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불평등 문제
▶불평등에는 고약한 그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나는 드디어 깨달았다. 그것은 내면 깊은 곳에서 작용하며 금전적인 문제를 초월하는 것이다. 식료품점과 구두공장과 구둣가게에서 벌어들이는 돈으로는 우리의 출생 배경을 숨기지는 못한다. 릴라가 계산대 서랍에서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을 꺼낸다 해도, 그 액수가 3백만 리라가 되었든 5백만 리라가 되었든 돈으로 한계를 극복하지 못할 것이다.
―p.170
인간 불평등 기원론 -
장 자크 루소 지음, 이재형 옮김/문예출판사
인간의 불평등은 어디에서 기원했는가?
(2) 임신에 대한 릴라의 반응
▶"임신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아. 임신은 병이야. 내면의 공허감이 나를 짓누르고 있어." p.147
▶릴라는 말투를 바꿔서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 릴라는 사진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시 가든까지 나를 찾아온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차피 그 자식에겐 자신이 물물교환의 대상일 뿐이라는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릴라 가 온 것은 임신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서였다. 릴라는 한참동안 안절부절못하면서 임신이 절구통에 집어넣어 으깨버려야 할물건인 것처럼 이야기했다. 냉혹하기 그지없는 단호한 말투였다.
불안감을 감추지 않고 임신은 무의미한 일이라고 했다. 사내들이 우리몸속에 자신의 물건을 쑤셔 넣으면 우리 몸은 살아 있는 인형을 담은 고깃덩어리로 된 상자로 전락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게 내 안에도 들어 있어. 소름끼치는 일이야. 끊임없이 구역질이 나. 내 배가 아이를 못 견뎌 하는 거야. 좋은 생각을 해야 한다.
는 건 알아.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것도, 그런데 잘 되지 않아. 정신을 차리지도 못하겠고 생각할 만한 좋은 일도 없어."
게다가 자신은 어린아이들과 잘 맞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너는 다르지. 문구점 아이들을 돌보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어.
하지만 나는 아니야. 난 그런 재능은 타고나지 못했어."
릴라의 말을 듣고 있자니 마음이 아파왔다. 무슨 이야기를 해주어야 할지 몰랐다.
"네게 그런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시도해보지도 않고 어떻게알아?"
나는 릴라를 안심시키려 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놀고 있는 문구점집 딸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151
(3) 결혼 사진을 해체한 릴라
▶"어쨌든 식료품점도 구두공장도 다 잘되고 있어. 리나는 언제나우리의 친구였지. 리나는 우리 편이야. 우리의 동맹이자 동지라고.
물로 지금은 부자가 됐지. 하지만 그것도 다 리나의 능력이야. 맞아.
자기 능력이라고, 카라치 부인이어서, 곧 스테파노 아이를 낳을 것이기 때문에 돈이 생긴 것이 아니야. 체룰로 구두의 창시자이기 때문이지. 지금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적어도 리나의친구인 우리들은 기억해야 해."
맞는 말이었다. 릴라는 얼마 되지 않는 기간에 많은 일을 해냈다.
그때 우리는 겨우 열일곱이었다. 시간은 과거처럼 매끄럽게 흘러가지 않고 풀처럼 걸쭉해져서 반죽기 안에 든 노란색 크림처럼 우리 주변을 맴도는 것 같았다.149
▶신부복을 입은 릴라의 육체는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조각조각 잘려 있었다. 머리가 대부분 자취를 감췄고 복부도 마찬가지였다. 남아 있는 부분이라고는 한쪽 눈과 턱을 괴고 있는 손, 찬란한 얼룩처럼 보이는 입, 대각선으로 잘린 가슴, 포개어진 다리 선과 구두 정도였다. 161
※ 드라마에서는 위와 같은 사진이 나오지만 원문에는 릴라가 눈을 한개만 남긴 것으로 되어 있다. Elena Ferrante's Keywords에 보니 그리스 신화의 외눈박이 괴물을 생각나게 한다고 한다. 릴라는 '행복한 아내'라는 이미지를 파괴하고, 남성의 폭력에 의해 파괴된 몸을 스스로 파괴하고, 자신을 지움으로서 창조하는 행위라고 해석했다. 멋진 해석!!!
