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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수

by 책이랑 2016. 8. 24.

■ 자기중심적 세계인식(공감능력 결여)

40대-취직, 결혼, 출산, 직업, 육아 등 성인으로서의 삶을 살아 온 나이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자신이라고 착각 하기 쉬운 나이- 되돌아 볼 여유가 없슴.
( 안온해 보이는 가정, 남들의 부러움을 살 만한 타운 하우스, 안정적인 직업)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생이라는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갖가지 전략을 구사하는 가운데
인생의 가치, 목표 등 청년기에  고민했던 문제에 대한 자각이 없어짐

40대의 가치관- 도덕적 해이
40대가 살아가는 모습
이전의 삶에 대한 자기반성


■ 사고 이전에 이미 구멍이 나 있던 일상
교통사고 이전의 오기의 삶이 어떤 교란도 없는 무사태평한 세상인 줄 알았지만
자신이 행한 업(karma) 때문에 스스로 판 구덩이(hole)에 빠진 남자에 대한 고발문

기억과 윤리의 '심리 스릴러'라는 말을 썼다. 원서로 150페이지 남짓한 이 길지 않은 소설이 독자를 몰아치는 힘과 서스펜스, 섬세하고 정교한 구성력 때문
불완전하고 믿을 수 없는 1인칭 화자의 시점에 의존하여 인간의 기억과 시점의 왜곡을 탐색하고, 마침내 진실이 모습을 드러낼 때 묵직한 울림을 전한다는 점에서다. 
 '왜곡된 기억'은 줄리언 반스가 논픽션인 <두려워할 것은 없다>에서 철학자인 자신의 형 조너선 반스와의 쉽지 않은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다루었던 주제이기도 하다. 역사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교사의 질문에 에이드리언이 (작가가 만들어낸 소설 속 허구의 역사학자인) 라그랑주를 인용해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라고 대답하는 지점에서 작가의 성찰은 시작된다.
. 무거운 주제에 비해서 소설이 잘 읽히는 까닭은 최종적인 종말의 의미는 소설을 다 읽어야만 밝혀지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종말이 찾아온다는 점에서 모든 인생은 교훈적이다. 종말의 관점에서 다시 인생을 되짚어보면, 모든 건 원인과 결과로 강하게 연결돼 있다는 것을 알테니까. 마치 마지막 장면을 염두에 두고 정교하게 씌어진 소설을 읽을 때처럼.『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그런 소설이다. 죽을 때에야 그 의미를 완전히 드러내는 우리 인생을 닮았다. 150페이지짜리 이 소설을 두고 줄리언 반즈는 “나는 이 작품이 3백 페이지짜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건 꼭 인생에 대한 비유처럼 들린다. 마지막 순간, 이 인생의 의미가 드러날 때 우리는 한 번 더 이 인생을 살아갈 테니까.
치밀한 철학적 깊이. 심리 스릴러의 진정한 서스펜스를 갖춘 작품. 양파껍질을 벗기듯 인물의 생을 벗겨나가며 그의 과거를 저미고 또 저며서 마침내 재탄생시킨다.
‘내가 과연 내가 생각하는 그 사람인가’라는 근본적이고 소름끼치는 질문이 놀라울 정도로 서스펜스로 가득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반스는 너무나 우아하고 통렬하게 우리 모두가 믿을 수 없는 화자이며, 오로지 기억의 정확함이 아니라 오로지 그것에 의문을 던짐으로써만 구원받을 수 있는 존재임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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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 사진 최재봉 기자
편혜영. 사진 최재봉 기자

