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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

[경향시선] 그 손 / 문태준 / 경향 / 2018.01.21.

by 책이랑 2018. 3. 13.

[경향시선] 그 손 / 문태준 / 경향 / 2018.01.21.
http://naver.me/FYpxAZ0K

필사를 위해서 여러 번 읽고, 뜻을 생각하고, 또 조사를 하니 그냥 후루룩 읽어서는 모랐을 글의 숨은 의미가 발견된다.  소개된 이 시는  2018년 1월 8일자로 출판된, 김광규 시인이 희수(77세)를 맞아 펴낸 시집 <안개의 나라>에 실려 있는 시224편중 하나이다.  지난 40여 년간 펴낸 11권의 시집, 800여여 편중 특히 아끼는 작품을 추린 것이라 한다.

찾아보니 이 시는 2016년 펴낸 시집 <오른손이 아픈 날>에 처음 실린 듯 하다.  시는 '손'에 대해 말한다. 그 손은 든든하고 따뜻했고 나의 아픔을 쓰다듬어 주었지만 그 존재를 의식하지는 못했었다. 그리고 지금은 잡을 수 없는 곳에 있다고 한다. 시에 오동잎같다는 표현이 나와서 오동잎이 어떻게 생겼나하고 찾아보니 무지 크다. 


언제나 같이 있었고 든든하게 느꼈다가 놓쳐버린 손이라 하면 부모를 의미하겠다.  재미있게도 이 시가 처음 실린 <오른손이 아픈 날>의 시집에는 '오른손이 아픈날' 이라는 시가 있다.


<오른손이 아픈날>

밤새도록 오른손이 아파서 

엄지손가락이 마음대로 안 움직여서 

설 상 차리는 데 오래 걸렸어요 

섣달그믐날 시작해서 

설날 오후에 떡국을 올리게 되었으니 

한 해가 걸렸네요 

엄마 그래도 괜찮지?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에 시달려 

이제는 손까지 못쓰게 된 노모가 

외할머니 차례 상에 술잔 올리며 

혼자서 중얼거리네) 

눈물은 이미 말라버렸지만 

귀에 익은 목소리 들려와 

가슴 막히도록 슬퍼지는 때 

오늘은 늙은 딸의 설날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였지 

           ―「오른손이 아픈 날」 전문


시인의 어머니가 친정어머니의 제사를 지내는 장면으로 해석된다. 이렇게 대를 이어져 오는 사람이 부모의 사랑인 것 같다. 


김광규 시인이 부모의 사랑으로 선정한 "손" 은 컬럼을 쓴 문태준 시인에게 는 고향 김전의 자연인 것 같다. 문태준 시인은 채널예스와의 인터뷰에서 "시를 쓰게 된 것이 내가 살아온 동네에 관해 시를 쓸 수 있겠다고 생각한 때부터"이며 "  짐승 못지않게 산과 들로 뛰어 다니고 물속으로 뛰어들며 지냈던 낮밤, 그리고 그 속에서 힘들게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이 제 시에 근거가 되고 밑천이 계속 되어주는" " 밑돌"이라고 말한 바 있다.  


나도 문태준시인처럼 자연에서 이런 위로를 받은 적이 있다.  서울 교외의 휴양시설에 갔다가 갑자기 내린 소나기가 그친 후였다.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왔던 물이 안개가 되어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때 하늘과 땅사이는 빈 곳이 아니라는 무엇인가로 꽉 차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이를 채우고 있던 에너지는 실연의 상처로 괴로워하던 나에게 "괜찮다, 괜찮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시에는  그 손을 "팔을 뻗쳐도 닿을락 말락/끝내 놓쳐버렸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내 경험에 따르면 보이지 않고, 잡을 수는 없지만 그 손은 여전히 받쳐주고, 감싸주고, 쓰다듬어 준다. 어머니에게 배운 것을 어느새 내가 아이에게 가르치고 있을 때, 나는  그 손이 여전히 나와 함께 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린다.


<경향시선>은 1주일에 한 편씩 시를 소개하는 컬럼인 것 같다. 문태준 시인도 '읽기는 쉽지만 쓰기는 어려운 시'를 쓰는 것은 시가 소개된 김광규 시인과 비슷한 것 같다. 2018년에 <경향시선>을 담당하신다는데, 일주일에 시한편, 놓치지 않고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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