대지의 신 가이아와 우라노스 사이에 키클롭스 삼 형제가 태어났다. 외눈박이 삼형제가 태어났다. 키클롭스란 ‘동그란 눈’이라는 뜻인데 그들의 이마 한가운데 눈이 딱 하나만 박혀 있었다. 외눈박이 삼 형제는 동굴에서 자랐다. 얼굴은 비록 징그러웠지만 각자 재주가 있었다. 첫째 브론테스는 요란한 천둥을 일으켰고, 둘째 스테로페스는 번쩍이는 번개를 만들어 냈어요. 셋째 아르게스는 항상 밝은 빛을 뿜었다. 외눈박이 삼 형제는 성격이 난폭하자 우라노스는 삼 형제를 땅속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지옥 타르타로스로 보냈다.
릴라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심에 대한 분노를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이다. 난생처음으로 자신을 지워버리고 싶은 욕망을 느꼈던 것이다. 미켈레의 표현은 정확했다.
▶이 경우는 무엇에 해당될까? 현재 장소를 나타내는 보어? 이제 릴라가 부모님 집이 아닌 스테파노 집에서 살게 된 것을 의미하는가?
현관 앞 놋쇠로 된 명판에 카라치라고 쓰인 새 집에서 살게 됐다는것을 의미하는가? 이제부터 내가 릴라에게 편지를 보낼 때 수신인란에 라파엘라 체룰로가 아니라 라파엘라 카라치라고 써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건가? 얼마 지나지 않아 라피엘라 제룰로 카라치에서 체률로라는 이름이 사라지고 라파엘라 카라치로만 규정되어 라파엘라 카라치라는 이름으로만 서명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가? 릴라의 자식들이 처녀 시절 어머니의 심을 기억하는 것을 힘겨워하고 손자손녀들은 할머니의 성을 완전히 잊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가?
그렇다. 그것이 일상적인 일이었으니까. 이 모든 것이 정상적인범주에 속하는 일이다. 하지만 릴라는 그녀답게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짧은 기간에 모든 것을 넘어선 것이다. 붓으로 페인트칠을 하며 내게 자신은 이 문장 분석 연습에서 '방향성 보어'를 찾아냈다고했다. '체룰로에서 카라치로의 신분 이동'이라는 표현은 '체룰로'가 카라치라는 이름에 흡수되고 카라치로 신분 이동을 하다 추락해 카라치라는 이름에 융해됨을 함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비오 솔라라에게 갑자기 결혼식 증인을 부탁하는 순간부터, 스테파노가 처음으로 폭력을 행사한 신혼여행부터, 스테파노가 그녀 안에 심어놓은 살아 있는 그 존재가 내면의 공허감 속에 자리 잡게 됐을 때부터, 릴라는 커져만 가는 참을 수 없는 느낌과 갈 수록 자신을 압박해오는 온몸을 으스러뜨릴 것 같은 엄청난 힘에 압도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느낌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지고 지배적인 것이 되었다. 라 파엘라 카라치는 제압당해 형체를 잃고 스테파노의 모습에 융해되어 그의 종속적인 존재인 카라치 부인이 된 것이다. 나는 그제야 사진에서 릴라가 하는 이야기의 흔적이 보이기 시작했다.167-168
▶"여기 눈 뒤가 아파. 뭔가가 누르고 있는 것 같아. 저기 저 칼들 보여? 날이 서 있지? 지금 막 칼갈이에게 맡겼었거든. 살라미 햄을 자르면서 사람의 몸에 얼마나 많은 피가 흐르는지 생각하곤 해. 너무 많은 것을 욱여넣으면 뭐가 되든 망가지는 법이야. 그렇지 않으면 불꽃이 일고 불타오르게 되는 거지. 그 사진이 불타버려서 다행이야."―p.196
▶ 그 시기에 나는 릴라와 거의 만나지 못했다. 가끔은 학교가 끝나자마자 숙제를 하러 가기 전에 릴라가 있는 새 식료품점에 들르기도 했다. 내가 허기진 상태라는 것을 잘 릴라가 그런 아이였던가. 원래부터 나처럼 고집스러울 정도로 성실했던 게 아니었던가. 이때껏 오직 내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서 그토록 많은 생각을 하고, 구두를 만들고, 글을 쓰고 이야기를 하고, 복잡한 계획을 짜고, 분노하기도 하고, 새로운 것을 창작해낸 것이었단 말인가. 그녀가 이토록 방황하는 이유는 그런 목적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인가. 릴라가 이루어낸 모든 일이 실은 매번 자신이 처했던 혼란스러운 상황의 결과물이었단 말인가. ···"내가 뛰어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보이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아."