편혜영 지음/문학과지성사·1만3000원
편혜영의 네번째 장편 <홀>은 한 남자의 실존에 파인 구멍에 관한 이야기다. 운신이 힘들 정도로 몸이 망가진 주인공이 제 집 정원에 파 놓은 구덩이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장면으로 끝나는 이 소설에서 정원의 구덩이란 물론 그의 내면과 인간 관계를 갉아먹은 공동(空洞) 또는 함정을 상징한다.
소설은, 아내는 즉사하고 운전하던 자신은 온몸이 마비될 정도로 크게 다치는 교통사고 이후 주인공 ‘오기’가 병원 침대에서 가까스로 깨어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의식이 서서히 돌아오고 눈꺼풀에서부터 시작해 몸의 일부를 조금씩 움직일 수 있게 되면서 오기는 지나온 삶을 돌이킨다. 결혼한 지 15년이 되었으며 지리학 전공 교수 신분인 40대 남자 오기는 자신의 지난 삶을 이렇게 요약한다.
“의식하거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점점 많은 것을 가지게 되었고,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어 노골적으로 술수를 부렸고, 그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했다. 종종 이 삶이 너무 안온해서 어느 것도 바꾸고 싶지 않을 때도 있었다. 수중의 것은 하나도 잃고 싶지 않았다.”
너무나 흔하고 보편적이어서 차라리 정상적이랄까 아예 모범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이런 인간형을 가리키는 말이 있으니, ‘속물’이 그것이다. ‘속물’은 아내가 오기를 비난하고 고발할 때에도 등장한다. 버석거리던 부부 관계를 개선하고자 떠난 둘만의 여행에서 아내는 요즘 자신이 쓰고 있다는 글을 화제에 올린다. ‘한 인간에 대한 고발문’이라고 아내가 소개한 그 글의 내용과 용도는 이러했다.
“일찌감치 속물이 된 남자가 성공을 위해 어떻게 우연과 술수를 활용하는지, 그의 도덕적 해이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하는 내용이었다. 또한 후배와 오랫동안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한 것은 그의 특별한 윤리 감각을 드러내는 일화라고 비아냥거렸다. 아내는 그 글을 몇 곳에 발송할 예정이라고 했다. 학과나 학교 본부, 학회 및 동료들에게.”
그 직후 핸들 쥔 남편의 팔을 아내가 뒤흔드는 식의 몸싸움이 치명적인 교통사고로 이어진 것인데, 막상 사고의 순간 오기의 마음이 오히려 편안해진다는 대목이 흥미롭다. “안달복달하며 삶을 꾸려오던 게 조금 억울했지만 삶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피로감이 더 압도적이었다.”
어느 정도 나아진 상태에서 집으로 돌아온 오기와 ‘유일한 가족’으로 그를 간병하는 장모 사이에 또 다른 긴장과 알력이 생기고 그 결과로 오기는 구덩이에 빠지는 것이지만, 그의 추락은 사실 교통사고를 당하기 훨씬 이전부터 준비돼 온 셈이다. 그러니 이 속물은 “모두 잃게 될 줄도 모르는 채, 얼마나 오래전부터 인생에 헌신해온 걸까.”

■ 자기중심성 -합리화 하기 VS  멈춰서 되돌아보기 

자신의 입장에서 상대를 파악  상대가 왜 그런 의도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함
상대가 왜 이 말을 하는지 고민하고, 자신이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고민하지 못함
아내가 처음 오기와 J와의 관계를 의심했을 때, J를 쳐다보는 오기의 눈빛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듯이, 

■ 자아가 왜곡한 현상을 보여주고, 그것들이 가리키는 진실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자신의 틀로 바라본 아내를 독자에게 설명하는 화자로서 크게 기능한다. 그런데 오기가 설명하는 아내는 다시 또 오기라는 남자를 오기 스스로가 자신을 말하는 것과는 다른 시각으로 보게 한다. 사고 직후 혼자 살아남은 자신이 애틋했던 아내와의 시간들을 회상하는 듯 시작하지만, 그의 생각 속에서 회상하는  아내의 행위를 통해 그리고 그가 아주 약간의 단서만을 주었던 그 자신의 몇가지 행위를 통해 독자로서는 속단할 수 없는 조금은 추악한 남자의 내면 혹은 진실이 숨겨져있음을 알게 된다.


