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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

[백영옥의 말과 글] [36] 새 삶과 새봄

by 책이랑 2018. 3. 17.
1999년 12월의 31일, 새 천 년이 열린다는 기대 때문에 사람들이 유달리 들떠있던 해였다. 힘차게 떠오르는 해를 보기 위해 동해로 가고 싶었다. 지는 해를 보기 위해 서해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 친구 덕분에 엉뚱한 곳에 가긴 했지만. 결국 우리는 뜻밖의 장소를 발견했다. 일출과 일몰 모두 볼 수 있는 충남 당진의 한 작은 마을이었다.

왜목마을. 이름도 예쁜 그곳에 가기 위해 서둘렀건만, 각지에서 온 차가 너무 많았다. 바닷가에 당도하지도 못한 채 차에서 밤을 맞았다. 새해 첫날엔 피곤 때문인지 늦잠으로 일출을 보지 못했다. 서울로 돌아와 '박하사탕'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봤는데, 2000년 1월 1일 개봉한 그 영화는 예상과 다르게 자꾸만 과거로 회귀하는 영화였다.

되는 게 하나도 없던 20대였다. 대학에도, 회사에도, 신춘문예에도 떨어지기만 했다. 밀레니엄이 열리면 새 인생이 펼쳐질 거란 기대가 그래서 컸다. 하지만 영화 속 주인공은 철도 한복판에 서서 "나 다시 돌아 갈래!"를 울부짖고 있었다. 돌아가고 싶은 과거가 없는 나는 멍해졌다. 새 천 년이 다가왔지만 나는 미래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 것 같았다. 새해부터 꼬여버린 계획 때문인지 그 후로도 오랫동안 백수 생활을 지속했다.

이전에는 새로운 계획을 세우기에 새해, 새봄, 새 학기가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씩 생각이 바뀌었다. 언젠가부터 거창한 새해 계획은 세우지 않게 됐다.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아버린 탓도 크다. 물론 시작에 대한 열망이 사라진 건 아니다. 다만 시간에 대한 관념이 달라진 것이다. 이제는 하나의 행위를 할 때, 그것이 미래에 가져올 결과보다는 행위 자체에 더 집중하려 노력한다. 오늘은 최대한 꼼꼼하게 살되, 인생은 흘러가는 대로 놔두자가 되었다고 할까.

시인 정현종의 말처럼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다.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 말이다. 남도에 꽃이 피기 시작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봄의 시작이다.


요약 

[1] 나도 새해계획을 열심히 세우던 때가 있었다.- ex) 1999년 12월 31일
[2]-[3] 나는 뭐하나 계획대로 되는 것 없이 20대를 보냈다.
[4] 이제 나는 계획이나 결과에 크게 신경쓰지 않고 행위자체에 집중한다.
[5] (때가 되면 )
    내 열심에 따라 =과정
    꽃봉오리 = 결과 가 피어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 문단별 중심 전략?
[1] -[2] 재미(개인적 에피소드)
[3] 연민(어려움이 있었던 20대의 시간 소개)
[4] 논리적 메시지(과정,실천의 중요성)
[5] 강조(시구를 이용하여 강조)


■ 글에 대한 감상

- 깔끔하고 편안하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으니, 현재 하는 일에 집중하자 라는 말을 하고자 하는데
앞에서는 에피소드/20대의 경험을 소개하고
그 뒤에서는 시를 인용해서 강조하고 여운을 가지게 했다.

■ 필사를 하면서 생각난 것

글을 읽다가 <바가바드 기타> 에 나오는 행위에 관한 귀절이 떠올랐다. 바가바드기타에서는 사람의 기질에 따라  행위, 헌신, 지혜 라는 세 가지 방법으로 진리를 추구할수 있다고 보았다. 크리슈나신은 아르주나에게 행위의 길에 대해 많이 얘기해준다.


육체를 가지고 있는 인간이 
모든 행위를 포기하고

아무런 행위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진정한 포기는

자기가 바라는 결과를 기대하는 행위,

곧 행위의 결과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는 것이다.

행위의 결과를 기대하는 사람은

즐거움과 괴로움과 그 중간,

이 세가지 열매를 번갈아 맛본다.

그러나 행위의 결과에 대한 집착을 포기한 사람은

행위나 행위의 결과에 얽매이지 않고 초월적인 자유를 누린다.(시공사, 바가바드 기타 239쪽에서)



세상은 모든 것이 그물로 얽혀 있기에

내가 어떤 한 시점에 가진 의지가 상황을 (거의) 변화시키지 못할 때도 많다.

젊었을 때는 이 원리를 잘 모르는데 일정 길이의 시간을 지내놓고 나면

좀 어리숙한 사람도 경험적으로 그 원리를 짐작하게 된다.

진인사대천명이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할 것 같다.

이 때  '천'이란 그물처럼 얽힌 것들이 최적화 되어 
눈에 보이지 않던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내는 시점을 말한다.


결과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 이점이 생긴다.

그 집착과 한 세트인  즐거움, 괴로움, 즐거움도 괴로움도 아닌 상태를 겪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나의 일이라고 해서 내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기다리는 것이다.

13년간 신춘문예에 떨어졌다는 백영옥 작가가 하는 말이니까 더 공감이 간다. 

백영옥 작가가 자주 한다는 말이 있다.



"안 되면 말고." 

새해 계획이나 새봄 계획을 세우는 것과 필자가 말한 의견 중 어느 쪽에 공감이 가시나요?


얼른보면 계획과 행위가 상반되는 개념인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계획은
-   머리속의 생각으로 끝날 때가 많고
-   생각은 실망-중단으로 바로 이어진다.
행위는
- 몸으로 실천한다는 뜻으로
- 생각이 없으니까 그냥 될때까지 '하는' 것을 의미한다.

언젠가는 '때'가 오는데 그때가 언제인지 내가 모를뿐이다.
겨울에 마른나무 가지를 볼때는 아무것도 없었지 않았나.
새봄이 되어 이렇게 꽃이 핀다는 것을 그때는 상상하기 어렵다. 실망이 될 때, 봄에 피어나는 꽃들을 보며
생각을 버리고, 오직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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