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두껍게 입기를 잘했다고 생각되는 쌀쌀한 날입니다.
오늘은 2부의 1장 푸른 보리밭을 읽었어요.
1부를 읽을 때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할까봐 신경을 곤두세웠기에
2부는 편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좋아했는데 전혀 편하지 않네요.
2부는 인간에 대한 성찰이라고 하셨지요.
청구회를 추억함으로써 그순간만큼은 죽음마저도 잊었다 하시기에 가슴이 뭉클하지만 초등학교 5,6학년 아이들 6명과 보낸 그시간을 '변란을 노리는 폭력과 파괴'를 위한 조직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국가권력의 얼굴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무섭기도 합니다.
햇빛에 빛나는 푸른보리밭은 민중과 생명력을 의미하고 침통한 어둠속에 있어야 하는 남한산성은 정치권력을 의미하겠지요? 푸른 보리밭에서 살아가야할 사람들을 정치권력의 생존을 위해 옥방에 가두는 것이 정치권력의 실상인 것이네요. 남과북이 갈라져 있슴으로 인해 양쪽의 주민들은 삶을 심각하게 훼손당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여러가지 종류가 될 수 있네요. 청구회의 신영복 선생님과 아이들, 그리고 남한산성에 있던 사형수들, 그리고 수사기관의 사람들, 사법기관의 사람들, 그것을 기획한 권력자들..모두 인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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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과 청구회
- 고아, 장기 하사 , 창녀애인, 극장 앞 수류탄
- 헌병출신 수형자-장교를 죽인 죄로 사형,15년 형으로 감형되었는데 목욕장에서 살고 싶다고
'푸른 보리밭'은 생명의 벌판
- 남한산성 육군 교도소 수감자들- 영창후 본대귀대 복역
-정치권력은 민주적이지 않음, 대적 논리이지만 내면에는 서로가 서로의 존재조건이 되고 있는
권력 집단간의 상생과 상극
-전기고문-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을 포기하게 하는 수사 기법
남한선상은 절망의 끝부분
옥방의 침통한 어둠으로부터 진달래 꽃처럼 화사한 서오릉으로 걸어나오는 구원의 시간
우리시대의 감추어진 칼
아름다운 추억 하나가 안겨 주는 위로와 정화
청년기의 고민과 방황이 어린 수많은 만남과 토론, 그리고 서로 빌려주고 빌려 보았던 수많은 책들은 몇십 장의 자술서와 몇십 장의 조서와 몇 줄의 법률용어에 의해 온통 조직적인 관계로 규정됐다. 지난 수년간 자신이 행한 활동을 담은 것이건만 수사 기록은 외국어보다도 낯설었다. ‘이런 방식으로 한 사람의 복잡한 사상과 의식이 규정되고 단죄되는구나’ 하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당시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원숭이 똥구멍’ 노래가 생각났다고 한다. 신영복이 수사를 받을 때 초등학교 3학년이던 나도 친구들과 많이 외우며 놀았던 노래다. “원숭이 똥구멍은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으면 기차/ 기차는 빨라/ 빨르면 비행기/ 비행기는 높아/ 높으면 백두산!” 수사기관의 논리학을 지배하는 것은 흑백논리도 삼단논법도 아니었다. 무엇이든 갖다붙이면 척 붙어버리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수사기관의 연상법 놀이여!
http://www.shinyoungbok.pe.kr/index.php?mid=calligraphy&category=899&page=2&document_srl=131956
http://legacy.h21.hani.co.kr/section-021075000/2006/05/021075000200605110609056.html
" 겨울에도 푸르른 소나무처럼
우리는 주먹 쥐고 힘차게 자란다.
어깨동무 동무야 젊은 용사들아
동트는 새아침 태양보다 빛나게
나가자 힘차게 청구용사들.
밟아도 솟아나는 보리싹처럼
우리는 주먹 쥐고 힘차게 자란다.
배우며 일하는 젊은 용사들아
동트는 새아침 태양보다 빛나게
나가자 힘차게 청구용사들.
여기서 '주먹 쥐고'라는 것은 국가 변란을 노리는 폭력과 파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심각한(?) 추궁을 받았다.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폭력의 준비를 암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끈질긴 심문이었다.
내가 겪은 최대의 곤혹은 이번의 전 수사과정과 판결에 일관되고 있는 이러한 억지와 견강부회였다. 이러한 사례를 나는 법리해석의 문제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권력 그 자체의 가공할 일면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지만 이는 특정한 개인의 불행과 곤혹에 그칠 수 있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심각한 사회성이 복재(伏在)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군법회의에서 이 '청구회 노래'의 가사를 읽도록 지시받고 '청구회'가 잡지사 '청맥사'를 의식적으로 상정하고 명명한 이름이 아니냐는 '희극적' 질문을 '엄숙히' 추궁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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