■ “우는 아내를 보며 오기는 웃었다. 이게 슬픈가. 겨우 이런 얘기로 우네. 아내가 이렇게 감상적이었나. 이해할 순 없지만 사랑스러웠기 때문에 달래고 싶었다. 우리는 무사할 테고, 어떤 일이 있어도 저 너머로 홀로 가지 않겠다고 얘기했다. 허튼 약속 없이, 섣부른 이해 없이 아내를 슬픔에서 천천히 건너오게 하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은 나중에야 들었다. 오기는 미래의 슬픔을 이미 겪은 듯한 아내를 가만히 안아주었고 울음이 서서히 잦아들다가 그쳐가는걸 지켜봤다.


깊고 어두운 구멍에 누워 있다고 해서 오기가 아내의 슬픔을 알게 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이 아내를 조금도 달래지 못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아내가 눈물을 거둔 것은 그저 그럴 때가 되어서였지, 더 이상 슬프지 않아서는 아니었다.

오기는 비로소 울었다. 아내의 슬픔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그럴 때가 되어서였다.” p208-209

생각해보면 오기는 아내에게 줄곧 의심받았다. 아내는 오기를 무책임하다고 생각했고, 지속적으로 누군가에게 연인 관계를 원하다고 주장했다. 자주 오기에게 이전과 달 졌다고 했고 무턱대고 실망했다고 말했다. 오기가 명성을 쌓는 데 몰두해 가족을 돌보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오기를 속물이라고 단정하며 누살을 찌푸릴 때도 있었다. 오기의 손을 뿌리쳤고 다가가면 멀찍이 물러섰다. 그런 일들이 오기를 얼마나 비참하게 하는지 아내는 몰랐다. 후에 제이를 안고나서 오기는 내심 그런 아내 탓을 했다. 180

우는 아내를 보며 오기는 웃었다. 이게 슬픈가. 겨우 이런 얘기로 우네. 아내가 이렇게 감상적이었나. 이해할 순 없지만 사랑스러웠기 때문에 달래고 싶었다. 우리는 무사할 테고, 어떤 일이 있어도 저 너머로 홀로 가지 않겠다고 얘기했다. 섣부른 이해 없이 아내를 슬픔에서 천천히 건너오게 하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은 나중에야 들었다. 208

■  오해라는 걸 증명하려고 오기는 도법을 연구하고 오래된 장방형 지도를 들여다보는 일에 시간을 썼다. 고대 바빌로니아 지도로부터 시작해 최근 것까지 자주 지도를 들여다보았다. 그럴수록 막막해졌다. 아무리 애써도 끝내 정확할 수 없다는 것. 지도를 연구하면서 오기가 깨달은 것은 그것이었다. 지도로 삶의 궤적을 살피는 일은 불가능했다. 지도 없이는 세계를 이해할 수 없지만, 지도만으로 세계를 표현할 수 없다는 것에 회의가 들었다. 

의미가 있기는 했다. 정확히 살필 수도 없고 선이 보이지도 않는 궤적을 누군가는 구태여 실체가 있는 공간으로 바꾸려고 애썼다는 점이었다. 때로는 바로 그 이유로 시시해졌다. 정확히 알 수 없고 하나로 분명하게 해석될 수 없으며 온갖 정치적 의도와 편의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세계라면 지금 이 세계와 별반 다르지 않아서였다. 그래도 지도는 실패를 통해 나아졌다. 그 점에서는 삶보다 훨씬 나았다. 삶은 실패가 쌓일 뿐, 실패를 통해 나아지지는 않으니까. (75) 


■ 사십대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머니였다. 마흔은 어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나이였다. 아버지가 회사에서 자리를 잡고 개인 사업을 궁리하며 바깥으로 나돈 것도 그 무렵이었다. 말하자면 사십대는 세상에 적응하거나 완벽하게 실패하는 분기점이 되는 시기였다. 오기는 물론 세상에 적응하고 싶었다. 

