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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동아리/보늬샘독서동아리

<이민자들> 2022.05.21

by 책이랑 2022. 5. 21.

실로 오~~~~랫만에 직접 만났습니다. 날씨도 좋았고, 오늘 토론장소까지 다 좋았습니다. 오랫만에 만나는 자리이기도 하고, 토론 책 역시 머리속, 마음속에 있는 생각, 감정을 자극하는 작품이기에 오디오가 매우 풍성한 토론이었습니다. 기본이 3채널 이었던 것 같습니다.

토론내용을 다 옮지지는 못했고요, 공책에 남은 내용과 보충 자료를 덧붙여 봅니다.  귄터그라스의 작품이 거론되었고요. '나비' '나비를 채집하는 사람'의 의미를 찾는 과정에서 작가의 다른 작품 <토성의 고리>, 조셉콘라드의 <어둠의 심연>에 대한 얘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2021년에 출판된 제발트의 전기에 관한 기사를 만나게 되었는데요, 그 리뷰기사에 의하면 오늘 읽은 <이민자>들에 나온 인물들은 거의 제발트 자신의 이야기 인듯 합니다. 기억을 말하는 과정에서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본다는 것도 이태리의 어느 성당 꼭대기에서 저자자신이 겪은 경험이라는 내용이 있나봐요.( 해당 내용이 소개된 기사를 읽었는데 다시 못찾았습니다.)

맨 끝에는 제발디언에 관한 비판적인 기사가 있습니다. 실천이 부족한 정신적 나르시스트 아닌가 반문하는데요, 오늘 우리 토론에서도 그와 비슷한 내용의 비판도 있었었지요. 이야기를 나눌 부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 혹은 앞으로 책을 읽으면서 한 번쯤은 더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참가자 모두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던, 인상깊은 토론도서로 기억에 남을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번 토론은 6월 12일 일요일 10시 30분, 까페 에무에서 <헌등사>로 토론할 예정입니다. 

 

목차

    [1] 책 읽은 소감

    ▶애도

    독일, 유럽에서 추방당하고 살해당한 유대인들의 이야기이지만 읽으면서 4.3사건을 다룬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나 <소년이 온다>가 생각났다. 공통적으로 '애도' 가  담긴 작품들이다.리고 우리가 겪은 일들이고 애도해야 하는  사건들인데도 없던일 처럼 살고 있는 우리를 '깨어나게'하는 작품이다.

    귄터 그라스의 작품<고양이와 쥐>가 생각났다.

    길지 않은 길이인 작품인데 이 작품에 이어 읽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소설 〈양철북〉으로 199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사회민주당 지지자로 외국인 혐오증과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작가이다. 그러나 62년만에 자신의 자서전에서 17살이던 때 나치 친위대인 SS에 가입했었고 종전이 되기까지 총4개월동안 복무했다는 것을 고백했다. 17살때, 4개월이라면 어린나이와 시대적 상황을 참조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할수 있다. 그러나 작가는 죄과에서 자유로운 듯 행동하는 독일인들에게 집단적 책임이 있음을 일깨우고  이데올로기나 전쟁에 몰지각하고 무비판적이었던 과거 본인의 모습을 반성한다.

    귄터 그라스

    폴란드 그단스크(옛 단치히 자유시)의 한 완고한 하층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귄터 그라스는 16살이던 43년 ‘제국노동대’에 징집됐다. 유년의 억압적이던 집안 분위기만큼 강제노동이 싫었던 그는 17살 생일이 갓 지난 44년 11월 나치 해군 잠수함병으로 자원했다가 거부당했고, 차선으로 택한 게 나치 친위대였다. 나치당의 사조직인 SS친위대는 자원자 가운데 혈통 등을 엄격히 따져 충원한 엘리트 조직이었지만. 전쟁 후반부 조직원 충원에 애를 먹으면서 자격 기준도 대폭 느슨해졌다. 그라스가 소속됐던 SS기갑사단이 인종학살에 가담하지 않은 부대였다는 점도 물론 그라스가 용기를 내게 된 배경이었을 테다. 하지만 그쯤 되는 이조차 그 결심을 하는 데 62년이나 걸렸다는 사실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출처 : 한국일보. 2017.4.13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704121961845997

     

