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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문학/페란테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4)

by 책이랑 2020. 4. 18.

~p..412

1961년 여름  레누,릴라, 니노, 레누차, 브루노가 시간을 보내던 
 이스카야 섬, 시타라비치


(1) 눈치아 아주머니의 속마음

 "너 정말이지 이야기를 잘 하는구나, 정말 훌륭한 사람이 될거야."

갑자기 아주머니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아주머니는 릴라도 공부를 계속했어야 했다며 그것이야말로 릴라의 운명이었다고 했다.

"리나가 공부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은 리나 아버지였어."

아주머니가 덧붙였다.

"나는 리나 아버지에게 맞서지 못했고, 그때만 해도 돈이 없었거든 리나도 너처럼 될 수 있었는데, 그런데 너무 빨리 결혼을 해버렸어. 이젠 너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된 거야. 돌이킬 수 없게 됐지.

우리네 삶이란 우리를 제멋대로 이끄는 법이니까."

아주머니는 내 행복을 빌어주었다.

"너도 너처럼 공부를 많이 한 잘생긴 청년을 만나 행복해졌좋겠구나." (p.326)



(2) 레누는 왜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을 못하는 걸까?
레누는 왜 릴라와 니노의 일탈을 도와주는 걸까?


나 자신도 되돌아봤다. 나는 잘못된 판단을 했고  나같이 작고 통통하고 성실하기만 할 뿐 똑똑하지도 않은 데다 교양이 있는 척, 아는 것이 많은 척만 하는 안경잡이를 니노가 좋아할 리가 없지 않은가. 비록 짧은 여름휴가 동안이지만, 그러고 보니 니노가 나를 정말로 좋아해주기를 바라긴 한 걸까. 내 행동을 세밀히 되짚어 보았다. 아니다. 나는 내 욕망을 정확히 몰랐다. 다른 사람들에게내 감정을 애써 숨겨왔을 뿐 아니라 나 자신조차도 내 감정에 회의적이고 확신이 없었다.

왜 릴라에게 한 번도 니노에 대한 내 감정을 고백하지 못했을까.

지금도 그렇다. 한밤중에 나를 찾아와 털어놓은 릴라의 고백이 내게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느냐고 왜 소리치지 못한 것일까. 왜 그녀에게 입 맞추기 전에 니노가 내게도 입 맞춘 적이 있다고 말하지 못한것일까. 나는 대체 왜 항상 이 모양일까. 너무나 간절하게 부와 명예와 칭찬과 성공을 갈망하는 본심이 두려워서 오히려 내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려는 것일까.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 그 간절함이 마음속에서 폭발하여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될까봐 두려운 것일까. 예리들어 니노의 아름다운 입술을 죽은 쥐의 시체와 비교하는 것처럼 리이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한걸음 다가가다가도 즉시 물러설 태세를갖추는 것일까. 그렇기에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도 언제나 상냥한미소를 머금은 채 행복한 웃음을 터뜨리는 것일까. 그래서 내게 나통을 주는 이들을 위한 합리적인 변명거리를 내가 먼저 나서서 제공해주는 것일까


bad girl vs. good girl?

Woman2


(3) 니노가 릴라에 집중하기 시작한 진짜 이유는 뭘까?
나는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물으며 눈물을 흘렸다. 날이 밝아올 즈음이 되어서야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니노는 진정 나디아를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갈리아니 선생님께 나에 대한 칭찬을 듣고 몇 년간 나를 진심으로 존중하는 마음과 호감 섞인 감정을 가지고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곳 이스키아에서 릴라를 만나자 그녀야말로 자신의 유일하고 진정한 사랑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그래왔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라는 걸 말이다. 그런 그를어떻게 탓할 수 있겠는가. 어떤 명분으로 그를 탓하겠는가. 니노와릴라의 이야기에는 강렬하고 지고지순한 무엇인가가 있었다. 숙명적인 이끌림이 있었다.

마음을 가라앉혀보려고 시구절과 소설 구절을 생각해보았다. 이러려고 공부를 했나보다고 생각했다. 고작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써먹으려고.

릴라는 니노가 수년간 자기도 모르게 가슴속에 간직해온 불씨에 불을 붙인 것이다.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한 이상 이제 릴라가 니노를 사랑하지 않더라도 니노는 릴라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릴라는 이미 결혼을 했기에 다가갈 수 없는 금단의 열매다. 결혼은 영원한 것이다. 죽음 뒤에도, 물론 그 관계를 깨뜨릴 수는 있겠지만 이는 심판의 날까지 지옥의 화염에 휩싸이는 것을 의미한다.