자괴를 이겨내기 위해 언젠가 아내가 읽어준 허연의 시를 종종 떠올렸다. 사십대란 모든 죄가 잘 어울리는 나이라는 구절이 담긴 시였다. 그 구절을 생각하면 다소 마음이 놓였다.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대체로 그럴 시기라는 것에 안도했다. (77) 

더욱이 ‘사십대란 모든 죄가 잘 어울리는 나이’라는 시구를 읽으며, 속물이 되어버린 자신에 대해 반성하기보다는 ‘나뿐 아니라 남도 그럴 것이라는’ 가벼운 자기 위로와 체념에 빠져버리는 태도를 취하는데, 

이는 오기의 삶이 모래 위에 성을 쌓듯 위태로우면서 허술하게 지어지고 있었음을 상상케 한다. 
조금씩 인생의 지반을 갉아먹던 속물적인 태도들이 하나둘 인생에 구멍을 만들고 
그 구멍이 걷잡을 수 없이 깊고 커졌을 때, 순식간에 그 구멍 안으로 빠져버린 것은 아닐까. 
사고 전후의 모습을 계속해서 교차하며 작가는 오기가 만들어온 그의 삶을 관찰
이는 곧 이 소설이 단순히 ‘사고’로 인한 불행만을 말하려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표면적으로 사고를 당한다는 두려움보다 
일상에서 제 스스로를 곤란에 빠뜨리는 인간 스스로의 결정들이 좀더 보편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 어떻게 삶은 한순간에 뒤바뀔까. 완전히 무너지고 사라져서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릴까. 그럴 작정으로 하고 있던 인생을 오기는 남몰래 돕고 있었던 걸까. p28

삶이 한순간에 바뀌는 것이 아니라 한순간 뒤바뀔 순간을 위해 여러 층의 행동들을 쌓는 것 같다. 그러니까 무너질 탑을 쌓아 가는 순간순간의 행동들이라고 해야겠지.

자신이 그토록 싫어했던 아버지, 다른 사람의 의지를 손쉽게 비웃는 그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가며 아내에게 “성장할 만한 일”을 찾으라 훈계하는 모습 역시 서서히 변해가던 오기를 짐작케 한다.

Q 오기의 직업을 지리학과 교수로 삼은 이유 무엇인가요?

오기는 어떤 일에 대해서 이분법적으로 성공이나 실패라고 분명하고 확신에 차서 말할 수 있는 캐릭터예요. 단호하고 확신에 차 있고, 자신은 해석이 분명한 세계에 살고 있다고 믿고 있는 인물이요. 그런 인물이 분명하거나 명확한 인과로 설명할 수 없는 세계, 우연과 시간의 격차에 따라 달라지는 세계에 매혹되면 재밌겠다 싶어서 선택한 것이 지도학이에요. 지도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믿어지지만 실은 현실을 상징화하고 기호화한 것뿐이죠. 그렇기 때문에 현실과 다르거나 현실에서 누락되는 부분이 발생하죠.


환경이나 시스템이 한 개인에게 지나치게 폭력적으로 변할 때,
그런 상황에 맞설 수 없어 존엄했던 개인이 무기력한 존재가 되는 순간을 지켜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Q 폭력 또한 이 소설의 중요한 키워드로 보면 되는가요? 

장모가 오기에게 물리적인 폭력을 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치심을 자극한다거나 치료를 하지 않고 방치하는 식으로 폭력을 행사하지요. 오기가 통제할 수 없고, 원하지 않는 상황이 계속 주어지는 것도 개인에게 가해지는 폭력이고요.

Q 이 소설의 제목인 ’홀’에 대해서 균열이나 공동(空洞)의 중의적인 상징이라는 해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독자분들 각자가 느끼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할 것 같아요. 오기가 나중에 빠져들어 가는 실재하는 구멍을 뜻할 수도 있고, 일상에서 사람들이 짐작하지 못한 허방 같은 것일 수도 있고요. 예기치 못한 균열이나 틈일 수도 있고요.


살아가게 하는 힘, 그게 뭘까, 자주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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