    귄터 그라스 <고양이와 쥐>

    고양이와 쥐 - 10점
    귄터 그라스 지음, 박경희 옮김/문학동네

    나치 이데올로기가 사람들을 어떻게 전쟁에 동원했는지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또 나치에 선동돼 ‘전쟁 영웅’을 동경하고 실상 사람 목숨값과 같은 기사십자 훈장을 최고의 자랑거리로 여겼던 민중의 무비판적이고 반성 없는 사고방식을 비판한다. 그리고 그 비판은 나치 점령기를 살아간 소시민들을 넘어, 전쟁의 기억을 지우는 데 집중하던 전후 독일사회로 향한다. 그라스의 작품은 죄과에서 자유로운 듯 행동하는 독일인들을 향해 단호하게 말한다. 누구도 집단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소설에는 작가의 회한이 담겨 있다. 필렌츠를 비롯한 작품 속 소년들의 모습에는 히틀러유겐트를 거쳐 나치 친위대로 복무하면서도 이데올로기나 전쟁에 몰지각하고 무비판적이었던 과거 본인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고양이와 쥐』는 서술자 필렌츠와 마찬가지로 뒤늦게 깨달은 자로서 작가 그라스가 남긴 ‘나의 죄’, 더 나아가 ‘모두의 죄’에 대한 기록이다.

     

    [1]-1 '나비'의 의미, 제발트의 또 다른 작품 <토성의 고리>, 벨기에의 콩고 공화국에서의 만행

    ▶ 책을 읽으면서 '나비' '나비를 잡는 사람'의 의미를 좀더 알고 싶었다. 작가의 또 다른 작품 <토성의 고리>는 고대왕국이 있던 영국의 동남부지방(노퍽주와 써퍽주)을 여행하면서 작가가 만난 사람과 풍경이 담겨 있다. 그중 5장은 벨기에가 아프리카의 콩고 공화국을 침략한 역사가 담겨 있다. (조셉 콘래드는 자신의 작품 <어둠의 심연>에서 이를 다룬바 있고, 이 책은 영화 <지옥의 묵시록>의 원작이다. )

    1) 토성의 고리 -파괴된 문명의 흔적을 따라가는 순례자의 여정

    (고치고 다시 쓰고 고치는 작가인 제발트는 2021년 출간된 전기에 의하면 <토성의 고리>원고는 2,000 페이지에 달하는데 최종으로는 400페이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토성의 고리 - 10점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창비
     

    1992년 8월 소설의 화자는 고대왕국이 있던 영국의 동남부지방(노퍽주와 써퍽주)을 여행한다. 이 순례의 발단은 화자 자신의 내면적 공허였지만 목적의식 없는 여정은 자주 샛길과 미로로 접어들고 어긋난다. 그러나 이런 이탈 덕택에 화자는 이미 발생했거나 장차 도래할 대재앙의 숱한 증인을 만나게 된다. 제국주의의 광기가 남겨놓은 방랑하는 유대인이나 노예화된 민족, 문명의 흐름에서 비켜난 삶을 살아간 아웃사이더 등의 인간집단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열기가 남겨놓은 폐허의 상징들?파괴된 숲, 청어와 누에처럼 산업적으로 희생된 생물, 버려진 공장, 몰락한 도시?을 마주하며 화자는 “미래의 어떤 대재앙으로 파멸한 문명의 잔해”를 보는 듯한 먹먹한 전율을 느낀다.

    [...]

    이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역사를 희생자들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선이다. 이미 청소년시절에 전쟁과 유대인 학살에 대한 부모 세대의 침묵에 분노했던 제발트는 작품을 통해 역사 속의 고통과 파괴를 다가올 미래를 위한 불가피한 희생으로 간주하는 일체의 담론에 근원적인 이의를 제기하며 전체의 미래를 위해 내세워지는 낙관론의 폭력성을 고발한다. 역사 속의 파괴와 고통은 어떤 약속으로도 보상될 수 없고 인간 문명의 역사는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대재앙이라는 것이다.

    2) <토성의 고리> 5장과 조셉 콘라드의 <어둠의 심연>

     
    어둠의 심연 - 10점
    조셉 콘라드 지음, 이석구 옮김/을유문화사
    <어둠의 심연>
    주인공 말로는 친척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무역회사 소속의 증기선 선장이 된다. 업무의 일환으로 어느 강에 도착한 말로는 그곳에서 ‘전설의 인물’ 커츠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커츠는 원주민으로부터 방대한 양의 교역 물품을 이끌어내며 그 지역 무역량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인물이었는데, 이 때문에 회사 내에서의 승진과 사회적 출세가 가장 확실하게 담보되었다고 평가받고 있었다. 말로는 커츠의 교역소가 있는 곳으로 향하던 중 원주민들의 공격을 받게 되는데, 후에 이것이 커츠의 지시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된다. 직접 커츠를 만나게 된 말로는 유럽의 문명 사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그곳 정글에서의 삶이 인간 본성의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에 대해 경악하게 된다.

