났다. <트리뷴>으로 이직해 문학편집장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동물농장》 집필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 1944 아들 입양 (41세)
      6월, 아내와 함께 아들 리처드 호레이쇼 블레어를 입양했다.

    • 1945 <동물농장> 발표(42세)
      <옵서버>와 <맨체스터 이브닝뉴스>의 전쟁 특파원으로 유럽에서 활동하던 중, 아내가 수술 중 마취 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들었다. 파리에서 귀국했다. 5월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다. 8월에 <동물농장>이 출판됐다.1943년부터 쓰려고 마음 먹었던 소설 <1984>를 본격적으로 집필하기 시작했다. 영국과 미국, 소련이 독일에 대항하기 위해 군사적 협력을 약속하는 모습(테헤란 회담)을 지켜보면서 전 세계가 몇 개의 열강으로 쪼개지는 미래를 구상했다고 회상했다.

    •  1947 스코틀랜드에서 집필 (44세)
      바로 전해에 정착한 스코틀랜드 주라섬에서 집필을 계속했다.<1984》의 초고를 완성했지만 곧 폐결핵으로 입원했다.

    • 1948 <1984> 최종 탈고(45세)
      건강이 계속 좋지 않았다. 입원실 선반에는 언제나 책이 널려 있었다고 한다. 폐결핵으로 심각하게 쇠약한 상태였고, 침대를 벗어나기조차 힘들었다. 몇 시간씩 타자기 앞에 앉아야 하는 퇴고는 그에게 고역이었다. 연말이 되어서야 <1984>의 최종 원고를완성했다. '유럽의 마지막 인간'과 '1984'라는 제목 사이에서 고민한 것으로 전해진다.

    • 1949 병세 악화와 <1984> 발표(46세)
      1월에 주라섬에 있는 집으로 돌아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요양원에 가야 했다. 1945년을 배경으로 한 다음 소설을 계획했지만 결국 쓰지 못했다. 당시 타자기를 치지 못할 정도로 기력이쇠한 상태였다. 이미 2년여를 결핵에 시달렸지만, 한참 더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아직 할 일이 너무 많이 남아 최소한 10년은 더 살고 싶다"고 말했다.6월, 영국에서 <1984>가 발표됐다. 다음달 뉴욕에서도 출판됐다. 오웰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10월에는 지인의 소개로 만난 소냐 브라우넬과 입원한 병원에서 결혼했다. 스위스 요양원에갈 계획을 세우며 의욕을 되찾았다.

    • 1950 사망 (47세)
      1월 21일 새벽, 급격한 폐출혈이 일어났다. 아내도 외출한 바람에 병상을 지키는 지인도 없이 홀로 사망했다. 오웰은 죽기 전까지 살고자 하는 의지를 내비쳤다. 그의 친구이자 저널리스트인말콤 머거리지는 오웰이 사망한 날 자신의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그는 살고자 하는 열망에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그의 내면에는 어떠한 평온함이나 체념도 없었다."

    [6] 아들 리차드 블레어가 회고하는 아버지와의 추억

    https://www.mirror.co.uk/news/uk-news/george-orwells-adopted-son-reveals-10079539

     

    George Orwell's son reveals how his dad cared for him while he wrote 1984

    Eight decades after Richard's father researched Wigan Peir in the attic room of the town's old library, Richard has returned with the Orwell Society to retrace his steps

    www.mirror.co.uk



    당시 부인이었던  에일린의 시누이가  의사였는데  남편이 2차 대전에 참전중인데 아이를 낳게 된 부인의 얘기를 듣고 부부가 입양을 결정하게 되었다.그런데 8개월 후, 아이린이 자궁적출수술을 받으려고  마취를 했는데 깨어나지 못하고 사망했다.

    주변에서는 입양을 포기하라고 했지만 조지오웰은 그러지 않았다.부인의 사후에는 오웰의 여동생인 에이브릴이 아이를 돌봤다, 항상 아버지는 자신의 옆에 있었고, 아버지는 끝임없이 담배를 피우며 1984를 쓰고 있었다고 한다. 주라섬에 살던 중 중간에 보트사고가 나서 둘 다 익사할 뻔하다가 구조된 후 오웰의 건강이 매우 나빠졌다.

    오웰은 마지막에는 무정부주의자들이 모여사는 지역 근처의 요양원에 머물렀는데...차를 타고 나갔다가 차가 고장났고다른사람들이 공구를 가지러 간사이에 둘은 차에서 남아 있었다.
    오웰은 과자를 먹고 있는 아들에게  이야기도 지어서 들려주고 시도 지어주었다. 그게 아버지와의 마지막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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