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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느리게 읽기

담론 1부 2장 사실과 진실

by 책이랑 2016. 10. 1.

시 이야기가 기승전결과 정반합까지 이어진 까닭은 시가 본질적으로 세계 인식의 틀이기 때문입니다. 시란 문학서사 양식을 뛰어 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시서화는 보다 높은 차원의 인식의 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와 숫자로서 세계를 인식하고 있는 것이 현 수준의 우리들의 세계 인식입니다.....

시를 읽는 오늘의 현실은 매우 안이합니다. 시뿐만 아니라 시서화악 모두 교양 또는 예술이라는 장식적 그릇에 담아두고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시적 정서와 시적 사유가 돋보이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유연한 시적 사유는 비단 세계 인식에 있어서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를 대단히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것임에 틀림없습니다.(pp. 39-37)

지난주 읽었던 책에  생각을 말로 하는 순간 그 말은 실제의 자기 생각과는 어긋나게 된다고요. 사람의 내면에는 아마존 강과도 같이 거대한 생각과 느낌의 강물이 흐르고 있다고 있는데, 우리가 가진 언어는 작은 종지에 불과할 정도로 빈약한 것인가봐요. 그래서 사람들은 언어를 수단으로 삼지 않고 "직관"하기  선문답과 명상 등을 해 왔겠지요.

여기서 신영복 선생님이, 세계 인식의 틀로써 "시"를 꺼내드신 것은, 꽈짜여젼 논리를 언어로 표현하게 되면서 자신만의 생각의 성에 갇히고 다른 사람과 생각을 교류하거나, 다른 이의 처지에 대해서 공감하는 마음을 잃어버리는 것을 경계하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허술해 보이지만, 오래된 시에 담긴 사람들의 마음 속 깊은 곳의 소망과  정서를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무엇을 듣고 보고, 쓰더라도 그건 이런 마음을 위한 수단일뿐이니, 강을 건너고 나면 배를 버리듯이, 버려야할 순간을 위해 보고 배우는 것을 잊지 말자고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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