 새벽녘이 되자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릴라에 대한 니노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그에 대한 나의 사랑이 그런 것처럼 말다. 불가능하다는 관점으로 바라보자 바다에서 니노가 릴라에게한 입맞춤에 대한 설명이 가능해졌다.

 그 입맞춤은 니노가 의도한 것이 아니라 예기치 않게 일어난 사건이었다. 게다가 릴라는 나와는 다르게 사건을 일으키는 데 탁월한재능이 있지 않은가.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니노와 한 약속에나가서 함께 에포메오 산을 올라야 하나 아니면 오늘 저녁에라도 당장 스테파노, 리노 일행과 떠나야 하나. 어머니가 내 도움이 필요하다고 편지를 보냈기 때문이라고 하면 그만이다. 릴라를 사랑하고 그녀에게 키스했다는 것을 알게 된 마당에 어떻게 그와 함께 태연히산에 오르겠는가. 매일 어떻게 둘이 함께 해변에서 점점 더 멀리 헤엄쳐 나아가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겠는가.

 나는 진이 빠져서 깜빡 잠이 들었다. 화들짝 놀라 눈을 떴는데 하도 생각을 많이 해서인지 고통이 조금 덜하기에 약속장소로 뛰쳐나갔다.(pp.331- 332)



(4) 니노와 릴라의 중간에선 레누.

나는 니노가 헛된 희망을 품는 것을 원치 않았다. 하지만 내 말은대화를 마무리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릴라에대해서 자세히 말할수록 니노에게 바다 위 하늘 아래서 보내는 그날하루가 더욱 즐거워질 것이라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내 말 한마디 한마디에 상처를 입어도 상관없어하는 것 같았다. 중요한 것은 내가 아는 모든 것을 빼거나 더하지 않고 그에게 모두 들려주는 것이었다. 가의 릴라의 이름으로 가득 채워주기를 원하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해주었다. 처음에는 고통스러웠지만 서서히 느낌이 달라졌다. 그날 니노와 릴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앞으로 우리 셋의 관계가 어떤 식으로 변할 것인지 예측할 수 있었다. 나도 릴라도 따로따로 니노를 차지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함께 라면 여름휴가 내내 그의 관심을 받을 수 있다. 릴라는 가질 수 없는 열정의 대상으로서, 나는 이 둘의 광기를 통제하는 현명한 조언자로서 말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니노의 관심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나 자신을 위로했다. 릴라는 니노의 키스를 고백하러 내게 달려왔고 니노는 자기가 키스한 사실을 고백하면서 이렇게 하루 종일 나와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은가. 나는 릴라에게도 니노에게도 필요한 존재가 될 것이다.

오늘만 봐도 니노는 벌써 나 없이는 못 살 것처럼 말했다.

"네 생각에 리나가 나를 좋아하게 될까?"

니노가 물었다.

"리나는 이미 결정을 내렸어, 니노."

"무슨 결정?"

"자신의 남편을 사랑하기로, 그래서 그의 아이를 가지기로 한 거야"(336)



(5) 릴라와 니노의 밀당- 리노, 릴라를 얕보지마라. 혼난다.

 "그래, 단 조건이 있어."

"말해봐."

"너도 남편이랑 헤어져야 해, 지금 당장, 모두 함께 전화하리말하는 거야."

 나노의 말에 나는 심하게 흔들렸다. 왜 그렇게 감정이 복받쳐그 순간에는 알 수 없었다. 니노는 갑자기 큰 소리로 외치는 바람에목소리가 갈라졌다. 릴라는 눈을 가늘게 떴다. 내겐 너무나 익숙한 눈매였다.

'이제 목소리가 바뀌겠구나."

나는 생각했다.

'이제 못된 면모를 드러내겠지 릴라가 말했다.

"네가 뭔데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나를 어떻게 보고?" 릴라는 이어서 말했다.

"저 편지와 걸레 같은 양갓집 계집아이와의 하찮은 연애질을 어떻게 감히 나와 내 남편, 내 결혼과 비교를 해? 내 인생의 모든 것말이야. 잘난 척은 혼자 다 해놓고서 농담도 못 알아들어? 너는 아것도 몰라! 아무것도! 알아들었어? 그런 표정으로 쳐다보지마! 어서 집에 가자, 레누!"(pp.353-354)


(6) 그런데 정말로 릴라는 왜  갑자기 니노와 사랑에 빠진 건가...

