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과 초사」를 예로 들어서 이아기했습니다만. 요지는 우리가 갇혀 있는 협소한 인식틀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시경』의 사실성과 『초사』의 낭만성, 문사철의 추상력과 시서화악의 상상력을 유연하게 구사할 수 있는 능력과 품성을 기르는 것이 공부라ㅂ고 했습니다. 그러한 공부가 근본에 있어서 시적 관점, 시적 상상력과 다르지 않다고 했습니다. (p.57)
....우리가 고전을 공부하는 까닭은 장기 지속의 구조를 만나기 위해서 입니다.(p.58)
(구조주의와 역사를 결합한 브로델의 역사관- 구조사,국면사, 사건사)
……'변화의 고전'이라고 했습니다. 『주역』은 세계의 운동에 관한, 오래된 철학적 서술로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합니다.(p.59)
우리 강의에서는 『주역』을 점서로 읽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과학서로 읽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주역』의 독법입니다.(p.61)
.......우리 강의 의 핵심 개념인 '『주역』 독법의 관계론'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위, 비, 응, 중이라는 네가지 독법에 대해서 위位, 비比, 응應, 중中이라는 네 가지 독법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위'位는 효의 자리입니다. (p.63)
'비'比는 .......바로 이웃하고 있는 효와의 관계를 보는 것입니다. (p.65...)
응應, 은 ...하괘와 상괘의 상응 관계를 보는 것입니다. 관계성의 폭을 조금 더 넓게 보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청년 시절과 중년시절의 관계를 본다던가 친구나 가족과의 관계보다 마을 사람들과의 사회적 관계를 본다든 가 하는 것입니다. 관계의 범위가 시공간적으로 더 확장됩니다. (p.65)
다음 네번째는 '중'中입니다. 중은 하괘의 중과, 상괘의 중을 중시하지 않고 가운데를 중시하는가에 대하여 무심하지 않아야 합니다.....이처럼 중'中을 중시하는 까닭은 관계성이 극대화되는 자리가 바로 중이기 때문입니다...(p.66)
선생님께서 손때 묻은 그릇이라고 표현하신 주역, 나아가 동양고전을 말씀하시는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개인주의적 사고, 불변의 진리, 배타적 정체성 등 근대적인 인식틀에 갖혀 있던 나에게 감옥에서 손에 든 『주역』은 중격이고 반성이었습니다. 나아가 비근대를 조직하고 탈근대를 지향하는 귀중한 디딤돌처럼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pp.69-70)
사회변혁을 위해서는 지금의 사회구조는 당연하며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논리,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 분쟁과 분열을 일으키는 사고방식을 깨부술 도구가 필요했습니다.
그것이 서양의 구조주의가 이를 지지하기는 하지만, 많이 부족한 인식의 틀이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서는 기본적으로 인간을 관계속에서 파악하는 사고가 깔려 있는 동양고전을 들고 나온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다시 생각하면 세상에 완성이 없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니다....완성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다만 어떤 국면의 완성일 뿐 궁국적인 완성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p,71)
.......미완성이 보편적 상황이라면 완성이나 달성이란 개념은 관념적으로 구성된 겅에 지나지 않습니다. 완성이란 개념은 관념적으로 구성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완성이나 목표가 관념적인 것이라면 남는 것은 결국 과정이며 과정의 연속일 뿐입니다.(강의, p.128)
우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오늘날 만연한 '속도'의 개념을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속도와 효율성, 이것은 자연의 원리가 아닙니다. 한마디로 자본의 논리일 뿐입니다. 그래서 나는 도로의 속성을 반성하고 '길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길'은 길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길은 코스모스를 만나는 곳이기도 하고 친구와 함께 나란히 걷는 동반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일터이기도 하고, 자기 발견의 계기이기도 하고, 자기를 남기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강의, p.129)
목표와 과정이 하나로 통일되어 있다면 우리는 생산물의 분배에 주목하기보다는 생산 과정 그 자체를 인간적으로 바꾸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강의, p.129)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역이 가르쳐주는 덕목인 성찰, 겸손, 절제를 실천하고 만물은 미완성이므로 결과,속도, 목표를 과정을 중시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독법만으로 『주역』을 이야기하는 것은 부족합니다. 『주역』에서 발견하는 최고의 '관계론'을 소개하는 것으로 끝마치겠습니다. 성찰,겸손,절제, 미완성, 변방 입니다. '성찰'은 자기중심이 아닙니다.. 시각을 자기 외부에 두고 자기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자기가 어떤 관계 속에 있는가를 깨닫는 것입니다. '겸손'은 자기를 낮추고 뒤에 세우며, 자기의 존재를 상대화 하여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 배치하는 것입니다. (겸손함은 여러가지 사정을 배려하는 것), 강의 p.132) '절제'는 자기를 작게 가지는 것 입니다. 주장을 자제하고, 욕망을 자제하고, 매사에 지나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부딪칠 일이 없습니다. 미완성은 목표보다는 목표에 이르는 과정을 소중하게 여기게 합니다. 왕성이 없다면 남는 것은 과정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 네 가지의 덕목은 그것이 변방에 처할 때 최고가 됩니다. '변방'이 득위의 자리입니다.(p.72)
우리는 사람을 개인으로, 심지어 하나의 숫자로 상대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노인들은 고암 선생의 경우처럼 '뉘 집 큰아들 ' 로 생각합니다. 사람을 관계 속에 놓습니다. 이러한 노인들의 정서가 『주역』의 관계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pp.74)
"관계"에 대해서 생각나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재미있게 본 영화 비포선라이즈에 여자주인공과 남자주인공이 손을 잡고 비엔나거리를 걷다가 골목에서 잠시 쉬면서 대화를 나누죠. 여자주인공이 이렇게 말합니다. “I believe if there’s any kind of god, it wouldn’t be in any of us. Not you or me, but just this little space in between. " 신이 있다면 내안에 있거나, 네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사이, 이 작은 공간에 있다고 생각해.
근대의 사고방식은 개인을 단독, 개별자로 인식하게끔합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일정정도 자유함을 얻지만, 외로움이 같이 다가오고, 주변과 불화를 일이킬 수 밖에 없는 사고방식입니다. 생각의 단위가 나 자신 밖에 없고, 주변사람이나 상황을 살피는 태도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무엇이 있습니다. ^^
http://www.beopbo.com/news/quickViewArticleView.html?idxno=19174
댓글