    <어둠의 심연>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곳은 콩고 강이다. 또한 작품에 등장하는 무역 회사는 벨기에 왕 레오폴드 2세의 ‘콩고 상부 교역을 위한 무명 벨기에회(Soci?? Anonyme Belge pour le Commerce du Haut-Congo)’로 추정된다. 콘래드는 1890년 실제로 이 회사가 운영하는 기선의 성장으로 콩고 강에 다녀온 바 있다. <진보의 전초 기지> 또한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작품이다.

     

    3)  벨기에의 콩고침략- 로열 패밀리 이야기3, 네덜란드-벨기에 편 : 학살자의 후손 

    출처: 딴지일보 https://www.ddanzi.com/ddanziNews/635924679 

    네덜란드가 싫어서 독립한 벨기에 식민지 선발주자로서의 네덜란드를 따라갈수 없는 상태였고  하나로 묶일 수 없는 남북 두 지역이 어쩌다 한 나라가 된 경우였다. 분리주의 수준의 지역감정으로 국가 통합도 어려운 형편이었다.  벨기에는 독일에서 명망 있는 가문을 초빙해 벨기에 왕가로 추대했고 그왕의 아들인 2대 왕, 레오폴드 2세는 단번에 네덜란드 레벨의 제국주의로 점프할 수 있는 비책을 찾아냈다. 그건 바로 사기였다.

    레오폴드 2세는 광활한 콩고의  땅을 돈과 정치력으로 구매해서 식민지로 만들려고 했고  문명화되지 않은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인도주의적인 식민지 사업을 벌이겠으니 투자를 해달라고 광고를 했다. 당연히 사기였다.

    일단 표면적인 논리도 말은 안 된다. ‘문명화’라는 개념은 철저히 유럽 중심의 시각이었다. 하지만 그런 거 알 리가 없는 당시 유럽과 미국에게는 멋진 이상주의였다. 벨기에 정부를 비롯한 여러 귀족과 자본가들은 투자계약서를 대충 보고 서명을 해주었다.  강력한 통일 왕국이었던 콩고 왕국이 해체되고,  식민 세력이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물러난 후,  소왕국과 소부족체들이 난립하던 혼란기,  지쳐있던 현지의 왕들과 추장들은 현지 유력자들은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 조약에 일단 서명을 했다. 1884년, 레오폴드 2세는 벨기에 영토의 75배에 달하는 콩고 강 이남의 영토를 개인의 영지로 꿀꺽한다. 그리고 콩고는 지옥이 되었다.

     

    기사 - 로열 패밀리 이야기3, 네덜란드-벨기에 편 : 학살자의 후손

    유럽의 왕실 대부분이 집중하는 문제 1번은 군주정의 유지다. 모나코나 리히텐슈타인 같이 작은 나라의 대공가에선 우선순위가 낮지만, 규모와 국력이 일정 이상이고 그래서 왕국인 나라들은

    www.ddanzi.com

    레오폴드 2세는 제국주의 식민지의 상아와 고무 두 산물의 생산과 무역을 독점했고, 콩고는 상아와 고무 생산 외에는 산업이 전무한 지역으로 변해버렸다.  모든 노동자들에게는 일일 의무 생산량이 주어졌다. 이 생산량을 채우지 못하면 어린아이라 하더라도 손목을 절단했다. 즉 아동노동을 넘어서 아동강제노동은 기본이었다.

    강제노동에서 손목을 절단 당한 콩고인


    그리고 의무생산량은 연좌제로 적용되었다.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가 생산량을 채우지 못하면 다른 가족이 어떻게든 채워야 했고, 못 채우면 같이 손목이 잘렸다. 공개처형, 감금, 뇌물, 강간, 학살, 거주지 추방, 심지어 강제 매춘을 위한 인신매매 등의 범죄도 레오폴드 2세의 콩고 자유국 정부에 의해 자행되었다. 이 범죄를 수행할 병력은 현지와 주변국의 용병으로 조달했다. 콩고 자유국에서 학살과 기아 등으로 사망한 숫자는 정확하진 않지만 수백만 단위다. 과장을 보태고 난민과 불구자의 숫자까지 합한 경우엔 천만을 넘어간다.