▶ 릴라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심에 대한 분노를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이다. 난생처음으로 자신을 지워버리고 싶은 욕망을 느꼈던 것이다. 미켈레의 표현은 정확했다.
(4)다른 남자들과 뭔가 다른 알폰소
▶ 알폰소의 정신적 해방감171
▶ 알폰소가 공부를 계속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부유한도심에서 학교에서 배운 얼마 안 되는 지식을 활용하면서 살아갈지 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알폰소는 내면에 전혀 다른 사람을숨기고 있다. 그는 동네의 다른 사내아이들과는 달랐다. 누구보다도형인 스테파노와 달랐다. 스테파노는 그 순간 가게 한구석 소파에조용히 앉아 있었다. 말을 거는 사람에게는 언제라도 차분한 미소로움답할 태세를 갖추고.172
▶위험한 여인이라는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어"라고 말할 정도였나 알폰소를 새삼스럽게 다시 바라보았다. 위험하다니?
걸린 저 사진에서 알폰소는 무엇을 읽어낸 걸까? 내가 놓친 것이 인나? 알폰소는 단순히 외양적인 것을 뛰어넘어 그 이면을 본 건가?
창조적으로 사물을 바라볼 줄 아는 건가?
알폰소가 공부를 계속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부유한도심에서 학교에서 배운 얼마 안 되는 지식을 활용하면서 살아갈지 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알폰소는 내면에 전혀 다른 사람을숨기고 있다. 그는 동네의 다른 사내아이들과는 달랐다. 누구보다도형인 스테파노와 달랐다. 스테파노는 그 순간 가게 한구석 소파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말을 거는 사람에게는 언제라도 차분한 미소로움답할 태세를 갖추고.172
(5) 레누의 후원자 릴라
▶나는 오후에 릴라가 있는 새로 개점한 식료품점에 들렀다. 카르멘은 기쁨과 슬픔이 뒤섞인 표정으로 내게 그녀의 애인 엔초가 피에몬태 어디에선가 보내온 엽서를 보여주려 했다. 릴라도 엽서를 받았는데 안토니오에게서 온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릴라가 급히 나를 그 가게로 부른 이유가 안토니오에게서 받은 엽서를 보여주고 싶어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릴라는 내게 엽서를 보여주지도 않았고내용도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릴라는 나를 가게 뒤쪽에 있는 창고로이끌더니 은근히 즐거운 듯한 어투로 말했다.
"너 우리의 내기를 기억해?"
나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네가 내기에서 진 것도?"
이번에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릴라는 내게 포장지로 싼 큼직한 상자 두 개를 가리켜 보였다. 새학기 교과서였다. 178
(6) 릴라의 부탁- "네가 나보다 뛰어나고 나보다 아는 것이 많아도 나를 떠나지는 말아줘."
▶그만 진정하라고 하자 릴라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마음을 편하게 먹어야 해."
"나를 좀 도와줘."
"어떻게?"
"내 곁에 있어줘."
"그렇게 하고 있잖아."
"아니야. 나는 네게 비밀이 하나도 없어. 가장 추악한 생각까지도감추지 않아. 그런데 너는 네 얘기를 거의 하지 않잖아."
"그렇지 않아. 내가 아무것도 숨기지 않는 사람은 너뿐이야."
릴라는 강하게 고개를 저어보이면서 말했다.