 어떻게 해서 모든 것이 시작된 건지 난 모르겠어. 처음부터 니노가좋았던 것은 아니야. 그가 말하는 방식이나 내용이 좋았어. 그렇기만 외모는 아니었어. 아는 것이 정말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그가 하는 말을 잘 듣고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지금은 그의 이야기에 집중이 되지 않아. 입술만 바라보다가 부끄러워져서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려버리곤 해.

이렇게나 짧은 시간에 그의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되었어. 그의 손 도, 섬세하고 길쭉한 손끝도, 삐쩍 마른 몸도, 피부 아래로 느껴지는갈비뼈며 가느다란 목도, 면도를 잘 못해서 언제나 거칠거칠한 수염과 코도, 가슴에 난 털도 가늘고 긴 다리와 무릎까지 말이야. 그의 몸을 어루만지고 싶어. 역겨운 생각까지 하게 돼. 정말 지저분한 짓 말이야. 그런데 말이야, 레누, 그를 기쁘게 해줄 수만 있다면 그런 짓까지도 해주고 싶어. 그가 만족한다면 말이야."



(7) 릴라의 복수- 누구에게 뭐에 대해서?
" 대체 어지고 장난치려는 거거야. 대체 언제까지 이런 상태로 지낼 셈이야? 남의 인생을 가다나치려는 거야? 니노가 학교를 그만두고 일자리를 찾으려알고 있어? 대체 그에게 무슨 이야기를 한 거야? 여자친이 왜 헤어지게 한 거고, 그 애를 망치고 싶어? 둘이 함께 인생을 망치려는 거야?"

마지막 질문에 릴라는 정신을 차리는 듯했다. 웃음을 터뜨렸지마어던가 어색했다. 언뜻 듣기에는 농담조로 말했지만 릴라의 심정이 어땠는지는 모르겠다. 릴라는 오히려 내가 자기를 자랑스러워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기 덕분에 내 위상도 올라갔다면서, 왜냐고? 왜나면 니노는 세련됨의 극치인 갈리아니 선생님의 딸보다 자기가 모든 면에서 더 세련됐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전교에서 아니 나폴리, 이탈리아, 더 나아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청년이 (물론 이것은내 이야기를 바탕으로 형성된 생각이지만) 구두수선공 딸내미이자최종 학력이 초등학교 졸업밖에 안 되는 카라치 부인의 마음에 들기위해 교양 있는 그 양갓집 규수와 헤어지기로 했다는 것이다.

릴라는 점점 심하게 비아대면서 이야기했다. 잔혹한 복수 계획을 털어놓는 것 같았다.

내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릴라도 눈치했지만 얼마간은 자신도 통제가 안 되는 듯 말을 멈추지 않았다. 릴라는 진심일까? 그 순간 정말 그런 마음이었던 걸까? 나는 참다못해 외쳤다.

"대체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이 난리인 거야? 나 때문이야? 너위해서라면 니노가 어떤 미친 짓이라도 할 수 있다는 걸 믿게 하려고?"
순간 
릴라의 눈빛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갑자기 말투가 바뀌었다.

"아니야 그 반대야. 난 거짓말을 하고 있어. 어떤 미친 짓이라도 할 각오가 되어 있는 것은 니노가 아니라 나야. 내 평생 이런 적은 한번도 없었어. 하지만 이런 경험을 하게 된 것이 지금이라 다행이야." 
릴라는 불안감에 기운이 빠졌는지 잘 자라는 인사 한마디 없이 그녀 방으로 가버렸다.(pp371-372)


(8) 레누 가담하는 이유 - 내마음 나도 모르겠어.

그렇지만 릴라는 나를 자신의 일에 끌어들이는 방법을 너무나도 알고 있었고 나는 끝까지 버티지 못했다. 나는 한편으로는 이 모든 일이 지긋지긋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릴라의 삶에 일부분지하지 못할까봐, 그녀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일을 함께하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그 모략도 위험하기 짝이 없지만 릴라의 기발한이 하나가 아닌가. 우리 둘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모두에게 맞서는 일이다.
……

 완벽하지 않은가. 릴라가 그 모략의 세세한 부분까지 맞추기 위해서 치밀한 계획을 세우면서 머리를 쓸수록 내 머리도 빠르게 돌아갔다. 릴라는 나를 포옹하며 내게 애원했다.

 이제 우리의 새로운 모험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삶이 허락지물은 것을 우리는 함께 쟁취할 것이다. 그렇게 될 것이다.