    벨기에 정부를 비롯한 투자자들은 이를 막을 수 있었다. 그들이 투자한 목적은 콩고 땅에 유럽식 문명 질서가 들어서 콩고인들이 행복해지고 콩고의 자연을 탐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속내는 착취 경제였을 수 있으나, 최소한 저 정도의 잔혹함을 상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레오폴드 2세는 투자자들이 자료를 요구할 때마다 조작된 자료를 제공했다. 현지 선교사의 고발이 나오면, 언론을 매수하거나 ‘아니 어떻게 그런 일이 내 영토에서!’라고 외치며 놀란 척을 했다.

    24년 동안 레오폴드 2세는 신나게 콩고인들의 손목을 자르며 고무와 상아를 뽑아냈다. 그 돈으로는 벨기에에 자신을 기리는 으리으리한 대형 건축물을 여럿 지었다. 조지프 콘래드의 소설 ‘어둠의 심연(혹은 암흑의 핵심)’과 영화 ‘레전드 오브 타잔’이 이 시대의 콩고를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레오폴드 2세의 만행은 결국 드러나게 되었다. 서구사회는 1900년대가 되었을 때 레오폴드 2세가 어떤 인간인지, 콩고에서 뭘 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현지에서 지옥을 목도한 선교사들의 줄기찬 고발이 만든 성과였다. 식민주의의 대장인 영국마저 끔찍함에 치를 떨었다. 결국 벨기에 정부는 1908년 레오폴드 2세로부터 콩고 자유국 영토를 몰수했다. 그나마도 주요 서류는 왕이 태워버린 후였다. 레오폴드 2세는 곧 사망하고 국민들은 장례식 행렬서 왕의 관에 침을 뱉는 등 다양한 모욕으로 왕을 보냈다. 레오폴드 2세로 인해 콩고의 경제는 박살 나 현재까지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용병과 주민들의 갈등은 형태를 바꿔 콩고 내전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그의 그림자는 콩고에서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레오폴드 2세는 근대의 학살자 중 사망자 숫자로 히틀러와 3~4위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

    4) 콩고 원주민에 대한 폭력과 고문을 알린 아일랜드 독립운동가인 로저 케이스먼트의 '나비'

    반핵운동, 여성운동가인 리베카 솔닛의 아일랜드 여행기인 <마음의 발걸음>에 나비 이야기가 나온다. 솔닛은 더블린 자연사박물관에서 박제된 열대 나비를 본다. 아일랜드 독립운동가인 로저 케이스먼트가 기증한 것이다. 케이스먼트는 제국주의 정책 일환으로 추진된 영국의 ‘오지 탐험대’ 소속으로 아프리카 콩고를 찾았지만, 그곳에서 서구 열강의 원주민에 대한 온갖 폭력과 고문을 목격하고 이를 기록한 보고서를 남겨 세상에 알렸다. 그가 자연사박물관에 기증한 나비는 페루 푸투마요에서 벌어진 참상을 조사하다가 밀림에서 수집한 것이었다.
    기사: https://m.khan.co.kr/culture/book/article/202010161407001#c2b

     

    마음의 발걸음 - 10점
    리베카 솔닛 지음, 김정아 옮김/반비

    ▶2번째 이야기에서 화자의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파울 베라이터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파울은 나치의 등장으로 삶의 모든 것이 일거에 무너지는 경험을 했고 파울은 선생 자리를 박탈당했다.  이웃들은 한순간에 파울과 그의 가족에 대한 태도를 달리했고 집단 폭행을 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점은 "폭행이 가해진 다음 날에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축제 분위기 속에서 동네 바자회가 열리기도 한다(71-72쪽)."는 점이었다.