"네가 나보다 뛰어나고 나보다 아는 것이 많아도 나를 떠나지는 말아줘." 197
(7)1960년의 사회 분위기 -나치 문제 처리, 핵전쟁, 자연훼손
▶그 시기에 나는 릴라와 거의 만나지 못했다. 가끔은 학교가 끝나자마자 숙제를 하러 가기 전에 릴라가 있는 새 식료품점에 들르기도 했다. 내가 허기진 상태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릴라는 언제나 속을 가득 채운 파니니를 서둘러 준비해주었다. 나는 파니니를 허겁지겁 먹어치우면서 책에서 읽은 문장이나 갈리아니 선생님이 준 신문에서 나오는 문장 중에서 외운 문장을 표준어로 내뱉곤 했다. 예를 들어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의 비참한 현실 앞에서' 라든가 '인류가 과거에 할 수 있었던 일과 오늘날 할 수 있는 일'이라든가 핵전쟁의 위협과 평화 수호의 의무' 따위의 문장이었던 것 같다. 사회적 현상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했다. 예컨대 '인간이 자연의 힘을 극복하기 위해 발명한 기기들이 오늘날 자연의 힘보다 더 위협적이 된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하고 '언젠가 계급의 구분이 사라지고사회와 인생에 대한 확실한 개념이 수립되어 사회가 평등해지면 종교는 사라질 것이다"라는 사상에 대해서 말하기도 했다.181
(8)갈리아니 선생님 댁의 파티 - 상류층 아이들의 태도,
▶ 파티의 분위기
레누가 선생님댁에 들어갔을 때 들은 것 같다고 말한 노래What a sky는 상류사회의 자녀들의 퇴폐적인 생활을 그린 1960년도 작품 영화 '태양의 유혹'의 주제가이다. 영화 ‘형사’, ‘가방을 든 여인’, ‘부베의 연인’ 등의 히트작으로 세계적으로 알려진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가 이 영화 ‘태양의 유혹’에서 주연함으로서 더욱 영화팬의 눈길을 끌었던 영화이다. Claudia Cardinale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는 1938년 4월생으로 북 아프리카 'Tunisia, 튀니지'에서이탈리아 시칠리(나폴리 바로 앞에 있는 섬) 출신의 부모님사이에 태어나 1957년 '미쓰 튀니지'선발대회에서 우승함으로서 영화에 입문하는 계기가 되어 당대 프랑스의 섹스 symbol이였던 '브리짇 바르도'에 버금가는 육체적매력으로 인해 많은 영화에서 인기를 누리기도 하였다.
(주연인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는 릴라와 이미지가 겹치는 듯.)
What a sky / shining sky /one more night /without you
i will cry / let me cry / nothing is right /without you...
so far away / there is no way / just wait for you /and feel so blue
please catch a train / and save my pain / come back to me /to me!!
▶ 남자아이들의 논쟁
대다수 초청객들이 아직 춤에 푹 빠져 있는 가운데 갈리아니 선생님 주변으로 칭년 서ht 명과 소녀 두어 명이 모여 있었지만 남자아이들만 애기를 하고 있었다. 예의 그 비판적인 말투로 토론에 참 여한 여성은 선생년뿐이었다. 나노와 아르! 그리고 다른 청년들에 비해서 나이 든 축에 속하는 카를로라는 이름의 청년은 갈리아니 선생님과 논쟁을 벌이는 것이 품위 없는 행동이라고 생가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지기들끼리만 토론하고 싶이 했다. 이들에게 갈리아니신생님은 승리의 면류관을 씌워주는 권위 있는 시상자일 뿐이었다.
▶ 레누의 기분
그들의 대화는 내게 의미 없는 소음일 뿐이었다. 세상은 수없이 많은 사람과 수없이 많은 사건과 사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애써 노력해온 한밤중의 독서로는 그들의 토론을 따라가기가 턱없이 부족했고 니노와 갈리아니 선생님과 카를로와 아르만도에게 "그래. 맞아. 나도 알아"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더 노력해야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아르만도와 vs. 리노의 설전- 유럽의 분위기
그들은 전 세계가 위험에 처했다고 했다. 핵전쟁, 제국주의, 신제국주의, 알제리계 프랑스인, 프랑스의 비밀군사조직(OAS)과 국가 해방 전선, 대학살에 대한 분노, 드골주의와 파시즘, 프랑스, 군대, 위상과 명예에 대해 이야기했다. 염세주의자이지만 파리의 공산당과 노동자 계급을 중요시 여기는 사르트르,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잘못 된 노선, 좌파 수용, 사라가트 대통령과 넨니, 런던을 방문해서 맥밀란 수상을 만난 판파니 수상. 나폴리에서 열릴 기독교민주당 전당대 회, 판파니 수상의 추종자들과 모로, 좌파 기독교민주당의 추종자에 대해 토론했다. 사회주의자들은 이미 권력욕에 사로잡혔으니 우리 간, 공산당이 프롤레타리아 동지들을 비롯한 국회의원들과 함께 중도 좌파적 법률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된다면 현재의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이 사회민주당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레오네 하원의장이 새 학기 행사에서 어떻게 행동했는지 다들 보지 않았느냐고 했다.