더면서도 다른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것은 내가 정말 원하는이 아닐 수도 있었다. 사실 나는 릴라가 그런 기쁨을 누릴 기회를 잃고 니노는 괴로고 니노는 괴로움에 빠지기를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둘 이 이성을 잃은 나머지 자신들의 욕망을 수완 좋게 실현하지 못하고 그 일로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기를 바라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 밤 릴라의 말을 오랫동안 듣다 보니 나는 결국 릴라를 도와주는 것이 오랫동안 유지해온 자매애에 가까운 우리의 우정사에있어서 결정적인 사건일 뿐 아니라 니노에 대한 나의 사랑을 표현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다. 릴라는 내 우정에 호소하고 있지만 나는 절박한 마음으로 니노를 향한 내 사랑을 생각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는 말했다.

"좋아. 도와줄게."


(9) 레누는 릴라가 왜 그러는지 알 것도 같다 

 거짓말을 생각해냈다는 만족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공서의 희열은 사라지고 분노가 되살아났다. 나는 왜 이렇게 릴H0미르 도와주고 그녀를 감싸고 있는 건지 자문해보았다. 남편을 배신리고 서러운 결혼의 언약을 어기고 아내라는 짐을 던겨버리려는릴라를 말이다. 스테파노가 알게 되는 날이면 릴라의 머리를 박살내려 할 것이다. 불현듯 릴라가 신부복을 입은 자신의 사진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나서 속이 뒤틀렸다. 지금도 그런 식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이번에는 그 대상이 사진이 아니라카라치 부인 자신이었다. 이번에도 릴라는 자신을 도와달라고 나를 끌어들였고 니노는 도구인 것이다. 그렇다. 니노는 가위나 풀, 페인트같이 자기 자신의 모습을 망가뜨리는 데 필요한 도구였다. 릴라는 내게 무슨 짓을 시키려는 걸까. 왜 나는 매번 그녀에게 휩쓸리고 마는 걸까. (p.387)



(10) 그 둘을 사랑했기에 정작 나 자신은 사람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타인의 요구에 복종하는 존재였다. 나는 릴라와 니노를 통해서만 의미를 얻는 드러나지 않는 존재였다. 릴라와 니노가 텅 빈 집 에서 포옹하고 입맞춤을 하는 장면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 들의 열정이 나를 덮쳐와 혼란스러웠다. 그 둘을 사랑했기에 정작 나 자신은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만의 열망을느끼고 붙잡지 못하는 것이다. 릴라와 니노처럼 그 열망을 위해서라면 장님에 귀머거리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날 바라노로 향하면서 나는 그렇게 느꼈다.(pp.397-398)

(11) 릴라-니노가 함께 있는 밤, 해변에서
▶ 나는 원하는 걸 말하지 못하는구나.
라는 스테파노에게 전화해 날뛰느 사위를 진정시키고 있을까. 릴라는 스테파노에 제편이 저 멀리 나폴리에 있는 고향 집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

이제 아무런 두려움 없이 니노와 함께 침대에 누워 있을까. 사람의 눈을 피해 밤새 즐기겠지.

모든 것이 아슬아슬하다. 위험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이들은 삶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평생을 구석에 처박혀 인생을 낭비하게 된다. 불현듯 왜 내가 아닌 릴라가 니노를 차지하게 됐는지 이유를 깨달았다. 나는 감정에 몸을 내맡길 줄 모른다.

감정에 이끌려 틀을 깨뜨릴 줄 모른다. 내겐 니노와 단 하루를 즐기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건 릴라와 같은 강인함이 없었다. 나는항상 한 발짝 뒤에서 기다리기만 했다.

 릴라는 그런 나와는 달리 진심으로 무엇인가를 갈망할 줄 알았다.

원하는 것은 망설임 없이 취할 줄 알았다. 열정을 다할 줄 알았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걸고 모멸감도 비웃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얼굴에 침을 뱉어도, 흠씬 두들겨 맞아도 두려워하지 않았 다. 릴라에게 사랑은 상대방이 자기를 원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쟁취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릴라는 니노를 가질 자격이있었던 것이다.

 나는 어두운 내리막길을 끝까지 걸어갔다. 달이 모습을 드러내 구름의 가장자리를 환히 비추었다. 향긋한 밤 내음과 함께 귀를 기울이다 보면 최면에 걸릴 듯한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해변에 다다라서 신발을 벗었다. 모래가 차가웠다. 잿빛 섞인 푸르스름한 빛이 바다까지 길게 이어지다가 잔잔하게 일렁이는 바다 위로 넓게져갔다.


▶ 사물의 진짜 모습은 어떤 것일까? 두려움이 밀려왔다.