    ▶ '이민' - 존재가 송두리째 뒤바뀌는 과정

    (<이민자들>에서)  ‘이민’은 단지 물리적 이동만을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 자체가 뒤바뀌는 것, 개인의 기억과 그 사람이 태어난 땅의 사회적 기억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이다.
    출처: 블로그 https://ahopsi.com/침묵과-망각의-폭력에-맞서-인간다움을-지킨다는/

    ▶ 상실은 자기이해에 중요한 위협이자 도전, 애정의 대상이 없이도 자아에게 의미를 갖는 질서로 재해석해 내야만 함

    이러한 주관적 상실의 감수성은 프로이트가 일찍이 「애도와 우울 Trauer und Melancholie」(1917)이라는 논문에서 상술한 바로 그것으로, 연인이나 친 구, 부모나 자식과 같은 개인적 애정의 대상이 사라져버린 후 남은 자의 내면에서 나 타나는 심리적 과정이다. 프로이트에게서 애도가 애정이 집중되었던 대상의 상실에 대한 정상적인 심리적 반응이라면, 우울은 복합적이고 병적인 심리적 반응이다. 그러 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애도와 우울의 정신심리학적 성격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상실이 자아의 기존의 자기이해에 중요한 위협이자 도전이 된다는 점이다. 즉, 남은 자는 자아 구성의 일부였던 특정한 대상관계가 사라짐으로써 그 관계에 고착된 심리 에너지가 불안정해지고, 인지적으로는 대상관계를 포함하여 설정했던 자아와 세계와의 관계가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애도작업 Trauerarbeit은 이 위기에 대응하는 내면적 과정인데, 대상을 상실한 자, 즉 홀로 남겨져 애도하는 자는 사라진 상대에게 향했던 내면의 애정을 거두고, 세계를 애정의 상대가 없이도 자아에게 의미를 갖는 질서로 재해석해내야만 하는 것이다.

    출처:사라진 자와 남겨진 자 -   「이민자들」을   통해   본   제발트   W.G.    Sebald  의   애도의   시학
    탁선미 (한양대)
    전문링크:https://blog.daum.net/windada11/8769346

     

    제발트가 가해자의 세계로부터 희생자의 세계를 향해 소속감을 이동하는 과정...

    사라진 자와 남겨진 자 -   「이민자들」을   통해   본   제발트   W.G.    Sebald 의   애도의   시학 탁선미 (한양대) Ⅰ. 들어가는 말 Ⅱ. 고통의 주체성 – 애도와 우울..

    booksreview.tistory.com

    [2] 인상적인 구절

    황폐함

    ▶ 세번째 이야기에서 코스모 솔로몬이 방문했던 예루살렘, 두번째 이야기의 맨체스터 등은 인간이 손을 댄 후 황폐해진 공간들로 나온다.  p.14에는 헨리 쎌윈 박사의 황폐해진 정원이 나온다. 

    p14
    개암나무 길은 테니스장이 있는 곳에서 끝났다. 테니스장 옆은 흰색 벽돌담으로 막혀 있었다. ‘Tennis used to de my great passion(한창 테니스에 열중한 적이 있었지요), 라고 쎌윈박사는 말했다. 'But now the court has fallen into disrepair, like so much else around(하지만 여기 다른 곳도 대개 그렇듯이 이젠 테니스장도 황폐화 되었습니다) 그는 상당히 파손된 빅토리아 양식의 온실과 멋대로 자라난 나무 울타리를 가리키면서 말을 이었다. 다른 곳들도 대개 그렇듯이 이젠 테니스장도 황폐해졌습니(But now the court has fallen into disrepair, like so much elsearound here). 그는 상당히 파손된 빅토리아 양식의 온실과 멋대로 자라난 나무울타리를 가리키면서 말을 이었다. 몇년 동안 돌보지 않았더니 채마밭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가 부담을너무 많이 줬던 자연도 그냥 저렇게 방치해두었더니 신음소리를 내며 점점 함몰되는 중입니다. 

    기억 1

    p.185
    비망록에 적힌 할아버지의 마지막 기록은 성 스테파노의날(12월 26일)에 쓴 것이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뒤 코즈모는심한 열병을 앓았지만 차츰 회복되는 중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할아버지는 그 전날 오후 늦게 눈이 내리기 시작했으며,
    호텔 창가에 서서 찬찬히 내려앉는 어스름 속에 하얗게 떠있는 도시를 보자니 옛날 생각이 많이 난다고도 적어놓았다.
    그는 나중에 이런 글귀를 추가했다. 기억이란 때로 일종의 어리석음처럼 느껴진다. 기억은 머리를 무겁고 어지럽게 한다. 시간의 고랑을 따라가며 과거를 뒤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끝간 데 없이 하늘로 치솟은 탑 위에서 까마득한 아래쪽을 내려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기억2