아르만도는 혐오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세상은 계획에 의해서 변화하는 것이 아니야. 변화를 위해서는 피를 흘려야 해. 폭력이 필요하다고."
니노는 차분히 대답했다.
"계획도 필수불가결한 도구의 하나야."
분위기가 심각해지자 갈리아니 선생님은 청년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아, 그들은 얼마나 박식했던가! 지구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꿰고 있는 것 같았다. 어느 순간 니노가 미국에 대한 우호적인 발언)을 하면서 영국 본토 발음으로 몇몇 단어를 영어로 말했다.
▶니노에 대한 레누의 생각
1년새 니노의 목소리가 한층 어른스러워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허스키하게 느껴질 정도로 예전보다 더 두터워졌다. 릴라의결혼식에서나 학교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보다 한결 자연스러운 어조였다. 베이루트에 대해서 실제 가보기라도 한 것처럼 말했고 비폭력주의자인 다닐로 돌치와 마틴 루터 킹, 버트런드 러셀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했다. 세계평화여단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아르만도가 빈정대자 그를 질책하면서 흥분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 모습이 얼마나 멋있어 보였는지. 니노는 인류는 마음만 먹으면 지구상에서 제국주의와 기아, 전쟁을 몰아낼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모르는 내용투성이였지만 니노의 말에 감동했다. 드골리즘은 뭐고 프랑스 비밀군사조직이며 기독교사회주의며 좌파 수용은또 뭐란 말인가, 다닐로 돌치는 누구이고 버트런드 러셀, 프랑스계알제리인, 판파니의 추종자들은 또 누구란 말인가. 대체 베이루트와 알제리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그렇지만 예전부터 그랬듯이 나는 니노를 돌보고 시중을 들어주고 감싸주며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든지 지지해주고 싶었다.
▶ 대화에 참여하는 레누
그날 저녁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작지만 눈부시게 아름다운 서처럼 니노 옆에 붙어 있는 나디아가 부러웠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대화에 참여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나보다 더 자신간 이고 더 박식한 다른 누군가가 내 입을 통해서 발언하기로 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로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청년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면서 지금까지 읽어본 책 고갈리아니 선생님이 준 신문에서 읽었던 문장이 떠올랐다. 말을 하고싶은 마음과 내 존재를 드러내고 싶은 마음에 평소보다 수줍은 마음이 옅어졌다.
그리스어와 라틴어 번역 연습을 하며 익힌 고급 표준어를 사용했다. 나는 니노 편을 들었다. 또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말려든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젊은 세대는 전 세대의 실수를 답습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현재 우리의 적은 핵무기다. 전쟁에 대한 전쟁을 벌여야 한다, 핵무기 사용을 허릭하는 것은 나치들보다 더 심각한 죄를 짓는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말하자 나는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두 눈에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변화가 시급한 세상이지만 국민을 노예처럼 부리는 독재자들이 아직도 너무 많다고 했다. 하지만 변화는 평화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모든 사람이 내 말에 동조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르만도는 그다지 흡족해 보이지 않았고 통성명조차 하지 않은 금발의 소녀는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래도 내가 이야기하는 동안 니노가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8) 파티에서 릴라가 느낀 것은?
▶..., 액자 하나 그들이 직접 돈을 주고 산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했다. 100년도 더 된 가구에 집은 지은 지 300년은 된 것 같다고 했다.