나는 생각에 잠겼다. 릴라가 옳았다. 사물의 아름다움은 눈속임일 뿐이다. 하늘은 두려움의 왕좌일 뿐이다. 지금 나는 열 발짝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숨을 쉬고 있다. 하지만 이 순간은 전혀 아름답지 않다. 끔찍할 따름이다. 나는 이 해변과 바다, 온갖 형상의 짐승 무리와 함께 전 우주적 두려움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미세한 입자일 뿐이고 이 미세한 입자를 통과하는 모든 것은 그제야 스스로의 두려움을 자각하게 된다.

파도 소리가 내 귀를 스쳤다. 발밑으로는 차가운 모래사장의 눅눅함이 느껴졌다. 나는 이스키아 섬의 전경을, 나노와 릴라의 뒤엉킨제를, 서서히 낡아가는 새로 지은 신혼 집에 홀로 누워 자고 있을스테파노를 상상했다. 교활하기 짝이 없는 분노도 상상했다. 분노는미래에 있을 폭력을 더 키우기 위해서 오늘의 금지된 쾌락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사실이었다. 나는 너무 두려운 나머지 모든 것이 빨리끝나기를 바라고 있었다. 악몽 속의 괴물들이 내 영혼을 먹어치우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나는 지 암흑 속에서 미친개와 독사와 전갈과거대한 바다 괴물이 나타나기를 바랐다. 바다 끝자락에 앉아 있는동안 한밤의 암살자들이 모습을 드러내 나를 고문하기를 바랐다.

 그렇다. 내 모자람에 대한 대가를 스스로 치르고 싶었다. 뭔가 끔할 일이 일어나 오늘 밤도 내일도 맞이하지 않게 되기를 바랐다.

국제의 부적합함에 대한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드러날 미래를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한참을 이런 생각에 잠겼다. 낙담에 빠진 여의 광기어린 생각이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상념에 잠겨 있었는지 모르겠다.


(12) 도나토 사라토레와의 첫번째 경험은 레누에게 무슨 의미인지?
누군가가 '레누'라고 부르며 차가운 손으로 어깨를 만졌다. 나는 흠칫했다.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도나토 사라토레가 있었다. 나는 서사시에 등장하는 마법의 묘약을 마 신 것처럼 숨을 내쉬었다. 생명의 힘과 삶의 의미를 되찾아주는 그런 묘약 말이다.

……

나 자신보다도 나를 더 잘 파악하고 있었다.

내 안에는 또 다른 내가 있었다. 내 손과 입과 이빨과 혀는 또 다르나를 찾아냈다. 한 꺼풀 한 꺼풀 벗겨지는 동안 또 다른 나는 숨을 고을 잃고 뻔뻔스럽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 여자 등쳐먹기 '전문가' 도나토 사라토레

 도나토 사라토레는 그런 내가 도망치거나 수치심을 느끼지 않게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때로는 가볍고 때로는 격정적이로 내 몸을 만지면서 자신의 유일한 애정의 대상은 나뿐인 것처럼느끼게 해주었다. 그의 행위가 계속되는 동안 내게 일어나고 있는일에 대해서 나는 한순간도 후회하지 않았다.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나는 내 자신에게 당당했다. 스스로 일이 그런 식으로 진행되기를 바랐고 그렇게 믿기로 했다.

 시간이 갈수록 그가 번지르르한 말을 늘어놓지 않은 것도 도움이되었다. 안토니오와는 달리 내게 그 어떠한 행동을 강요하지 않은것도, 자신의 물건에 내 손을 갖다 대지 않은 것도 상황에 도움이 되 었다. 그는 자신이 내 모든 것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면서 내 몸에 자기 몸을 세심하고 조심스럽게 밀착시켰다. 여자의 심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내의 당당한 남성성을 과시했다.

내가 처녀인지도 묻지 않았다.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같았다. 만약 내가 처녀가 아니었다면 오히려 당황했을 것이다. 육체적 쾌락의 욕망이 절정으로 치솟았을 때, 오로지 내 자신에게 집중한 나머지 세상 모든 것을 잊은 순간, 도나토 사라토레의 늙은 육신과 그에게 붙어 있는 '니노의 아버지이자 철도원 - 시인 기자인 도나토 사라토레'라는 표딱지조차 잊은 그 순간 그도 내 마음을 일채고 내 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조심스런 몸짓으로 들어왔다가 니호한 몸짓으로 내 몸속에 들어왔다. 배가 찢어질 것처럼 아팠다.(pp.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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