    [...]여하튼 그렇게 학교에팽배해 있던 도덕적인 무관심이 그때까지는 알지 못했던 어떤 자유의 감정을 느끼도록 해준 것은 맞아. 그 때문에 부모님께 편지를 쓰거나 이주일에 한번씩 도착하는 부모님의 편지를 읽는 것이 갈수록 힘들게 느껴지더군. 1941년 11월 점점부담스러워지던 편지왕래가 끝났을 때, 나는 우선 홀가분한기분이었어. 나로서도 그런 기분이 죄스럽기는 했지만 말이야. 다시는 편지를 주고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네. 사실을 말하자면, 지금도 그 사실을 완전히 받아들였다고 자신할 수는 없네. 하지만 돌이켜보면, 당시의 일들이 내 삶의 구석구석까지 결정해놓았다는 느낌이 들어, 부모님이 강제이송당한 것뿐만 아니라 그 믿기지않는 사망 소식이 한참이 지나서야 내게 도착했던 것, 처음에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던 그 소식의 의미를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그런 일들 말이야. 부모님이 겪은 고통과 나 자신의 고통에서 벗어나보려고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노력도 많이 했고, 이렇게 은둔생활을 하는 가운데 간혹 영혼의 안정이 유지되는 때도 없지 않았지만, 학창시절에 나를 덮쳤던 그 불행이 내 안에 박아놓은 뿌리는 너무나 깊었네. 그 불행은 거듭 땅을 뚫고 나와 사드한 꽃을 피우고, 독기품은잎으로 내머리위에 천장을 만들었지. 그 천장은 지난 몇년 동안에도 내게 짙은 그늘을 드러우고 나를 어둠으로 덮었네.

    이타가(Ithaca)의 의미- 오딧세우스의 고향:서양문명의 고향을 의미

    아델바르트 외삼촌이 자의로 간 정신병원이 있는 지역

     

    4개 이야기와 작가가 붙인 문구

     

    [3] 제발트의 전기-<Speak, Silence> 소개 기사

    드러남: 독일 문단의 거인에게 영감을 준 비밀스런 트라우마
    Revealed: the secret trauma that inspired German literary giant
    https://www.theguardian.com/books/2021/jul/31/revealed-the-secret-trauma-that-inspired-wg-sebald-german-literary-giant

     

    Revealed: the secret trauma that inspired German literary giant

    WG Sebald’s writing on the Holocaust was driven by the anger and distress he felt over his father’s service in Hitler’s army

    www.theguardian.com

    [...] 이번 달 말에 출판될 이 책은 왜 세발드가 홀로코스트의 유대인과 독일인의 비극에 대해 종종 쓰기로 선택했는지를 새롭게 조명한다.

    20년 전 교통사고로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으로 칭송받았던 세발드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독일 군인 아버지와 항상 불편한 관계를 맺었다고 이 전기는 보여줄 것이다.

    그는 평생 동안 "구식의 권위주의자"였던 아버지와 싸웠지만, 17세 때 학교에서 강제 수용소에 관한 영화를 보여주면서 그들의 관계는 악화되었다. 1960년대 초반이었고,  앤지어는 당시  "독일 가정에서는 홀로코스트가 거론된 적이 없다. 그것이 시발드의 첫 번째 시각적, 본능적인 만남이었다."

    그 영화는 그에게 정신적 충격을 주었다. "그는 히틀러의 군대에서 복무했던 아버지를 나치라고 생각했다."

    그의 부모가 히틀러의 통치를 받아들이고 이득을 봤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은 그는 그 문제에 대한 그들의 침묵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는 결코 그의 부모에게 전쟁에 대해 말하게 할 수 없었습니다,"라고 앤지어는 말한다. "그는 그의 아버지를 고발했고, 그의 아버지는 입을 다물고 그가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면 그는 화가 났고, 그들은 말다툼을 벌이게 될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가톨릭 신자로 자라난 세발드는 교회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반대자가 되었다."

    그는 우울해졌고 결국 쇠약해졌다. 앤지어는 "그는 나중에 이 시기에 '이성의 가장자리에 가까이 왔다'고 말했다"며 "수년에 걸쳐 쌓아온 누군가의 정체성이 파괴되거나 산산조각이 나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나중에 홀로코스트에서 부모가 사망한 유대인 난민에 대한 그의 마지막 걸작인 아우스터리츠에서 이러한 감정을 탐구했다. 어린 시절 킨더 수송선을 타고 영국에 도착한 뒤 기독교인들에게 입양된 난민은 성인이 되기 직전의 유대인의 정체성을 발견하게 되고,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대한 트라우마를 억누르고 난 뒤 말년에 신경쇠약에 걸린다.