책도 새 것으로 보이는 책이 몇 권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 오래된 데다. 먼지가 잔뜩 쌓인 것을 보니 마지막으로 책장을 들춰본 것이 언제였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대부분 오래된 법률서적, 역사서적, 과학서적, 정치 관련 서적들이었다고 했다. 그들은 아버지 대, 조부모 대, 고조부 대부터 그곳에서 책을 읽고 공부를 했을 것이고 수백 년 동안 자자손손 적어도 변호사나 의사나 교수 정도는 해왔을 집안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모두 그렇게 입고, 먹고, 그런 식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몸에 밴 것이라고 했다.
"그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 그래왔기 때문이야. 하지만 머릿속에 정말 자기 자신이 힘들여 생각해낸 것은하나도 없어. 모르는 게 없는 척하지만 실은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들이야."
릴라는 남편의 목 위에 키스를 하며 손가락 끝으로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당신도 저기에 함께 있었다면 그들이 시끄러운 앵무새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을 거야. 그치들이 하는 말은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어.
자기들끼리도 이해하지 못하던걸? 당신은 프랑스 비밀군단이 뭔지알아? 좌파 수용이 뭔지는 알고? 다음부터는 나를 그런 데 데려가려는 생각일랑은 하지도 마, 레누, 데려가려면 파스콸레나 데려가도록해. 그 애라면 눈 깜짝할 새에 입만 살아 있는 그 앵무새들 정신을 번쩍 들게 할 테니 말이야. 멍청한 침팬지들 주제에. 그들과 침팬지의이라곤 침팬지는 흙에다 볼일을 보는데 그들은 화장실을 이용한다는 것밖에 없어. 그러니까 그렇게 잘난 척들을 하는 거라 중국은 어떻고 알바니아는 어떻고 프랑스, 카탕가가 어쩌고저하지. 너도 마찬가지야, 레누, 솔직히 이 말은 꼭 해야겠어. 넌 이 새들의 앵무새가 되어가고 있는 거야."
릴라는 웃으며 스테파노에게 말했다.
"쟤가 어떤 식으로 이야기했는지 당신도 봤어야 해. 새처럼 가녀린 목소리로 쌕쌕거렸다니까. 스테파노에게도 그 인간들에게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야기해보지 그래? 너랑 사라토레의 아들은 똑같은 부류야. '세계평화여단, 우리에게는 그런 능력이 있다. 기아와 전쟁' 죽어라고 학교에서 공부하는 이유가 그런 말이나 하기 위해서였어??
문제 해결 능력이 있는 자는 평화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니. 훌륭하 도 하셔라.
실천이 엄일 떠벌인
너 예전에 사라토레 아들이 문제를 못 풀고 쩔쩔매던 거 기억나??
그게 기억나는데도 그 자식 말을 듣고 있는 거야? 그런 인간들에게 인정받지 못할까봐 안달이 나서 그렇게 동네 광대처럼 굴고 있는...
....
(9) 멜리나와 마주친 리노
나와 니노가 현관문에 들어설 때 모두에게 불편한 상황이 발생했다. 평화로운 일요일 뜰 안에 날카로운 고함소리가 울려 퍼졌다. 멜리나가 창가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의 관심을 끌려고 팔을힘차게 흔들어대고 있었다. 니노가 의아한 눈초리로 뒤돌아 쳐다봤다.
멜리나는 한층 더 소리를 높여 환희와 고통이 뒤섞인 소리를 외쳤다
"도나토!"
"누구야?"
니노가 물었다.
"멜리나야."
내가 말했다.
"기억해?
니노는 불편한 듯 인상을 찌푸렸다.
"나 때문에 저러는 거야?"
"모르겠어."
"도나토라고 하는데."
"그래."
니노는 뒤를 돌아 델리나가 몸을 쭉 빼고 계속해서 도나토의 이름을 외치고 있는 창문 쪽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내가 아버지랑 닮은 것 같아?
"정말?"
"그럼"
니노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이만 가볼게."
"그게 좋겠다."
니노는 구부정한 자세로 빠르게 자리를 빠져나갔다. 그러는 동안멜리나는 점점 더 크고 흥분된 소리로 외쳤다.
"도나토! 도나토! 도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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