    세발드는 가족들로부터 자신의 붕괴를 숨기고 어떠한 공식적인 치료도 받지 않았다. 그는 일생 동안 우울, 불안, 공포, 그리고 "끔찍한 고립감"의 심각한 에피소드를 계속 겪었고, 결국 총 세 번의 큰 고비를 맞았다고 이 전기는 처음으로 밝힌다.

    두 번째는 맨체스터 대학의 22세 교사로서 그의 첫 임기 동안에 일어났다. 소외감, 절망감, 공황감에 사로잡힌 세발드는 이민자들에서 막스 페르버의 이야기의 내레이터와 비슷한 또 다른 "급격한 우울증"에 빠졌다. "그는 나중에 그곳에서 자신이 쓴 것이 사실이고, 그 기간 동안 위기를 겪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당시 그는 자신이 '미쳐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친구에게 "가끔 놓아주고 싶지만 제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앤지어는 이것이 그의 가족이었다고 추측한다: "나는 그가 평생 동안 자살하거나 자살할 생각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이 시점이었다. "그는 출판된 적이 없는 그의 첫 소설을 썼다. 그 영웅은 매우 우울하고 과민한 인물이다. 이 작품은 확실히 전적으로 자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자전적인 작품입니다."

    그가 처음 만난 유대인인 '멋진' 집주인인 독일 난민 피터 조던을 알게 된 것은 20대 초반 맨체스터대에서 교편을 잡던 중이었다. "이곳에는 그와 똑같이 자랐고, 그의 언어를 말하고, 같은 방식으로 살고, 같은 언덕에서 스키를 탔고, 그는 도망쳐야 했고, 그의 부모는 살해당했다. 그를 만나면서 세발드는 이 끔찍한 범죄의 인간적 실체를 깨닫게 되었다."

    이 무렵에는 나치가 승인한 출생 이름인 윈프리드 대신 스스로를 막스라고 부르기 시작한 세발드는 요르단의 행동 중 한 가지 특정한 측면에 충격을 받았다. 세발드의 부모처럼, 조던은 전쟁에 대해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그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부모에게 일어난 일에 직면하지 않는 전형적인 난민을 했다"고 말했다. 그것이 바로 시발드가 늘 들려주는 이야기인데, 나치즘의 생존자이자 희생자인 이들은 강제 유배를 당했고, 평생 짐을 짊어지고, 트라우마를 피하기 위해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나 세발드의 책에서는 이 전략이 결코 효과가 없다.

    그 고장은 결정적이었습니다. 그때가 그가 문학소설을 쓰기 시작하는 때이다. 캐롤 앤지어 후에, 그는 그가 느꼈던 것과 같은 충격적인 현실감을 독자들에게 재현하고 싶어했고, 그래서 그는 피터 조던과 그의 가족의 사진을 이민자들에 실었고, 그것들이 그의 가상의 인물인 맥스 퍼버의 것인 척 했다. "캐릭터의 역사는 피터 조던의 역사이고 모든 사진은 그의 가족입니다,"라고 앤지어는 말한다.

     

    [4] 제발디언에 대한 비판-소설에서 '윤리'를 찾는 나르시스트에게 고함

    [프레시안 books] 제발트의 <토성의 고리>
    김사과 소설가  |  2011.11.11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67033

    그런데 여기서 주장되는 문학적인 윤리란 무엇인가? 제발트의 글을 통해 유추하자면 그것은 잊힌 것들을 애도하는 것이다. 파국의 풍경에서 통증을 느끼고, 결국 여행의 끝에 진짜로 몸에 마비를 일으키는, 신음하는 마음이다. 그러니까 이 윤리는, 엄청난 예민함에서 비롯된, 마비시키는 윤리다. 중단시키는 윤리다. 그렇기 때문에 제발트의 글은 소설과 에세이, 허구와 비허구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끼어 있는 글 더미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의 윤리가 무언가가 되기를, 어딘가로 가기를 완강하게 거부하기 때문이다. 
     
    뭔가를 이루려는 인간의 광기가 우리 모두를 이런 폐허의 세계로 이끌었기 때문에, 그것을 잊지 않으려는, 그것을 막으려는 의지는 극단적인 회의주의의 형태를 띠게 된다. 이것이 전후의 지적/예술적 운동의 중심에 놓여 있는 회의주의다. 모든 것에 대한 절대적인 회의가 해체와 거부를 거쳐 마비로, 그러니까 완벽한 교착 상태로, 귀결되는 것은 논리적이다. 그러니까 아무데도 갈 수 없다. 
     
    그런데 이 비탄에 빠져, 아무데도 갈수가 없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게 된 마음을 윤리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한가? 그건 이 회의주의를 가져온 원인 세계를 망각한 채로, 회의주의 외에는 아무것도 믿지 않게 된 일종의 종교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혹은 '최소한의 윤리'를 주장하는 스스로를 거울에 비추며 사랑에 빠지는 나르시시즘이 아닌가?

     

    [5]  트라우마

    “트라우마는 침묵의 형태로 대물림된다. 침묵의 소리를 듣는 법을 알게 되기까지 몇 세대가 걸릴 수도 있다.”(133-134)
    리베카 솔닛<마음의 발걸음>

    [6] 전원에 머문 날들

    전원에 머문 날들 - 10점
    W. G. 제발트 지음, 이경진 옮김/문학동네

     

    독일문학의 거장 제발트가 ‘귀한 작가’들에게 바치는 슬프고 아름다운 헌사

    -요한 페터 헤벨, 고트프리트 켈러, 로베르트 발저, 장자크 루소, 에두아르트 뫼리케, 얀 페터 트리프, 총 여섯 작가에 대해 다룬다.(스위스와 독일 서남부 알레만 지역 출신 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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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연구가로서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그는 소설을 쓰면서도 꾸준히 비평작업을 지속해왔는데, 늘 곁에 두고 읽어왔던 요한 페터 헤벨, 고트프리트 켈러, 로베르트 발저에 한결같은 애정을 표하며 “어쩌면 너무 늦어지기 전에” 이들에 대해 경의를 표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책에 담긴 원고들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른 계기로 쓰게 된 장자크 루소와 에두아르트 뫼리케에 대한 글들이 더해지자, 이 원고들이 서로 제법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맨 마지막에 화가 얀 페터 트리프에 대한 에세이가 실린 것도 그 나름의 질서에 따른 결과다.

    맨 마지막에 화가 얀 페터 트리프에 대한 에세이가 실린 것도 그 나름의 질서에 따른 결과다. 다른 작가들과 달리 화가에 대한 글이 실린 것은 단순히 그가 얀 페터 트리프와 친구 사이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제발트는 “아주 깊숙이 들여다봐야 한다는 점, 예술은 수공예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점, 사물들을 하나씩 헤아리는 일에는 감수해야 할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는 점”을 알려준 것이 바로 트리프의 작품들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트리프 역시 켈러와 발저의 작품을 귀하게 여겼다고 전한다.


    이 책에서 언급되는 작가들은 모두 시대와 불화하고 우울로 고통받았으나 글쓰기 앞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았던 이들이다. 그들은 대체적으로 본국에서나 세계문학사에서 중심이 아닌 변방에 위치해 있다. 제발트가 부러 모아놓은 그 이름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비껴나 있고 그늘진 인상을 풍긴다. 그도 그럴 것이 켈러와 발저, 헤벨은 독일문학사에서는 변방에 해당할 스위스 태생이고, 루소 역시 스위스 제네바 출신이다. 헤벨과 뫼리케는 알레만 지역, 즉 스위스 및 프랑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독일 서남부 지역에서 평생을 살았기에 특정한 지역색이 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이들이 문학사에서 가장 빛나는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 책의 지향성을 온전히 설명하지는 못한다(사실 제발트 덕분에 이러한 평가조차 달라지고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전원에 머문 날들』의 특별한 점이 생겨난다. ‘전원’은 소란스러운 중심으로부터 멀어지고픈 소망, 급변하는 세상의 속도에서 벗어나 느림과 정체 속에 머무르고자 하는 소망의 시공간이다. 책에 등장하는 작가들은 각각의 이유로 전원을 삶의 토대로 삼고자 했다. 그들에게 전원은 정신적 고통을 피할 안식처였다. 물론 그러한 도피처를 찾는 인간의 실존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전원은 본질적으로 우울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황폐해진 심신을 달래기 위해 찾는 세계가 전원인 것이다. 그리고 이 우울은 제발트가 거듭 강조하듯이 글쓰기라는 악덕을 필연적으로 끌어들이는 불치의 병과 같은 것이다.

    [7] 다음 토론 도서 다와다 요코 <헌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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